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양군벌 >
우한시의 한양병공창은 청나라 때부터 중국 최대의 무기공장이었지만.
후베이성의 발전에 따라 몇 차례 증축을 거치며, 규모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최첨단 군사시설이 되었다.
나는 일단의 장교들을 이끌고 한양병공창을 방문했다.
오늘이야말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대지의 악마가 강림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병공창의 공터.
특공대장 샤즈광이 카탈로그를 뒤적거렸다.
"대장, 아무래도 아깝습니다. 제 눈에는 역시 Mk-V가 좋아 보이는데요."
"명예로운 영국 신사분들이 최신 무기는 팔기 싫다는데 어쩌겠냐. Mk-IV도 나쁘지 않아. 우리가 예루살렘에서 봤던 고철 덩어리들보다야 훨씬 낫지."
"실물을 봐야 알 것 같습니다."
늦은 오후.
꺽꺽거리는 거친 엔진음을 내며 영국에서 수입한 Mk-IV가 병공창 부지에 들어섰다.
참호돌파를 위한 무지막지한 크기의 무한궤도와 방탄장갑은 견고한 느낌을 준다.
포탑 대신 루이스 기관총이 달린 점은 조금 아쉽지만, 이 시대 전차의 목적이 참호를 돌파하여 적병을 사살하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합리적인 선택이다.
"오오오! 대장 들립니까? 사나이의 가슴을 울리는 저 강철의 박동이? 저 안에 들어가서 한커우 평원을 질주하면 어떤 느낌일지 온몸이 짜릿짜릿해집니다."
샤즈광이 호들갑을 떨었으나.
아무래도 내 눈에 찰 정도는 아니다.
역사상 최초의 전차라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지.
사실 Mk-IV의 외형은 전차라기보다는 트랙터 같은 걸.
"한커우 평원에서 질주한다고? 이거 최고 속력 아냐? 사람이 뛰는 것보다 느려."
"에이,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질주는 필요 없다. 이 전차의 용도는 보병을 호위하는 거니까. 오히려 보병과 발맞추는 속도가 좋아."
나는 시선을 돌렸다.
옆에서 한 털보가 장갑차를 뚫을 것처럼 열렬히 몰두해 있었다.
한양병공창의 대표, 리쯔위.
예전에 일본의 미쓰이물산이 한야평공사를 집어삼키려 시도한 적이 있었다.
당시 리쯔위는 한야평공사의 대표였고 미쓰이물산의 압력을 견디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덕분에 내가 자금을 마련하여 제때 인수할 수 있었다.
독일 뮌헨공과대학에 유학한 리쯔위는 중국의 몇 안 되는 슈퍼공돌이다.
나는 리쯔위를 신임하여 요 몇 년간 한양병공창의 군수산업을 일괄 담당하도록 하였다.
덤으로 영국과 미국 등지의 무기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리쯔위를 보좌할 인재들도 키웠다.
"직접 보니 어떤가?"
"가까이 가서 봐도 되겠습니까?"
"마음대로 하게."
Mk-IV가 기동을 멈췄다.
리쯔위는 천천히 다가가 손바닥으로 전차의 장갑을 쓸어내렸다.
멀리서도 그의 손끝이 가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샤즈광이 이죽거렸다.
"대표님! 짝사랑하던 여자라도 만났습니까? 흐흐흐, 뭐 그리 수줍어하십니까?"
리쯔위는 놀림에도 아랑곳 않고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궤도의 바퀴와 트랙을 어루만졌다.
주먹으로 살살 두드려보고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는 등의 절차가 이어졌다.
강철장갑에 코를 박고 있던 리쯔위가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눈동자는 용광로처럼 불타오르고 있었다.
"해보겠습니다."
"뭘 말인가?"
"시제품을 생산해보겠습니다. 몇 년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앗, 들켰나. 하긴 뻔했지.
나는 리쯔위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전차와 관련하여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이번 대전쟁 중에 신무기가 개발되었고, 한 대를 수입하였으니 살펴보라는 언질을 하였을 뿐이다.
하지만 국산 무기에 대한 나의 지대한 열망이 알게 모르게 그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부담 가질 필요는 없네. 짧은 시간에 리엔필드 소총을 국산화한 것만 해도 대단한 성과야."
"단지 베낀 것이라 어려울 게 없었습니다."
"그렇다기에는···. 한양병공창에서 만든 한양식 리엔필드를 본 영국 병사들이 난리라던데? 자기 거와 바꾸자고, 쉽게 망가지지 않는다며. 내구성이 좋다더군."
"좋게 보아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렇게 Mk-IV 전차 기동식을 마치고 집무실로 돌아온 나는 뜻밖의 소식과 마주쳤다.
베이징에서 북양군 제9사단이 의회의 허가 없이 움직였다는 것이다.
***
선거본부를 차린 베이징의 호텔.
언론에서 공화파라 일컫는 주요 인물 4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대선의 러닝메이트인 리위안훙과 량치차오.
그리고 선거본부장 쑹자오런과 나였다.
