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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독식자의 회귀는 특별합니다-37화 (37/151)

37화

분명 유진의 검은 부러졌고, 승리를 확신한 배신자가 유진에게 마지막 일격을 먹이던 와중이었는데.

지금 광경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크아아악!”

배신자가 자신의 얼굴을 부여잡고 괴성을 질러댔다.

유진의 왼손에서 나온 파이어 볼에 얼굴에 심각한 타격을 받은 것이었다.

“어, 어떻게…… 마법을……?”

줄리아가 물안개 마법진에서 벗어나 배신자를 향해 공격을 쏘아내려다가 그대로 멈춰 섰다.

유진은 지난 하루 이틀간 줄리아가 파이어 볼을 쓰는 모습을 계속 상기하며 마법적 감각을 계속 되뇌었다.

정확히는 파이어 볼 하나만을 펼치기 위한 이미지 트레이닝을 묵광을 통해 끊임없이 해왔던 것이다.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말았어야지.”

“아아악! 내 눈! 내……!”

배신자는 유진이 검을 잃자 방심을 한 나머지 상징 방어를 해제해버렸고. 공격에 모든 오러를 쏟아부은 결과 유진의 마법이 통했던 것.

3성급 정도의 수준이었던 유진의 파이어 볼은 맨몸으로 맞았다가는 온몸이 녹아내릴 정도의 세기였으니.

지독한 열기에 배신자는 눈도 뜨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머리카락은 물론, 얼굴 전체가 녹아 흘러 흉측한 몰골이었다.

“살, 려, 어억…… 크억, 켁! 컥!”

뜨거운 열기가 놈의 성대마저 상하게 했는지 목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며 바닥을 긴다.

아마도 살려 달라는 말 같았다.

유진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배신자가 떨어트린 대검을 주워들었다.

“살려달라고?”

“살……! 러주어어……!”

유진이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말했다.

“남은 죽여도 되는데, 너는 죽으면 안 되나?”

그 말이 끝남과 함께.

서걱!

배신자의 머리가 바닥을 뒹굴었다.

그리고 유진은 지칠 대로 지친 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줄리아가 놀란 표정으로 다급하게 유진에게 뛰어왔다.

“유진! 괜찮아……?”

“안 괜찮다, 인마…….”

유진은 줄리아의 도움을 받아 벽에 등을 기대 호흡을 골랐다.

줄리아는 이 모든 상황을 전부 이해하려 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걸 알았다.

다만, 옆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이 남자아이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떻게 마법을 썼는지, 어떻게 그렇게 강한 파이어 볼을 쓸 수 있었는지.

그리고 자신을 구해준 것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할 새도 없었다.

“유진, 저, 저기……! 문이…….”

유진은 줄리아의 검지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뭔가 변화가 생기고 있어……! 피가 저기, 저 문으로 흘러 들어가고…….”

“……시체가 녹아 내려가고 있네.”

둘은 주변 광경들을 둘러보다가 다시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배신자의 시체가 바닥에 완전히 녹아 없어지자, 검정색을 띠던 문은 이제 완전한 붉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유진은 잠시 고민했다.

스으으!

문을 장식하던 그림은 기괴함이 한층 심각해져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오소소 돋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심상치 않다. 일단, 일단은 물러나는 게 좋을 것 같아.’

글람푸스탄에 온 이상 암살자와 배신자를 처리하고 더불어 반지의 비밀까지 풀어보려고 했지만, 지금으로서는 한발 물러서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단 나가-”

유진이 몸을 일으키던 순간.

드드드-

열릴 것 같지 않던 문이 열리고 무저갱 같은 어둠이 석실을 잔뜩 뒤덮었다.

마치, 오감을 차단해버린다는 흑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모든 감각이 허공에 뜬 것처럼 아득해졌다.

유진이 위험을 느끼고 몸을 움직여보려 발악을 하던 와중이었다.

-……했구나.

