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리처드의 집무실.
유진과 리처드, 그리고 로베르가의 기사단장인 마커슨이 대화 중이다.
마커슨은 유진이 신뢰하는 로베르가의 가솔 중 한 명으로.
연륜에서 나오는 풍부한 경험과 뛰어난 실력으로 수년이 넘게 로베르가를 지켜온 7성급 기사였다.
유진이 입을 열었다.
“자유 기사들을 한데에 다 모아놓고 제 무술 선생을 고르면 좋겠어요. 아버지가 지원을 좀 해주세요.”
자유 기사는 대륙 전 각지를 떠돌며 세력 싸움 혹은 마수 토벌과 같은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 수임료를 받는다.
이는 용병과 비슷하지만, 정식으로 기사 칭호를 수여 받았다는 데에서 조금 달랐다.
아예 ‘격’이 다른 것이다.
“유진, 자유 기사들은 직업 특성상 성정이 거칠고 예의가 없는 인물들이 많다. 다양한 무술을 배우고 싶다면 차라리 주에 한 번씩 외부로 직접 나가는 게 어떻겠느냐?”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돈만 쥐여준다면 타 가문이나 길드에서 무술을 가르치는 일쯤이야 마수 토벌 같은 일보다 훨씬 쉬운 일일 테니까.
하지만 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는 그 거칠고 예의 없는 자유 기사들과 한데 엉켜서 배우고 싶은 게 많아요. 칼이 목에 들어왔는데, 예의를 따질 건 아니잖아요.”
“누가 네 목에 칼을 당장 들이밀기라도 할 거란 말이냐?”
“말이 그렇다고요. 그리고 자유 기사들 중에는 저마다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절기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대요. 저는 그것들을 쏙쏙 골라 배우고 싶어요.”
유진은 전생에 책으로만 보고 배우던 각양각색의 여러 무술들을 직접 보아 몸으로 익히고 싶었다.
그랬기에 굳이 자유 기사라는 다양한 무술을 다루는 이들을 초빙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거야 그렇다만.”
리처드는 자유 기사들의 출처와 신분, 범죄 이력과 같은 것들을 생각해야 했기에 골치가 아프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범죄자나 문제를 일으키던 인물도 많이 섞여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유진이 뜻밖의 말을 꺼냈다.
“그리고 추가로, 선생님들은 제가 직접 보고, 제가 고르고 싶어요.”
“……네가 직접?”
리처드는 유진의 당돌한 말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네 교육에 쓰는 돈이야 얼마든지 지원할 수 있다만, 유능한 무술 선생을 고르는 데에는 마커슨 기사단장의 눈을 믿는 게 않겠느냐?”
“음.”
옆에 있던 마커슨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공자님. 아무리 자유 기사들이라지만, 실력자들은 돈만으로 채용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심사관이 7살…… 아이라면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지원하지 않을 거예요.”
그에 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심사관이 7살인 거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자존심을 운운하며 로베르가의 가솔이 될 기회를 놓칠 안목을 가진 이라면 애초에 뽑지 않는 게 낫습니다.”
이어 그가 이번 무술 선생 선발 건으로 얻을 이득에 대해서 보충했다.
“추가로, 저희 가문은 영역을 확장하면서 가진 재력에 비해서 무력이 약한 게 약점이에요. 맞나요?”
“응? 그렇지……?”
“그렇다면 이번 자유 기사 면접을 통해서 수많은 기사들과 안면을 틀 수 있고, 선생 면접에서는 떨어지더라도 상단 호위 같은 역할을 맡길 수 있는 여지가 생기죠.”
“어…… 그렇지.”
“그게 바로 무력의 강화와 뭐가 다르겠어요?”
유진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자유 기사들은 대부분 여유가 있는 이들이고, 그들이 모였을 때 먹고 마시고 자는 모든 행동이 로베르 영지의 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셈이에요. 일거양득인 셈이에요.”
“허.”
리처드는 유진의 냉철한 판단에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으나, 뒤이어진 말에 이내 수긍했다.