량치차오가 입을 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일단 최악의 사태는 막았습니다."
"최악을 막았다고? 지금 상황에서 그런 말이 입에서 나오나? 그놈들은 사실상 군사정변을 일으킨 거야! 당장에 쳐죽여야지!"
"군사정변···, 은 아니지요. 제9사단, 아니 소위 말하는 참전3군이 정부를 뒤엎으려는 목적을 가진 것은 아니니까요."
"아니야! 자네는 군인이 아니니까 모르는 거야. 군인에 있어 명령받지 않은 군사행위는 그 자체로 반역이라고!"
량치차오와 리위안훙이 설전을 벌이는 동안.
나는 가만히 보고서를 들여다보았다.
일주일 전, 제9사단의 병력 일부가 갑작스레 차출되었다.
포병대, 기병대, 기관총대까지 골고루 포함된 병력이 톈진항으로 이동해 일본의 군함을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 상륙했다.
시베리아 전역에서 벌어지는 러시아 내전에 참전하기 위함이었다.
의결한 적 없는 군대의 움직임에 의회는 당황하여 육군부에 따져 물었다.
그 대답이 가관이었다.
의회는 이미 대전쟁이 벌어질 당시, 참전을 결의한 바 있고.
이번 시베리아 출병은 미영프일을 비롯한 협상국 지도부의 요청에 의거한 작전이므로 같은 맥락에 있다는 것.
따라서 따로 의결할 필요없이 육군부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결정할 수 있는 참전이라는 얘기였다.
상위기관인 장군부와 전혀 협의가 없었던 점은 언급도 되지 않았다.
"나를 식물 대총통이라고 뒤에서 비웃는 건 좋다 이거야.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앞에서 대놓고 이따위 수작을 벌여? 일언반구도 없이 육군부 나부랭이가 제멋대로 파병을 결정하는 게 말이 되냐고? 이번 일은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어!"
취하지 않은 리위안훙은 오랜만이다.
부처라 불리는 그가 역정을 내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이봐, 한신! 보고서는 다 읽었잖아! 너도 말 좀 해보라고."
" ···. 중요한 것은 돤치루이의 속내겠지요."
"속내는 뭔 속내? 그냥 우릴 개밥으로 본 거야."
"그 말이 맞습니다. 우릴 개밥으로 본거지요. 그렇다면 우릴 개밥으로 보고 멋대로 참전군을 편성한 안후이파의 저의가 뭘까요?"
리위안훙은 고민하는 척도 안 하고 외쳤다.
"빨리 말해주기나 해!"
"전쟁입니다."
"어···, 어어?"
"놈들이 굳이 시베리아 전선에 나가서 생고생할 이유가 뭐겠습니까?"
"뭔데?"
"일본이 75,000에 달하는 대규모 병력을 파병하였으니, 그러한 일본군에게서 군자금 같은 대가를 받았든가···. 혹은 안후이파의 병력을 결집할 목적이라던가···. 아니면 둘 다일지도 모르지요. 확실한 것은 자금을 받았든, 병력을 결집하였든, 공화정부에 반기를 들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전쟁이 언급되자 듣고만 있던 쑹자오런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나는 모른 척하고 말을 이었다.
"마차를 타고 가다 보면 길을 막고 되도 않는 강짜를 부리는 인간들이 있지 않습니까? 길을 가려 해도 비키질 않으니 바퀴로 밟아주길 원하는 줄 알았는데, 정작 바퀴가 살짝 스치면 죽는소리를 하며 되려 시비를 걸어오지요. 지금 안후이파가 하는 짓이 딱 그 꼴입니다."
듣고 있던 쑹자오런이 말했다.
"그 말은 안후이파는 전쟁을 통해 공화정부를 뒤엎고 싶어하고. 협의되지 않은 이번 시베리아 출병은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시빗거리라는 거군요. 일단은 알겠습니다. 이해도 가고요. 하지만 대선이 바로 다음 달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은···. 그것도 내전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합니다."
"야! 쑹자오런, 너는 배알도 없냐? 한신이 말하잖아. 돤치루이, 그 새끼가 우릴 개밥으로 본 거라고. 근데 참고만 있으라고?"
"정치는 인내입니다. 마지막까지 참는 자가 승리하는 겁니다."
"아냐. 틀렸어. 정치는 전쟁이다. 다 죽이고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새끼가 승리하는 판이다."
량치차오에 이어 쑹자오런과 두 번째 설전을 벌이는 리위안훙.
결판이 나지 않자, 두 사람은 나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내 안색을 살폈다.
"장군. 육군부의 단독행동은 괘씸하지만, 의회정치로 충분히 합당한 처벌을 내릴 수 있습니다. 돤치루이는 파면될 거고 죄질에 따라 정치감옥에 들어가겠지요."
왼쪽에서 쑹자오런이 떠들고.
오른편에서는 리위안훙이 핏대를 올렸다.
"한신. 우리는 얕잡아 보이고 있어. 안후이파에 두려움이 뭔지 알려줘야지. 필요한 건 피의 응징이다."
