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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독식자의 회귀는 특별합니다-24화 (24/151)

24화

뮬은 매달 18일, 오후 3시 즈음에 펜첼의 약초 지대에 들렀다.

날씨가 춥든 따듯하든 그때 지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약초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오러홀의 순환을 도와주는 약초, ‘게르간틴’이었다.

뮬은 허리춤에 게르간틴을 넣을 주머니를 찬 채로 바닥을 샅샅이 훑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어디선가 바스락대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었고, 한 꼬마 아이를 발견했다.

“응? 웬 애가…… 어이, 거기!”

오러나 어떠한 살기도 드러내지 않는 점으로 보아 그냥 우연히 마주친 것 같았다.

녀석이 고개를 휙 돌리더니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뮬을 응시했다.

‘뭐야……? 날 아는 것 같은 표정인데.’

그러나 이내 녀석은 경계심 섞인 표정을 띠었다.

“누구세요?”

뮬이 피식 웃으며 녀석을 안심시켰다.

“나쁜 사람 아니다. 나는 약초를 캐러 온 것뿐이야.”

“무슨 약초요?”

“말하면 아니? 하하. 너야말로 이름이 뭐니?”

“제가 먼저 물어봤어요. 아저씨.”

“뮬이라고 한다. 그리고…… 나 아저씨 같니?”

“네. 무슨 약초를 캐러 오셨는데요?”

뮬은 잠시 침울한 표정을 짓다가 어깨를 으쓱이곤 말았다.

“게르간틴이라고, 하여튼 있다. 너도 약초 캐러 온 거냐? 혼자 왔어?”

“네. 준비해야 할 게 있거든요.”

“아, 그렇군.”

뮬은 이 꼬마의 정체를 대략 유추해보았다.

‘날 모르는 걸 보니 방계 아이군. 시종을 데리고 다니지 않는 것도 그렇고. 그렇다면.’

굳이 뮬은 자신이 제이드의 첫째 아들이자 공작가의 사람이라는 걸 밝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혹여 이 방계 아이가 자신의 지위를 생각하고 괜히 친해지려 하거나 곤란한 부탁을 해올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래, 약초 캘 거 캐고 얼른 돌아가라. 여기는 일교차도 크고, 밤이 되면 위험한 벌레들이 많이 나와.”

“네.”

의외로 짧은 대답이 돌아오자 뮬은 의아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뮬이 등을 돌려 게르간틴을 꺾어 주머니에 담았다. 녀석도 군말 않고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약초를 찾았다.

‘여기에는 게르간틴이나 키에클 밖에 없는데, 어디에서 뭐가 자라는지는 알고 온 건가?’

에이, 모르겠다.

별로 신경 쓸 필요 없다고 판단한 뮬은 신경 쓰지 않고 게르간틴을 찾는 데에만 집중하던 와중이었다.

“키에클을 찾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그게 아저씨한테는 더 나을 것 같은데.”

“……응?”

“게르간틴은 아저씨에게 도움이 별로 안 될 것 같은데…….”

“내가 뭐 때문에 게르간틴을 찾는 줄 안다는 말 같구나?”

녀석은 머리를 긁적였다.

“게르간틴은 오러홀 치유나 혈액순환에 도움이 되는 약초인데, 아저씨한테 느껴지는 오러가 없는 걸 보면 전자가 그 이유겠죠.”

“너, 그걸 어떻게…….”

“근데 게르간틴에는 독이 조금 있거든요. 많이 먹으면 몸에 나빠요.”

뮬이 놀란 감정을 숨기며 말했다.

“어…… 일단 나에게 오러가 없다는 걸 어떻게 눈치챈 것인지 모르겠지만, 게르간틴은 인체에 무해하단다. 뭘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아닌데.”

뮬은 잠깐이었지만 저 아이가 굉장한 통찰력을 가졌다는 걸 눈치챘다.

