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유진이 눈을 떴을 때는, 어떠한 하얗고 밝은 빛이 내리쬐는 무한한 공간 안이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는.
“아따, 또 보는구마잉?”
15살의 제이드가 서 있었다.
그는 여전히 옷을 아무렇게나 풀어헤쳤지만, 전보다는 조금 정돈된 인상이었다.
사자의 정령부터 제이드의 어린 시절까지.
갑작스레 만난 두 인물에 유진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 가주님. 여긴 어딥니까? 저는 분명 방금까지 펜첼의 남관에 있었는데……?”
“걱정 말어. 할애비가 엄한데 데려와서 몹쓸 짓 할까 봐? 그냥 심상 세계여, 심상 세계.”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렇다면 역시, 시험입니까?”
“크하하! 눈치 빠른 거 하나는 맘에 든다니께!”
제이드는 구수한 사투리를 구사하다가 돌연 검을 뽑았다.
스릉!
유진이 흠칫했다.
“이번에도 가주님과 싸워야 합니까? 뭘 증명해야 합니까?”
“그냥 재미지, 뭘 증명씩이나 할라 그랴?”
“가주님이라면 그저 재미를 위해서 제 시간을 뺏지는 않으실 텐데요.”
“네가 지금 15살이고, 지금 나도 15살이니까, 아마도 내 성격 같아서는 너하고 나하고 같은 나이였다면 누가 이겼을까, 하는 궁금함이 있었던 모양인디?”
유진이 고개를 끄덕이다, 제이드를 직시했다.
“궁금함을 풀어드리는 대신, 제게도 주어지는 게 있겠군요. 가주님이라면 적절한 보상을 생각해놓으셨으리라 믿습니다.”
“거기, 네놈 검에 문자 새겨졌잖냐! 흑룡의 힘을 일부 끌어와서 쓸 수 있을 것이여.”
유진이 히죽 웃었다.
“심상 세계는 정신을 차리면 깨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디?”
“보상이 부족합니다. 뭔가를 더 주셔야 제가 어릴 적의 가주님과 싸울 맘이 생길 것 같습니다.”
“어어? 이것이 시방 지금 나한테 딜을 하는 것이여?”
“그냥 자살하고 심상 세계에서 빠져나갈까요?”
“요물이여, 아주 그냥!”
하하하!
광소를 터뜨리던 제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로베르 핏줄은 로베르구만. 뼛속까지 사업가여. 좋다! 그러면…… 뭘 더 줄까나?”
고민하던 제이드가 손가락을 튕겼다.
“옳지. 너 여기 들어올 때 정령 만났제? 사자의 정령 말이여.”
“네, 맞습니다.”
제이드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소리쳤다.
“체첸! 이리 와봐.”
아무 대답이 없자 제이드가 한 마디를 더했다.
“체첸, 1초 늦을 때마다 딱밤 10대씩 늘어나는 것이여.”
그 말을 하자마자 ‘체첸’이라 불린 사자의 정령이 제이드의 앞으로 황급히 뛰어왔다.
“부르셨습니까, 가주님.”
“너 왜 못 들은 척했어.”
“큼…… 그, 그게…….”
저번에는 토끼로 변신해 있더니, 이번에는 새끼 사자의 모습을 한 사자의 정령이 머리를 긁적였다.
“너 쟤 싫어하지? 그때도 보니까 싸이코니, 뭐니, 그러더만.”
“……가주님, 저 자식 이상한 녀석입니다. 같은 놈을 5번도 넘게 죽이는 변태라고요. 절대로 농간에 놀아나시면 안 됩니다.”
“내가 믿고 미는 놈인데 걱정도 많다! 요 녀석아.”
딱!
“악!”
제이드가 체첸에게 딱밤을 갈기고는 유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네가 날 이기면, 인마를 너한테 주겠다. 워땨?”
“가, 가주님!”
“가만히 있어! 딱밤 9대 남았응께.”
“크으윽…….”
유진이 되물었다.
“사자의 정령이 절 위해 뭘 할 수 있습니까?”
“저것이 생긴 거는 그냥 새끼 사자여서 뭘 할 수 있나 해도, 기똥차. 뭐냐면은…….”
이어진 제이드의 말을 정리하면 간단했다.
“저주와 환각이 주 역할이군요.”
“그려, 너 몇 년 전에 시험 볼 때도 이것 때문에 고생했을 거 아니여. 얘가 그런 거 잘혀.”
유진의 입장에서 패가 하나 더 생긴다는 것이니 나쁜 제안이 아니었다.
“좋습니다.”
“나를 이기기 전까지는 여기서 평생, 늙어 뒤질 때까지 나랑 싸우기만 하는 거여. 못 이기면 못 나간다잉.”
“……예.”
