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단전쟁2 >
통일국가 중화민국.
그러나 지방에서는 허구한 날 군벌들의 내전이 끊이지 않는 것이 20세기 초, 중국의 현실이었다.
내전의 규모는 작게는 수십 명대에서 크게는 수천 명대까지 다양했으며, 엄밀히 말하면 내전이라기보다 계투(械鬪)의 변형에 가까웠다.
계투란 중국의 오래된 악습으로 일종의 집단 패싸움이었다.
단순한 패싸움과 다른 점은, 두 집단이 무기를 들고 서로를 말살하기 위해 싸운다는 것이었다.
기실 소설에 나오는 무림과 같은 문화의 원형이 계투였다.
중국은 오랜 중앙집권 국가였으나.
산은 높고 황제는 멀다는 말처럼 지방 구석구석까지 공권력이 미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자연스레 군대 사조직이 발달하였으며, 신해혁명 이후 꾸준히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군벌들은 그러한 맥락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따라서 군벌들의 전쟁 역시 큰 틀에서는 계투와 다름없었다.
적의 근거지에 소총을 든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가 마구 총알을 갈기다가.
혼전 양상이 되면 그때부터 큰 칼이나 도끼 등을 빼들고 유혈 낭자한 싸움을 벌이는 것이 으레 군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내전이었다.
그렇게 어울려 싸우다 한쪽이 전의를 상실하고 도망가면 그때부터 그 지역은 새로운 군벌의 차지가 된다.
물론 다음날 어디서 또 다른 군벌이 나타나 그 땅을 위협할지 모르지만.
어쨌건, 그런 개싸움이 일반적인 중국군의 전쟁이었고.
강한 군대의 의미는, 죽음을 불사하고 전투의지를 불태우며 적과 맞서 싸우는 것이었다.
얼마나 더 잔인한지, 얼마나 더 상대를 공포스럽게 만드는지가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안후이성의 성도인 허페이시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그러한 기존의 싸움 방식과는 전혀 달랐다.
포격으로 시작하여, 포격으로 중심을 잡고, 포격으로 끝맺는 싸움.
우창군관학교를 처음 세울 때만 해도 대포는 그냥 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되묻던 것이 포병과의 녀석들인데.
지금은 속사표를 보고 각도를 계산하는 기초적인 수준에는 올랐으니.
여단전쟁에서 포병과 출신들이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돤치루이가 제13사단과 함께 주둔한 진지는 중화민국 육군훈련소.
처음부터 방어시설로 설계된 진지가 아니었다.
시베리아 출병 관련 소동으로 돤치루이가 육군훈련소에 처박힌 이후.
얼마간 개보수를 했을지는 몰라도 기본적으로 수비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후난성에 출병하기 전, 공화군 제2군에 허페이시로 진격하여 포대를 건설하고 포격하도록 명령했다.
그 결과, 내가 후난성을 평정하고 제2군의 진지에 합류했을 때.
안후이군이 얼기설기 지어놓은 방어시설은 죄다 파괴되어 폐허가 되다시피 하였다.
"이렇게 놓고 보니 전쟁 참 쉽군요. 안전한 곳에서 포격만 가하는데 적의 진지는 금세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새로 참모를 맡게 된 리페이양이었다.
중동 원정에 참여하지 않은 그였으니, 이번 전쟁 내내 공화군의 역량에 놀라워하고 있었다.
"이런 작전 아무나 실행할 수 있는 줄 아냐? 그게 가능하면 다들 나처럼 하려 들었겠지."
"그러면 왜 안 하는 겁니까?"
"포격전은 편리하고 안전한 만큼, 막대한 물자가 소요된다. 단순히 포격만 가하는 것이 아니라, 화력을 집중할 곳을 찾는 적절한 정찰과 보병과 포병의 긴밀한 협동, 그리고 화포와 포탄을 운반하는 병참 준비까지 모든 것이 맞아 떨어져야 가능한 작전이라고."
"우리 군은 그게 되는군요."
"여기까지 오는데 쉽지 않았지."
리페이양이 명령서를 뒤적거렸다.
"오늘도 포격입니까?"
"그래."
"보병도 준비시키고요?"
"어."
개전 이래 줄곧 포격만을 가해온 공화군.
그렇다고 포병들이 고생하는 동안 보병들이 놀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포격이 시작될 때면 항상 허페이의 근지로 부대가 움직여 공세를 준비하는 것처럼 연기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돤치루이의 군대에 심리적 압박을 가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포격만 해도 끔찍한데.
그 뒤에 보병의 일제 돌격이 도사리고 있다는 공포를 심어주기 위함이었다.
"그럼 0700시에 시작하여 1500시에 끝맺는 걸로 하겠습니다."
"아니. 1500시에 새로운 작전을 시작한다."
"예? 어떤 작전을?"
"보병이 돌격할 거야."
"승부를 보시려는 거군요."
