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상투쟁의 서막2 >
마오쩌둥을 두고 흔히 공칠과삼(功七過三)이라 평한다.
정말 그런가?
마오쩌둥이 1956년이 되기 전에 죽었다면.
그는 내전을 종식시키고, 사회주의 혁명을 일궈낸.
쑨원을 뛰어넘는 중국의 국부로 추앙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중국의 1인자가 되자 '저 새는 해로운 새다'로 대표되는 전방위적인 경제성장 계획.
대약진 운동(大躍進運動)을 일으켰고, 처참하게 실패하였다.
운동 기간 동안 발생한 기근으로 5,000만명···, 이 굶어 죽었다.
한참 양보하여 마오쩌둥이 1966년 이전에만 죽었어도 어느 정도는 평가받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쌩쌩하게 살아서 대약진 운동의 실패로 뒤숭숭해진 중국을 수습한답시고 일련의 파괴 운동을 선동하기 시작하는데···.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이라는 이름의 세계사에 전례 없는 거대 규모의 반달리즘은 중국의 문화와 역사를 철저하게 파괴하였다.
홍위병들이 날뛰는 대혼란의 10년 동안 2,000만명···, 가량이 학살당했다고 하니.
그 광란의 시기 동안 살아남은 중국의 문화라고는 오로지.
마오 주석의 개인숭배뿐이었다.
마오쩌둥은 그 모든 병신 같은 시절을 다 보내고, 1976년에 죽었고.
망가져 버린 중국은 끝내 핵전쟁으로 세계를 불태웠다.
공칠과삼이라는 것은 결국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중국이 마오쩌둥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립서비스에 불과하다.
이 새끼는 그냥 개노답이다.
"사령관님?"
청년 마오쩌둥이 천진난만한 얼굴로 날 바라본다.
그렇다고 이 친구를 핍박할 수야 없는 법.
역사의 수레바퀴가 어떻게 굴러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어쩐지 표정이 무섭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마오쩌둥이 묻는데, 후스가 호통을 쳤다.
"이 녀석이 조금 잘 대해줬더니 어디까지 기어오르는 거냐? 독군이 일이 있든 말든, 네놈이 어디서 참견이야?"
"죄송합니다."
마오쩌둥은 마치 수만 번은 사죄해본 사람처럼 또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나 별로 주눅이 들어 보이지는 않았다.
후스가 특별히 열받아 하는 것이 이해가 가는 것 같기도.
"그만 나가봐라. 서고에 먼지가 가득하더구나. 보조 사서가 하는 일이 서고 관리 아니더냐?"
후스가 명백히 축객령을 내렸으나.
마오쩌둥은 눈만 멀뚱멀뚱 하며 나가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내게 향해 있었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으니, 혹시 사령관님께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이 자식, 또 시작이구나. 독군, 상관하지 마십시오. 이놈은 보는 사람마다 붙잡고 자기만 아는 무슨무슨 '주의'를 떠들어대며 주입하려 드니. 상대할 가치가 없는 놈입니다."
후스가 만류하였으나.
차라리 마주치지 않았다면 모를까.
마오쩌둥과의 만남을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이 녀석은 요주의 인물이다.
"괜찮으니 말하세요."
마오쩌둥이 반색하며 다가왔다.
꼬랑내가 풍기자 후스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오늘날 제가 중국의 별이라 생각하는 분이 세 사람 있습니다. 그중 여기 두 분이 계십니다. 한 분은 한신 사령관님이고 다른 한 분은 루쉰 교수님입니다."
루쉰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눈을 내리깔고 있을 뿐이었다.
"마지막 한 분은 지금 파리에 가 계신 량치차오 부총통님입니다. 저는 베이징대학의 정식 학생은 아니지만 여기 도서관에서 사서 일을 하며 여러 사상가와 교류하곤 합니다. 주로 신사상을 다룬 서적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좋은 잡지가 바로 량치차오 선생님의 <해방여개조>입니다."
마오쩌둥이 낡게 해진 <해방여개조>를 쓱 내밀었다.
후스가 외쳤다.
"뭐야! 도서관에서 훔친 건가!"