‘제이드의 보상 방식은 상인지 벌인지 모르겠다니까.’
제이드 아니랄까 봐 정말 무시무시한 조건이었으나, 유진은 내색하지 않고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흐흐, 담백한 게 참 맘에 들어. 좋다, 그러면.”
“붙어보죠.”
팍!
말이 끝나자마자 제이드가 유진에게로 쏜살같이 달려들었고, 유진은 그 자리에서 쿠란의 검을 치켜듦과 동시에.
화르륵!
화룡검을 소환했다.
양손에 검을 하나씩 쥐어 든 유진이 크라우드식 이도류의 기본자세를 취했다.
“어어? 이거 봐라?”
카아앙!
순식간에 유진의 지척에 다다른 제이드의 검과 유진의 검이 맞닿았다.
“시방 지금 내 앞에서 이도류를 쓰것다고?”
“그런, 셈이죠!”
“불타는 검이라, 간지 좀 나는디?”
한쪽에는 화염이 활활 타오르는 화룡검.
한쪽에는 묵색으로 빛나는 쿠란의 검.
두 검이 유진의 양손에서 이도류로써 펼쳐지며 화려한 곡선을 그렸다.
본래 검을 하나만 쓰는 상대라면 한 쪽에서만 올 공격이 양쪽, 그리고 위와 아래에서 동시에 치달으니.
“요망한 것이!”
깡! 까가강!
제아무리 제이드라고 해도 이도류 앞에서는 손을 바삐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유진이 일방적으로 제이드를 몰아쳤다.
“불은 성가시고! 그 시꺼먼 검은 존내게 무겁구마잉?!”
제이드는 계속해서 날아오는 검의 세례를 감당하며 비죽 웃었다.
‘하, 역시 미래의 내가 인정할 만한 놈이구만?’
그 생각은 체첸도 마찬가지였는지, 유진을 응원하고 있었다.
“유진 로베르! 차라리 네가 이겨라! 그래야 나도 이 생활 청산이다!”
“체첸! 너 이거 끝나고 보자잉!”
“유, 유진 이겨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순순히 져줄 생각은 한 톨도 없다.
화악!
순간 오러를 내뿜어 유진을 멈칫하게 만든 뒤.
“너는 나를 곤란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니께.”
오러로 일렁이는 오러 대검을 뽑아냈다.
그런데 이 오러 대검은 그냥 평범한 오러 대검이 아니었다.
“순도가 높아 보이는군요.”
“긴말 말어! 이 몸이 제이드인디.”
절삭력이 아주 높아 웬만한 나무 정도는 종이 잘리듯이 썰리는 고순도 오러 대검이었다.
유진은 약간의 긴장을 머금은 표정이었다.
‘제이드의 이도류는 대륙에서도 대적할 수 있는 상대가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수준일까.’
제이드는 시간을 끌지 않았다.
화아악!
유진에게 달려든 제이드가 검무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유진도 알고 있는 궤도로 정석적인 공격이 들어왔다.
‘음? 의외로 할만한데.’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제이드의 공격은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검이 발을 노리는가 했더니 허리로 솟아 올라오고, 머리로 내려치는가 싶더니 양팔이 위험에 처했다.
‘예측이…… 안돼!’
과연 제이드란 것일까.
“어질어질하냐잉?”
제이드는 푸하하 웃으며 검무의 속도를 높였다.
그에 따라 유진의 몸에 상처가 쌓여갔다.
팔과 다리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목젖을 노리고 들어온 검격에 아찔한 감각을 여러 번 겪었다.
유진은 이를 깨물었다.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다!’
화악!
유진이 오러를 한번 크게 내뿜어 제이드를 물려냈다.
“힘들군요.”
“나도 힘들게 좀 만들어 주지 그랴.”
그리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눈빛을 한번 교환한 두 사람이 동시에 두 검으로 바닥을 거세게 내리쳤다.
꽈앙!
한 치의 흔들림도 없던 순백의 공간이 아래위로 요동치기 시작하더니.
드드드드드!
엄청난 진동이 유진과 제이드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유진이 백호 단원을 잡아낼 때 사용했던 기술, 충격파였다.
유진의 충격파는 화염과 더불어 어둡고 음침한 묵색의 기운을 머금었고.
제이드의 충격파는 순수하기 짝이 없는 하얀 오러가 폭풍을 만들어 유진에게 치달았다.
두 충격파는 기어이 서로에게 달려들어 부딪히더니, 커다란 충격음이 울렸다.
“워매……!”
“크윽……!”
거센 돌풍이 두 사람을 덮쳤고, 서로의 옷이 갈가리 찢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사자의 정령도 갈기가 너덜너덜해졌다.
“후우, 화끈하네잉.”
