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5화 (95/108)

< 새로운 시대 >

 사위가 적막한 밤.

 탕탕탕···!

 아리사카 소총이 벼락같이 불을 뿜었다.

 마창의 안후이군 사령부를 지키던 병사들은 불시에 날아온 총알을 맞고 쓰러졌다.

 득달같이 달려든 펑톈군이 사령부로 진입했다.

 건물 내부에서는 소총을 사용할 수 없으니 제각기 손도끼나 군도, 곤봉 등을 꺼내 들고 휘두르는데, 하나같이 솜씨가 출중하였다.

 그 중심에 거대한 몸집의 사내가 마왕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한놈도 남김없이 죽여라! 특히 쉬수정을 찾아 찢어 죽여야 한다! 기억해라! 짧은 머리에 덩치가 불곰 같은 자식이다!"

 장쭝창이 휘두르는 도끼는 보통 병사들의 것보다 두 배는 큰 양손 도끼였는데, 그는 한 손으로 마구 휘둘렀다.

 도끼날에 안후이군의 피가 엉겨 붙을 때마다 장쭝창의 눈 또한 붉게 충혈되었다.

 장쭝창은 소수의 병사들을 이끌고 사령부의 계단을 성큼성큼 올랐다.

 목적지는 바로 몇 시간 전까지 장쭝창이 연회를 즐겼던 강당.

 연회장의 문이 열리더니, 혼비백산한 안후이파의 장교들이 뛰쳐나왔다.

 "으흐흐. 피라미 같은 새끼들, 도망가는 거 봐라. 좋구나, 좋아! 다 죽여라!"

 "장쭝창! 왜, 왜 이러는 거냐!"

 "몰라서 묻냐? 그럼 죽어야지!"

 "너는 우리 편 아니었나? 협력하기로 해 놓고 이 무슨 짓이냐?"

 마침 새벽 달빛이 휘영청 장쭝창의 얼굴을 비췄다.

 그가 입가를 일그러뜨리며 미소 짓는데, 흡사 흉신악살을 보는 것 같았다.

 "누가 그런 말을 해?"

 "서북장군께서 직접 알려주셨다!"

 "그 씹할새끼. 뒤지기 전까지 입을 나불대는군."

 장쭝창은 들고 있던 도끼를 곧추세우더니, 그대로 안후이군 장교를 찍었다.

 정수리가 쪼개지며 피가 튀었다.

 그 광경을 아무렇지 않게 지켜보던 펑톈 병사가 말했다.

 "형님, 저자가 무슨 말을 하는 거요? 협력이라니?"

 "몰라, 별 미친 새끼가 다 있네. 얼른 쉬수정이나 찾아!"

 "어···. 옙."

 하지만 연회장에 있던 사람은 방금 도끼에 머리가 동강 난 자가 마지막이었다.

 강당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쉬수정은 없구먼요."

 "그런 거 같군."

 장쭝창은 연회장을 걸어가 아까 미처 먹지 못했던 산돼지 다리를 집어들어 뜯었다.

 그때, 식탁 아래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장쭝창은 주저 없이 억센 팔을 넣어 잔뜩 겁에 질린 안후이군 장교 한 사람을 꺼냈다.

 "이거이거, 역시 음식이 남아있으니까 쥐새끼도 사라지지 않는군."

 "커, 커헉!"

 장쭝창은 장교가 들고 있던 권총을 가볍게 빼앗았다.

 "이 자식은 어떻게 죽일까. 이 권총을 써볼까?"

 "자, 잠깐! 너는 장쭝창! 쉬수정 장군을 위해 장쭤린을 죽이기로 합의해놓고 배신한 거냐!"

 "닥쳐."

 탕! 

 목구멍에 구멍이 뚫린 안후이군 장교가 철퍼덕 떨어졌다.

 장쭝창은 고개를 돌렸다.

 아연실색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펑톈 병사들이 보였다.

 "에라이. 안후이파 놈들은 어찌 이리 입이 가벼운지. 역시 직접 오길 잘했어. 다른 놈이 여길 수습했더라면 큰일날 뻔 했잖아."

 "그, 그럼. 저자의 말이 사실이란 겁니까?"

 "무슨 말?"

 "두목을 암살하려는 쉬수정의 계책에 형님이 연관됐다는 것 말입니다!"

