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단전쟁 >
중화민국의 육군 장교들을 키워낸 제 일의 요람은 일본제국의 육군사관학교였다.
망해가던 청조는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국비 지원으로 수많은 학생들을 일본으로 유학보냈다.
육사 출신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3기의 차이어와 10기의 한신이지만.
유달리 다수의 장성을 배출한 기수는 6기였다.
산시독군 옌시산에, 윈난독군 탕지야오. 그리고 청첸과 쑨촨팡 등.
근래에 이름을 얻기 시작한 수많은 장수가 6기에서 배출되었다.
후난군 제1사단장인 자오헝티(趙恒惕)도 6기 출신이었다.
그는 일본육사를 다닐 때 혁명파의 일원으로 중국동맹회에 가입하였으며.
신해혁명 당시에는 봉기에도 참여하였다,.
그 여파로 위안스카이에게 미운털이 박혀 한동안 한직을 전전해야 했다.
그러는 동안 젊은 시절 들끓던 호기는 점차 사그러들고.
집에서 배곯는 식솔들을 보며 삶에는 어느 정도 타협이 필요하다고 뒤늦게 깨달았다.
무조건 고개를 숙이고 상관의 말에 맞장구 쳐 주었더니 사단장 자리가 주어졌다.
자오헝티는 자신의 위치에 만족했다.
그렇게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윗대가리들이 그를 가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은밀하게 내려온 출전 명령.
자오헝티는 후난독군에게 따져 물었다.
"이게 맞는 겁니까? 의회와 내각을 무시한 건 돤치루이인데, 놈들을 따라 후베이성과 베이징을 정벌하라고요?"
"말조심해."
"아니, 너무하잖습니까. 육군부가 병사를 일으켜 정부를 친다니. 이게 반란이 아니면 뭡니까?"
"자네 그러면 신해년의 봉기도 반란이라 부를 텐가?"
"그게 지금 벌어지는 일이랑 무슨 상관···."
"신해년의 봉기가 왜 혁명이라 불리는지 아나? 국체를 뒤집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지. 실패했으면 반란에 불과했어.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야. 성공하면 혁명, 실패하면 반란이지."
후난독군의 말은 거부하기 힘든 진실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안후이파는 북양파의 결집에 성공했어. 기억해, 자오헝티. 도덕이나 명분 따위 중요하지 않아. 이기는 편에 서는 게 중요하다구. 잘 봐둬. 이번 전쟁에서 공화파는 몰락할 테니까. 한신의 신화도 여기서 마무리되겠지."
자오헝티는 별수 없이 후난성의 성도인 창사에서 제1사단을 소집했다.
하지만 그는 후베이성으로 출병할 필요가 없었다.
한신의 공화군이 남하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
자오헝티는 창사의 방어에만 힘썼다.
공화군이 목표하는 바는 명확했다.
돤치루이의 군대와 전투를 벌이기 전에 후방을 말끔히 정리하려는 거였다.
자오헝티는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후난군의 임무에 충실하기로 했다.
적이 누구든 후난성을 공격해 오면 격퇴할 뿐이었다.
한신의 군대가 제아무리 대단하다 하여도 자신있었다.
직접 훈련시킨 제1사단.
근방의 지리에 익숙한 후난군이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란 믿음도 가졌다.
그 자신감과 믿음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헝산(衡山)에 적이 나타났습니다! 헝양 북쪽으로 40킬로미터 지점입니다!"
"샹탄과 바오칭 함락! 적이 빠른 속도로 내려옵니다!"
"창사가 완전히 포위되었습니다. 보급은 석 달 치 정도 남았습니다."
아직 9월이다.
공화군이 출진한 지 이제 고작 열흘 남짓.
그런데 벌써 후난의 절반 이상이 점령당했다.
자오헝티는 자신이 너무 안일한 생각에 젖어 있었다는 것을 절감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그동안 한신이 승승장구했던 것은 상대 장수들이 모자라서가 아니었다.
이토록 신속한 기동전은 그간 보아왔던 어떤 전략과도 닮아 있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을 깨부수는 충격이었다.
"공화군은 방어가 삼엄한 창사를 비껴가며 주변 지대의 여론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그 결과 후난성 곳곳에 남아 있던 미처 소집되지 못한 병사들이 적에게 합류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어찌 했으면 좋겠나?"
"상황에 따라서 창사를 나와 헝산에서 회전을 벌이는 것도 고려해야 할 듯싶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적의 군대는 불어만 가니, 우리가 점점 불리해지고 있습니다."
참모진들과의 회의에서도 뾰족한 수는 없었다.
"창사를 버리자고?"
"버리는 게 아닙니다. 아직 후난에 들어온 공화군은 2개 사단 규모. 게다가 넓은 지역에 뿔뿔이 흩어져 있습니다. 적이 추가로 남하하기 전에 제2사단과 힘을 합쳐 공화군을 일거에 소탕하면 전세는 역전될 겁니다.