‘이러니 도련님이 다섯 살밖에 안 되셔도, 가주님이나 내가 도련님이 하시는 말에 저절로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지.’
마커스는 어떻게 저토록 귀여운 유진의 얼굴 아래에 능구렁이가 있을 수 있는 건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동안 유진이 아무렇지 않게 툭툭 내뱉는 말들은 항상 사건의 핵심을 관통할 때가 많아, 리처드도 항상 큰일이 있을 때면 유진을 부르는 경우가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고.
마커스의 눈에는 저토록 똑똑한 유진이나, 어린 아들의 말에도 항상 귀를 열어두는 리처드나 두 부자 모두 대단하게 보였다.
‘그래서 내가 계속 여기에 남아 있는 거기도 하지만.’
마커스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유진은 만약 선발식이 벌어지게 된다면 뽑을 인물들을 빠르게 정리해보았다.
‘이때쯤 가장 유능한 인재라면…… 금검, 궁귀 정도인가?’
금검과 궁귀.
이들은 미래에 지닐 실력에 비해 아직 터무니없게 저평가받는 인재들.
‘금검은 쾌검의 귀재, 궁귀는 사냥의 달인이다. 이들을 전부 내 선생으로 붙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는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두 사람이 가진 무술의 합이 좋아서 같이 섞어 본다면 훨씬 더 좋은 무술이 나올 것 같단 말이지. 추가로 창술이나 권법에 능통한 자가 있다면 부족한 부분들을 채울 수 있을 테니 더 좋을 테고.’
그 사이 리처드와 마커슨도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흠…… 그래, 네 말을 들어보니 그것도 괜찮을 것 같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이 아이의 명석함은 도대체 어디까지인 걸까?
* * *
“끙.”
마커슨이 무기고에서 무기들을 꺼내와 수련장 한가운데에 쭉 나열했다.
검, 도, 창, 활, 쌍검, 도끼, 봉, 채찍…….
무가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다양한 무기를 비치해둘 이유가 없었지만.
재력이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로베르가였기에 각종 고급 무구들을 준비해둘 수 있었다.
유진은 그 무기들을 뒷짐을 지고 설렁설렁 걸으며 살펴보았다.
“돈이란 건 참 좋은 거야. 그렇지?”
“그러게요. 제가 이렇게 무기도 손수 가져다드리니 말입니다.”
“그것도 그렇네.”
“공자님, 이 많은 무기들을 굳이 다 만져보셔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마커슨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유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말했잖아. 나는 다양한 무기로 다양한 무술을 배워보고 싶다고.”
“아시겠지만 무기란 본래 경지에 이르려면 일생을 바쳐야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맛보기로 여러 무기를 만져보는 거야 이해합니다만…….”
“맛보기? 아닌데.”
“예?”
“난 모든 무기의 경지에 오를 거야.”
유진은 무술 선생들을 초빙하기 전 감을 익혀놓고 싶었다. 일종의 예습이라고나 할까.
전생에서는 검 한 자루조차도 제대로 다뤄보지 못했으나, 이번 생에서는 될 수만 있다면 모든 무기를 능히 다뤄보고 싶다는 욕심이었다.
마커슨의 표정이 묘해졌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다면 되지도 않는 소리라고 치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화자가 유진이었기에 마커슨은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공자님은 왠지 정말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사이, 유진이 무기 하나를 집어 들었다.
“창부터 해볼까? 마커슨, 내가 하는 공격에 방어해줄 수 있지? 대련이라고 생각하고.”
“……예. 물론입니다.”
검이 주 무기인 마커슨은 검을 쥐어 들고 창을 어설프게 들고 있는 유진 앞에 섰다.
“쥐는 법부터 알려드릴까요?”
“나 무시해? 마커슨.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올 마스터의 길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여쭤봤습니다.”
“말은 고마워.”
유진이 피식 웃으며 창을 이리저리 매만지다가, 창끝을 마커슨에게로 향했다.
누가 봐도 창에 미숙해 보이는 자세였다.
