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콩의 밤문화 >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
마음의 고향, 홍콩.
차에서 내리기 전.
경호 임무의 대가, 샤즈광에게 검사를 받았다.
"어떠냐, 감쪽같지?"
"무슨 의미로 묻는 겁니까?"
"난 줄 아무도 모를 거 아냐."
"대장인 줄은 모르겠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냥 잔뜩 수상해 보이는데요."
아랍에서 베두인들이 하던 대로 기다란 가운을 걸치고, 얼굴은 두 눈만 드러내고 두건으로 꽁꽁 가렸다.
다만, 사막에서와는 달리 올블랙으로 맞춰 입었다.
"뭐가 문젠데?"
"그렇게 잔뜩 새까맣게 차려입으니 딱 봐도 뭔가 나쁜 짓을 꾸미러 가는 사람 같잖습니까."
"괜찮아. 홍콩에는 어차피 나쁜 놈들 천지니까."
고향에 돌아오면서 이렇게까지 정체를 숨기는 이유는 물론 언론 때문이다.
내 일거수일투족은 샅샅이 감시당하고 있다.
모닝커피 취향을 분석한 기사까지 읽은 다음부터는, 여지를 주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혹시라도 홍콩에 방문한 것을 기자들에게 들킨다면?
침사추이의 초라한 단칸방에서 저의 차이나 드림은 시작되었습니다···.
홍콩 소학교의 선생님은 절 따듯하게 대해주셨습니다. 점심을 굶고 있는 저를 보시곤 삶은 달걀을 나누어주셨지요. 아직도 그때 달걀에 남아있던 온기를 기억합니다···.
고해성사처럼 아이 러브 홍콩을 몇 날 며칠에 걸쳐 떠들어야 할 지도 모른다.
휴가는 좀 편하게 즐겨야지.
"어어? 정말 그대로 나가는 겁니까?"
"샤즈광. 너는 홍콩이 처음이지? 잘 봐라. 이 도시에서는 올블랙이 애티튜드에 맞는다고."
현대식 빌딩들이 빼곡히 들어찬 20세기 홍콩의 번화가.
거리에는 검정 양복에 선글라스를 끼고 무리 지어 다니는 사내들이 있었다.
샤즈광은 차에서 내린 지 채 5분이 안 되어 양복쟁이 한 놈과 눈싸움을 시작했다.
"야, 뭐해."
"저 새끼가 눈을 안 피합니다, 대장."
"좀 져줘라. 딱 봐도 스무 살도 안돼 보이는 애구만. 꼭 그렇게 이겨먹어야겠냐?"
"남자라면 피할 수 없는 싸움도 있는 법입니다."
샤즈광과 눈싸움하는 놈을 보니, 한껏 인상을 험악하게 구기며 노골적으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딱 봐도 삼합회의 말단 같은데.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요즘 애들 교육 안 시키나?
샤즈광이 눈을 피하지 않자, 녀석이 무리를 이끌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너흰 처음 보는데, 어디서 온 놈들이냐?"
어처구니가 없는지 샤즈광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알아서 뭐 하게?"
"딱 봐도 졸라게 수상한데. 여긴 뭐 하러 왔어?"
샤즈광이 내게 눈을 흘겼다.
"보시오, 대장. 위장이고 자시고 그 복장은 그냥 수상하다니까요."
"지금 시비 걸린 게 나 때문이냐? 네가 인마랑 눈싸움해서 그런 거 아냐."
자기는 안전에도 없다는 듯이, 나와 샤즈광이 말싸움을 하자.
녀석이 주먹을 들어 올렸다.
"이 새끼들이 보자보자하니까!"
양복쟁이들이 나와 샤즈광 주변을 슬금슬금 둘러쌌다.
이 느낌, 오랜만이구먼.
샤즈광이 뻗댔다.
"뭐하냐, 너네? 싸움이라도 하자고?"
"싸움은, 씨발. 다구리다!!"
한꺼번에 놈들이 달려들었으나.
샤즈광의 주먹이 휘리릭 하는 순간, 네 명의 사내가 똑같은 자세로 골목 벽에 기대어 나자빠졌다.
나는 처음에 시비가 걸린 녀석 앞에 쪼그려 앉아 물었다.
"요즘 조직 분위기기는 어떠냐?"
"으으···. 어디서 온 놈들이야. 청방이냐?"
"아니. 삼합회에서 왔다."
"삼합회라고? 우, 우리가 삼합회의 조직원인데···. 선배님이십니까?"
녀석이 화들짝 놀라 눈치를 보았다.
샤즈광이 싸우는 폼을 보고 무언가 범상치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듯 했다.
"그래, 자식아. 조직 분위기기나 말해봐."
"분위기라고 해도 뭐라 말해야 할지···."
"좋아? 안 좋아? 그것만 말해봐."
녀석이 조심스레 말했다.