제이드가 투덜거리는 사이 충격파는 서로 상쇄되었다.
그러던 와중, 유진이 갑자기 광소를 터뜨렸다.
“하하, 하하하!”
“……?”
제이드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유진을 쳐다봤다.
“뭐가 그리 즐겁댜? 같이 웃어, 시방.”
유진은 방금 전 제이드의 충격파를 보고는 알아챘다.
‘애초에 이도류를 쓰는 자세부터 서적에 나와 있던 묘사랑 다르더니, 미묘한 차이가 있었구나.’
크라우드식 이도류를 기록해 놓은 서적에서는 곧장 찌르라 표현한 곳에서, 제이드는 한 발을 뒤로 뺐다가 찌르고.
단순히 올려쳐 베라는 묘사에서는 대각선으로 올려 베는 동작을 취했다.
디테일이 달랐다는 이야기.
깨달음을 얻었다는 기쁨에 웃음을 터뜨린 것이었다.
유진이 가만히 멈춰있자 그가 한계에 몰린 상태인 걸로 착각한 제이드가 가볍게 혀를 찼다.
“왜 웃고 난리여? 허세 부릴 타입은 아닐 것 같은디?”
유진이 돌연.
쿠란의 검을 제이드에게 쏘아 던졌다.
쐐애액!
제이드는 순간 흠칫하며 쿠란의 검을 간신히 튕겨내고는 미간을 좁혔다.
“……뭐하는 것이여? 검을 버리면 뭘 어떻게 싸우겠다고?”
유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양손을 뻗더니 오러를 응집하여 창 하나를 만들어내었다.
“창사는 익숙지 않으시죠?”
“웃기는 놈이네, 저거? 무기를 바꿔버린다고?”
분위기를 환기한 유진은 더 이상 이도류로 제이드를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쐐애액!
유진의 창이 제이드의 두 검 사이로 뻗어져 나간다.
타악-!
제이드가 기겁하며 창을 올려 쳐냈으나, 유진은 예상했단 듯 창을 빙글 돌려 아래에서 위로 올려쳤다.
마치 그림과 같은 흐름, 제이드는 그 공격까지는 피해낼 수 없었다.
퍽!
복부에 타격을 허용한 제이드가 또렷한 안광을 내뿜었다.
“장난치면 안 되겠는디.”
물론 유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각으로 빠지며 몸을 노리는 공격을 계속해서 깔아두다가.
몸을 노리는 척 속임 동작을 한번 준 뒤 제이드의 머리를 노린다.
“크으……! 뒤질 뻔했구먼!”
사자의 정령이 쫑알대는 소리가 들린다.
“셋업 잘 깔아둬! 하체도 잘 노려줘야 가주님이 속는다!”
“조용히 안혀! 체첸!”
그때였다.
“방심은 금물일 텐데요!”
잠시 한눈을 판 제이드에게 유진은 라울러에게 전수해 준 팔천무극창 중 다섯 번째 비기를 꺼냈다.
일섬광(一閃光)이었다.
결국.
푸욱!
제이드가 일섬광을 막지 못하고 명치를 꿰뚫렸다.
깡그랑.
제이드는 두 검을 떨구고 무릎을 꿇었다.
“아따…… 갑자기 창을 꺼낼 생각은…… 어째 했댜…….”
“저는 이기기 위해서 무엇이든 씁니다.”
“크흐흐…… 일단…… 15살의 나보단 네놈이 강한 것도 확인 했구마잉…….”
그 말을 끝으로, 제이드는 쓰러져 환한 빛의 입자로 흩어져 사라졌다.
“후우우…….”
유진이 심호흡을 내뱉는데, 옆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우와아아!”
체첸이 아주 기뻐하고 있었다.
“가주님께는 죄송하지만! 통쾌하긴 하구나! 하하!”
유진이 체첸에게 뚜벅뚜벅 걸어갔다.
“당신 이름이 체첸이었군. 가주님과 그렇게 친한 사이인 줄은 몰랐는데.”
체첸이 잠시 멈칫하더니, 짐짓 근엄한 자세를 취했다.
“그, 그래. 가주님이 없으시니 일단은 밖으로 돌아가라. 다음에 또 보자꾸나.”
유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 소리야? 어디 가게?”
“……음?”
“나랑 같이 가야지. 체첸 정령님아. 앞으로 나를 위해 뼈 빠지게 일하실 거라 믿을게.”
“뼈, 뼈 빠지게…….”
히죽.
유진이 웃으며 아기 사자의 목덜미를 잡아 올렸다.
‘하아, 내 인생은 왜 이런 건가……!’
언젠가 이 망할 펜첼에서 도망치고 말겠다!
* * *
심상 세계에서 제이드와의 싸움이 끝난 뒤, 며칠이 지났다.
