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상투쟁의 서막 >
파리에서 날아온 량치차오의 전보.
예루살렘을 둘러싼 갈등에 니시하라 차관 폭로까지.
나는 더 두고 볼 수 없음을 알았다.
총통부에 연락하여 파리특사를 자처하였다.
특사단이 준비되길 기다리는 동안 1919년의 5월이 찾아왔다.
나는 베이징에 있었다.
중국의 현대사를 영원히 뒤바꾸었다고 일컬어지는 5. 4운동.
대비를 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
하지만 5월 4일 당일은 쾌청한 날씨에 조금 쌀쌀할 뿐.
베이징 거리는 조용하였다.
나는 역사에 변혁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날 5월 5일이 되었을 때.
파리 강화회의의 소식이 베이징 대학가를 중심으로 조금씩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은근히 소요가 일기 시작했다.
지난 3월 1일 조선에서 일어났던 만세 운동은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었다.
각 민족의 운명은 그 민족의 손으로 결정하게끔 하자!
얼마나 듣기 좋은 말인가.
전 세계를 도탄에 빠뜨렸던 대전쟁은 끝났고.
식민 지배를 받던 민족들은 새로운 세계가 도래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윌슨이 천명한 민족자결주의 원칙은 오스만, 오스트리아-헝가리, 독일 등 대전쟁의 패전국들 식민지에만 차별적으로 적용될 뿐이었다.
영국이나 프랑스야 말할 것도 없고,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한 미국조차도 필리핀 등의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었기에.
열강은 승전국이었던 일본의 식민지에서 벌어진 민족 운동을 철저히 외면했다.
오히려 3.1 운동의 영향은 국외의 다른 민족들에게 영감을 가져다준 부분이 컸다.
특히 중국의 민족주의자들은 바로 옆 나라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에 큰 충격을 받았다.
시민들이 들고일어나,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렇게 묘한 분위기가 거리에 감돌기 시작할 무렵.
나는 베이징대학을 방문하였다.
적어도 공화정부 내에서 거대 민족운동은 호재라 할 수 없다.
탄압까지는 가지 않는다 해도, 조기에 예방할 수 있다면 막는 것이 최선이다.
시위는 베이징에서 시작하여 전국으로 번져가는 것이니, 진원지를 찾아 문제를 해결하면 특별한 이벤트 없이 5월은 조용히 지나갈 것이다.
곧바로 총장과의 면담이 잡혔다.
단순히 양호 독군이자 무쌍장군의 지위 덕은 아니었다.
나는 그와 개인적인 인연이 있었다.
"각하! 꾸준히 초대를 드렸는데, 드디어 본 대학에 방문해주셨군요. 그동안 얼마나 대접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베이징대학 총장 양쭝샹.
오랜만에 본다.
"각하라는 표현은 거북합니다. 예전처럼 대해주세요. 10년 만에 뵙나요? 그때보다 더 젊어지신 것 같습니다."
"아이고, 중국이 자랑하는 최고사령관께 각하라 부르지 않으면 공화군 10만 병사들에게 호되게 질책을 받습니다."
"여긴 둘밖에 없잖습니까. 예전처럼 불러주세요."
"그, 그럴까요? 그런데 예전에 제가 뭐라고 불렀었는지···."
"조선놈이라든가, 혁명분자라든가. 다양하게 호칭하셨습니다."
양쭝샹이 멋쩍게 웃었다.
"아···, 하하.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당최 기억이 나지 않아서. 저로서는 그저 일본의 진무학교 학감실에서 독군과 나누었던 그날의 대담만이 어렴풋이 떠오를 뿐입니다."
"그날, 재밌었죠."
"당시 일반 학생에 불과했던 독군께서 제 인식을 송두리째 깨주신 덕분에 오늘날 베이징 대학의 총장까지 될 수 있었으니. 모두 독군의 덕입니다. 몇번을 감사 인사를 드려도 모자랍니다."
양쭝샹은 일찍이 내가 일본 진무학교에 다닐 적에 학감이었던 자다.
나는 일본육사에 고속입학을 하기 위해 양쭝샹에게 진무학교 조기졸업을 청원한 바 있었다.
당시는 신해혁명이 머지않았던 시기.
나는 양쭝샹에게 혁명파와의 커넥션을 마련해 주었고.
혁명의 불길에 올라탄 양쭝샹은 썩어 문드러져 곤두박질치기 직전인 청나라의 두레박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에도 승승장구하였고, 끝내 그가 바라 마지않던 베이징대학 총장자리까지 오른 것이었다.