이건 마치 천사와 악마의 속삭임 같지 않은가.
내가 말을 않고 있자 쑹자오런이 의자를 바싹 땅겨오며 말했다.
"그동안 우리는 잘해왔잖습니까. 이제야 공화정치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베이징에서 또다시 전쟁을 벌일 수는 없습니다. 진정한 공화의 의미를 생각해주십시오."
"공화요?"
나는 띄엄띄엄 말했다.
"공화의 정수는 법치입니다.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도록 사회구성원이 합의한 절차를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지요. 육군부는 그 절차를 어겼습니다."
"그 말은?"
"먼저 돤치루이에게 책임을 묻죠. 그가 처벌을 달게 받는다면 사태는 수습될 겁니다. 만약 거부한다면···."
뒷말을 직감한 쑹자오런은 창문으로 고개를 돌려 먼 하늘을 바라보았고.
량치차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리위안훙은 얼굴이 홍조가 돼서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거부한다면, 그땐 전쟁입니다. 공화파와 안후이파의 전쟁이요."
베이징에서 열린 공화당의 회담 이후.
나는 후베이성으로 돌아와 조용히 군대 소집에 나섰다.
돤치루이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불을 보듯 명확했으니.
***
톈진의 독군단 회의.
북방의 내로라하는 독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주최자는 과거 북양삼걸의 일인이었던 북양의 용, 왕스전.
모두의 존경, 혹은 무시를 받는 그가 아니었다면 제각기 갈라진 북양군 파벌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없었을 것이다.
"모두 오셨습니까? 회담을 시작하겠습니다. 안건은 중화민국의 평화를 위해서···."
왕스전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으나 누구 하나 호응하는 사람이 없었다.
명색은 평화 회담이라는데.
어째 장내에는 비장감이 감돈다.
"아직 장관이 오지 않았소."
"장관? 아 돤치루이를 말하는군요. 언제 도착하는지 아십니까?"
왕스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회의장 문이 활짝 열리며 돤치루이가 위풍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여기 있소."
돤치루이가 등장하자, 안후이파의 독군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일부 움직이지 않는 즈리파의 군벌들 또한 여럿이었다.
돤치루이는 굳이 지적하지 않고 왕스전 가까이 다가갔으나.
곧바로 자리에 앉지 못하고 엉거주춤 선 채 말했다.
"왕 원로. 내 자리에 누가 앉아 있군."
"어···. 그런가? 어디 보자, 자리 배치도가 어디 있더라. 주머니에 넣었었는데."
왕스전이 부산을 떨며 배치도를 찾는 동안.
돤치루이는 우뚝 서서 왕스전의 오른편에 앉은 자를 노려보았다.
그자는 돤치루이가 자기를 노려보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멀뚱멀뚱 앉아있었다.
"차오쿤. 못 들었나? 거긴 내 자리야."
"어? 그래? 에이, 아무 데나 앉자고. 자리가 뭐 그리 중요한가. 저쪽이 비었네. 저기 앉아."
돤치루이는 울컥 화가 치밀었다.
차오쿤 이 새끼···. 펑궈장의 따까리였던 자식이 즈리파의 수장이 됐다고 나와 맞먹으러 들어?
거칠게 욕지기를 쏟아내려는 찰나, 섬뜩한 느낌이 들어 올려다 보니.
차오쿤의 뒤에 우뚝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거구가 있었다.
뭐야, 이놈은?
그자는 굳게 입을 다물고 서릿발 같이 냉랭한 눈빛을 쏘고 있을 뿐이었지만.
그 패도적인 기세 앞에 돤치루이는 이상하게 오금이 저려왔다.
분명 북양의 호랑이는 자신인데, 그 앞에서는 고양이가 된 기분이었다.
"아! 찾았네!"
왕스전이 누덕누덕한 종이를 꺼냈다.
"으음. 어디보자···. 아니, 이게 아니네. 돤치루이 조금만 기다려봐. 분명 여기 어디 있었는데···."
"됐소. 왕 원로. 내가 자리를 양보하겠소."
돤치루이는 성큼성큼 걸어 차오쿤의 맞은편에 앉았다.
차오쿤이 능글능글한 시선을 던졌으나 돤치루이는 차오쿤을 보고 있지 않았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차오쿤의 뒤에 서 있는 거인.
즈리파 제3사단장 우페이푸.
돤치루이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저놈은 위험하다.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자신의 오른팔, 쉬수정이었다.
그제야 마음이 놓인 돤치루이는 왕스전의 말을 가로채며 외쳤다.
"회의를 시자···."
"공화정부에서 내게 맨몸으로 의회에 출석하라더군. 이게 무슨 의미겠소? 저놈들은 중화민국의 정치, 사법, 행정에 이른 모든 권력을 움켜쥐고. 이제는 군대까지 장악하려 시도하고 있소. 더 두고 볼 거요? 오늘이 바로 갈라졌던 북양군이 다시 뭉치는 날이오! 북양파가 공화파를 몰아내고 대권을 얻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