게르간틴에 독이 없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었지만, 녀석이 확신에 차 하는 말에 뮬도 의심이 들던 차.

이번에는 꼬마가 물었다.

“무슨 연구라도 하시나 봐요? 학자 쪽이신가.”

“너, 정말 예리하구나.”

뮬은 묘하게 이 녀석과 이야기를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가 무슨 연구를 하는지 궁금하니?”

“연금술이나 연공법에 관심이 있긴 해요.”

“오, 그래?”

연공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뮬의 입이 자연스레 열렸다.

“아저씨가 하는 연구는, 너도 눈치챘듯이 오러홀 치유에 관한 연구란다. 나에게는 오러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말이야.”

“그러시군요.”

“그래서 이걸 치료하고 난 뒤에는 오러홀과 서클을 합치는 연공법에 대해서 연구할 건데, 우선 게르간틴으로 오러홀이 치유가 돼야…….”

“아니, 게르간틴보다 키에클이 낫다니까요.”

“응?”

“키에클이 처음에는 오러 응집력을 약하게 하는 효과를 보여서 착각할 수도 있는데, 나중에는 오히려 오러홀의 경직도를 줄여줘서 치유 효과가 나타나요.”

“……정말이냐?”

“게르간틴은 그 반대고요. 제가 말한 독이 있어서 그래요.”

“……그럴 리가.”

“오러홀과 서클을 합치는 연공법을 연구하실 때는 인과관계 설명이 어려울 텐데, 다른 논문의 예시를 많이 끌어오면 되겠네요. 워낙 독특한 주장이니까요.”

“너, 뭐…… 정말로 알고 하는 말이냐?”

녀석은 볼일이 다 끝났는지 약초를 넣던 손을 멈추고 일어섰다.

“저는 캘 거 다 캐서 이만 일어날게요.”

할 말을 잃고 녀석을 응시하던 뮬이 소리쳤다.

“자, 잠깐만. 꼬마야. 너 이름이 뭐냐?”

“이름이요?”

녀석은 발길을 옮기며 툭, 말했다.

“유진이요, 유진 로베르.”

그러고는 저벅저벅 걸어가 모습을 감추었다.

뮬은 자신이 방금 뭘 들은 건지 곱씹던 와중, 그의 집사가 뮬을 찾아왔다.

“뮬님, 이제 슬슬 들어가셔야 합니다. 해가 지고 있습니다.”

“어…… 알겠어.”

“왜 그러십니까?”

“아니야.”

집사가 알아챌 만큼의 기척도 내지 않고 사라진 방금 전 그 꼬마는 바로 유진 로베르였다.

뮬이 헛웃음을 흘렸다.

“허, 주목받을 만한 이유가 있었군.”

“예?”

“아니다. 임명식은 일주일 뒤에 하던가?”

“그렇습니다.”

사자의 시험을 통과한 아이들을 펜첼의 가솔로 인정함을 뜻하는 작은 행사를 임명식이라 한다.

뮬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이번에는 참관을 해봐야겠어.”

* * *

“그렇게 무르게 대처를 하면 놈들이 펜첼을 얕잡아 볼 것이 뻔하다. 클라크.”

“그럴 일 없습니다, 형님. 충분히 인지시켰습니다.”

시리우스는 클라크가 대처하던 방식을 지적하고 있었다.

“아예 집법당을 소집해 놈들을 반신불수로 만들어야 했어.”

“그렇게 해서 뭐가 남겠습니까? 놈들이 제 입으로 ‘펜첼은 무지막지한 곳이니 건드리면 안 된다.’라며 소문을 내고 다닐 이유도 없는데요.”

“……그걸 꼭 말로 해야 알려지는 게 아닐 텐데.”

어깨를 으쓱인 클라크가 화제를 전환했다.

“그나저나, 첫째 형님이 임명식에 온다는 거 들으셨습니까?”

“첫째 형님이? 어째서?”