"아닙니다. 제 돈으로 구입했습니다."
"네가 돈이 어딨어서?"
"베이징대학 학생들의 빨래를 대신 해주었습니다."
"흐, 자기 옷부터 빨 것이지."
후스와 마오쩌둥의 나이 차이는 고작 두살에 불과.
한 명은 20대에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데, 다른 한 명은 수업을 들을 자격도 안 돼 겨우 도강이나 하는 형편이다.
자격지심이 들 만도 하건만, 마오쩌둥은 아무렇지도 않게 또다시 죄송하다는 말을 되뇌었다.
대신 내게 말하는 그의 눈빛은 초롱초롱 빛이 났다.
"최근 <해방여개조>에서 특집으로 다룬 연성자치론을 읽고 저는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혹시 사령관께서도 읽어보셨습니까?"
"예, 읽어보았습니다."
"역시! 그렇다면 말씀을 쉽게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흔히 세상 사람들은 말하지요. 앞으로의 세계에서 다른 나라들과 겨루려면 능히 중국을 대국으로 유지하여야 한다고."
마오쩌둥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결국 서구의 제국주의 논리와 하등 다를 것이 없습니다. 하나의 중국을 강조하는 중화 민족주의는 결국 자국 내 약소 민족을 차별하고, 해외의 식민지를 탐내며, 아직 개화되지 않은 민족을 노예로 부리길 원할 뿐입니다."
청년기의 마오쩌둥은 낭만적 혁명의 로맨티스트였지.
가진 것 없는 20대에는 누구나 지금의 마오쩌둥과 같이 도덕적 정의감에 불타오르지만.
그 마음을 늙어서까지 유지하는 자는 흔치 않다.
"제가 감히 공화정부를 평가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중국의 꼴은 어떻습니까? 19개 성이 난장판이며 20명이 넘는 독군들이 난립하여 군벌을 칭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공화국이라 불리지만, 거리에 나가 물어봤을 때 대관절 공화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녀석이 또 슬슬 선을 넘는군."
후스의 중얼거림에도 마오쩌둥은 아랑곳하지 않고 목청을 높였다.
"오늘날 중국이 절망의 나락에 떨어진 연유가 뭐라고 보십니까? 이 모든 암흑은 누구의 죄입니까?"
나라는 건 아니지?
그래도 열심히 했다고.
다행히 아니었다.
"중국이 이렇게 고통을 받는 것은 바로 대국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불화의 씨앗이 대국이고자 하는 죄에서 자라난 겁니다! 세계에서 존립하려면 큰 나라여야만 한다는 망상의 죄입니다! 량치차오 선생님도 그 사실을 알고서 연성자치론을 설파하신 것이겠지만, 저는 좀 더 나아가려 합니다."
마오쩌둥이 숨을 크게 들이켰다.
"연성자치론의 중대한 문제점은 결국 각 연방을 중앙정부에 복속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경우, 또다시 내전과 혼란이 초래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감히 제안합니다. 중국은 통일을 포기하고 분열되어야 합니다!"
후스가 날카롭게 외쳤다.
"분열이라니? 뭐가 어떻게 분열한다는 건가?"
"22개 성, 3개 특별구, 2개 변경을 나누면 도합 27개 지방에서 인민자결주의를 시행할 여건이 마련됩니다. 즉, 중화민국을 27개국으로 쪼개는 겁니다. 각 소국에는 의회도, 총리도, 내각도, 입법부도, 대총통도 필요 없습니다. 오직 인민만이 있을 뿐입니다. 언어는 에스페란토어(국제 공용어를 목표로 발명된, 인공어의 일종)를 쓰며 국가 간의 경계는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합니다. 어렵겠지만, 오직 이 길만이 중국과 중국민족을 구할 수 있습니다."
중국을 너무 사랑하여.
중국을 여러 개 만들겠다는 자가 여기 있다.
이 괴리감, 어떡할 건가.
확실히 이 시기의 마오쩌둥은 하나의 중국을 강조하며 티베트를 침공하던 중년의 마오쩌둥과는 다른 사람이다.
내가 입을 열기 전에 먼저 후스가 말했다.
