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화민족주의 >
홍콩의 카지노에서 만난 의문의 여인, 시시우.
동생의 주선으로 수 차례 만남을 가지며 우리는 크리스마스와 새해도 함께 보냈다.
동생이 물어왔다.
"언니랑은 어때? 잘 돼가?"
"어. 아주 돈독한 사이가 됐지. 조금 있으면 계약에 묶인 관계로 발전할 거야."
"진짜? 진도 너무 빠른 거 아냐?"
"아니, 나는 적당하다고 생각해."
"우와. 언니도 신기하다. 생전 남자 만나는 걸 못 봤는데, 오빠랑은 어찌 그리도 빨리 결혼을 한대?"
"누가 그래? 결혼한다고."
한서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그럼?"
"아직 모르냐? 나와 시시우는 고용인과 피고용인이 될 거야. 수시증권은 이제 수시그룹으로 다시 태어난다. 너도 이제 우리 직원이야."
"···? 아니, 둘이 잘 해보라니까 무슨."
한양은행 산하 237개 기업의 경영 책임자.
만남이 잦아질수록 시시우가 적임자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둘이 그렇게 자주 만나더니, 그저 일 때문이었던 거야? 다른 건 더 없어?"
"그럼 뭐가 더 있냐?"
"어휴. 정상이 아냐."
요즘 들어 부쩍 시시우의 감청색 눈동자가 예뻐 보이기는 하지만.
어쨌건, 내 경영인이시다.
***
1918년이 왔다.
유럽의 전쟁은 서서히 대미를 향해 가고 있고.
세계는 전반적으로 거대한 정치지형의 변화를 겪는 중이었다.
대전쟁이 일어난 원인과 결과에 대해 학자들은 수백 수천 편의 논문을 발표하며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모든 연구 분석들의 결론은 하나같이 이번 전쟁을 계기로 더 이상 제국주의의 확산이 허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작년 10월 러시아에서 일어난 공산혁명이 구체적인 사례였다.
한때 대영제국과 그레이트게임을 벌였던 러시아제국이 민중의 궐기로 박살이 났다.
열강들은 경악하였다.
미영프를 비롯한 협상국이든 독일을 위시한 동맹국이든.
반자본주의와 반제국주의를 외치는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의 출현은 열강들에게 커다란 위기감을 안겨주었다. 그들 또한 언제든 그리 될 수 있다는.
한편 미합중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전쟁 이후의 세계를 상정하며 평화 14개조 원칙을 발표했다.
민족자결주의를 천명한 것이다.
그간 세계는 사회진화론에 의거하여 문명국이 야만국을 지배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분위기였으나.
전례없는 대전쟁으로 그러한 사상이 초래한 엄청난 비극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국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사상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선봉에 선 것이 공산주의와 민족자결주의였으며.
중화민국에는 민족주의의 파도가 먼저 닥쳐왔다.
홍콩에서 우한으로 복귀한 나는 곧이어 베이징으로 호출되었다.
장군부의 고문 자격으로서였다.
장군부는 본래 위안스카이가 지방의 군벌들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조직.
적당한 감투를 씌어주고 자신들의 세력권에서 이탈하게 한 다음 베이징에 가두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위안스카이의 몰락 이후, 장군부는 새롭게 개편되었다.
중화민국의 군권은 육군부와 해군부가 나눠 가지지만, 청일전쟁에서 괴멸한 해군력은 미처 조직복구가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였다.
따라서 육군부의 장관이 사실상 군부의 최고 실권자라 할 수 있었다.
그러한 육군부를 견제할 유일한 군조직이 바로 장군부였다.
장군부는 중화민국 최고군사고문기관으로 설립되었으므로.
육군부의 군사정책에 합법적으로 참견하는 것이 가능했다.
나는 육군부 정책회의실 앞에 섰다.
안쪽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가끔 웃음소리도 섞여 있었다.
노크 없이 벌컥 열고 들어갔다.
정적.
군장성 몇 명과 정책과의 관료들 십여 명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았다.
몇 달 전 훈장 수여식에서보다 훨씬 노골적으로 적대시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하기야 자리한 면면들을 보니 죄다 육군부 장관 돤치루이의 안후이파 일색이었다.
내 편은 없었다.
새삼 차이어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그러나 기가 죽을 이유는 하등 없었다.
육군부가 장군부 앞에서 하는 정책 추진 보고회였으니.
갑은 나다. 을은 저놈들이고.
"아하. 고명하기 그지없으신 무쌍장군께서 납시었군. 같이 히잡을 쓰던 친구는 어디 두고 혼자 오셨나."
돤치루이가 중얼거리자, 안후이파 장성들의 비웃음이 뒤를 이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차이 장군을 말하는 거라면, 중화민국을 위해 헌신하다 전장에서 돌아가셨소. 돤 장관은 장례식에 오지 않았으니, 몰랐던 모양이군."