 장쭝창은 쩝쩝거리며 입안의 산돼지 고기를 삼키고는 말했다.

 "어."

 탕! 탕! 탕!

 장쭝창과 함께 연회장에 있던 펑톈 병사들이 권총을 맞고 쓰러졌다.

 "쉬수정, 그 병신은 제법 기지가 있다고 보았는데. 일을 이따위로 처리하다니, 괜히 내가 뒤질 뻔했잖아. 됐다 됐어. 욕심은 그만 부리고 장쭤린 밑에서 조용히 살아야지. "

 한층 붉어진 눈으로 연회장을 둘러보는 장쭝창.

 더 이상 강당 안에 살아있는 생명체는 없었다.

 "그나저나 안후이녀석들. 싸움은 못 해도 요리 하나는 참 잘 한단 말이야."

 장쭝창은 산돼지 통구이를 한 번 더 뜯고는 연회장을 나섰다.

 ***

 리위안훙 대총통 당선!

 부총통 량치차오 당선!

 베이징에서 날아온 낭보를 전해 들으며, 돤치루이를 쫓아 즈리성에 돌입한 공화군.

 그러나 곧 닭 쫒던 개 신세가 되었다.

 "장쭤린이 마적은 마적이군요. 도와주겠다고 연회를 열고는 도리어 돤치루이를 처단해버리다니."

 펑톈군이 마창을 습격하여 안후이군 지휘부를 일망타진했다는 소식을 들은 부관 리페이양의 관전평이었다.

 "외부인은 내막을 알 수 없다. 우리끼리 왈가왈부해 보았자 곁다리만 맴돌 뿐이야. 중요한 것은 이번 일로 안후이파가 완전히 몰락했다는 거다."

 "쉬수정은 놓쳤다지만, 돤치루이를 잡았으니 안후이군벌은 이제 뒷배를 잃었습니다. 끝장났다고 봐야겠지요."

 즈리군 또한 평화특사 왕스전의 활약 덕에 안후이군을 배신하고 베이징의 포위를 풀었으니.

 여단전쟁의 종막은 싱거웠다.

 마창에 주둔한 돤치루이와 쉬수정의 군대가 무너지자.

 샨시와 간쑤 등에서 군사를 일으켜 돤치루이를 도우러 오던 안후이군벌들 또한 맥없이 주저앉았다.

 특히 즈리군의 우페이푸는 베이징 전선이 해소되자마자 제3사단을 이끌고 서쪽으로 이동하여 샨시독군이 이끄는 제20사단의 공격을 분쇄했으니, 큰 공을 세운 셈이었다.

 장쭤린의 펑톈군 역시 러허(熱河, 열하)와 내몽골의 안후이군을 처단하는 등, 기세를 잃은 안후이파를 마음껏 난도질했다.

 여전히 저장성과 푸젠성에 안후이파 소속의 군벌들이 남아있긴 하나.

 그들은 돤치루이라는 구심점을 잃은 가운데,  군벌 시대 힘의 작용에 따라 자연스레 정복당하고 도태될 것이다.

 마침내 여단전쟁은 끝났으나.

 끝나지 않은 것이 있었다.

 즈리성에 다다른 김에, 공화군은 베이징 남쪽의 난위안항공학교에 들어가 진지를 폈다.

 일찍이 장쉰이 복벽을 일으켰을 때, 폭격기라는 신문물로 무력 시위를 하며 큰 활약을 한 바 있는 곳이었다.

 당시 폭격기를 몰았던 수석교관 리루옌과 담소를 나누는데.

"야라라라라라!"

 문득 밖에서 야생마가 날뛰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란이냐?"

 "펑톈군이 나타났습니다!"

 "뭔 일로?"

 "난위안학교가 육군부 소속이라는 이유로 안후이파 잔당을 수색하겠답니다."

 이것이 돤치루이가 몰락한 이래, 중화민국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안후이군을 섬멸한다며 온갖 곳을 들쑤시고 다니지만.

 정작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꺼지라 그래. 이미 공화군이 다 확인하였다고."

 "말을 듣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무기고를 확인해야겠답니다."

 "녹림의 형님들께서 주머니가 영 허전하신가 보군. 복엽기의 탐조등 몇 개나 쥐여주고 보내라."