"제가 제시했던 것은 흐릿한 미래 예측에 불과했습니다. 기회를 움켜쥔 것은 총장님입니다."
"그리 말씀하셔도 독군이 일생일대의 은인인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독군은 진무에서부터 이미 범상치 않았으니, 지금 생각하면 그저 신기할 뿐이지요. 제가 미래에 중국의 국보가 될 장수가 성장하는 것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니요."
오랜만에 혓바닥에 기름칠한 아첨을 양껏 들으니 좋긴 좋은데.
오늘 베이징대를 방문한 이유는 귓구멍이나 후비자는 것이 아니다.
"대학의 운영은 어떻습니까?"
"모든 것이 순조롭습니다! 교육부에서 작정하고 예산을 지원해주니까 종목을 가리지 않고 전문화 과정을 신설할 수 있습니다. 예산이 풍부하니, 교수진 또한 최고로 데려올 수 있고 말입니다."
"학생들은 불만이 없고요?"
"예. 뭐 특별히 불만은···."
나는 학생회나 운동권 등을 언급하며 학생들이 강의 외 시간에 뭘 하는지 이것저것 물었으나.
양쭝샹은 말꼬리를 흐릴 뿐이었다.
"어···. 글쎄. 그것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긴 대학 총장이 학생들 생각을 어떻게 알겠는가.
양쭝샹이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보아하니 독군께서 학생들의 생활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사실 오늘 베이징대를 방문한 것은, 앞으로 중화민국을 이끌어나갈 학생들이 지식의 요람에서 어떤 생활을 하는지 궁금해서였습니다."
"그렇다면 저 말고 최전선에서 학생들과 직접 소통하는 교수진과 면담을 가져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가능합니까?"
"예. 물론. 무쌍장군이 본 대학에 방문하셨는데, 그 누구든 환영하지 않겠습니까."
양쭝샹은 날 도서관으로 인도하였다.
고색창연한 책 냄새가 문 바깥으로도 풍겨나왔다.
도서관 안에 마련된 작은 방에는 미리 연락받은 두 명의 교수가 있었다.
한명은 깔끔한 외모에 안경을 낀 사내.
교수라기에는 젊어 내 또래로 보였다.
다른 사내는 헌 장포를 입은 중년인이었는데.
나는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루쉰(魯迅, 노신)이었다. 근현대 중국 최고의 작가로 불리는 그였다.
"차례로 후스(胡適, 호적) 교수와 루쉰 교수입니다. 인사하시오, 강호에 대명이 자자하신 무쌍장군이시오."
두 개의 날카로운 눈빛이 쏘아져 왔다.
루쉰은 그렇다 쳐도 후스 또한 중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상가였다.
"후스입니다. 만나 뵈어 영광입니다."
"루쉰이오."
"한신입니다."
가벼운 인사가 끝나자 양쭝샹이 말했다.
"그럼 말씀 편히 나눌 수 있게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각하. 저녁 약속 잊지 마십시오. 옌바오츠(燕鮑翅, 상어 지느러미 요리)를 대접할 테니."
무어라 말할 새도 없이 양쭝샹이 슝하고 사라지고 셋만 남았다.
도서관이 적막에 잠겼다.
내가 대화의 운을 뗐다
"오면서 보니 도서관에 학생들이 별로 없더군요. 책을 잘 안 읽나 봅니다."
"평소에는 북적입니다. 오늘이 특별히 한산할 뿐입니다."
"이유라도 있는지?"
후스는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정부에 계신 분이니 알거라 생각했는데···. 최근에 일명 니시하라 차관 문제가 학생들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확실히 이슈에 민감한 자다.
원하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화제가 된다는 겁니까?"
"근래에 중국에는 민족주의, 공리주의, 무정부주의, 마르크스주의까지. 죄다 무슨 무슨 주의라고 칭하는 사상들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유행에 민감한 학생들은 그러한 주의들을 재빨리 받아들여 멋대로 해석하고 현실에 대입하지요."
"그게 니시하라 차관과 관련이 있습니까?"
"공화정부가 최선을 다해왔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훨씬 단순합니다. 사건의 원흉인 돤치루이는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지린성에서 신선 같은 삶을 누린다지요. 그 점이 일차적으로 학생들을 분노케 하는 겁니다."
펑톈파와 합의를 본 순간부터 갈등의 불씨는 내재되어 있던건가.
후스가 계속 말했다.