"흥. 중국과는 별 상관도 없는 전쟁에 병사들을 끌고 나가 죽게 한 것이 무슨 자랑이라고."
"지금 참전군 병사들을 모욕하는 것이오?"
"내가 언제? 나는 병사들이 아니라 그들의 목숨을 팔아 훈장을 얻은 당신을 비난하는 거요. 한신 장군."
훈장은 나 혼자 받은 것이 아니다.
전공을 올린 병사들에게도 빠짐없이 상훈하였다.
참전군을 위한 포상 또한 한양은행의 전쟁기금으로 충당하여 원만하게 이루어졌다.
한마디로 억까다.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육군부에서 참전군 제3군을 만들려는 것이오? 내가 받은 훈장이 배 아파서 당신도 병사들의 목숨을 팔아 훈장을 얻으려고?"
"그, 그건 다르지!"
"뭐가 다르오?"
"당신이 참전군의 출병을 거부하니까 새로운 참전3군을 편성하려는 것 아니오!"
오늘의 안건이 그것이었다.
기존 중동 전역에 참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참전군은 6개 사단 규모의 제1군과 제2군.
나와 차이어가 각각 사령관을 맡았던 1군과 2군은 메소포타미아와 팔레스타인에서 승전보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1918년이 열리자마자 육군부는 새로운 출병안을 내놓았다.
외몽골의 군사적 복속을 요구하는 출병이었다.
나는 당연히 거절했다.
그러자 육군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베이징과 안후이성의 군대를 규합하여 참전군 제3군을 새로 편성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처음부터 그게 목적이었던 것 같다.
참전군을 통하여 무력과 명성을 한꺼번에 얻은 내가 무던히도 부러웠던 모양이다.
하지만 참전군을 편성하여 미국을 따라 유럽 서부전선에 뛰어들겠다는 각오 정도를 보인다면야 인정하겠지만.
제대로 된 군사도 없는 외몽골을 목표로 삼는 건 추해도 너무 추하다.
"참전군은 대전쟁에서 자유민주진영을 지원하기 위한 병력이어야 합니다. 명분 없이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소."
"명분이 왜 없는가! 외몽골은 복드 칸에 의하여 강압적으로 지배되고 있소. 몽골인들은 가난에 허덕이며 중화민국에 편입되기를 원하고 있지. 그들을 구제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민족자결이자 자유주의 정신이오!"
한창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는 민족자결주의.
그 기본 원칙은 각 민족의 정치적 운명을 다른 민족의 간섭없이 스스로 결정하게 한다는 것이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온갖 논리와 혼용되어 다양한 괴물이 양산된다.
참전군 제3군을 창설하겠다는 돤치루이의 발상의 출발점은 19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해혁명이 일어나고 청나라가 지방 통제권을 상실하자, 티베트와 외몽골 등은 기다렸다는 듯 독립을 위해 들고 일어났다.
근거 없는 독립은 아니었다.
각자 뒤를 봐주는 나라가 있었으니.
티베트의 배후에는 영국이.
외몽골에는 러시아가 있었다.
중국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고 싶었던 러시아제국은 신생중화민국과 조약을 맺었다.
외몽골의 자치권을 보장한다는.
그러나 러시아에서 일어난 혁명으로 조약은 휴지 조각이 되었고.
그 틈을 타 원래 청나라의 영토였던 외몽골을 다시 중국에 복속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슬금슬금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그 주장의 배후는 중화민족주의였다.
중화민국의 국기는 오색기.
몽골족을 포함한 다섯 민족의 화합을 의미했다.
하지만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을 받아 새로이 중화민족주의 개념이 탄생하였다.
다섯 민족의 고유한 문화를 보장하기보다 중화민족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모두를 포함하려는 시도였다.
당연하지만 그 중화민족의 중심은 한족이었다.
따라서.
외몽골의 독립은 러시아제국이 중화민족을 분열시키려는 책동이었고.
민족자결에 의해 제국주의를 쳐부수고 외몽골을 되찾아야 한다는 기적의 논리가 탄생한 것이다.
기실, 21세기를 핵전쟁의 지옥으로 몰고 간 중화사상은 그리 오래된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최근에 발명되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신해혁명은 만주족의 식민지배에 항거한 한족의 독립혁명이었다.
쑨원을 비롯한 혁명파의 인물들이 오족공화를 이야기하고, 하나의 중국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단순한 정치적 고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출발한 중화사상이 공산국가 중국의 폐쇄성과 맞물려 어떻게 폭주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었고.
이제 막 중화민족주의가 태동하기 시작한 지금.
몽둥이로 때려잡을 강한 필요성을 느꼈다.
"장군부는 확실히 말하겠소. 불가요."