유진의 머릿속에 어떠한 남자의 굵은 목소리가 희미하게 울려 퍼졌다.

유진이 그 음성의 출처를 찾으려 정신을 집중하자, 음성의 의미가 확실히 전달되었다.

-드디어 제물이 도착했구나.

아마도 제물이라 함은 유진을 말하는 것 같았다.

유진은 혼란스러움에 휩싸여 필사적으로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하지만 그럴수록 늪으로 더욱 깊게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검은 물 아래로 깊이 잠수를 하는 것 같은 느낌.

그와 동시에 유진의 머릿속에 난생처음 보는 장면이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완전기억을 가지고 있는 유진이었기에, 지금 그려지는 이 기억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걸 확신했다.

한 어린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이어 위엄있는 빨간 망토를 두른 거대한 사내가 나타나더니, 어린아이의 앞에 섰다.

그 커다란 사내는 어린아이에게 무언가 열심히 설명을 한다.

이내 사내가 사라지고, 어린아이는 키가 조금 더 커서 소년이 되었다.

소년은 두 손에 푸른색의 마력을 띄웠다. 그리고 제 또래로 보이는 아이들을 피를 빨아 미라로 만들어버렸다.

손에 피를 한가득 묻힌 소년은 더욱 성숙해져 청년이 되었다.

여전히 손에 피가 가득 묻은 그가 어느샌가 나타난 황금빛 왕좌에 털썩, 앉았다.

눈빛이 퀭하고, 어딘가에 홀려있는 듯한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바다처럼 깊고 심연처럼 어두웠다. 끔찍한 수준의 마력이 느껴졌다.

그리고 시간이 빠르게 흐르더니, 왕좌에 앉아있던 인물은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으로 녹아 없어졌다.

유진은 왕좌에 아무렇게나 앉아있던 저 인물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고대제국의 왕, 폭군이라 불리던 사나이다.’

전생에서 유진은 어떠한 책도 가리지 않았다. 그 덕에 수많은 역사서들을 탐독하게 되었고, 그중 하나가 고대제국의 왕에 관한 이야기와 화폭, 그림이었다.

유진은 역사서에 묘사되어 있던 인물과 저 인물이 동일인물이라는 걸 알아챘다.

‘폭군은 무한한 마력을 얻기 위해 사람들의 피와 영혼을 먹었다고 했어.’

유진이 방금 본 장면들을 차근차근히 해석했다.

아비로부터 제왕학을 배우고.

막내로 태어난 덕분에 형제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악을 해야 했으며.

결국 형제들을 모두 죽이고 왕좌의 자리에 오른다.

대륙에 알려진 권능 중 가장 위험하다는 7대 권능 중 하나, ‘탐욕’을 통해 형제들을 모두 죽이고 왕이 된 것이다.

하지만 폭군은 그 과정에서 인간불신이 뿌리 깊게 박혀 충신마저도 믿지 못했다.

잠에 들어야 하는 밤에는 암살자가 언제 올지 몰라 제대로 자지도 못했다.

무한한 마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생은 사무치게 기구하고 불행했다.

결국, 되려 그 무한한 마력에 잡아먹힌 뒤 광증을 앓다가 완전히 미쳐버리곤 삶을 마감했다.

‘폭군의 인생은 참으로 비극적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런 장면이 내 머릿속을 파고드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메우던 때였다.

화아악!

새카만 어둠으로 가득 차 있던 눈앞에 핀으로 내리꽂는 듯한 조명이 켜졌다.

그리고 그 조명 아래에는, 방금 보았던 황금빛 왕좌에 앉은 젊은 폭군이 있었다.

-나의 추종자인가…….

폭군의 짙은 목소리가 어둠을 타고 유진의 귓가에 다다랐다.

관리를 잘했다면 괜찮았을 법한 얼굴이었지만, 폭군은 여전히 피로에 절어 야윈 모습이었다.

유진이 날카로운 눈동자로 폭군을 응시했다.