열성적으로 떠드는 참모진을 보며 자오헝티는 눈앞이 아득해져 왔다.
고작 열흘 만에 후난성 북부 28개 현이 한신의 손에 떨어졌다.
수비대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적은 모든 조건을 뛰어넘을 만큼 빠르고 강했다.
그런 군대와 야전에서 싸우자고?
참모란 놈들은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창사의 방어진지를 벗어나면 몰살이다.
적은 규격을 벗어난 군대란 말이다.
"아니, 버틴다. 제1사단은 후난군 최정예다. 우리가 무너지면 후난성 전체가 끝장이야."
자오헝티는 심기일전하여 방비를 더욱더 강하게 했으나.
새롭게 먹은 마음가짐은 채 3일을 넘기지 못했다.
"공화군이···, 헝양에 입성했다고 합니다···."
헝양은 창사에 이은 후난성 제2의 도시.
제2사단이 주둔해 있었다.
"무슨 수를 쓴 거냐? 헝양의 방비가 이리 단시일에 뚫리지는 않을 텐데?"
"제2사단장이 공화군의 군세를 보고는 곧바로 항복했답니다."
"뭐야? 싸워보지도 않고?"
"예."
자오헝티는 보고하는 참모에게서 묘한 기색을 느꼈다.
후난의 수비가 풍전등화에 몰렸는데, 안타까워하거나 분해하기는커녕 무언가 말하고 싶어 안달하는 듯했다.
"뭔가? 보고가 끝났으면 가지 않고. 할 말 있나?"
"사단장님. 항복한 제2사단은 포로 대우를 받지 않는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포로가 아니라 공화군 편입이랍니다."
"쳇. 그거야, 후난의 수비대들도 마찬가지잖아."
"예. 하지만 후난군 제2사단은 중앙군인데다 북양군 소속으로 분류되니, 자칫 험한 꼴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했답니다. 그런데 더없이 신사적으로 대해주니 놀랍다는 겁니다."
"그래서 뭐. 우리도 항복이라도 하자는 거냐?"
참모는 입을 다물었으나, 침묵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이 새끼들. 언제는 창사를 버리고 항전을 벌이자더니.
이제는 총 한 발 쏘지 않고 항복하자고?
애초에 원치 않던 싸움이다.
그러나 한 번 시작한 전쟁을 대충 끝내는 것도 용납할 수 없다.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고 말하려는 찰나.
진지에 후난독군이 들이닥쳤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성문을 열어라."
"예?"
"저녁에 공화군이 들어오기로 했다."
"예???"
"저번에 말했지. 이기는 편에 서는 게 중요하다고."
이런 박쥐 같으니라고.
자오헝티는 묵묵히 후난독군이 시키는 대로 했다.
창사의 수비대는 무장을 풀었다.
분명 입성은 저녁이라 했는데.
지켜보기라도 했던 것처럼, 공화군은 방어가 풀리자마자 바로 나타났다.
언제 그만한 병력이 창사의 코앞에 있었는지.
끝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공화군의 행렬을 보며 자오헝티는 소름이 돋았다.
헝양의 함락 소식을 들은 것이 오늘 아침인데.
대관절 무슨 수를 썼길래, 이 많은 군대가 곧바로 나타나는 게 가능한 거지? 도깨비라도 되는 거냐?
조금 전까지 후난독군을 박쥐라 씹었던 것이 미안해졌다.
이런 군대와 맞서 싸울 생각을 했다니.
병사들에게 큰 죄를 지을 뻔했다.
대열의 맨 앞에는 그 유명한 한신이 있었다.
말인즉슨 최고사령관이 최전선에 임했다는 것.
하기야, 총성 한 번 없는 싸움이었으니 위험할 것도 없었겠다만.
백마를 타고 위풍당당하게 창사의 대로를 지나는 한신은 점령군의 사령관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적에게 빼앗긴 도시를 탈환한 장수 같았다.
창사의 시민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오헝티는 자신이 악역이 된 기분이었다.
지휘부에 들어온 한신은 목적지가 있는지 곧장 뚜벅뚜벅 걸어왔다.
어리둥절한 자오헝티에게 한신이 꾸벅 인사했다.
"자오헝티 선배시죠? 뵙고 싶었습니다."
"절 아십니까?"
"육사의 선배시잖습니까. 선배가 길을 잘 닦아 놓은 덕에 이 후배는 한결 수월하게 공부했습니다."
한신의 첫인상은 예상외였다.
듣기로는 오만하기가 황제에 비견될 정도라 했는데.
확실히 사람은 직접 겪어보고 판단해야 한다.
"수월했다니 다행입니다. 육사의 아침은 좀 개선이 됐습니까?"
