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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독식자의 회귀는 특별합니다-27화 (27/151)

27화

다음날.

콱, 콱!

1층 연무장에는 목검끼리 부딪히며 울리는 충격음이 연신 울렸다.

훈련 교관인 에막스가 오기 전 자율 훈련을 하는 것. 각자 짝을 지어 간단한 대련을 펼치고 있었다.

“크하하! 어떠냐, 이 형님이 펼치는 펜첼의 검술이!”

“주둥이를 그냥 확.”

제인스와 아인스가 투닥거리는 소리.

자율 훈련은 아주 가끔 있는 일이었기에 저마다 들뜬 목소리를 내며 자율 대련을 만끽했다.

그리고 유진의 상대는 엘도라였다.

쉬익!

엘도라가 곧은 눈빛을 한 채 유진에게 쇄도했다.

‘오, 빠른데.’

그녀는 예측하기 어려운 궤도를 타고 유진에게 파고들었다.

엘도라는 임명식 이후부터 안 그래도 없던 말수에서 더욱 말수가 없어지더니, 오로지 훈련에만 매진했다.

그 덕분일까, 유진도 엘도라의 발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타악-!

단번에 엘도라를 튕겨낸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았는데, 근력이 좀 부족하다.”

“잇……!”

엘도라가 목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내며 다시 한번 쇄도하려던 순간.

“모두 멈춰라. 신났군, 아주.”

에막스가 기척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와 어느새 교단 위에 서 있었다.

“넵……!”

아이들 역시도 에막스의 소리 없는 등장에 헛숨을 삼켰고, 유진도 마찬가지였다.

‘하, 나는 아직 한참 멀었군.’

에막스의 수준이 얼마나 아득히 높으면 기척도 알아채지 못한 걸까, 하는 생각이었다.

물론 그마저도 유진은 수년 안에 따라잡을 자신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에막스가 수련생들의 머릿수를 세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8명이군, 결국 안 나왔다 이거지.”

“……?”

“라울러 펜첼은 훈련 중 다리가 부러져 오늘 훈련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한다. 약해 빠진 녀석.”

유진도 라울러가 오지 않아 의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에막스의 말에 의문이 더욱 커졌다.

‘다리가 부러졌다고? 어젯밤에 따로 연무장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혹시…….’

일등 집사는 고깝다는 표정으로 말을 덧붙였다.

“그러니 오늘은 그 녀석이 하지 못하는 훈련만큼 더 얹어서 훈련을 실시하겠다.”

에막스는 라울러가 어쩌다가 다친 건지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은 채 넘어갔다.

그러자 아이들은 에막스의 눈치를 살피며 저마다 추측들을 한 가지씩 내놨다.

“무슨 훈련을 혼자 어떻게 했길래 다리가 부러져? 왜 다친 줄 알아?”

“몰라, 근데 다리 골절은 좀 오래가지 않나?”

“그러니까.”

라울러의 부상 소식에 아이들이 동요했다.

훈련이 더 힘들어질 거란 말에도 녀석들은 라울러의 건강을 더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심지어는 남에게 원체 관심이 없던 엘도라조차도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입을 열었다.

“에막스 교관님, 라울러가 다친 정확한 이유가 뭔가요?”

“그건 뭐하러 물어보는 거지?”

“혹여 따로 특별 훈련을 받은 거라면, 저도 받고 싶어서요.”

“……그런 건 아니다. 정확한 이유는 알려줄 수 없으니 소란 떨지 말아라.”

유진은 엘도라를 비롯한 아이들의 반응을 보며 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겉으로 걱정하는 티를 내지 않았지만, 6개월이란 훈련 기간 동안 아이들은 저들끼리 결속력과 신뢰가 쌓인 상태였다.

‘심지어는 엘도라까지 신경을 쓰는 정도니까 말이야.’

유진은 엘도라가 에막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게끔 똑똑하게 돌려 물었다는 걸 잘 알았다.

물론 에막스가 라울러에 관한 이야기를 아끼긴 했지만.

방금 장면을 통해 이번 기수의 아이들이 에막스가 그렇게 강조하는 합 일로 뭉쳐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라울러는 에막스의 눈에 거슬릴지는 몰라도, 자신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해내고 있단 뜻이었다.

