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4화 (84/108)

< 홍콩의 밤문화2 >

 카지노의 무도회장.

 삼합회 마스터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나는 한서시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분명 어머니께는 취업 준비 중이라 했다는데.

 영 좋지 않은 곳에서 마주쳐 버렸다.

 "마스터, 다른 조직들과의 일은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오케이. 바로 갈 거야? 좀 놀다가라구. 오늘 특히 물이 좋아."

 뉴샤오티엔은 그 말을 하며 댄스홀을 훑었다.

 그가 딱히 못할 말을 한 것도 아닌데, 괜히 속이  끓어올랐다.

 "여기 잘 되나?"

 "보면 몰라? 전 세계를 다 뒤져도 이만큼 규모가 크고 설비가 갖춰진 오락시설은 없을걸."

 "젊은 사람이 많군. 외국인도 많고."

 "냄새나는 중국인 정도 참아주면서 서양놈들이 들를 만한 곳이지."

 "뭐, 이상한 건 안 하지?"

 뉴샤오티엔이 의아한 눈으로 물었다.

 "이상한 게 뭔데?"

 "그···. 있잖아."

 "아편이나 매춘을 말하는 거야?"

 "대충."

 "한신. 뭔말을 하는 거야. 네가 알려줬잖아. 삼합회는 우리가 함께 건설한 제국이야. 그 정신은 완벽한 자유방임에 있고. 우리는 사람들이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할 뿐이야. 그 안에서 뭔 짓을 하든 그건 고객의 마음인 거잖아."

 확실히 파칭코 장사를 시작하며 내가 그에게 했던 말이다.

 괜히 일본 군부가 오락사업이 자유주의의 확산에 기여한다며 때려잡는 게 아니다.

 하지만 정작 내 가족의 일이 되니까.

 엄근진하게 되는구먼.

 "그래서, 해. 안 해."

 정색하고 궁서체로 묻자, 뉴샤오티엔이 대답했다.

 "우리 기조 그대로야. 조직 차원에서 장려하진 않지만, 개인 간의 사사로운 교류를 굳이 막진 않아."

 "그 말은 한다는 거냐?"

 "한신, 왜 그래. 너답지 않게."

 "나답지 않다고?"

 "너도 알잖아. 원래 이 바닥이 다 그런 거. 저 사람들은 카지노에 즐기러 온 거야, 이것저것 다 막았다가는 여길 올 이유가 없다고."

 맞는 말이긴 하지.

 기분은 여전히 더럽고.

 "알았다. 어쨌건 아편은 근절해야 돼. 여기 카지노도 동참해야 하고."

 "···여론이 좀 잡힌다 싶으면 그리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여주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두운 그늘에 앉아 동생의 행각을 지켜보았다.

 이미 성인이고. 

 뭐든 할 자유가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왜 이리 씁쓰레하지?

 한껏 치장하고 댄스홀의 중앙에서 춤을 추는 한서시는 친숙한 듯하면서 낯설었다.

 그녀 또래로 보이는 여자친구 한 명과 미국식 스윙 댄스를 추는데 언제 배웠는지 제법 그럴듯했다.

 한동안 바라보았다.

 우려와 달리 특별히 대단한 일탈을 벌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적당히 춤추고, 적당히 마시고.

 그만하면 건전하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

 하지만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때, 한 무리의 술 취한 남자들이 한서시에게 다가갔다.

 마음이 철렁했다.

 남자들이 희롱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서시의 친구가 한마디 했다.

 "꺼져."

 남자들이 대판 욕지거리를 내뱉었고.

 한서시도 지지 않고 입을 털었다.

 동생이야 어렸을 때부터 항만에서 선원들과 부대끼며 자랐으니 기 센 거야 당연했지만, 친구도 만만치 않았다.

 소란이 커질 기미가 보였다.

 나는 나설 때가 됐음을 알았다.

 "형씨들. 진정하라고. 노는 데선 놀아야지, 얼굴 붉히면 쓰나."

 "넌 뭐야? 병신같이 두건을 쓰고서는. 얘네랑 아는 사이냐?"

 "어."

 "그럼 그렇지, 남자가 있었어. 갈보 같은 년들."

 "입이 참 걸쭉하시네. 말로 해서는 안되겠고만."

 "뭐? 이 새끼 배짱 보소."

 휙!

 대뜸 남자가 주먹을 날려왔다.

 술냄새가 확 끼쳤지만,

 비실거리는 주먹은 피할 거리도 안 되었다.

 퍽!

 나는 남자의 배에 주먹을 꽂았다.

 "억!"

 놈의 허리가 꺾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무슨 고담시도 아니고, 홍콩에 온 지 이제 첫날인데 벌써 쌈박질만 두 번째다.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던 샤즈광에게 처리하라는 손짓을 보냈다.

 샤즈광은 삼합회 조직원들과 함께, 엎어진 남자와 무리를 카지노 밖으로 끌고 나갔다.

 나는 조금 전까지 곤경에 처했던 두 여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친구는 담담한데, 한서시는 의아한 표정이었다.