돤치루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가 다시 입을 열려는데 다른 쪽에서 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제가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소리가 들린 쪽에 바위 같은 체구를 한 사내가 어깨를 펴고 앉아있었다.
나와는 오래전부터 안면이 있는 자였다.
쉬수정(徐樹錚)은 돤치루이가 자랑하는 안후이파의 4대 금강중에서 가장 유능하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
일본육사 출신으로 나보다는 한 기수 선배였다.
그러나, 얼굴만 알지 직접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다.
곰 같은 몸집과 달리 자신의 이득에 민감하며 약삭빨랐으니, 나와는 교류할 기회가 없었다.
일본육사에서 중국인들은 혁명파와 팔기파, 북양파로 나뉘어 있었으며.
쉬수정은 북양파에 속하여, 혁명에는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았다.
오히려 혁명파 유학생들을 청조에 고발하기까지 했던 자였다.
1911년 피를 흘리며 스러져간 수많은 혁명동지들은 무덤을 지키고 있는데.
쉬수정은 낯두껍게도 혁명정부를 전신으로 하는 공화정부에서 장성으로 있다.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은 21세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서북장군이군. 말하시오."
육사의 선배지만 지금은 내가 위다.
쉬수정은 표정 변화 없이 무미건조한 어조로 말했다.
"장군이 제가 올린 서북변경계획안을 보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오랫동안 중국은 북방의 이민족에게 시달려 왔습니다. 기회가 왔을 때 서북을 안정시키는 것은 군사 계획의 상책입니다. 이미 두 개 사단이 출병 준비를 마쳤으니, 당장이라도 참전3군의 편성이 가능합니다. 기존 참전군 때처럼 훈련에 몇 달을 허비하며 국고를 파먹는 일은 없을 겁니다."
내가 없는 사이 티베트, 신장, 몽골 등을 포함한 서북방면의 책임자로 지명되어 서북장군에 봉해진 쉬수정이었다.
그의 계획안은 독립을 원하는 변경 지방에 군대를 파견하여 완력으로 복속시키려는 야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서북변경계획안은 읽어보았소. 내게는 다른 저의(底意)가 느껴지던데."
"어떤 저의 말입니까?"
"몽골을 위한다며 군대의 출병을 말하는 장군의 계획 속에는 작금의 대전쟁을 몰고 온 제국주의의 탐욕이 느껴지오."
"그렇지 않습니다! 외몽골 출병은 어디까지나 몽골인을 위해···!"
"그렇다면 어째서 계획안에 몽골인들의 의중을 고려하는 절차는 전혀 없소?"
쉬수정이 입을 다물었다.
"장군부의 권한으로 참전3군의 편성은 허용할 수 없소. 이미 중동의 출병으로 재정을 상당 부분 가져다 썼으니, 한동안은 회복에 힘쓰는 걸로 하겠소."
하지만 일언지하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이슈는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다가오는 총선의 기운을 타고 달아오르기 시작했으니.
장작을 마구 집어넣는 세력이 있었다.
쑨원의 국민당이었다.
***
이번에도 공화당의 선거본부장을 맡은 쑹자오런.
"이것 보십시오. 또 똑같은 기사입니다."
쑹자오런이 신문을 들이밀었다.
요 몇 달간 매체에 가장 많이 등장한 용어는 중화민족주의와 하나의 중국.
"판에 박힌 기사군요. 국가와 민족의 이익을 위해 티베트와 신장, 몽골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
"이렇게 뻔히 보이는 수작을 시민들이 모르겠습니까? 누가 봐도 국민당에서 돈 받고 쓴 기사인데. 마치 당장 군사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몽골의 기병들이 베이징으로 쳐들어 올 것처럼 적어놨잖습니까."
개소리긴 하지만.
아주 적나라하다.
국가 비상사태, 재난 상황, 현실적 위협 등 자극적인 단어를 나열해 대중을 선동하고 있다.
"먹힐 겁니다."
"이딴 쌉소리가요?"
"쌉소리니까 먹히는 겁니다. 감정을 자극하거든요. 자신이 속한 집단에 이익을 가져다준다는데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같은 민족이라는 의식 속에서 대중들은 동조하며 의견을 재생산해냅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알아서 굴러가지요."
"그럼 어떡하지요···? 국민당은 기회를 잡은 것처럼 서북지역을 상실한 공화정부를 지탄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여론전이다.
여론이 외몽골의 출병을 강하게 바란다면 아무리 장군부가 최고군사고문기관이라 하더라도 육군부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복벽사건 당시 인수한 <베이징 타임즈>는 이미 베이징을 넘어 국제적인 신문사로 성장하고 있었으니.
나는 걱정하는 쑹자오런에게 말했다.
"선거는 이길 겁니다. 저는 총으로 싸우는 전쟁보다 활자로 싸우는 전쟁을 더 잘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