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양군벌2 >
북양파가 천하를 먹자!
돤치루이의 호쾌한 선언!
하지만 호응하는 자는 정해져 있었다.
안후이성과 저장성, 푸젠성 등지의 독군들 뿐이었다.
나머지 즈리성과 허난성, 장쑤성 등의 독군들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뻘쭘해진 돤치루이가 다시 말했다.
"어째 반응들이 미적지근하군. 차오쿤. 한마디 해보게."
지목당한 차오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내가 왜?"
한 대 콱 쥐어박고 싶다고 생각하던 돤치루이는 '참을 인(忍)'자를 떠올리며 주먹을 풀었다.
속으로 셋을 세고 억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자네의 인망이야 알아주지 않는가. 즈리 독군인 자네가 입장을 밝혀줘야 다른 독군들도 따르기 쉬울 걸세."
"흠···. 딱히 할 말이 없는데."
그럼 여긴 왜 왔어? 씨발.
"저 공화당 놈들이 슬금슬금 북양파의 세력권을 갉아먹고 있는 걸 모른단 말인가? 한때 화북 전역에 지배력을 떨치던 북양파가 오늘날은 정치권에서 축출되고 형편없이 쪼그라들었어. 이게 맞다고 보는가?"
"예를 들면?"
"공화정부가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이 뭔가. 도독의 권한 축소였네. 문무를 겸했던 도독을 성장과 독군으로 나누는 거였어. 그 결과, 북양파는 한순간에 지방의 행정력을 상실하고 냄새나는 병영에 처박히게 되었네."
물론 민정과 군정의 분리가 뚜렷하게 지켜지는 것은 아니었다.
베이징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의 독군들은 여전히 사실상 성장의 지위를 겸하며 예전 도독과 같은 권한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이 차오쿤이 심드렁한 이유였다.
베이징의 내각에서 육군부 장관으로 홀로 공화정부와 외로운 싸움을 하는 돤치루이에 비해.
즈리파의 군벌들은 지방에서 자리를 잡고 각기 세력을 키우는 중이기 때문에 급할 것이 없었다.
"즈리군의 병영은 냄새 안 나는데?"
"야! 차오쿤! 그러지 말고 한 번 도와달라고!"
돤치루이는 자제력을 잃고 소리쳤다.
그제야 차오쿤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흐흐. 그렇게 무서우면 애초에 일은 왜 벌였나? 가뜩이나 부족한 병력을 시베리아에는 왜 보냈어? 아하, 네가 받들어 모시는 일본제국의 천황폐하가 명하신 일이라 거역할 수 없었나?"
"이 새끼가! 어디서 말을 함부로 해!"
"어허, 돤치루이. 정신 차려. 지금 급한 건 내가 아니라 너야. 한번 지켜보자고. 그 전략의 천재라는 한신한테 네가 어떻게 찢겨나가는지 말이야."
돤치루이는 성이 나서 어쩔 줄을 몰랐다..
입 밖으로 침이 마구 튀었다.
"멍청한 새끼. 안후이파가 당하고 나면 다음은 즈리파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까지만 해도 공화파에는 제대로 된 사단 1개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냐? 서구의 언론들이 황제의 군대라며 빨아주는 정예 사단만 6개다! 그나마 내가 육군부에서 버티니 공화파의 군사력을 억제하는 것이지. 내가 없으면 당장에 놈들의 군사력은 몇 배로 불어날 거란 사실을 모른단 말이냐?"
확실히 이번에는 정곡을 찌르는 데가 있어 차오쿤도 반박하지 못했다.
그만큼 단시간에 세를 불려 나가는 공화파의 기세는 무서웠다.
"차오쿤! 내가 혼자 베이징에서 북양파의 이익을 위해 고군분투할 때 너는 어디서 뭘 했느냐? 사사건건 육군부를 제약하고 옭아매려 드는 의회에 출석하여 북양군을 지켜내려고 싸울 때, 너희 즈리파는 어디 있었느냔 말이다!"
차오쿤의 안색이 창백해지며, 말이 먹혀들어 가는가 싶던 찰나.
묵직한 음성이 찬물을 끼얹었다.
"말끝마다 북양파를 입에 담으시는데. 사실관계가 틀렸습니다. 북양파의 이익을 위해 싸우셨다고요? 아니지요. 안후이파의 이익이었잖습니까.
즈리파의 솟아오르는 봉우리. 우페이푸의 음성이었다.
그가 재차 말했다.
"호국전쟁이 끝나고 열린 논공행상에서 즈리파는 철저하게 소외되었습니다. 내각에서 외롭게 싸웠다고요? 내각에 안후이파의 인물들만 집어넣은 건 장관님이셨잖습니까."
"아니, 그 얘기를 꺼낸다고? 당시 즈리파는 펑궈장의 지휘 아래 공화정에 반역을 일으켰었잖아! 반역도로 죄다 능지처참당하지 않게 살려준 게 누구인데.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로구만! 허허."
나름대로 즈리파의 약점을 찔렀다고 생각했는데.