 눈만 빼꼼 내놓고 있기는 하지만.

 오빠라는 것 대충 눈치챘겠지?

 얼른 고해성사해라, 서시야. 

 솔직하게 불면 취준한다고 구라치고 농땡이 피운 것 정도는 용서해주마.

 "오···, 빠···?"

 한서시가 눈을 크게 뜨고 날 올려다보았다.

 "어. 나다."

 그다음에 벌어진 한서시의 행동은? 내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꺄악! 오빠! 너무 보고 싶었어!"

 한서시가 와락 안겨 왔다.

 나한테 얼굴을 비비며 조잘거렸다.

 "홍콩에 언제 온 거야? 왜 온다고 말 안 했어! 이 두건은 뭐야? 이상한 걸 쓰고 있어. 헐! 피부가 많이 상했네. 사막 기후가 건조해서 그랬나 봐. 어떡해, 한 번 상한 피부는 잘 안 돌아오는데."

 멋대로 두건을 벗기고는 이리저리 나를 살폈다.

 잘못을 저지르다 들킨 기색이 영 아니었다.

 뭐야. 얘, 왜 이리 당당해?

 나는 어이가 없어 말했다.

 "뭐하냐, 지금?"

 "웅? 뭐가?"

 "여기서 뭐 하고 있냐고."

 "나 공부하잖아."

 "카지노에서 춤추면서?"

 "웅."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옆에 계신 분은 친구야?"

 "웅. 내 대학 친구야."

 웨슬리언 대학의 친구라고?

 그럼 이 여자가 쑹 가문 세 자매 중 셋째이자, 훗날 장제스의 부인이 될 쑹메이링이란 말인가?

 그녀의 얼굴에 쑹자수가 보이는 것 같았다.

 "인사가 늦었군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서시의 오빠인 한신입니다."

 "절 아시나요?"

 "예."

 "제가 누군데요?"

 "쑹메이링 아가씨잖습니까."

 내 말을 들은 그녀의 눈빛이 냉담하게 가라앉았다.

 옆에서 한서시가 소곤거렸다.

 "메이링은 상하이 본가에 갔어. 이 언니는 시시우(夏秀)라고 해."

 어?

 웨슬리언 대학교를 나온 중국인이 쑹 자매들 말고 또 있었나?

 "시시우 아가씨셨군요. 착각한 점, 죄송합니다."

 "그럴 수 있죠. 한두 번도 아닌데요."

 무언가 말투가 묘했지만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한서시를 다그쳤다.

 "네 취준의 정의를 말해봐. 어머니는 네가 어디 절에 틀어박혀 공부하는 줄로만 알고 계시던데."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절에 짱박혀 취업공부를 해? 모름지기 발로 뛰어다니며 시장 조사를 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비전을 키워야지."

 "카지노가 네 시장이야? 어머니가 걱정하신다고."

 "뭐야, 그 말투.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거야? 오빠는 내 전공이 경제학인 것도 모르지? 이 카지노에서 하루에 유통되는 현금이 얼마인지 알아? 우리가 하는 사업에서 돈의 흐름을 추적하는 일은 최고로 중요하다고!"

 "우리가 하는 사업이란 건, 시시우씨와 함께 뭔가를 하고 있다는 거냐?"

 "어! 투자증권회사 일이야. 엄밀히 말하면 언니가 사장이고 나는 직원이지만."

 나는 시시우를 힐끗했다.

 그녀는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얘 말이 사실입니까?"

 "어떤 부분이요? 일부는 사실이고 일부는 거짓이죠."

 "사실을 말해주십시오."

 "투자회사에서 함께 일한다는 건 사실이에요."

 "그럼 거짓은요?"

 "저와 서시는 공동창업자예요. 회사에서 위치는 완전히 동등하죠."

 어째 돌아가는 시추에이션이 내 예상과 한참 멀다.

 나는 마지막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었다.

 이 시시우란 친구와 한서시가 입을 맞추고 나를 농락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그 함께 운영한다는 투자증권회사의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수시증권(秀施證券)이예요."

 처음 듣는데.

 하긴 이제 막 만들었다는 회사를 내가 어떻게 알아.

 내 생각을 읽었는지 한서시가 외쳤다.

 "오빠, 예의 좀 지켜! 언니는 JP모건에 투자자문을 할 정도로 국제적으로 알아주는 금융 전문가란 말야."

 이 사람이?

 기껏해야 동생보다 몇 살 위인 것 같은데.

 내가 시시우를 뚫어지게 쳐다보자 그녀는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윙크를 해왔다.

 "정말 JP모건에서 일하셨습니까?"

 "과장이죠. 몇 번 자문일을 한적은 있지만요."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

 "그 정도면 JP모건에 정식으로 입사해도 상당한 대우를 받았을 터인데, 어째서 중국에?"

 "요즘 세계적으로 중국이 떠오르는 금융시장이거든요. 어디서 돈이 나오는지, 한양은행과 홍콩상하이은행이 쌍두마차를 끌면서 자금을 견인하고 있다니까요. 그 여파가 뉴욕에까지 미치니, 일본은 오히려 죽어가는 시장이고 중국에 투자를 해야 할 때라고 봤지요."