훈련소에 고립된 사령관을 구하기 위해 쉬수정의 제9사단이 북방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언론에서 여단전쟁이라 떠드는 것처럼, 외부적으로 볼 때 리위안훙과 돤치루이의 갈등에서 촉발된 전쟁.
대총통과 육군부의 주도권 싸움이었다.
육군부 장관인 돤치루이만 잡으면 전쟁은 조기 종료될 가능성이 있었다.
이미 육군훈련소의 방비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과감한 작전을 펼칠 시점이었다.
"그래. 이번엔 진짜로 돌격하는 거다. 오늘 저녁은 훈련소 짬밥이나 먹어보자고."
***
콰콰쾅!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포격이 잠잠해질 무렵.
"우아아아아!"
다시 고막이 멍멍할 정도로 힘찬 고함을 내지르며 일제 돌격이 시작되었다.
바로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
공격준비포격이 끝나고 돌격시기를 조율하는 것이야말로 보병돌격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너무 빨리 돌격하여 아군의 포격에 당하는 일이 없어야 하며.
너무 늦게 돌격하여 적군이 대응 사격에 들어갈 시간을 줘서도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공화군의 돌격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였다.
중요한 것은 각 지휘관이 정해진 작전을 제 시각에 망설임 없이 실행하는 것.
세계사에 있었던 수많은 현대전에서 시간 착오로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졌는가 돌아보면.
장교들 전원에게 지급한 회중시계 또한 큰 역할을 하는 셈이었다.
리페이양이나 나나 쌍안경에 눈을 처박고 전황을 살피느라 정신없었다.
언제나 가장 걱정되고 떨리는 순간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으며, 남은 것은 병사들이 얼마나 힘을 내주느냐.
그저 그들을 믿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다.
"대장. 보십시오! 오색기가 올라옵니다!"
"나도 보고 있어."
아직 날이 채 어두워지지도 않았는데 적의 진지에 공화정부의 깃발이 올라온다.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빨랐다.
물론 그리 빨랐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돤치루이가 없다고?"
"예. 주둔한 병사들도 대부분 북양군이 아닙니다."
"그럼 뭐야, 갓 입대한 훈련병이야?"
"확인중이지만···. 그렇습니다. 듣기로는 돤치루이가 자신은 끝까지 허페이를 지킬 것이니 죽을 각오로 싸우라고 했다더군요."
그래 놓고는 런을 친 건가.
의도가 너무나 투명하여 뭐라고 욕할 건덕지도 없다.
"햇병아리들을 총알받이로 내몰고 어디로 내뺐는지 알만하군. 철도를 타고 서북으로 갔을 거다. 쉬수정에게 합류하려는 목적이겠지."
"어떻게 할까요?"
나는 고민에 빠졌다.
돤치루이의 제13사단과 쉬수정의 제9사단이 합치면 그때부터는 포격전을 고집할 수 없게 된다.
군세를 불린 안후이군이 오히려 공세를 가해올 거다.
마음 같아서는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훈련소를 포위하여 포격전으로 끝내고 싶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출혈을 감수하며 공세에 나선 것은, 그만큼 전쟁을 빠르게 종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거지를 버리며까지 돤치루이는 퇴각해버렸고, 이제부터는 좋으나 싫으나 장기전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추격은 가능한가?"
"적이 허페이역을 파괴했습니다. 철도를 복구하려면 시일이 걸릴 듯싶습니다."
"안후이성의 철도는 못쓰게 돼버렸군."
나는 자꾸만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돤치루이의 안후이군만을 상대하는 것이라면 허페이를 점령한 지금은 여유를 부려도 될 정도로 느긋한 상황이다.
그러나 적은 안후이군만이 아니다.
"베이징에서 들어온 얘기 있나?"
"아직 없습니다."
"사소한 거라도 베이징에서 온 정보는 모조리 내게 전달해."
"알겠습니다."
즈리파 차오쿤의 제2군단은 톈진과 베이징 일대에 전선을 펴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단번에 쳐들어가기에는 무리였다. 내가 예전 호국전쟁때 건설한 베이징 참호선이 건재하고 있었으니.
애초에 돤치루이의 독단으로 시작된 전쟁에 즈리파가 목숨을 걸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 해도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공화정부다.
시일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전쟁에만 매달려있을 수는 없다.
나는 막후의 조작이 필요함을 알았다.
육군훈련소에서 군대를 재정비하는 동안.
한신특공대가 허페이에 도착하였다.
"샤즈광. 임무를 내리겠다."
"맡겨만 주십쇼, 대장. 돤치루이의 목을 따오면 됩니까?"
"아니, 왕스전을 찾아."
"왕스전의 목은 어디다 쓰려고요?"
"손끝 하나 건들지 말고 아주 정중하게 모셔라. 중화민국의 평화특사가 되실 분이니까."
"평화특사? 그게 뭡니까?"
"왕스전을 데리고 베이징에 가서 총통 각하께 임명장을 받아. 우리의 평화특사께서 즈리군과 공화군의 무의미한 싸움을 멈추게 할 테니까."