하나 유진은 신경 쓰지 않고 마커슨에게 한 발자국씩 다가가며 창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탁, 탁!
찔러오는 창에 마커슨은 거의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창을 걷어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양상이었다.
그런데.
탁, 탁, 탁……!
‘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커슨이 변화를 감지했다.
‘점점…… 자세가 좋아지고 있다. 찌르기가 날카로워지고 휘두르는 게 위력적으로 변하고 있어.’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도 유진이 창을 다루는 솜씨가 10분, 20분 만에 발전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처음에 미숙해 보이던 자세 역시도 급격하게 안정되면서 무게중심을 되찾았다.
마커슨이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놀라던 와중.
쉬익-!
생각지 못한 경로로 창이 찔러왔다. 마커슨의 급소 쪽으로.
마커슨이 화들짝 놀라 검을 힘껏 들어 창을 쳐냈다.
탁-!
“헉!”
“엇.”
마커슨이 숨을 크게 들이키고, 유진이 머리를 긁적였다.
“미안, 마커슨. 실수했네.”
“아, 아니…….”
유진이 땀을 스윽 닦아내며 창을 내려놓더니, 이번에는 봉을 들었다.
“좋아. 이제 봉으로 한번 해보자.”
“조, 좋습니다…….”
마커슨은 대답을 하면서도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분명, 느꼈다.
유진이 1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창에 대한 숙련도가 급격하게 올라간 것을 말이다.
이 속도라면.
‘정말, 올 마스터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방금 그 공격은 실수가 아니라 의도였어.’
마커슨은 속으로 탄성을 삼키며 방어 자세를 단단히 잡았다.
* * *
한 달 후.
한 달이란 기간 동안 전 대륙에는 무술 선생을 모집한다는 소식지가 뿌려졌고, 방방곡곡에서 이를 듣고 찾아온 무인들이 로베르가에 모였다.
그야말로 인산인해.
광고비로 많은 돈을 들였지만, 가문에 모인 이들이 숙박비며 음식이며 많은 소비를 한 덕분에 재정적인 손실은 전혀 없이 오히려 흑자를 냈다.
유진의 예상대로였다.
리처드와 릴리안이 할 말을 잃고 창밖을 쳐다보았다.
“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일 줄은 몰랐소…….”
“그러게요…….”
“우리 아들이지만, 안목이 너무 좋은 것 같지 않소? 나를 똑 닮아가지고 말이야.”
“호호, 제 말이요. 어쩌면 더한 재능이 있을지도요?”
“으하하!”
리처드가 만족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웃던 차였다.
끼이익.
유진이 방에 들어왔다.
“아버지, 어머니, 이제 면접 장소로 이동하려고요.”
리처드와 릴리안이 유진을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스윽 돌아봤다.
“내 새끼.”
“내 아들.”
“……?”
“가자,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자.”
“??”
* * *
면접 장소는 로베르 가문의 기사들과 유진이 주로 훈련을 하던 수련장이었다.
로베르 가의 본가 수련장답게 크기도 크기이지만, 어지간한 오러나 마법에는 흠도 나지 않는 것이 특징이었다.
면접을 심사하는 사람은 리처드, 릴리안, 마커슨, 그리고 유진이었다.
그리고 최종 결정권자는 당연하게도 유진이었으니.
소식지를 들고 찾아온 무인들은 저들끼리 수군거리곤 했다.
“저 애 가르치는 선생을 뽑는 거라고?”
“10살도 안 돼 보이는 애가 심사를 하겠다고?”
자신을 가르치는 선생을 직접 뽑겠다니, 그럴 거면 선생이 왜 필요하단 건가?
그러한 생각이 드니 못 미더운 마음에 의심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안내를 맡은 호위기사의 안내에 따라 무인들이 줄을 서서 차례차례 수련장 한가운데에 섰다.
면접이 시작되었다.
면접의 절차는 간단했다. 1명씩 차례차례 자신에 대한 소개와 간단한 절기를 보여주는 것.
척-
맨 처음으로 수련장에 한 남자가 섰다.