"안 좋습니다···."
"왜?"
"불만이 많아요."
"왜?"
"명색이 삼합회인데. 다른 조직이 하는 걸 하나도 안 하니까, 구역만 점점 뺏기고. 싸움도 제대로 못 하게 하고···."
"아편 매매를 말하는 거냐?"
녀석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 공권력이 약한 시대.
음지에서 사업할 거리야 차고 넘친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캐시카우는 역시 마약만한 것이 없긴 하다.
초기 삼합회를 견인한 최대의 수훈갑이 아편이었으니.
영국령 인도에서 홍콩항에 쏟아져 들어오는 모든 아편이 삼합회의 손을 거쳤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중국을 바꿔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나로서, 어떻게 보고만 있겠는가.
삼합회는 아편의 유통에서 점차 손을 뗐고 자연히 수입량도 줄어들었다.
게다가 이번 세계 대전 참전을 결의하면서는 아예 영국을 비롯한 열강으로부터 들여오던 아편 수입을 전면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조치는 조치일 뿐.
현장에 계신 마약 밀매의 역군들이 그깟 조치 쌩까는 거야 당연하긴 하지만.
그래도 녀석이 하는 말에 흥미가 가는 부분이 있다.
"다른 조직들은 홍콩항에서 아편을 들어오고 있냐?"
"예."
"규모는?"
"잘은 모르지만, 딴 조직 애들이 말하는 거 들어보면. 이전이랑 별로 차이도 없대요."
삼합회의 공백 자리에 우후죽순 생겨나는 아편 조직들.
갑자기 땅에서 솟을 수는 없다.
그 배후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군벌 세력이 있다.
북양파든 비북양파든 마찬가지다.
군벌이라 함은 결국 독자적인 군대이고.
군대를 운영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든다.
그런 군벌 세력이 돈이 복사가 되는 아편의 유혹을 뿌리치기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그래. 알려줘서 고맙다. 엄마말 잘 듣고."
나는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면서 두건이 살짝 흘러내렸다.
갑자기 녀석의 얼굴이 경악에 가득 찼다.
"헉! 혹시···? 혹시···!"
"쉿. 너만 알고 있어라."
"옙!"
"마스터한테 전해라. 밤에 찾아가겠다고."
"알겠습니닷!"
깍듯이 허리를 숙이는 녀석들을 남겨두고 골목을 빠져나왔다.
박살난 천하를 수습하는 방법.
군벌들과의 전쟁보다 훨씬 좋은 방법이 있다.
아편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거다.
싸우기 전에 놈들의 세력을 약화시키면 된다.
하지만 음지에서 은밀하게 거래되는 아편 밀매를 어떻게 막을까.
이 바닥의 생리에 정통한 아주 적임자가 있지.
누가 삼합회를 범죄 조직이라 부르는가.
이제는 자경단으로 다시 태어난다.
인상을 풀고 나는 집으로 향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
"아버지, 이제 일 쉬셔도 돼요. 우한시에 와서 같이 살아요."
"벌써 뒷방 노인네 취급하는 거냐? 난 항만에서 일하는 게 마음에 들어."
아버지와 어머니를 뵈니 괜스레 생각이 많아졌다.
내게 적이 많은 만큼 피해가 가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가족이 머무는 홍콩섬의 치안이야 훌륭하지만.
좋지 않은 마음을 먹는다면 해를 가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얘, 나는 갈련다. 우한이 그렇게 발전했다는데 구경이라도 한 번 해보고 싶잖니. 또 네가 후베이 독군으로 있는데 굳이 여기서 살아야 할 이유가 뭐가 있어."
"어머니 혼자 오신다고요?"
"왜, 안되니?"
"두 분···. 사이는 좋으시죠?"
"사이 얘기할 게 뭐 있니. 집은 항상 조용하고, 매일매일이 똑같지 뭐. 그래서 너 있는 쪽으로 옮기고 싶다는 거야."
"오시면 좋죠. 그런데 아버지가 혼자남게 되니 그게 마음에 걸리네요."
"이 양반은 걱정할 거 없어. 허구한 날 밖으로 싸돌아댕기니. 내가 없어져도 알아차리지도 못할걸?"
듣고 있던 아버지가 말했다.
"그건 그래."
아니, 동의하는 건 또 뭔데.
어릴 때부터 느끼는 거지만 우리 아버지, 참 괴짜다.
"서시는요?"
"서시는 왜?"
한양은행이 지분을 가진 크고 작은 237개 기업의 경영을 상의하려고요.
라고는 말할 수 없으니, 자상한 오빠가 되기로 했다.
"졸업하고 집에 왔으니 얼굴을 봐야지요. 미국생활 어땠는지도 물어보고 용돈도 주려고요."
"요즘 바쁘더라."
"뭐 하는데요?"
"대학도 졸업했으니, 취업준비를 하는 거지."