"어···. 그놈의 멀건 뭇국에, 반으로 자른 삶은 계란이 개선이 된 건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쳇. 저 때랑 똑같습니다."
"일본이 그렇지요. 놈들은 위장이 우리 반이잖습니까."
"허허, 정말 그렇습니다. 그거 먹고 어떻게 힘을 내는지 수수께끼입니다."
한신과 간단한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 동안.
자오헝티는 얼어붙었던 마음이 스르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싸우지 않고 항복했다는 죄책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대의명분이 있는 공화정부 편에 합류했다는 뿌듯함이 오히려 가슴을 가득 채웠다.
한신이 어렵게 꺼낸 이야기도 기탄없이 받아들였다.
"···그래서 선배. 가능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후난군은 함께 싸울 겁니다."
즉석에서 결정되었다.
후난군 제1사단과 제2사단은 공화군에 편입되는 것으로.
자오헝티는 한신과 같이 싸운다는 사실에 흥분하여 물었다.
"그럼 다음 출진은 언제쯤?"
"이따 저녁에 나가야지요."
"오늘···, 말입니까? 하지만 이제 막 창사를 점령하신 건데."
"점령이라니요. 공화군은 후난성에 동맹을 맺으러 온 겁니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더 머물 이유가 없지요."
점령군의 무차별 약탈을 걱정했던 자오헝티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옛날 옛적 상고시대부터 중국에서 전쟁을 통한 노획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지휘관의 입장에서는 병사들을 통제할 수도, 통제해서도 안 되었다.
오로지 약탈 하나만을 보고 전투를 수행해온 병사들인데, 그걸 금지하면 사기가 유지되지 않았다.
폭동이나 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러나 한신의 공화군은 이전의 중국군 같지 않았다.
약탈은커녕 도리어 창사의 시민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공화군의 작전목적을 설명해주니.
절도 있고 용맹한 기세가 신화 속에서 튀어나온 군대 같았다.
공화? 공화를 위해서라고?
한신과 육사시절의 추억을 나누는 동안 자오헝티는 자신에게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혈기가 끓어오름을 발견했다.
한때는 모든 것을 걸고 혁명에 임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는데.
언제부터 삶에 찌들어 상관의 명령에 무조건 '예'라고만 답하게 됐을까?
자오헝티는 대의를 위해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
후난군 제1사단의 출정이 결정되었다.
목표는 돤치루이 토벌이었다.
***
한신이 기다렸다는 듯 후베이성에서 군사를 일으켰을 때.
돤치루이는 놀라지 않았다.
명성에 걸맞게 전쟁에 미친놈이다. 대비하고 있었으리라 이미 짐작한 바다.
한신이 공화군 제1군을 이끌고 안후이성이 아닌 후난성으로 진격해 들어갔을 때.
돤치루이는 피식 웃었다.
후난성에 한신의 후방을 치라는 지시는 내렸지만,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후난군은 무장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약군.
오히려 공화군에 처참하게 대패하면 공화정부에 대한 여론이 악화될테니, 후난군의 출전 독려에는 전쟁의 정당성을 얻으려는 속셈이 숨어있었다.
공화군이 알아서 후난군과 싸워준다면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한신이 전투 한 번 없이 후난군 전체를 규합해 버렸을 때.
돤치루이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왜···, 안 싸워?
후난군이 공화군에 합류했다는 소식을 들은데 이어.
그동안 잠잠하던 공화군 제2군이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허페이시 외곽, 루안에 집결해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돤치루이는 비로소 식은땀을 한 방울 흘렸다.
위험하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진짜 당할지도 몰라.
더이상 눈치 볼 필요가 없었다.
의회에서는 돤치루이 토벌안이 가결되었고, 공화군은 안후이성을 향해 시시각각 북상하고 있었다.
돤치루이는 즈리독군 차오쿤에게 전보를 넣었다.
예정보다 조금 일찍 시작하는 걸로.
공화군에 맞서는 정국(靖國, 어지러운 나라를 태평하게 함)군이 편성되었다.
안후이파가 중심이 된 제1군단.
사령관 돤치루이에 참모장은 쉬수정이다.
제9사단과 제13사단 등이 중심이 된 합계 55,000명 규모의 대군단.
한편 즈리파가 중심이 된 제 2군단은.
사령관 차오쿤에 참모장은 우페이푸.
제3사단과 여러 개의 혼성여단을 포함하여 총합 36,000명 규모의 군단이었다.
소통은 잘 되었다.
돤치루이가 후베이의 한신을 막는 동안.
차오쿤은 베이징으로 올라가 리위안훙의 공화정부를 전복시키기로 합의되었다.
1918년 9월 30일.
허페이 외곽에 진주한 공화군 제2군의 오드넌스 야포가 불을 뿜으며.
여단전쟁(黎段戰爭, 리위안훙과 돤치루이의 앞 글자를 딴 것)이 개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