그러자 사람들이 웅성댔다.
“저 사람, 맞지? 그 사람?”
“어, 맞다! 질풍!”
남자의 이름은 율, 이명은 질풍.
누구보다도 빠른 검, 경쾌한 검으로 질풍을 만들어낸다는 데에서 유래한 이명이었다.
남부에서는 이미 유명세를 떨치는 용병이기도 했다.
유진은 모집 조건에 자유 기사뿐만이 아니라, 기사 칭호를 받지 않은 용병 출신도 지원이 가능하다는 점을 덧붙였었다.
그랬기에 율도 지원한 것 같았다.
율은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높이 들고 주위를 둘러봤다. 이러한 반응이 익숙해 보였다.
“시작하시오.”
마커슨의 지시에 율이 그 즉시 검무를 선보였다.
쉭, 쉭, 쐐액!
이명대로 경쾌한 검술과 함께 치고 빠지는 보법이 유달리 빠르고 화려했다.
찌르기!
베기!
후방 보법, 전방 보법!
숨이 찰법한데도 남자는 연신 여유로운 표정으로 검무를 계속 이어나가던 때-
유진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탈락. 다음.”
우뚝.
율이 검무를 선보이던 자세 그대로 굳었다.
“……네?”
“탈락이라고요. 다음!”
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니, 마, 말도 안 되는……! 내가 탈락이라고요? 이봐요. 나 율입니다. 질풍, 율……!”
유진이 말을 썩둑 잘랐다.
“2년 전 술집에서 여종업원을 성추행하다가 쫓겨난 적 있죠?”
“……뭐요?”
“1년 반 전에는 임금이 적다면서 고용인을 폭행한 전력도 있으시고.”
“아, 아니…… 그건.”
“불과 4개월 전에는 길거리에서 어깨가 부딪혔다는 이유로 무고한 시민을 반신불수로 만들어놓으셨고요.”
입을 뻐끔거리는 율의 앞에다 대고 유진이 내뱉었다.
“실력이라도 압도적이면 그래도 한번 고용을 고려해보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아주 한참 형편없어서 탈락입니다. 나가세요.”
“야! 네가 뭘 안다고……!”
“공자님께 감히!”
“잠시만요, 마커슨 경. 나갈 생각이 없으면 끌어내야겠네요.”
율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결국 유진이 고개를 까닥였고, 신호를 받은 로베르가의 호위기사가 곧바로 튀어 나가 율의 팔을 휘어잡았다.
“큭……! 나 율이야! 질풍의 율이라고……!”
“닥쳐라.”
호위기사는 힘도 들이지 않고 녀석을 제압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무인들도 호위기사의 무력에 기함했다.
“허, 상인 가문이라고 해서 무시할 곳이 아니구먼……!”
기사단장도 아닌, 평범해 보이던 호위기사가 저 정도 실력이니 놀랄 수밖에.
결국 율은 아등바등하며 바닥에 질질 끌려나갔다.
“…….”
“…….”
충격으로 인해 찬물을 끼얹은 듯 수련장.
이후 이어지는 면접에서도 유진의 판단은 매우 빨랐다.
“탈락. 다음.”
“탈락. 다음.”
“탈락. 다음!”
수련장에 집결한 무인들이 연달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뛰어난 실력을 뽐내는 거로 보이던 인물들이 줄줄이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으니까.
그런데 합격한 몇 안 되는 인물들은 또 그렇게 남달라 보이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열등해 보였다.
때문에 면접의 분위기가 서서히 싸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고작 7살짜리의 주관적인 판단에 베테랑 무인들이 휘둘리는 게 말이 되냐는 여론이 돌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니, 처음에 율이야 뒷조사가 됐으니 이해는 하지만, 뒤에 떨어진 사람들은 전부 깨끗한 사람들이잖아? 척 봐도 실력 출중하고.”
“내 말이! 저 꼬마 아이 말에 탈락 여부가 결정되는 게, 이게 맞는 거야?”
수련장이 웅성거림으로 가득 찬다.