 펑톈군은 도망친 쉬수정을 추격한다는 구실로 곳곳에 산재한 안후이파 군사기지에 들이닥쳤다.

 당연하다는 듯 주인이 사라진 안후이파의 곳간에 눈독을 들이며.

 펑톈군은 자신들의 기반이 마적이라는 것을 전 중국에 광고라도 하고 싶은 것인지.

 군 장비를 쓸어가고, 안후이군을 해체하여 펑톈군에 편입시키며.

 보란 듯이 관청과 은행 약탈도 서슴지 않았다.

 눈치만 보던 즈리군은 오히려 손가락만 빨았다.

 텅 빈 돤치루이의 곳간을 보고 차오쿤이 노발대발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펑톈파와 즈리파가 안후이파 털기에 여념이 없을 때.

 공화파 또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아직 본격적인 논공행상이 남았지만.

 그걸 고려하지 않더라도 이번 여단전쟁의 확실한 수확은 후난성과 육군훈련소였다.

 후난은 후베이에 비해 비록 낙후된 지역이지만.

 거대거점도시 우한의 낙수효과를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지역이었다.

 후난과 후베이는 흔히 둥팅호(洞庭湖, 동정호)를 경계로, 양호(兩湖)라 불리며 춘추전국시대부터 한데 묶여왔던 지역이니.

 삼국지의 형주가 바로 양호이다.

 그 제갈량이 말하지 않았던가.

 형주를 접수하면, 곧 천하를 도모할 근거를 얻는 거라고.

 본래 안후이파의 영역이었던 후난성은 이제 공화파의 세력권 아래 들어왔다.

 한편 안후이성에 위치한 허페이 육군훈련소는, 돤치루이가 육군부 장관으로 재직하며 필생의 업으로 세운 것이었다.

 돤치루이는 10년 대계를 말하며 육군훈련소에서 배출한 병사들이 장차 안후이파의 강군으로 성장하길 기대하였다.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번 공화정부 2기의 육군부 장관이 누가 될지는 모르지만.

 허페이 육군훈련소는, 일단은 공화파의 입김 아래 놓이게 되었다.

 중국 전역을 들쑤시던 전리품 쟁탈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가고.

 베이징에서 리위안훙은 제2대 대총통으로 취임하였다.

 신(新) 공화정부.

 공화정부 2기에서는 어떤 내각이 출범할 것인가?

 전 국민의 시선이 쏠렸다.

 마침내 날짜가 잡혔다.

 중난하이의 대총통부에서 각 파벌의 거두가 모여 여단전쟁의 논공행상을 벌이기로.

 ***

 베이징이 언제 북적이지 않은 적이 있었겠느냐만은.

 이번에는 정도가 좀 심하다 싶었다.

 거리 곳곳에 온갖 군복 차림의 군인들이 가득하다.

 무리 지어 으스대거나 아무에게나 어깨를 부딪치며.

 시비가 붙어 피를 보는 싸움까지 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광경은 예루살렘에나 있는 줄 알았는데, 베이징에서 보게 될 줄이야."

 왕스전 특사파견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귀환한 샤즈광이 중얼거렸다.

 그의 말대로였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병사들은 자신들이 마치 해방군이라도 되는 양 들떠 있었다.

 지휘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화파나, 즈리파나, 펑톈파나. 모두 자신들이 속한 파벌이 여단전쟁에서 최고 공을 세웠다 우쭐대고 있었다.

 샤즈광이 다시 투덜거렸다.

 "그런데 말입니다. 대장도 짬이 있는데 직접 나갈 필요 있습니까? 장쭤린 그놈은 천성이 마적이라 베이징 대로를 혼자서는 못 걷는답니까?"

 "내가 나가겠다고 했어."

 "멋이 안 살잖습니까, 멋이. 안 그래도 펑톈 새끼들 요즘 아니꼬워 죽겠는데. 우리 대장이 마중을 나갔다는 사실을 알면 얼마나 더 기어오를지 상상이 안 갑니다."

 "신경 쓰지 마라. 그냥, 회담 전에 장쭤린을 한번 보고 싶던 거니까."

 그때 기적소리와 함께 열차가 들어왔다.

 베이징역의 플랫폼에 모피코트를 걸친 장쭤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장쭤린은 어찌 사람의 입이 저렇게 열릴까 싶게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는데.