"게다가 들리는 얘기로는 만주 등지의 이권 상당 부분을 일본에 양도하는 것으로 파리 강화회의가 흘러간다더군요. 민족자결주의에 큰 희망을 걸고 있던 학생들로서는 열강들이 여전히 제국주의적이고 거짓말쟁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겁니다. 그에 따라 학생들은 제각각의 사상으로 무장한 채,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합니다."
"시위가 일어나겠군요. 뭘 요구하는 겁니까."
"니시하라 차관 문서의 철폐는 물론 베이징과 톈진 등지, 나아가 전국에 산재한 열강들의 치외법권 지역을 모두 몰아내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거야 나도 바라는 일인데.
"알겠습니다. 말씀 감사히 들었습니다. 그럼 이만."
나는 몸을 일으켰다.
"어디 가십니까?"
"천안문에 갑니다."
"그곳은 왜···?"
"학생들이 모일 곳이라고는 거기밖에 없잖습니까."
지금껏 꼿꼿한 자세를 유지해오던 후스는 적잖이 당황한 모양새였다.
침묵을 지키던 루쉰 또한 유심히 날 바라보았다.
"학생들에게 직접 가신다고요?"
"예."
"목적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시위를 막을 겁니다."
후스가 유리알 너머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말했다.
"독군은 제가 상상해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분이시군요."
"뭘 상상했습니까?"
"듣기로는 오만하기가 대총통에게 술시중을 시킬 정도라던데. 생각 외로 소탈하십니다."
술자리에서 리위안훙이 내게 몇 번 따라준 것이 와전된 건가.
자기가 좋다고 따랐다고.
아니, 그런 것보다.
후스, 이 인간. 상당한 노빠꾸다.
공화정부의 군권을 장악한 군벌에게 말하는 품새가 여간이 아니다.
하지만 진정한 노빠꾸는 따로 있었으니.
루쉰이 침묵을 깼다.
"천안문에 가서 무슨 얘기를 할 작정이오?"
"아직은 대외비입니다만, 실은 저는 공화정부에 의해 특사로 임명되어 곧 파리에 파견될 예정입니다. 학생들의 요구를 충분히 듣고 수렴하여 강화회의에 반영하겠다는 이야기를 들려줄 겁니다."
"그렇게 또 한 번 학생들을 우롱하고 영웅이 되기를 원하는 거요?"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내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루쉰은 등받이에 대고 있던 등을 떼고 내 쪽으로 몸을 굽혔다.
무언가 음산한 기운이 그에게서 발산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소위 영웅이라 하는 작자들을 믿지 않소. 민중들은 당신을 칭다오를 되찾고, 베이징을 구출하며, 아랍을 해방한 영웅호걸이라 일컫소. 내가 가르치는 학생 중에서도 학교 따위는 때려치우고 당신의 공화군에 입대하겠다 떠들어대는 녀석들이 있지. 하지만 아무도 중요한 걸 지적하지 않소. 당신이 키운 공화군의 목적은 무엇이오?"
내가 답할 틈도 주지 않고 루쉰이 혓바닥으로 따발총을 쏘아댔다.
"학생들은 한신은 위안스카이와 다르다, 돤치루이와 다르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본질적으로 당신은 개인 군대를 양산하며 중국의 혼란을 부추기는 군벌이오. 당신이 아무리 듣기 좋은 말로 군중을 미몽에 빠뜨리더라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소."
루쉰의 수염 끝이 파르르 떨렸다.
"공화주의라고? 당신이 이룩한 것이 진정 공화라 보시오? 공화정부에 충성하는 자들의 태반은 그저 당신의 세력이 가장 강성하기 때문에 복종하는 거요. 공화라는 의미에 대하여 한번이라도 고찰해본 사람이 있을 것 같소? 우습게도 공화군이 복종하는 것은 공화가 아니오. 당신이지. 대국을 자처하는 중국인의 뿌리 깊은 오만과 허영은 결국 당신을 공화국의 황제로 옹립할 것이니. 이 순간에도 중국은 난립한 군벌들의 내전으로 신음하고 있소. 민중은 무지를 숭상하고 스스로를 노예의 굴레로 집어넣고 있소. 당신에게 필요한 삶의 태도는 바로 그러한 중국의 현실을 직시하는 거요."
루쉰의 장광설이 끝나자.
나는 간단히 답했다.
"명심하겠습니다."
루쉰의 성향을 말하자면 일종의 어둠의 투사.
다크나이트다.
그는 중국의 어둠을 등에 짊어지고 함께 죽고자 했다.
시대가 엄혹할수록 루쉰의 투쟁은 빛을 발했으니.