이를 가만히 듣던 유진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논란이 있는 것 같으니 상황을 좀 정리해볼까요? 방금 합격한 분과 직전에 탈락한 분, 나와보세요.”
합격자인 투귀와 불합격자인 벽력이 수련장 가운데에 나와 섰다.
투귀는 덤덤했고, 벽력은 묘하게 약이 오른 표정이었다.
“유진, 뭘 어쩌려고 그러느냐……?”
리처드는 난처한 눈빛으로 유진을 쳐다보았고, 마커슨 또한 곤란한 표정이었다.
그들이 보기에도 투귀와 벽력 사이에는 격차가 있었다.
벽력이 훨씬 뛰어난 무술을 선보였던 것이다.
둘 다 권법을 필두로 한 시범을 보였는데, 벽력이 훨씬 더 강력하고 절도있는 동작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벽력이 더욱 뛰어나 보였는데도 유진은 벽력을 탈락시키고 그보다 조악해 보이는 투귀를 합격시켰다.
하나, 유진의 생각은 달랐다.
벽력은 분명 오러의 양에서는 합격자보다 월등했지만,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무인이었다.
가진바 오러를 다 활용할 줄을 모르는 것이 전부 티가 났다는 말.
또한.
벽력은 분명 대련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지만, 대련에 적합하지 않은 화려한 복장에 신경을 쓰고 향수를 뿌리고 온 점이 마이너스 요소였다.
‘반대로 투귀는 누구와 비교할 수준이 아니야. 미래에는 남부를 대표하는 권사 중의 한 명으로 대륙의 권성이 될 사람이지.’
유진은 전생의 기억으로 투귀를 알고 있었다.
“한 번 붙어보죠. 이 자가 과연 저보다 뛰어난 자인지, 아닌지, 확실하게 보여주겠단 말입니다.”
벽력이 이를 뿌득 갈며 말했다.
투귀 역시 비무를 준비했다.
유진이 피식 웃으며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곧이어, 비무가 시작되었고…….
쉭, 쉬익!
잠깐의 탐색전을 펼치더니.
쐐애액!
어딘지 모르게 투박해 보이던 움직임의 투귀가 돌연 벽력에게 쏜살같은 일격을 날렸다.
쿵!
턱을 맞은 벽력이 눈이 풀린 채 바닥에 쓰러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결국 유진의 말대로 벽력보다 투귀가 더 뛰어난 실력이었던 것이다.
“투귀, 승!”
마커슨이 투귀를 가리켰고, 투귀는 아무 말도 없이 덤덤한 표정으로 뒤를 돌았다.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투박하다는 느낌은 허상이었고, 강력하다는 게 옳은 표현이었어.’
그때.
쓰러져있던 벽력이 어기적어기적 일어나더니, 뒤돌아 자리로 돌아가고 있던 투귀에게 돌연 오러를 담은 주먹을 내질렀다.
“으아앗!”
하지만.
그 순간 마커슨이 바람처럼 사라지더니 벽력의 뒷목을 내리쳐 완전히 기절시켰다.
마커슨은 유진 앞에서는 친근한 아저씨의 이미지였지만, 무인들 앞에서는 누구보다도 단호한 모습이었다.
“헉……!”
“방금, 도대체……!”
광경을 지켜보던 이들은 입을 쩍 벌리고, 투귀 또한 잠시 놀란 상태.
릴리안과 리처드는 그 사이에 마커슨에게 성취가 있었던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하나, 정작 마커슨의 시선은 유진을 향하고 있었다.
결투를 시작하기 전에 유진이 했던 말이 아니면 자신도 반응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마커슨. 승부가 끝났다고 해도 긴장을 늦추지 말아줘. 뭔가 일이 터질 것 같아서.
마커슨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영지민들이 간혹 공자님을 두고 꼬마 현자라고 하는 걸 듣긴 했지만 정말 대단하시군.’
상대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안목, 그리고 심리까지 파악하는 통찰력.
‘이거야말로 진짜 현자 아닌가?’
재능 독식자의 회귀는 특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