 시민들의 환호에 화답하는 폼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역을 나오던 장쭤린이 우뚝 멈춰섰다.

 그와 나 사이의 거리는 일백미터가 넘었으나, 나는 그가 내 쪽을 보고 있는 것을 알았다.

 장쭤린은 나를 향해 마구 달려오다 바로 앞에서 샤즈광에 의해 제지당했다.

 "이게 누구야! 무쌍장군 아니신가! 역시 베이징은 대단하오. 구국의 영웅을 길거리에서 마주치다니!"

 장쭤린이 호들갑을 떨며 내 손을 잡았다.

 저리 가···. 스킨십은 부담스러워.

 "마주친 것이 아닙니다. 제가 독군을 기다렸습니다."

 "오오, 정말이오? 이런 영광이 있나. 자, 그럼 올 사람이 왔으니 가십시다!"

 장쭤린과 나는 미국 패커드 사에서 직수입한 고급 자동차에 올라탔다.

 중난하이로 향하는 내내, 장쭤린은 유리창에 코를 박고 베이징 거리를 구경하였다.

 "거리에 오색기가 많이 걸려 있구려."

 "신 공화정부의 출범을 기념하는 겁니다."

 "흐흐. 정부의 성공을 기원하겠소."

 확실히 직접 보니 알 것 같았다.

 일자무식에 군사교육의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장쭤린이 어째서 오늘날 동북의 왕으로 불리는지.

 마적 출신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깔끔한 외모에, 행동거지는 자유분방한 것 같으면서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다.

 자신이 먼저 행동을 편히 함으로써 상대 또한 얽매이지 않도록 하여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힘이 있다.

 "오! 저것이 황제가 기거했다던 별장, 중난하이!"

 총통부 건물에 장쭤린과 함께 들어서자 스포트라이트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외신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이것이 내가 원한 그림이었다.

 장쭤린의 속내가 어떻든, 외부에서 보기에 펑톈파와 공화파의 사이가 나쁘지 않은 것으로 어필하고 싶었다.

 2기 내각을 준비 중인 리위안훙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내 나름의 처신이었다.

 기존에 땄던 인터뷰로 충분했는지, 내가 아닌 장쭤린에게로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언제나 화제의 중심이었는데, 바로 옆에서 소외당하는 기분은 또 처음이었다.

 "공화군의 한신 장군과 함께 나타나셨는데, 공식적으로 공화정부에 지지 의사를 밝히신 걸로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으하하! 한신 장군은 오늘 처음 만났으나, 단번에 알았소. 우리는 장차 지지기우가 될 거요!"

 "지기지우(知己之友) 말씀이십니까?"

 "아, 그건가? 아무튼!"

 기자들의 공세에도 장쭤린은 당황하는 기색 없이 능숙하게 대처했다.

 "펑톈군의 군사력은 베일에 싸여있습니다. 혹시 그 규모를 알려주실 수 있나요?"

 "내 병력 말이오? 알려주지! 으음. 30만은 된다오! 크하하!"

 "우와, 대단하시네요. 그 정도 규모면 중화민국 최대 아닌지요?"

 "그런가? 그것까진 잘 모르오. 흐흐."

 30만이라니. 뻥튀기가 심하시네.

 하지만 못해도 20만은 넘을 거다.

 병력의 질에 있어서는 한참 모자란 군사들이지만, 절대적인 수 자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무엇보다 장쭤린이라는 일인의 절대적인 카리스마에 의해 유지되는 펑톈파의 끈끈함은.

 얼기설기 느슨한 이익 관계로 묶인 안후이파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러니, 앞으로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자가 바로 장쭤린이었다.

 거창한 환영식 끝에.

 다음날.

 중난하이의 대회의실에 중화민국을 떠받드는 거두들이 하나둘씩 나타나 자리에 앉았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려니 새삼 감회가 새로웠다.

 한때 중국을 좌지우지하던 위안스카이와 북양삼걸의 시대는 저물었으며.

 이제 새로운 인물. 장쭤린이나 우페이푸, 펑위샹과 같은 자들이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상석을 차지하고 있다.

 당연하지만, 한신도 빼놓을 수는 없으니.

 나 또한 한껏 기고만장하여 리위안훙 옆에 자리를 잡았다.

 땅땅.

 리위안훙이 책상을 두드리며 회의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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