< 귀환2 >
사막에서 돌아온 참전군은 장안의 화제였다.
아편전쟁의 패배 이후 강제로 개항당하여, 줄곧 열강들의 침탈과 수탈에 고통받아온 중국이었다.
그런데 세계가 둘로 갈려 벌어진 대전쟁에 중국군이 참전하여 뛰어난 전공을 올렸다는 사실은 국뽕으로 마시기에 너무나도 적절한 소재였다.
차이어의 장례식에 몰려든 인파에 놀랐던 것이 얼마 전인데.
기차가 베이징역에 가까워졌을 때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샤즈광이 심상치 않은 얼굴로 객실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대장. 큰일났습니다."
"그런 것 같군. 상황은 어떠냐."
"포위되었습니다. 탈출이 불가능한 지경입니다."
열차는 이례적으로 속도를 줄여 굼벵이처럼 기었다.
창밖에서 벌써부터 아우성과 열기가 전해져 왔다.
"참전군이 왔다!"
"무쌍장군이 돌아오셨다!"
광란에 가까운 시민들의 흥분이 역을 가득 메웠다.
마구 외치던 시민들의 함성이 종래에는 한 가지 단어로 통일되었다.
"한신! 한신! 한신! 한신!"
샤즈광이 난감한 듯 말했다.
"역의 뒤편에 담장을 넘어 나갈 수 있는 길이 있긴 합니다. 준비할까요?"
"아니. 저 사람들은 날 보겠다고 온 거다. 기대에 부응해야지."
"하긴···. 대장이 안 나타나면 폭동이라도 일으킬 분위깁니다."
열차에서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우레와 같은 함성이 고막을 찢을 듯이 울려 퍼졌다.
"한신! 한신! 한신! 한신!"
내가 손을 들자 고함이 잦아들었다.
이 인파 속에서 내가 말을 해봤자 잘 들리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나는 입을 열었다.
"보내주시는 성원은 잘 알고 있습니다. 길을 터주시겠습니까?"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장군께서 지나가신다! 길을 터라!"
"길을 터라아~."
"길을 터라아아아~."
메아리처럼 말이 전달되면서 인파의 중앙에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마치 모세의 기적과도 같은 광경.
샤즈광을 비롯한 부하들의 경호를 받으며 나는 무사히 인파를 헤쳐나왔다.
베이징역 앞에 준비된 차에 탑승할 때까지도 시민들은 계속 내 이름을 연호했다.
***
중난하이의 대강당.
육군부와 장군부의 장군들이 도열한 가운데로 나는 뚜벅뚜벅 걸어나갔다.
리위안훙이 금빛 훈장을 든 채 단상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무쌍장군 한신. 중양(中洋)의 대전에 참전하여 도합 열한 번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주요 거점 확보 및 군수물자를 노획하였으며, 요충지를 굳건히 지켜 적의 뜻을 꺾은 공로로 국사훈장(國士勳章)을 수여한다."
짝짝짝.
강당에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으나.
바깥에서 열화와 같은 성원을 경험하고 온 나로서는 썩 시원치 않았다.
슬쩍 보니 손바닥 움직이는 속도만 보고도, 누가 누구 편인지 죄다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원래 베이징은 마귀 소굴이었지만.
2년 만에 돌아온 베이징 정치판은 의외로 정돈된 분위기였다.
하지만 나는 이 고요함이 의미하는 바를 잘 알고 있었다.
말하자면 서열 싸움이 끝난 것이었다.
북양파를 하나로 묶던 위안스카이는 이제 없다.
위안스카이의 그늘에서 떡잎을 키우던 새끼 마귀들은 이제 머리두께가 굵어지고 어깨가 벌어져, 제각기 굴을 파고 행세하고 있었다.
"익무장군 차이어도 못지않은 전공을 올려 국사훈장을 수여하나, 포상자의 사망으로 한신이 대리 수령한다."
차이어의 훈장을 받을 때는 박수 소리가 조금 커졌으나.
여전히 성에 차진 않았다.
가장 신경 쓰이는 무리는 강당의 맨 앞줄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장성들.
하나같이 미리 짠 것처럼 뚱한 표정에 손뼉은 맥아리 없이 설렁설렁이다.
그 무리의 중앙에 육군부장관 돤치루이가 앉아있었다.
손뼉은커녕 팔짱을 끼고 숫제 비스듬히 날 꼬나보는 태도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보라는 듯, 바닥에 침을 뱉었다.
훈장수여식이 끝나고.
날 부른 리위안훙은 대담하게 집무실에서 맥주를 깠다.
"축하주야."
"고량주는 안 하세요?"
"나도 나이가 들었나 봐. 센걸 먹으면 속이 쓰려. 맥주가 딱 좋아."
잔을 나누고.