가문 내의 자잘한 일처리와 보고는 클라크가 도맡아 하고, 시리우스는 중대사에만 관여하기에 몰랐던 모양.

“이유는 따로 말하진 않던데요? 답답하실 법도 하죠. 섬에만 있는 게요.”

“……그렇군.”

시리우스는 속으로 뮬의 방문에 대해 추측했다.

‘사자의 시험도 다 끝났는데, 무슨 이유로? 애들한테는 애초에 관심도 없는 양반이…… 아니면 몸이 다 나은건가? 그래서 후계 구도에 다시 참여하려고? 아니면…….’

유진 때문에?

생각지도 않던 뮬의 방문 소식에 시리우스는 괜히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다.

클라크 역시 시리우스의 속내를 알 것 같았으나, 굳이 입 밖으로 말하진 않았다.

다만 툭 찔러 보았다.

“오랜만에 큰 형님이 온다는데 표정이 왜 그리 어둡습니까? 반갑지 않습니까?”

“반갑지 않느냐고…….”

시리우스는 피식 웃었다.

“우리는 가족이기 이전에 경쟁자로 자랐다. 반가운 감정보다는 경계심이 먼저 드는 게 정상이지.”

클라크는 속으로 혀를 차며 대답했다.

“저는 비정상 하겠습니다, 그럼.”

“오늘처럼 터무니없는 이유로 항의를 받는다면 내가 나서겠다. 확실히 처리해야 뒷말이 안 나오는 법이야.”

“……알겠습니다.”

* * *

그날 밤.

시리우스는 자신의 방에 인스 형제를 불러 그들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아들들아. 며칠 전에 이 아비가 말했던 대로, 오늘은 이 약을 먹어야 한다.”

“네……!”

“좋아요!”

인스 형제는 검은색 코팅이 되어있는 유리병을 받아들며 기대에 찬 표정을 지었다.

“펜첼은 물론 교지 전체에서도 구하기 힘든 약초로 달인 영약이다.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돼.”

“네, 알겠어요!”

시리우스가 인스 형제에게 설명하기를 ‘영약’이라 말했지만.

사실 이 검은 병 안에는 영약과는 아주 딴판인 액체가 들어있었다.

뽕!

코르크 마개를 따 액체를 들이키려면 아인스와 제인스가 냄새를 맡고 순간 멈칫했다.

“아, 아버지. 그런데…… 이거, 냄새가 원래 이렇게 비린가요?”

“약초…… 치고는 약초 냄새가 하나도 안 나는 것 같은-”

시리우스가 버럭 소리쳤다.

“입 닥치고 마셔! 뚜껑 딴 순간부터 약효가 떨어지니까!”

“앗, 네!”

형제는 입안에 들어오는 매우 비리고 텁텁한 맛의 액체를 입안으로 들이부었다.

“흘리면 이 아비에게 호되게 맞을 줄 알아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게, 아주 조심스럽게.

속이 역하고, 냄새가 비려 금방이라도 토를 할 것 같았으나, 필사적으로 참아냈다.

“헉, 헉…….”

모든 액체를 마신 인스 형제는 시리우스가 준 맹물로 입을 헹구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버지, 이거, 속이 너무 안 좋아요……!”

“참아라. 참지 못할 것 같으면 차라리 죽어라.”

“아…….”

시리우스가 준 ‘영약’은 사실 단순한 영약이 아닌, ‘흑룡의 피’였다.

용의 혈액은 교지에서 섭취가 금지되어 있었다.

그 효과가 너무나 뛰어난 만큼, 부작용도 크기 때문이었다.

피를 원하게 되고, 살인에 대한 욕구가 성인이 되어감에 따라 조금씩 증폭되는 것이 바로 그 부작용.

하지만 시리우스는 그런 점은 아랑곳하지 않고 인스 형제에게 흑룡의 피를 먹였다.

‘내 아들들의 명예는 곧 나의 명예와 같다. 사자의 시험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으니, 앞으로라도 부각을 드러내야 해.’