아니, 말했다기보다는 박장대소했다.
"풉, 푸하하하! 네놈, 방금 뭐라 했나? 중국을 27개로 만들자고? 그리하면 각 지방에서 민중이 평화롭게 어울리며 지상낙원이 펼쳐질 것 같아서?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그런 발상은 안 한다! 머저리 같은 자식아!"
지금껏 바위처럼 굳건하던 마오쩌둥이 감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콧바람을 내쉬며 후스를 노려보았다.
"교수님, 교수님이 저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말끝마다 절 무시하는 것도 참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사상을 모욕하진 마십시오. 반박하고 싶으면 최소한의 근거를 대십시오."
"근거 따위 댈 것도 없다! 네가 말하는 여러 개의 중국은 지난 중국 역사에서 무수히 되풀이되어 왔다. 춘추전국시대가 네가 말하는 지상낙원이었느냐? 그 처참한 실상에 역사가들도 파고들기 꺼리는 오호십육국 시대에 백성이 행복하였느냐? 하나의 중국이 완벽하지 않은 거야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중국을 여러 개로 쪼개자는 것은 지옥의 문을 열겠다는 거나 다름없다!"
마오쩌둥이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춘추전국이든 오호십육국이든 옛날얘기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는 무지했던 과거와는 전혀 다를 겁니다. 예컨대 최근 주목받고 있는 무정부주의와 마르크스주의 같은 경우는···."
"하! 또 나왔군! 그놈의 무슨무슨 주의! 주의! 이봐, 마오쩌둥, 네 열의는 인정해. 하지만 세상은 열정만 가지고 굴러가지 않는단 말이지.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한 열정은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멸망의 구렁텅이에 처박아넣을지 모른다고. 마르크스가 어떤 인간인지 알기나 하고, 마르크스주의를 입에 담나?"
마오쩌둥의 눈빛에 살기가 돌았다.
"당연히 압니다. 저는 신민학회의 일원으로 상당한 공부를 쌓았으며···."
"그럼 말해봐!"
"마르크스는 독일의 사상가입니다."
"누가 그깟 얘기를 하라고 했나? 놈의 사상을 설명해보란 말이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나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킬 것이고, 그에 따라 공산혁명의 물결이 전세계를 뒤덮을 거라 하였습니다."
후스가 코웃음 쳤다.
"그래서?"
"예?"
"그게 끝인가?"
"뭐가 더 필요합니까?"
"그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게 일어나는 요인이 뭐지?"
"그야 노동자들의 삶이 빈궁하니까···."
"중국은 우한 등지의 공업발달로 산업화가 진행중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민중의 절대다수는 농민이다. 마르크스가 그들을 노동자라 칭했을까? 그들이 왜 갑자기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킨단 말이냐? 무엇 때문에?"
마오쩌둥이 심술궂게 말했다.
"공산혁명은 제가 한 말이 아니라 마르크스가 한 말입니다."
"하지만 너는 마르크스주의를 말하며 그 사상의 핵심조차 제대로 설명해내지 못하고 있잖나! 그러면서 어디 마르크스주의를 입에 담는가!"
"그럼 뭘 말해야 합니까?"
"중국의 문제가 급하면 그 문제에 집중하면 될 일이야! 섣부른 이데올로기는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생산성 있는 논의를 잡아먹는다! 연성자치가 문제면 그 연방제 실현의 어려움을 두고 논의해야지, 이것저것 다른 사상을 끼워넣기 시작하면, 본질이 호도된다! 중국에 들어오기 시작한 무슨무슨 사회주의의 종류를 모두 세보았지. 57가지에 달하더군. 이러한 무분별한 사상의 범람은 오히려 중국을 옭아맬 뿐인 거야."
미국의 컬럼비아대학에서 유학한 후스와 고등교육을 받지 못하고 독학으로 공부한 마오쩌둥의 논쟁은 애초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오쩌둥은 순순히 물러날 기색이 아니었다.
"마르크스주의는 세계적인 대유행이니, 우리는 마땅히 공부하여야 합니다. 중국의 사회문제는 끝이 없습니다. 근본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1개의 문제를 해결한다 해도 다음 날 10개의 문제가 새로 생겨나고 맙니다. 중국을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는 하나의 사상을 지도적인 위치에 올려 영향력을 발휘하게 한다면 과거의 혼란을 되풀이하지 않을 겁니다."