다만, 유진의 마음이 조금 불편해지기도 했다.

‘상급반이 한 짓이겠지. 어제 자기네들끼리 머리 맞대고 히죽거리던 것부터 수상하더라니.’

그래도 펜첼의 정식 수련생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기에 설마 했는데, 가면 갈수록 가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 위치로.”

에막스의 불호령에 수련생들은 제 자리로 가는 사이.

‘라울러를 한번 보러 가긴 해야겠네.’

펜첼을 완전한 아군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슬슬 직접 움직일 차례가 되었다.

* * *

훈련이 끝난 뒤 노을이 지는 시간.

라울러의 병실에서는 시끄러운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같은 기수의 수련생들이 라울러의 병문안을 들르는 와중에 나는 대화 소리였다.

그리고 지금은, 궁귀가 라울러의 병실에 와 있었다.

“이걸 드셔야 한단 말이오. 그래야 빨리 낫는다니까.”

“아니 이거 냄새가 너무 이상하잖아요. 아침에 먹었던 거랑 완전 달라요.”

“생체 주기에 맞춰서 아침과 저녁 약이 다른 건 종종 있는 일이오! 도대체 몇 번을 설명해야 알겠소이까?”

“말투는 자꾸 왔다 갔다 하고, 약제사님 좀 이상해요……!”

궁귀는 이를 뿌득 갈았다.

“내 이토록 신경 써서 약을 달여왔건만, 자꾸 이렇게 말을 안 들으면 회복만 느려질 것이오. 본인 손해라고.”

“왜 특별히 저에게만 신경을 쓰시는지 모르겠어요.”

“그거야……! 어휴…… 답답하구먼, 정말!”

궁귀는 라울러가 유진과 가깝게 지내는 사이이기에 특별한 대우를 해주는 것이었는데, 라울러가 그 속내를 몰라주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직접 밝히지는 못하니 궁귀는 말만 빙빙 돌렸다.

“아니! 이건 우리 유진 공자도 인정한……!”

궁귀는 순간 터져 나온 유진의 이름에 급히 제 입을 틀어막았다.

“우리 유진 공자? 유진이랑 되게 친한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그, 그거야. 수련생들끼리는 자주 봤으니 그런 것이다.”

“……정말이에요?”

“그래!”

그때, 유진이 등장했다.

“둘이 투닥거리는 소리 밖에까지 다 들려요. 시끄러워 죽겠네.”

“유진 공자, 오랜만이군.”

“뭘 오랜만이에요, 어제도 봤는데.”

“으응……?”

궁귀는 자신과 유진의 사이를 숨기기 위해 한 말이었는데, 유진이 받아주지 않았다.

“이거 봐, 유진. 약제사 선생님이 자꾸 너랑 친한 척하더니, 이제는 거짓말도 치네? 뭐야?”

“이따 말해줄게. 기다려봐.”

“아니…… 뭘 이따…… 하, 알겠어.”

유진은 싱긋 웃는 표정이었지만, 속으로는 약간 놀라고 있었다.

‘내가 많이 변했구나. 전생에는 사람이란 건 나의 성공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누군가의 병문안을 올 줄이야.’

병문안이란 건 평생 간 적이 없었으니 스스로 놀라운 감정이 든 것이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함께 성장하는 것.

어쩌면 그게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닐까 싶었다.

“그나저나 넌 왜 이렇게 늦게 왔냐? 다른 애들 다 왔다 갔는데.”

라울러가 투덜거리며 묻자 유진이 툭, 말했다.

“다른 애들보다 훈련이 늦게 끝났어. 그래도 오긴 왔잖아.”

그 말에 라울러와 궁귀가 동시에 탄식했다.

“지긋지긋한 수련광이셔, 아주.”

“지긋지긋한 수련광이시오, 아주.”

“?”

“?”

라울러나 궁귀나, 유진에 대한 인식이 똑같은 모양이었다.

하하하!

서로 같은 말을 동시에 내뱉은 게 우스웠던지 둘은 손바닥을 마주치며 킬킬거렸다.