리위안훙이 날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왜요?"
"그냥. 역시 네가 있으니 안심이 된다."
"됐습니다, 그런 눈빛은 여자한테나 받아야지. 그만 쳐다보십시오."
"그러게 말이다. 야, 한신. 너도 나이가 찼는데 결혼 안 하냐? 중매 서줄까?"
"아닙니다. 인연이 있겠지요."
"네가 벌써 스물일곱이지. 시간이 빠르긴 하고만. 얼른 준비해라. 잘못하면 총각 귀신 될라."
거참. 명절에 참견하는 큰아버지 같네.
나는 수여식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놈들은 왜 저런답니까?"
"누구?"
"돤치루이 말입니다. 이건 뭐, 육군 내에서 일진 놀이 하는 것도 아니고."
리위안훙이 혀를 찼다.
"흥, 그 새끼들. 그동안 살판났지. 이제 네가 돌아왔으니 예전처럼 마음대로 활보하지는 못하겠지만."
"현재 베이징에서는 돤치루이의 파벌이 제일 잘나가는 겁니까?"
"그런 셈이야. 자기 고향인 안후이성에 육군 훈련소를 짓고 병사를 양성하며 알게 모르게 중앙군을 장악하려 시도하고 있어."
"장악했습니까?"
"아니."
비어있는 잔에 술을 새로 채우며 리위안훙이 낄낄댔다.
"흐흐. 사실 나는 네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헛걱정이었어. 네가 없으니 자기들끼리 잘 싸우더군. 알아서 시기하고 견제하고 찍어대니, 나는 뭐 한 것도 없다. 지금 베이징에는 돤치루이의 안후이파가 강성하긴 하다만, 그에 못지않은 파벌들이 있어."
"예를 들면?"
"차오쿤의 즈리파가 대표적이지. 펑궈장이 감옥에서 허무하게 죽고, 즈리파는 그대로 몰락하는 줄 알았는데. 그놈이 어찌 수습하더라고."
위안스카이의 북양파는 안후이파와 즈리파로 갈라졌다.
하지만 아직 한 곳이 더 남았다.
"펑톈파는 어떻습니까?"
"펑톈은 왜?"
"놈들이 베이징에 간섭하려고 안하덥니까?"
"안하던데? 장쭤린 정도면 아주 우수한 독군이지. 펑톈성의 공업발전 속도도 적절하고 조세도 꼬박꼬박 납부하니. 다른 지역 독군들이 장쭤린의 반만큼만 해줘도 중화민국은 단번에 강대국이 될걸."
장쭤린으로 말할 것 같으면 원역사에서 장제스를 제외하고 천하통일에 가장 가까이 갔던 대군벌.
아직은 만주에서 왕 노릇 하며 조용히 지내는 모양이었다.
"그럼 베이징에서는 안후이파와 즈리파끼리 다툰다 이거군요."
"그래. 근데 네가 돌아왔으니 또 모르지. 누가 뭐래도 한신이야말로 북양파 필생의 적수잖아."
"에이, 그 정도는 아니죠."
리위안훙은 문득 뜸을 들였다.
비어있는 내 잔을 채우며 그가 말했다.
"언제 시작하냐?"
나는 리위안훙의 말에 담긴 함의를 알아차렸다.
우리가 후베이성을 떠나 베이징에 둥지를 짓기 시작한 때부터 함께 노려온 바였다.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몰락하고 어수선한 상태에서 어찌어찌 중화민국이 들어섰으나.
여전히 통일 국가라 부르기에는 많이 모자랐다.
중화민국의 명목상 군통수권은 대총통이 가졌지만.
실질적으로는 중앙군 대부분이 북양파의 휘하에 있었으니.
육군부장관인 돤치루이가 군권을 틀어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북양파 내에도 다양한 파벌이 있고, 북양파가 아닌 파벌들도 각자의 군대를 키우고 있다.
돤치루이의 명령을 받다가도 직속 군벌의 명령을 받으면 바로 총칼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군대가 대다수였다.
이런 개차반 같은 상황에서 대외적으로나마 통일 국가를 표방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중앙정부가 벌집을 쑤시지 않고 그대로 놔둔 덕이었다.
군벌들은 방임 속에서 제각기 자리를 잡고 꿀을 빠는 중이었다.
언제까지나 이런 식으로 국가를 운영할 수 없음은 명백하다.
그들을 협상 테이블에 앉히든, 굴복시키든, 절멸시키든.
어떤식으로는 정리가 필요했다.
리위안훙의 언제 시작하냐는 말은, 그러한 의미에서 군벌들의 정벌을 말하는 것이었다.
술이 올라오는 것인지 리위안훙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기대감에 차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입니다."
"어째서? 이제 우리는 강력한 군대가 생겼다. 북양파 놈들에게 그간 뒤지게 시달렸는데, 복수할 때가 온 거잖아."