“나는 네 추종자가 아니다.”

유진이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폭군이 비죽 웃었다.

-뭐, 네가 누구든 상관은 없다…… 나는 불멸의 존재가 되어 세상 밖으로 향할 것이니, 네놈의 육체를 가져가야겠다.

폭군이 돌연 검디검은 연기로 변모하더니, 유진에게로 스멀스멀 다가왔다.

유진은 지금의 상황을 침착하게 판단했다.

‘검은 문이 피와 시체를 먹더니 붉은 문이 되었다. 어떠한 이유에선지 갑작스럽게 열린 문에서는 폭군이 자리 잡고 있었고, 지금은 나의 몸을 빼앗으려 한다.’

이와 같은 상황은 난생처음 겪는다.

하지만.

유진은 그렇다고 해서 제 몸을 저 일면식도 없었던 폭군에게 순순히 바칠 생각은 한 점도 없었다.

유진이 아득해진 감각 아래로 숨어 느껴지지 않는 자신의 육체를 다시 형상화하여 재건했다.

심장과 오러홀을 구현해 낸다.

묵광을 되살려 오러를 이용한다면, 이 상황을 뚫고 바깥으로 나갈 수 있을지 몰랐다.

긴 시간 동안 이어진 전투로 인해 지나치게 뜨겁게 달궈졌던 아톰이 다시 한번 억지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마치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이 까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에도 유진은 해내야 했고, 실제로 해냈다.

우우웅!

유진의 몸에 오러막이 둘린다. 어떠한 위협이 있더라도 신체만큼은 내주지 않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스으윽……!

폭군의 검은 연기는 어느샌가 유진의 발목을 타고 올라와 그의 몸을 옥죄는 중이었다.

이어.

콰드득, 콰드득……!

유진의 몸에 둘렸던 오러막은 속절없이 부서지고, 발은 묶여버렸다.

유진은 이를 악물었다.

묵광 2성의 효과, 정신 방벽.

이것이 있었기에 유진이 정신을 집중해 그나마 약간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하나, 지금은 펜첼의 배신자와 아슬아슬한 혈투를 벌일 때에도 겪지 못한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크윽…….”

유진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용암에 몸을 넣은 듯 뜨겁고, 동시에 한기가 뼛속까지 파고드는 듯한 느낌이 든다.

피가 죄다 빠져나가는 듯했다.

동시에 반지를 낀 왼손에서 끔찍한 통증이 일었다. 검은 연기로 변한 폭군이 반지를 통해 기어들어 가고 있었다.

아마도 이 반지를 매개체로 해서 폭군이 유진의 몸으로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일종의 동기화를 하려는 것 같다.

유진의 의식이 흐려져 마지막 빛 한 줄기만이 남았을 때쯤.

‘그걸…… 꺼내야 해……!’

본능적인 목소리가 전기가 통한 듯 머릿속을 관통했다.

광마의 기억이자, 명경지수의 마음.

그것이라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크으으으……!”

목소리 같지도 않은 신음이 성대를 잔뜩 긁으며 새어 나온다.

마음속부터 드리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물리쳐 내고, 반드시 살아서 나가겠다는 강인한 의지만이 유진의 몸과 마음에 들어찬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온기가 뜨겁고도 차가운 감각을 중화시킨다.

검은 연기가 유진의 몸을 완전히 감싸 안았다.

모든 게 다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랬기에 유진의 몸 안으로 들어간 폭군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유진의 몸을 집어삼키려던 참이었다.

번쩍-!

유진의 몸에서 진한 보랏빛이 일순 뿜어져 나오더니, 검은 연기를 순식간에 갈가리 찢어버렸다.

-이걸……! 네가 어떻게……?

폭군은 이 미지의 기운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유진의 몸 안에서 기겁했다.

“후우우…….”

자신의 몸을 다시 되찾은 유진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웠다.