우페이푸는 눈도 깜박하지 않았다.
"감옥에 있는 사람 얘기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당시 저는 위험을 무릅쓰고 공화군을 도왔고 베이징을 지켜냈습니다. 그에 따라 합당한 보상을 받을 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양파를 대변한다며 논공행상에 참여한 장관은 즈리파를 완전히 배제하였지요. 그런 사정이 있으니, 오늘에 이르러 안후이파가 위기에 처했을 때 누가 기꺼이 도우러 나서겠습니까?"
이 자식. 힘만 쓰는 줄 알았더니 말도 제법 하네.
돤치루이는 어금니를 질끈 물었다.
"잠시 휴식하겠소."
회담장을 나와 담배를 무는데.
성냥을 내미는 손이 있었다.
안후이파가 자랑하는 금강, 쉬수정이었다.
"미안하구나. 내가 추한 꼴을 보였어. 즈리파와의 회담은 결렬이다."
"각하, 상심하지 마십시오.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 꼴을 보고도? 우페이푸란 놈이 분위기를 완전히 장악했다. 되돌리기는 불가능해. 인정하긴 싫지만, 확실히 그놈은 걸물이야."
"아닙니다, 각하. 잊지 마십시오. 즈리파의 수장은 우페이푸가 아닌 차오쿤입니다. 차오쿤을 공략하면 길이 보일 겁니다."
담배 연기를 뿜으며 돤치루이가 물었다.
"어떻게?"
"차오쿤은 단순한 놈입니다. 자리를 주겠다면 얼씨구나 합류할 겁니다."
"자리라면, 어떤 자릴 말하는 거야?"
"적어도 놈이 관심을 가질 만한 자리여야 하니까···. 부총통이 어떻습니까?"
"차오쿤이 부총통? 크크크, 씨발. 나라 꼴 한번 잘 돌아가겠군."
살면서 돤치루이가 본 무수한 밥벌레 중에서 제일가는 인간이 차오쿤이었다.
자신이 위안스카이의 뒤를 이어 북양파의 수장이 되면 가장 먼저 군봉만 축내는 차오쿤 같은 밥버러지들을 청산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는데···.
그런 차오쿤에게 부총통의 자리를 내어 준다니, 기가 막힌다.
"별수 있습니까? 한신의 군대야 안후이군만으로도 깨부술 수 있지만, 문제는 즈리군이 어떻게 나오느냐이니.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즈리파와의 관계를 정리해 두어야 합니다."
"좋아, 그렇게 진행하자고. 여기에 걸어보고 안되면, 남은 수는 하나다."
"예. 그렇지요."
쉬수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말하는 마지막 남은 수란 북양군벌을 지탱하는 또 다른 축인 펑톈파.
하지만 동북왕 장쭤린은 속이 음흉한 자이니, 어지간하면 엮이고 싶지 않은 것이 돤치루이의 솔직한 속내였다.
놈들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였다가는 되돌아가지 않으려 들지도 몰랐다.
"차오쿤, 이 멍청한 새끼에게 우리 작전이 통하길 빌어야겠군."
회담이 다시 시작되기 전.
짧은 시간.
차오쿤과 은밀히 면담을 가진 돤치루이는 어딘가 찝찝하면서도 후련한 느낌이었다.
쉬수정이 급히 다가와 속삭였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됐어."
"역시! 제가 될 거라 했지요."
"그런데 부총통이 아닌 다른 걸 약속해버렸어."
"뭡니까?"
"대총통."
재개된 회담장의 분위기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차오쿤은 연신 방긋방긋 웃으며 돤치루이의 말에 호응해왔다.
왕스전은 어떤 밀실면담이 있었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화기애애해진 분위기에 신이나 덩달아 신선 같은 웃음을 날렸다.
우페이푸만이 영문을 몰라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했으나.
차오쿤은 즈리 독군의 권한으로 우페이푸의 항의를 묵살해 버렸다.
"그럼 이번 달 말. 후난성과 안후이성에서 출전하는 거로."
외부에 알려진 이번 회담의 목적은 육군부의 시베리아 출병에 따른 군사위기를 잠재우기 위한 것.
어떻게 하면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자리로 언론은 알고 있었지만.
안에서는 펼쳐지는 장면은 영 딴판이었다.
일사천리로 개전 날짜까지 정해졌다.
총사령관은 돤치루이였다.
***
- 돤치루이 장관, 의회에 출석 거부!
- 대총통 대노하다! 육군부에 찾아가 "시베리아 벌판에서 얼어 죽을 개새끼들."
- 육군부 장관 돤치루이는 어디 있나? 베이징 집무실에 일주일째 출근 안 해···.
연일 신문이 헤드라인을 쏟아냈다.
리위안훙과 돤치루이의 앞 글자를 따서 여단지쟁(黎段之爭)이라 부르는 언론도 있었다.
확실히 총통부와 육군부의 갈등은 흔치 않은 이야깃거리였다.