"뭔 준비를 한다고."
"얘는, 날을 왜 그렇게 하니. 열심히 하는 것 같아서 나는 보기 좋더라. 너 혹시 서시 방해하거나 그러지 마."
"제가 방해를 왜 해요."
하지만 한서시는 밤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별수 없이 나는 낮에 말했던 것처럼 삼합회의 마스터를 찾았다.
***
낮과 똑같이 분장하고 가니 샤즈광이 기겁했다.
"대장, 제 뒤로 오십시오. 온통 까만색이니까 보이질 않습니다."
삼합회의 본거지는 그야말로 상전벽해였다.
예전의 칙칙했던 헛간 같은 건물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대신 삐까뻔쩍, 휘황찬란한 카지노가 들어서 있었다.
"우와, 이게 뭐다냐. 대장, 이거 보셨습니까? 구슬로 돈을 따먹는가 봅니다."
"이거 내가 만든 거잖아."
"?"
"야, 못 믿어?"
거짓말인 줄 아네.
하긴, 내가 만들었던 초기 버전의 파칭코와는 비교할 수 없이 잘빠진 기계였다.
색색깔의 불빛과 함께 소리도 나니, 아편 중독자를 도박 중독자로 대체시키기에 아주 적절한 물건이었다.
파칭코를 비롯한 각종 도박판이 펼쳐진 테이블 뒤로는 커다란 무도회장이 있었다.
그곳에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며 술을 팔아먹는 모양이었다.
내 감상은.
20세기에 존재하는 모든 오락거리를 한 자리에 때려 박은 엄청난 곳이라는 것.
아편을 팔지 않아도 삼합회의 재정에는 문제가 없었다.
삼합회의 드래곤 마스터.
예전에 보았을 때보다 한결 여유가 생겨, 이제는 완연한 거물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한신, 왔군."
"마스터."
뉴샤오티엔이라는 괴상한 이름을 가진 마스터.
그가 와인을 따라 건넸다.
"낮에 있었던 일은 미안해. 밑에 놈들의 불만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아. 태생이 길바닥 놈들이라 누구하고든 싸움을 하고 싶어 근질거리나 봐."
"요즘은 싸울 거리가 없나?"
"없지. 기껏해야 카지노에서 행패부리는 손놈 쫓아내는 정도인데. 그걸로는 성이 안 차나봐."
"나 때는 진짜 목숨을 걸고 일했었는데."
"알지. 알아."
확실히 삼합회는 젠틀해졌다.
더 이상 예전처럼 길바닥에서 아귀다툼을 벌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한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오늘은 예전에 말했던 일본 사업건 때문에 온 건가?"
"그건 아니지만. 들어보지."
세계대전이 벌어지기 직전.
나는 뉴샤오티엔에게 말했었다.
군국주의 일변도인 일본에 자유와 민주의 느슨한 분위기를 퍼뜨리라고.
물론 그 방법은 유흥을 잔뜩 장려하는 거다.
"초기에는 좋았어. 잘 돌아갔지. 그런데 이번에 총리가 된 자가 문제야."
"데라우치 마사타게인가?"
"그래, 그 자식이 우리의 도박장을 헌병을 풀어 단속하고 있어. 이게 말이 돼?"
"사업이 어려운가 봐."
"지금은 깜박 죽은 척 중이야. 다만 지금의 암흑기가 단순히 고개 숙이고 있으면 지나갈 암흑기인지. 아니면 영영 햇빛을 보지 못할 종류의 암흑기인지. 그게 구분이 안 돼."
지금의 총리가 권력을 유지하는 기간은 길지 않다.
아직 진짜 다이쇼 데모크라시는 오지도 않았으니.
일본의 리버럴들이 날뛸 때, 삼합회는 그걸 잘 서포트해주기만 하면 된다.
"전자야."
"곧 지나갈 암흑기라고?"
"그래."
"네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되는군. 네 말은 언제나 들어맞으니까. 세계 대전에 관한 이야기는 정말 놀랐다고."
나는 본론에 들어갔다.
"아편이 금지되었는데, 홍콩항에서 밀매는 여전하다지?"
"그런가? 나는 손 뗀 지 오래라, 요즘 돌아가는 사정은 잘 모르겠군."
나는 여전히 아편으로 배를 불리는 군벌들을 성토하며.
삼합회를 치안경찰로 삼아 다른 조직들을 타파하고 홍콩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한창 설파했다.
뉴샤오티엔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다른 조직이 세를 불리는 것은 나도 원치않아. 몸집이 커지면 분명 이쪽 구역도 넘볼거란 말이지. 카지노 시장은 삼합회가 독점해야 해."
얘기가 잘 되어가던 도중.
나는 우연히 눈길을 준 무도회장에서 익숙한 얼굴을 보았다.
마음이 쿵 내려 앉았다.
한서시.
네가 왜 거기서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