검은 연기는 찢어 발겨졌으나, 폭군의 사념체는 아직 유진의 몸속과 반지에 남아있는 것 같았다.

-빌어먹을……! 이런 경우가……!

유진이 누구도 듣지 못할 만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묵광, 3성이다.”

아톰에 고리가 하나 더 추가되어 3개가 되었다는 걸 알아챘다. 묵광의 성취가 3성으로 오른 것이다.

그에 따라 유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기운의 격이 완전히 달라졌다.

-크윽……!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낀 폭군은 재빨리 출입구인 반지를 통해 유진의 몸 밖으로 빠져나오려 시도했다.

반지가 발광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빛 역시도 보랏빛의 기운이었다.

하지만 유진의 기운에 비하면 보랏빛의 세기나 농도가 보잘것없이 미약했다.

유진은 초점이 흐릿한 눈빛을 한 채 폭군을 향해 말했다.

“네 몸…….”

-더는 아무 짓도 하지 마라! 네 몸을 찢어버릴 수도 있으니!

“맛있어 보이는데.”

유진이 미약한 보랏빛을 발하는 반지를 보며 군침을 흘렸다.

-아무 짓도 하지 말라 하였다……!

그때.

유진은 무언가 거슬리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렸다.

“무슨…… 소리가 들리는데.”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그 음성의 주인은…….

「뒷방 늙은이가 아직까지 살아있었군. 놈을 먹어 치워버린다면 그의 능력까지도 흡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광마, 메피스토였다.

-누굴 먹어치운다는 것이냐! 감히 나의 권능을 흉내 내겠다고? 그게 가능할 것 같으냐?

「흠, 글쎄. 이 꼬마라면 가능할 지도 모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분노한 폭군, 여유로운 광마.

두 명 다 세상을 질타했던 무소불위의 제왕들이지만 그 사이에서도 격은 나뉘는 법이었다.

유진의 머릿속에서 광마의 기운과 폭군의 기운이 부딪히자 유진은 온몸에서 강렬한 통증을 느꼈다.

“후, 시끄럽네.”

유진은 반지를 향해 지체 없이 보랏빛 기운을 쏟아냈다.

방금까지만 해도 폭군이 부리던 권능, ‘탐욕’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었다.

-마, 말도……! 크아아아아악!

한꺼번에 치달은 보랏빛 기운은 반지를 완전히 옭아맸다.

마치 파리지옥에 갇힌 파리처럼, 폭군은 반지라는 덫 안에서 격렬하게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헛된 수고였다.

유진의 보랏빛 기운은 폭군의 머리카락 한 톨도 남기지 않고 흡수해버렸다.

폭군은 유진의 정신을 장악하려 동기화하면서 기억과 능력까지 들고 왔다.

그런데 그것들까지도 흡수해버렸으니.

광마가 작게 웃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나의 명경지수를 가져온 것에다가, 폭군의 탐욕까지 가로채다니, 강도가 따로 없군. 하하!」

광마의 광소와 함께 폭군과 광마의 존재감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혼돈을 불러올 수 있던 것도, 저 두 절대자의 사이에서 미치지 않고 살아남은 이유도 ‘묵광’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제야 유진은 묵광의 힘을 억지로 가라앉혔고, 간신히 제정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아…….”

슈우욱!

모든 식사를 마친 유진은 비틀거리며 정신세계 밖으로 빠져나왔다.

너무 많은 일을 겪어서 정신이 없었다.

고대제국의 폭군 앞에서 살아남고 그의 능력을 훔쳐 왔다.

그리고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한 광마가 자신과 함께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많은 생각이 오갔지만 우선, 몸을 가눠야 했다.

줄리아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제 너무나 지쳐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광마, 폭군 그리고 보랏빛 기운까지……. 드디어 실마리를 잡았어…….’

“단장님! 저기에 있습니다.”

유진은 현무 단원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혼절해 버렸다.

재능 독식자의 회귀는 특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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