방금 라울러는 서운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동시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유진이란 녀석은 늘 고맙고 존경스러운 존재였으니까.

그런 녀석이 자신을 찾아와 살피니 괜히 코끝이 찡해지는 느낌이었다.

“1분 지났다. 이제 말 해줘.”

“뭘?”

“약제사 선생님이 왜 자꾸 나에게 이 말도 안 되게 쓴 걸 먹이려 하고, 너랑 친한 척을 하는지 말이야.”

유진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라울러에게 일부 사실만을 털어놓았다.

“약제사 선생님은, 사실 내 무술 스승님 중 한 명이었어.”

“엥? 스승님?”

“그래. 펜첼에 약제사 자리가 비어서 어머니가 추천을 해주신 거고.”

“오…… 그런 거였구나.”

라울러는 사뭇 달라진 표정으로 궁귀를 쳐다봤다.

“그럼 나를 굳이 이렇게 챙겨주시는 이유가……?”

“내가 말 좀 해뒀어. 너 아프니까 제일 좋은 약으로 달여달라고.”

“아……! 그럼 나 이 약 믿고 마셔도 되는 건가?”

궁귀가 역정을 낸다.

“애초에 못 믿을 이유가 없잖소! 펜첼의 약제사가 수련생을 해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거 참.”

“알겠으니까 분 좀 삭이세요. 죄송합니다, 선생님.”

라울러가 히죽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후우, 어찌 됐건 간에, 빨리 먹고 나으란 말이오. 라울러 군.”

“방금은 죄송했어요, 흐흐.”

“내 제자의 친구가 다치는 것도 속상하기는 마찬가지라오. 이만 돌아가겠소.”

염려가 섞인 말과는 다르게 사뭇 덤덤한 표정으로 발길을 옮기는 궁귀에 라울러가 작은 미소를 지었다.

“네 스승님, 처음에는 인상도 더럽…… 별로고, 해서 안 좋게 봤는데, 지금 보니 멋지다. 은근 속이 깊으셔.”

“방금까지 약제사 선생님 이상하다고 할 땐 언제고.”

“근데 이 약은 써도 너무 쓰단 말이지…….”

“그냥 먹기나 해. 그나저나 다리 좀 봐봐.”

유진이 부목과 붕대로 꽁꽁 사인 라울러의 다리를 툭툭 쳤다.

“야, 야! 아파!”

“어쩌다 이렇게 된 건데?”

“……그냥, 계단에서…… 음, 발을 헛디뎌서.”

유진은 라울러가 쉽게 말해주지 않을 걸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응.”

“붕대 풀어본다, 상태 좀 보게.”

“아니……! 봐서 뭐 하게!”

라울러가 만류했지만 유진은 무시하고 붕대를 풀었다.

그리고 상처가 난 정강이 쪽을 한동안 들여다보았다.

“왜, 뭐, 쳐다보면 더 빨리 낫기라도 해? 그냥 계단에서 넘어진 거라니까.”

“알겠고, 누가 그랬어?”

“뭐, 뭘?”

“계속 시치미 전략이야? 그래. 그렇게 해. 가만 보자.”

유진은 정강이가 패인 깊이, 위치, 그 밖에 라울러가 왼쪽으로 몸을 굽힐 때 불편해하는 점을 보고 추측했다.

“상처 깊이를 보면 카인은 아니고, 위치가 다리라면 덩치 큰 그 자식도 아니고, 간을 노린 공격을 먼저 했다…… 그리고 오른손잡이다. 그러면.”

“아, 아니…….”

“그 얍삽하게 생긴 놈이냐? 주이크.”

“미친…… 말도 안 되는. 너 그날 거기에 있었어?”

고작 상처 하나 보고 누가 공격을 했는지 유추해내는 유진의 관찰력에 라울러는 기함을 토했다.

“자꾸 말 길게 만들지 말고 그냥 지금 확실하게 말해.”

거듭된 유진의 추궁에 라울러는 할 수 없이 이실직고했다.

“그래, 주이크, 그 선배가 나 이렇게 만들었다. 너는 그냥 넘어가 주면 덧나냐? 쪽팔려서 말 안 했더니.”