루쉰을 키운 것은 부조리와 절망, 증오와 분노, 피와 고통이었다.
모두 까기 장인인 루쉰의 경고는 분명 곱씹어볼 부분이 있었다.
비판은 루쉰과 같은 지식인의 책무.
권력자로서 직설적인 직언을 들을 기회는 귀한 것이다.
내가 선뜻 인정하며 고개를 꾸벅 숙이자 오히려 루쉰은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지켜보고 있던 후스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독군.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루쉰 선생은 워낙 입이 험하여 누구에게 좋은 소리 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제게도 제국주의의 개뼉다구라고 막말을 쏟아부은 적이 있으니까요."
"왜 개뼉다굽니까?"
"열강이 다 뜯어먹고 남은 뼈다구를 발라먹고 사는 놈이라는 거지요."
"제가 아는 루쉰 선생은 쓴소리를 할지언정 틀린 말을 입에 담지는 않는 분이니, 후스 선생이 개뼉다구라는 것도 영 틀린 얘기는 아닐 겁니다. 제가 공화국의 황제를 꿈꾸는 사기꾼이라는 것 역시 일리가 있는 말일 테고요. 그만큼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경계해야 한다는 말씀이겠지요."
루쉰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날 언제 봤다고 안다는 거요."
"직접 뵙는 건 처음이지만, 작품은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광인일기>는 흥미롭더군요. 저 또한 이 자리에 오기까지 손에 많은 피를 묻혔으니, 저를 되돌아보게 하는 소설이었습니다."
"내 소설을 읽었다고?"
루쉰은 약간의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갑자기 몸을 옴짝달싹하더니 조그맣게 덧붙였다.
"방금 말이 과했던 것은 사과드리오. 내가 분노를 표하고 싶었던 것은 전국에 암약하는 군벌 집단일 뿐이지, 그중 독군과 같은 공화파의 군벌은 긍정적으로 보는 부분도 있으니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소."
"오해 같은 거 없습니다. 중국의 상황에 대해 선생님의 고견을 들을 수 있어 뜻깊었습니다."
"총장과 샥스핀을 먹으러 간다길래, 잠시 울컥하였소. 민중은 가난에 허덕이는데 기득권층은 사치를 즐기는 것 같아서 말이오. 하지만 대화를 나누어보니, 그런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소. 실은, 나는 당신을 좋아한다오···. 작년에 돤치루이를 패퇴시켰을 때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르오."
뭐야, 이건.
츤데레야?
"그렇다니 감사합니다. 다만, 저녁 약속은 총장이 일방적으로 통보한 겁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천안문에 가봐야 해서 시간도 없을 거고요. 루쉰 선생님이 총장에게 잘 말해주시지요."
"그러겠소."
루쉰의 눈빛이 뭔가 사랑스럽게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찰나.
후스가 날카롭게 외쳤다.
"거기 누구냐!"
후스의 시선이 꽂힌 곳은 도서관의 큼지막한 책장.
빼곡히 꽂힌 잡지 뒤에 한 청년이 몸을 숨기고 있었다.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서고 정리를 하다가 말씀 나누시는 내용에 흥미가 생겨 본의 아니게 엿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후스가 코웃음 쳤다.
"네놈이로군. 저번에도 베이징대학 학생도 아닌 주제에 내 강의를 몰래 듣다가 쫓겨난 적이 있지? 그때도 잘 알아듣게 말했던 것 같은데···. 꼭 물건을 훔쳐야만 도적인 줄 아나? 말 또한 의미에 따라 물건의 수천 뱃값을 호가할 수 있는 것을!"
"죄송합니다!"
청년이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별일 아닙니다. 특별히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눈 것도 없는 데다. 잘못이 있다면 우리가 주의를 철저히 기울이지 않은 탓이니, 저 친구를 힐난할 필요는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신 사령관님! 제가 일찍이 공경하던 분인데, 오늘 이렇게 뵙다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습니다!"
청년이 연신 고개를 숙이는데.
나는 불현듯 위화감이 들었다.
의도치 않게 질문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얼마나 씻지 않았는지 땟자국 자글자글한 몰골.
대조적으로 싱글벙글한 얼굴은 두 뺨이 푹 패어 앙상하게 말랐다.
"쩌둥. 마오쩌둥(毛澤東, 모택동)이라 합니다."
씨발. 이럴 거 같았어.
인류 역사상 직간접적으로 가장 많은 인간을 죽였다는 마오쩌둥.
그가 바로 앞에서 날 흠모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