임명식을 거쳐 ‘펜첼의 가솔’로 인정을 받고 나면 아이들은 나이가 먹고 성장함에 따라 가문에 의뢰로 들어오는 임무가 생긴다.

시리우스는 인스 형제가 나중에 그 임무를 하달받았을 때 눈부신 활약을 보이길 바랐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래야만 아버지에게나, 대외적으로나 나의 입지가 올라간다. 그 결과 나는 가주가 될 자격을 하나씩 갖추는 거지.’

“우욱……!”

구토를 하려는 인스형제의 입을 시리우스가 손으로 틀어막았다.

“죽고 싶지 않으면 삼켜라, 아들들아.”

* * *

유진은 약방에 도착하여 가방에 들어있는 게르간틴을 꺼내놨다.

그의 앞에는 마스크와 모자, 그리고 외눈 안경을 얼굴을 가릴 대로 가린 약제사가 서 있다.

“안녕하십니까, 약제사 선생님. 이걸로 영약과 독약을 각각 한 병씩 만들고 싶은데요.”

“알겠습니다. 기한은 언제까지면 되게슴미까?”

“글쎄요? 약제사 양반의 어색한 표준말이 자연스러워질 때쯤까지?”

“예……?”

눈이 길게 찢어진 약제사는 당황한 기색을 띠었다.

“되게슴미까, 가 아니라, 되겠습니까, 에요. 약제사 선생님.”

“아, 그……렇군요.”

“차라리 되겠소? 라고 하시죠. 왜 자꾸 어색하게 그러십니까.”

약제사는 이미 자신이 궁귀라는 사실을 들켰다는 걸 인정해야 했지만, 끝까지 시치미를 떼었다.

“아, 아닌데요?”

“뭐가 아니에요, 뭐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아니란 말이오! 아, 아니, 아니라고요!”

“궁귀.”

유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궁귀에게 물었다.

“언제 따라왔어?”

“…….”

“연기 그만하고, 그냥 말해. 너는 배우 적성은 아닌 것 같으니까.”

“……나, 다시 돌아가야 하오?”

유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냥 있어. 지금 돌아가면 더 이상하게 생각되니까. 어차피 약초 정제도 잘하잖아. 앞으로 종종 약초 가져올 테니 일만 잘 해주면 나도 가만히 있을게.”

펜첼의 약제방에는 영약과 독약, 포션 제작에 효과적인 시설이 많다. 착즙부터 시작해서 여러 속성을 추가하고 빼는 연금술 장치, 돈으로 살 수 없는 희귀한 도구들까지.

모두 북부에서 가장 큰 세력과 부를 이루고 있는 펜첼가이기에 갖출 수 있는 것들이었다.

“역시 유진 공자, 내 믿고 있었소. 내가 더 도울 건 없소?”

“도울 거는, 들키지 마. 표준말을 쓸 거면 아예 처음부터 표준말을 쓰고, 아니면 원래 그 엄숙한 말투로 해.”

“알게슴미다.”

“표준말은 때려치우는 게 낫겠다.”

“……알겠소이다.”

겉으로는 궁귀를 타박하는 모습이었지만, 내심 유진은 금검과 궁귀, 투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이 양반들은 끝까지 데리고 가고 싶네.’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충성심도 보이고 있으니 함께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앞으로 만들 영약에 의심 살만한 것들도 많은데, 신경 쓰지 않고 궁귀에게 맡기면 되겠어. 예를 들면 뮬 삼촌의 치료 약이라던가.’

고개를 끄덕인 유진이 약제방을 나서려던 참이었다.

“아, 궁귀.”

“예?”

“투귀는 어디에 있어?”

“……주방에 있소이다.”

유진이 헛웃음을 흘리면서 펜첼 가문에서도 궁귀와 투귀가 같이 한다는 소식에 마음 한편이 조금 든든해졌다.

재능 독식자의 회귀는 특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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