"사막에서 지난한 전쟁을 치르고 온 병사들입니다. 휴식이 필요해요."
"언제까지 휴식할 건데?"
"아아. 안 됩니다. 지금 군대를 일으켰다가는 60만 북양군을 한꺼번에 상대해야 한다고요."
"자신 없어?"
자신은···.
글쎄다. 하려면 하겠지만.
내가 답을 안 하고 있자, 리위안훙이 배꼽을 잡았다.
"이야, 으하하. 말 못하는 거 봐라. 60만 북양군과 싸울 자신이 있다는 거냐? 그렇지. 이게 전략의 천재, 한신이지."
"아뇨, 내전은 최후의 수단입니다. 중화민국의 의회정치는 제법 잘 굴러가고 있으니, 정치의 영역에서 타협과 절충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야, 아서라. 내가 진짜로 전쟁을 일으키라는 거겠냐? 그냥 해본 말이다. 술이나 마셔라."
리위안훙이 잔을 들어 올리는 시늉을 해 보였다.
나는 따라 마셨다.
확실히 내전은 피하는 것이 맞지만.
자기 군대를 스스로 포기하는 현명한 위인은 세상에 존재한 적이 없다.
인간이란.
달래고, 윽박지르고, 명치에 주먹을 갈겨줘야만 알아듣는 존재이니.
오늘날의 군벌 시대를 끝장내려면, 무력만큼 확실한 방법도 없다.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다.
종막에는 군벌 전쟁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하지만 결말을 알면서도 서스펜스에 기대을 가지는 것이 또 인간이지 않은가.
나는 최대한 노력할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
"선거 준비는 잘 됩니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총통 선거 안 나가요?"
"총선이 4월이고, 대선은 10월이잖아. 아직 한참 남았다고."
나는 슬쩍 말했다.
"쑨원이 정치복귀를 선언했던데, 아세요?"
"그놈은 이랬다가, 저랬다가, 박쥐도 아니고 뭐 하는지 모르겠네."
"위협은 안 느끼십니까?"
"내가 왜? 국사무쌍의 한신이 날 지지하는데, 킬킬킬."
확실히 지금으로서는 선거에 지는 미래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부디 이번 선거에는 지난 번과 같은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기를.
***
모든 환영행사가 마무리된 줄 알았을 때, 진짜배기가 남아있었다.
후베이성에서 3일에 걸친 '우창에서 승천한 용, 한신제(韓信祭)'가 열렸다.
내 이름을 딴 축제를 만들어 기념하겠다는데 호응하지 않을 수도 없고.
먹고 마시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있는 위엄 없는 위엄 다 짜내어, 환호하는 시민들을 만족시켜주고.
비로소 축제가 끝나고 조용해지자.
나는 집무실에 홀로 앉아 내가 이룬 성과를 조망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양은행을 중심으로 하는 금융가의 무지막지한 성장이었다.
영국의 시티 오브 런던에 가면 이런 느낌일까?
미국 뉴욕의 월 스트리트가 이런 느낌일까?
작년에 문을 연 한양은행 주관의 금융거래소는 개장 첫날부터 주식매매를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사시사철 붐비지 않은 날이 없었다.
한양은행은 오늘날 중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금융기관.
수수료를 적게 받는 데다 매매에 문제가 생겼을 때를 대비하여 구제 수단까지 완비해 놓았으니 인기가 좋을 수밖에 없었다.
한양을 중심으로 중국 전역에 거미줄 같이 철도망까지 깔려 있어 금융허브의 역할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홍콩상하이은행에서 독점하던 외환시장은 한양은행과의 양강 체제로 자리잡았다.
홍콩상하이은행의 자금 유통량은 날로 늘어났는데.
유럽 전쟁으로 축소된 세계금융시장의 틈새에서 중국이 야금야금 세를 불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쯤에서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함을 절감했다.
초기 한양은행의 설립 목표는 한야평공사를 살리기 위함이었다.
한야평공사는 중국 최대의 공장으로 활활 돌아가고 있으니 목표는 대성공.
이후로도 한양은행은 공격적 합병을 멈추지 않았고 지금에 와서는 문어발과 같이 한양은행 하나에 지나치게 많은 기업이 의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양은행은 어디까지나 예금과 대출을 전문으로 하는 은행.
기업을 관리하고 경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은행 업무에서 벗어나, 보다 전문적으로 기업을 담당할 수 있는 지주회사가 필요했다.
금융, 건설, 제철 등 광범위하게 기업들을 통제할 컨트롤 타워가 존재한다면 경영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물론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관리하려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다들 그렇겠지만.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이 가족이었다.
분명, 미국에 유학 간 한서시의 전공이 경제학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