“쪽팔린 건 맞고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게 쪽팔린 거라고 하는 거야. 형이 됐든, 내가 됐든, 에막스 교관이 됐든, 억울하게 당했으면 갚아줘야 할 거 아니야?”

“그렇긴 한데, 내가 진 건 진 거잖아. 펜첼은 강자존이고, 패배는 곧 오답이잖아. 그 형들이 정답이고 말야.”

유진은 가볍게 혀를 찼다.

“정답이고 뭐고 모르겠고, 형 혼자 연무장에 있을 때 와서 이렇게 한 거지?”

“……응.”

“지도 대련이랍시고 말이야.”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

“상급반이 명목으로 내세울 게 그런 것밖에 더 있어? 하여튼, 알겠어.”

유진은 라울러의 다리를 다독이며 일어섰다.

“아악! 아프다고!”

“나간다.”

“뭐 어떻게 할 건데! 복수라도 해줄거냐!?”

병실 문 앞까지 다다른 유진은 등을 보인 채 말했다.

“그건 상황 봐서, 그리고.”

“응?”

“잘 붙었어, 형. 창으로 그 정도 싸운 거면 진짜 잘한 거야.”

유진은 그 말만을 남기고 밖으로 나섰다.

탁.

라울러는 닫힌 병실 문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코끝을 찡그렸다.

“나 사춘기인가…… 왜 이렇게 감동이냐.”

* * *

다음 날 연무장 2층.

상급반의 수련생들이 잡담을 나누며 자율 훈련을 하던 와중이었다.

저벅, 저벅.

계단에서부터 누군가가 느린 발걸음으로 올라오더니, 낮은 목소리로 누군가를 찾았다.

“주이크 선배님 어디 계십니까.”

“……?”

“……?”

상급반의 수련생들의 대화가 멎었다.

“……너 뭐냐?”

“주이크? 주이크는 왜?”

유진이 싱긋 웃었다.

“어디 있냐고요.”

“하하, 미친놈이 왔네. 야, 주이크! 후배님이 너 찾는다!”

상급반의 수련생들은 이 상황이 재밌다는 듯 유진을 보며 조롱 섞인 웃음을 짓는다.

그들의 리더인 카인은 조용히 맨 뒤쪽에서 팔짱을 끼고 상황을 지켜보는 중.

어젯밤 라울러에게 시비를 걸었던 그 3명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날 찾아? 누가?”

“빨리 가봐. 무섭게 생긴 분이셔.”

“뭔…….”

유진은 발견한 주이크는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뭔데? 윗분이 부르시는 거냐?”

아직도 상황 판단이 제대로 안 된 모양.

유진이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긁적였다.

“인과응보라는 말 알죠, 선배님.”

그제야 유진이 이곳에 온 목적이 뭔지 알아챈 주이크가 광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친구 복수라도 하러 온 거냐? 하, 진짜 세상 말세네. 안 그러냐?”

“그러니까, 히야…….”

“내가 너 이름 알아. 유진 로베르, 맞지?”

주이크의 물음에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선배님.”

주이크의 표정이 일순 무섭도록 크게 일그러졌다.

“맞구나. 처맞고 싶어서 온 거라면 환영이다. 여기가 어디라고 상인 가문 출신 따위가 기어들어 와……?”

옆에 서 있던 녀석이 거들었다.

“네 어머니 배경 믿고 나대는 거면, 잘못 짚었다. 우리 뒤에는 다 망해가는 주작 기사단은 안 두기로 했거든.”

유진이 되물었다.

“그럼 뭐가 있는데요?”

“알 거 없고, 너도 똑같이 만들어줄까? 네 친구 옆에 나란히 누울래?”

뭔가 믿고 있는 구석이 확실하게 있긴 한 모양이다.

하지만, 유진은 상급반의 도발에 정중히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한 명, 두 명, 세 명…….”

“……뭐 하는 거야?”

갑자기 머릿수를 세는 유진의 행동에 녀석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무 명가량이네요. 대가리가 좀 많네. 그때 시험은 쉬웠나?”

“이 미친놈이-”

유진이 툭, 내뱉었다.

“다 덤비세요, 그냥.”

재능 독식자의 회귀는 특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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