 "한양은행이라. 저도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민족자본으로 크게 성공하였다고."

 "하지만 지금처럼 마구잡이식으로 확장해나가다가는 언젠가 문제가 생길지도요."

 나는 귀가 번쩍 뜨였다.

 "왜 그렇습니까?"

 "투자금이 잘 회수될 때야 모든 것이 잘 돌아가지만. 문제는 한 번 흐름이 막혔을 때예요. 거시적 차원에서 기업 간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관리하고 적재적소에 시의적절하게 자금을 투입하여 문제를 조기에 해결해 줘야죠. 지금처럼 단순히 몸집만 불린 한양은행에 그런 컨트롤타워의 역량이 있다고는 보이지 않네요."

 그녀의 말은 내가 우려해왔던 바 그대로였다.

 나는 시시우에게 한양은행의 미래에 대해 몇 가지 더 질문했고.

 그녀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청산유수였다.

 그렇게 한참을 얘기하던 끝에.

 시시우가 문득 말했다.

 "그런데, 우리 이 얘길 왜 하고 있지요?"

 "그러게요."

 왜긴. 내가 물었으니까.

 "유익한 대화였어요. 군인이시라 들었는데 경제에도 굉장히 해박하시네요."

 "전문 금융인의 고견을 들을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영광은 제가 영광이지요. '더 한신'과 이야기를 나눈 건데요."

 프로다운 면모를 한껏 뽐낸 시시우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그녀의 칠흑빛 머리카락이 찰랑거렸다.

 "우리끼리만 얘기하니까 서시가 삐졌나 봐요."

 그제야 팔짱을 낀 채 입을 삐죽이 내민 동생이 눈에 들어왔다.

 이 상황을 정리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서시를 향해 말했다.

 "정리하면···. 취준이라기보다는 사업준비를 하고 있었구나."

 "그게 그거잖아."

 "그렇긴 해."

 "사과해, 그럼."

 "미안."

 카지노를 나왔다.

 시시우가 인사했다.

 "저는 여기서 가볼게요."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동생이 허리를 꾹 밀었다.

 "뭐해, 데려다 드려."

 "너는?"

 "우리 집은 어차피 코앞이잖아. 언니는 호텔에 머문단 말야. 멀어."

 대화를 듣던 시시우가 웃으며 말했다.

 밤인데도 거리가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저는 혼자 갈 수 있어요. 기회가 있으면 또 뵈어요."

 그녀는 순식간에 홍콩 밤거리에 묻혀 사라져버렸다.

 나는 머쓱해서 어둠에 대고 꾸벅 인사했다.

 한서시는 그런 나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어째 공수가 뒤바뀐 이 느낌은 뭐지? 기이하다, 기이해.

 "언니, 예쁘지?"

 갑작스레 물어오는 한서시.

 "어."

 "관심 있어?"

 관심이라 하면···.

 이번에 새로 만들 지주회사에 스카우트하고 싶어 미치겠는데.

 이것도 관심이라 해야 하나.

 "뭐해? 다 알아. 그냥 솔직하게 말해. 관심 있지?"

 "어."

 "어휴. 혈육이고 뭐고 다 필요 없어. 몇 년 만에 동생을 만났는데 그저 언니한테만 홀딱 빠져서는···. 티 완전 나더라."

 "딱히 그런 건 아닌데."

 "아니긴 뭐가 아니야. 언니가 투자일을 한다니까 잘 알지도 못하는 금융얘기나 잔뜩 늘어놓고. 언니가 착하니까 받아줬지. 처음 만나는 여자한테 그런 식으로 작업 쳤다가는 될 일도 안돼. 알어?"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려다가.

 나는 입을 다물었다.

 사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

 오빠가 그저 늠름한 군인 아저씨인 줄로만 아는 한서시에게 한양은행의 지배구조를 알려주었다.

 "지, 지, 지, 지, 진짜야?"

 "어."

 "오빠가 한양은행 오너라고?"

 "어."

 "그럼 초초초초부자잖아!"

 한양은행이 소유한 기업집단의 지배회사를 새로 설립하는 방안을 설명하자.

 한서시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난 못해."

 "왜."

 "그 큰 돈을···. 말도 안 돼. 이건, 꿈일 거야."

 "당연히 네가 다 관리하는 건 아니야. 그저 일정 부분 역할을 맡아 달라는 거지." 

 "못해못해못해."

 거듭 설명하였으나 한서시는 여전히 도리질이었다.

 그러다 흘리듯 말했다.

 "언니라면 잘할 텐데."

 "시시우라는 사람?"

 "웅."

 나도 그리 생각하긴 하는데.

 믿을 수 있느냐가 문제지.

 한서시가 갑자기 생글거리며 입을 열었다.

 "오빠."

 "왜?"

 "데이트 잡아줄까?"

 나는 가만히 허공을 보며 생각에 잠겼으나.

 어째 시간이 흐를수록 진짜 고민하는 게 아니라, 고민하는 척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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