"그게 마르크스주의라는 거냐?"
"굳이 마르크스가 아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아나키즘이든, 생디칼리슴이든, 프롤레타리아 인터내셔널리즘이든, 중요한 것은 진리가 내재한 사상을 제시하여 중국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자는 겁니다."
후스가 한숨을 쉬었다.
"후우···. 추상적 이론은 결코 실제적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아. 중국은 꼴이 우습게 되었지. 한쪽에서는 공자께 제사를 드려야 한다며 의관을 단정히 갖추는데. 다른 쪽에서는 무정부를 말하는 아나키스트들이 공자묘를 때려 부수고 있다···. 어쩌다 이리 됐단 말이냐? 만병을 치료할 수 있는 근본 해결법은 환상에 불과해. 세상사는 보기보다 끈적하고 두텁단 말이야. 어떤 문제도 일거에 쉬이 풀리는 법이 없어."
"또 모르지요. 제 사상이라면 가능할지도."
"네 사상은 또 뭐냐?"
마오쩌둥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까댈까 봐 그러냐? 그깟 게 무서워 말하지 못할 정도면, 사상이라 불릴 건덕지도 없는 허섭스레기겠군."
마오쩌둥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제 사상의 요지는 이러합니다. 세상사 모든 현상은 끊임없는 변화의 연속선상에 있으니, 중국이 파멸한다 해도 파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주의 소멸은 곧, 새 우주의 탄생을 예고하는 겁니다. 우주는 곧 저이며, 교수님이며, 우리의 생이며, 죽음이며, 현재이며, 미래이며, 과거입니다. 작은 것이 큰 것이며, 더러운 것이 깨끗한 것이며, 남자가 여자이고, 위는 아래입니다. 저는 가장 고귀한 동시에 가장 무가치한 사람인 겁니다."
중국의 발전을 50년은 지연시켰다는 마오주의가 눈앞에서 잉태되고 있다···.
기분이 이상하다.
반면 후스는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푸하하, 뭔 개똥 같은 소리냐? 자기도 이해하지 못 할 말을 잘도 떠드는구나. 너는 벌써 사상에 잡아먹혔다. 얼른 탈출하길 빈다."
마오쩌둥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한마디 했다.
"저는 단지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궁극원리를 제시하고 싶을 뿐입니다. 사상에는 진리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사상은 우리를 구원할 겁니다."
그러나 후스는 단호히 말했다.
"아니, 사상은 우리를 지배하고 괴롭힐 거다."
마오쩌둥과 후스의 논쟁.
나는 방금 20세기 후반부를 지배할 이데올로기 전쟁의 서막을 본 것 같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하는가?
진리가 우리를 구속하는가?
그것보다, 뭐가 진리인가?
진리란 것이 있기는 한가?
마오쩌둥이 냉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사령관님, 저는 후스 교수님이 아니라 사령관님께 의견을 여쭙고 싶습니다. 제 사상이 어떻습니까?"
후스의 시선이 내게로 옮아왔다.
루쉰 또한 흥미로운 눈빛으로 내 쪽을 보았다.
"저는···."
마오쩌둥이 한껏 긴장하여 내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지나치게 가까워 그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능력만 놓고 보았을 때.
마오쩌둥은 결코 모자란 자가 아니다.
그가 진정으로 능력이 부족했다면 국공내전에서 승리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말하는 게 벌써 싹수가 그렇잖아.
역사상 최악의 대량살육자, 마오쩌둥.
이 새끼를 어찌해야 돼?
"저는 군인에 불과하여 어려운 이야기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보아하니, 마오 군은 열의가 높고 학문에 열정이 많아, 장차 중국을 이롭게 할 인재라고 여겨집니다. 어떻습니까? 저와 함께 잠깐 걷는 것이? 밖에서 맑은 공기를 쐬며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군요."
일단은 곁에 두며 주시한다.
내 간택을 받은 마오쩌둥은 환희에 찬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