전역이 어지러우면 찾게 되는 북양의 용, 왕스전.
호국전쟁 때도 우페이푸를 설득하여 펑궈장의 즈리군을 와해시킨 바 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당시의 전쟁이 여론에 반하는 명분없는 전쟁이었던 덕이다.
이번 여단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참전군 편성 문제 때부터 불거진 일본과의 협력 의혹은 여전히 돤치루이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여론은 공화정부의 편이다.
우페이푸가 합리적인 자라면, 이전처럼 올바른 선택을 할 것이다.
정비를 완료한 공화군은 허페이에 최소한의 병력만 남겨둔 채, 우한으로 이동하여 징한철도를 탔다.
목적지는 안후이군이 피신한 산둥성의 지닝(濟寧)시였다.
***
피유유유우우웅.
쾅!
"으악!"
돤치루이는 퍼뜩 잠에서 깼다.
귓가에 포탄이 날아오는 소리가 생생했다.
"괜찮습니까?"
"괜찮아. 잠깐 졸았나 봐."
"아직 졸 여유는 있으신가 봅니다."
비꼬는 말투.
돤치루이는 쉬수정을 노려보았다.
허페이를 버리고 도망 온 이후부터 쭉 지금 같은 태도였다.
"작전 계획은 다 짰나?"
"아직 마무리할 부분이 조금 남았습니다. 피곤하면 들어가 주무셔도 됩니다."
"아니야. 총사령이 있어야지."
"글쎄요. 있기만 한다고 뭐···. 다를 게 있으려나. 들어가 주무셔도 아무도 신경안씁니다."
부하에게 무시당하기 시작하는 순간, 상관으로서의 명은 끝난거나 다름없는데.
하지만 기강을 잡는 따위는 꿈도 꿀 수 없다.
지닝에 주둔한 안후이군의 실세는 누가 뭐래도 쉬수정이었다.
돤치루이는 몸을 의탁한 신세였다.
젠장, 이렇게 무시당할 줄 알았으면 허페이에서 야밤에 습격이라도 한번 해볼 걸 그랬나?
돤치루이는 고개를 도리질했다.
아니야, 그건 아니야. 그랬다가는 떼죽음을 당했을 거야.
돤치루이는 일찍이 포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거 포탄, 아무리 쏴봐야 맞지도 않고. 포탄 마련하느라 군자금만 된통 쓰고.
중국 땅에는 은화 몇 푼 쥐여주면 총탄 사이로 달려들어 가는 청년들이 한가득인데, 굳이 포격전을 왜 하느냐는 것이 돤치루이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공화군의 포격은 어딘가 달랐다.
무슨 수를 쓰는지 아군의 주요 방어진지만 쏙쏙 골라 초토화시켰다.
그렇다고 포화 속으로 달려들어 가는 것도 자살행위이니, 그저 바닥에 바싹 엎드려 포격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 말고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버틴 지 5일째 되는 날.
돤치루이는 은밀히 육군훈련소를 빠져나왔다.
먼저 최중요간부인 자신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병사들을 중대 단위로 야금야금 후퇴시켰다.
달리 전략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더 있다가는 포탄에 맞아 죽든 신경증에 걸려 죽든, 어떻게든 죽을 것 같았기에 내린 선택이었다.
과연, 3일 뒤에 훈련소가 점령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는 간담이 서늘하였다.
퇴각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병사들의 손실이 있었고.
신문에서는 자신을 두고 탈주장관이니 뭐니 떠들어대지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은 것이니, 돤치루이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다만, 쉬수정의 태도 변화가 조금 두렵기는 했다.
어려울 때 믿을 수 있는 부하가 진짜 심복이랬는데.
앞으로 쉬수정에게 권력을 지나치게 밀어주는 것을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우선은 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먼저다.
돤치루이는 총사령의 권위를 회복하려는 것처럼.
세게 책상을 치며 외쳤다.
"그런데 안후이파가 생고생하는 동안 즈리파는 뭘 하는 거야? 제2군단의 베이징 진공은 언제냐!"
쉬수정은 대꾸도 않고 작전계획서만 들여다보았다.
다른 부하가 말했다.
"그쪽에서 하는 얘기로는 베이징의 수비가 의외로 두텁다고···."
"두텁기는 쉬불. 우리는 바로 그 한신의 공화군을 상대하고 있다고! 그깟 베이징 수비대 따위 반나절이면 뚫을 수 있는 걸!"
그때, 속보가 들어왔다.
공화군이 산둥성에 들어왔다는 소식.
후난군까지 합세한 대규모 병력이었다.
돤치루이는 쉬수정을 힐끗 보았다.
표정 변화 없이 덤덤한 얼굴이었다.
이전에는 지금과 같은 모습이 바위처럼 든든하게 여겨졌으나.
지금에 와서는 아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미련하게만 보였다.
피유유우우우웅.
어디선가 또 포탄이 날아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돤치루이는 속으로 울먹였다.
씨발, 이거 우리가 반나절 만에 뚫리는 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