- 돤치루이. 출석 명령을 위해 찾아간 직원에게 "나는 오직 국가만을 생각한다." 그 말의 의미는?
- 심상치 않은 군대의 움직임. 또 전쟁 터지나.
- 총통부의 침묵···. 리위안훙은 뭘 기다리는가.
시일이 흐르며 격해지는 헤드라인과 함께 분위기가 점차 고조되어 갔다.
언론뿐 아니라 시민들도 전운이 감도는 것을 체감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인내심을 가지고 돤치루이의 출석을 수 차례 요구하였으나.
돤치루이는 훈련을 핑계로 안후이성의 육군훈련소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총통부의 직속명령을 받들고 돤치루이를 체포하기 위해 안후이성에 도착한 헌병들이 도리어 사로잡히는 신세가 되었을 때.
나는 때가 무르익었음을 알았다.
1918년 9월 16일.
후베이성 한커우에 6개 사단이 집결했다.
중동에서 격전을 치른 후 대략 10개월 만의 출병.
참전군으로 불리던 군대는 다시 공화군으로 호칭되었다.
이전에 위안스카이의 전횡을 막기 위해 일어난 호국전쟁과 궤를 같이하고 있었다.
육군부 장관 돤치루이의 절차를 무시한 군사 행위로부터 공화정의 안위를 지키기 위한 출병이었으므로.
나는 총사령관으로 취임해 단상에 올랐다.
6개 사단의 지휘관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흔들림 없는 자세와 강인한 눈빛을 보니 확신이 들었다.
이들은 중국 최강이다.
"어쩌다 보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또 전쟁이다. 사과하마."
처음엔 몇놈이 웅얼대다가 나중에는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 같이 외쳐댔다.
"아닙니다! 너무 좋습니다! 신납니다!"
"돤치루이를 끌고 와 사령관님께 삼고두를 시키면 되는 겁니까?"
"멍청아, 삼고두는 황제한테 하는 건데. 우리는 공화군이라고. 이렇게 외쳐야지. 돤치루이의 대갈빡에 구멍을 내주겠습니다!"
내가 입을 열자 장내가 잠잠해졌다.
"어느 전쟁이든 그렇지 않겠느냐만. 내전은 확실히 어려운 점이 있다. 바로 어제까지 우리의 동료였던 병사들을 적으로 상대해야 하니."
장교들이 고개를 숙였다.
숙연해졌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전쟁을 의미 없는 소모전으로 끌고 가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메소포타미아와 팔레스타인의 사막에서 뭘 배웠지? 두위 대위, 또 맨 앞에 있군. 말해봐. 뭘 배웠는지."
"예. 기동전을 배웠습니다."
"그래. 또?"
"또···, 말입니까?"
우창군관학교의 1기 졸업생인 두위가 머리를 굴렸다.
햇병아리 티는 완전히 벗어던지고 제법 근엄한 지휘관티가 났다.
"기동전은 특별히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이미 손자의 병법서에 적혀있는 방법론이다. 기억 나느냐? 제2편과 제3편의 작전(作戰)과 모공(謀攻)을 떠올려 봐라."
군사의 병법 또한 군관학교에서 가르친 바이니.
"아! 기억났습니다. 고병문졸속(故兵聞拙速, 병법에서 다소 미흡하더라도 속전속결 하라는 말은 있지만), 미도교지구야(未睹巧之久也, 교묘히 진행하더라도 오래 끌라는 말은 없다)."
"그래, 그 뒤에는? 예루살렘에서 우리가 그저 돌격으로만 적과 싸웠었느냐?"
"···혹시 사령관께서 말씀하시는 부분은 고상병벌모(故上兵伐謀, 적의 싸우려는 의도를 깨는 게 최상이고), 기차벌교(其次伐交, 적의 외교를 깨는 게 그다음이고), 기차벌병(其次伐兵, 적의 병사를 깨는 게 그다음이고), 기하공성(其下攻城, 적의 성을 공격하는 것이 최하다)입니까?"
"맞았어."
나는 다시 지휘관들을 훑으며 말했다.
"먼저 1군이 출전한다. 목적지는 후난성이다."
후난성은 돤치루이가 머무는 안후이성의 정반대편에 있는 행정구역.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지만 나는 계속했다.
"후난성은 통상 안후이파의 세력권으로 분류되지만, 결속이 그리 강하지 않다. 그런 이유로 돤치루이가 전쟁을 소모전으로 계획하고 있다면, 총알받이로 떠밀기에 적합한 군대가 후난군이다. 내전이 시작되면 후베이성의 뒤를 쳐올 것이니. 먼저 후방을 평정해야 한다. 단, 앞서 말한 손자병법의 고사를 기억해라. 후난성 출병의 목적은 후난군의 궤멸이 아니다."
후난성은 베이징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거니와, 가까운 광둥성의 영향을 받아 혁명파의 인물들이 많이 속해 있었다.
후난군 제1사단장 자오헝티가 바로 그러하였으니.
중국동맹회 출신의 군인이었다.
"우리는 후난군을 항복시켜 공화군으로 편입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