백호와의 대련을 통해 임무 선택권이라는 보상을 얻은 유진 일행은 통쾌한 마음으로 1주를 보냈다.
임무 선택권은 다음 임무 때 유진의 뜻대로 자유롭게 사용할 예정이었다.
또한 유진이 뮬에게 직접 물어 알아본바, 백호의 연무장에서 오망성의 궤도를 따라 벽을 찍으면 상대편의 오러를 흡수하는 함정이 있었다.
발란트는 유진의 눈썰미에 다시 한번 혀를 내둘렀다.
‘그래서 벽 쪽에 붙어서 블라셰를 상대한 거군. 유진…… 눈에 무슨 장치라도 달아놓은 건가?’
그렇게 글람푸스탄으로 가는 임무 날짜가 되었다.
“모두 일렬로 서라!”
발란트를 필두로 유진과 동기들이 이동 관문 앞에 섰다.
임무에 나간 지 2주가 지났음에도 임무를 나간 감스탄 일행은 돌아오지 않았기에 발란트가 선두에 서서 지휘를 했다.
각자 무기와 주작 기사단의 정복을 입은 상태.
그중 유진의 무기가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겼다.
“무슨…… 이거, 무슨 기운이지……?”
라울러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둠조차도 집어삼킬 듯 진한 묵색을 빛내는 검신. 은색으로 빛나는 다른 기사들의 검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발란트도, 유진의 동기들 모두도 그 검의 정체가 궁금했지만 왠지 모를 오싹한 기분에 그저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참다못한 라울러가 유진에게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유진, 이 검은 어디서 만든 거야? 그런…… 무시무시한, 검은 처음 보는데……?”
“이거? 그냥, 별거 아닌데.”
검 속에서 사자의 정령이 무어라 소리치는 것 같은 느낌이었으나, 무시했다.
유진은 대답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 고개를 돌려 엘도라를 쳐다봤다.
엘도라도 마침 좀 생색을 내고 싶었는지 헛기침을 하며 대신 대답했다.
“우리 아버지가 현무에 스카웃 제의를 한다고 유진한테 선물한 거야.”
“무슨 검인데?”
“펜첼 4대 가주님, 쿠란 경의 검.”
“……뭐?”
라울러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엘도라와 유진을 번갈아 쳐다봤다.
“스카웃 제의 선물로 전대 가주님이 사용하던 명검을 선물로 받는다고?”
“주시니까 나도 받았지.”
“……갑자기 내 검이 왜 이렇게 불쌍해 보이냐.”
라울러는 허리춤의 검과 등의 창까지 무기를 두 개나 들고 있는 주제에 유진의 무기가 부럽다며 탄식했다.
하나, 발란트는 의외로 다른 태도를 보였다.
“큼, 아티팩트나 무기에 너무 연연하지 마라. 뛰어난 무기를 갖춘다면 도움이 되는 건 맞지만, 결국 그 주인이 가장 중요한 법이니까.”
“오오…… 맞는 말씀이에요. 명언이십니다, 선배님.”
“흠흠, 하여간, 본인의 무기를 아끼도록.”
이는 유진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라기보다는 다른 신입들의 의지를 북돋으려는 생각인 것 같았다.
이미 유진의 저력을 몇 번씩이나 마주했던 발란트가 유진을 깎아내릴 생각은 있을 수도 없고 말이다.
라울러도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발란트가 손뼉을 쳤다.
짝!
“오늘은 내가 책임자로 나서는 첫 임무이자 너희에게도 첫 임무이다. 임무의 내용은 알다시피 글람푸스탄 개척마을에서 보관하고 있는 유물의 운송과 잔류 마수들의 처치, 그리고 건물의 유지 보수이다.”
“예.”
“아무리 어렵지 않은 임무라고는 하지만,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날이니 실수하지 않고 완벽하게 마무리하자.”
유진은 발란트의 눈빛에서 진한 책임감을 보았다.
선배로서, 그리고 임무의 책임자로서 일을 처리하겠다는 사명감이 엿보인 것이다.
일주일 전 일어났던 백호와의 대련에서도 그랬듯이, 발란트는 유진 일행의 안위와 미래를 책임지려 노력하는 것 같았다.
‘다시 봐도 괜찮은 녀석이야. 어쩌면 나중에까지 데리고 가도 괜찮을 수도.’
유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제 손목에 있는 화룡검을 내려다보았다.
기사단에 들어오기 전, 새벽에 홀로 연무장에 들어와 쿠란의 검을 꺼내 기운을 시험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기운이 너무 드세고 난폭하여 통제가 어려웠기에 검의 통제를 포기하고 오로지 날붙이로써만 사용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서 화룡검을 얻은 이후, 쿠란의 검을 다시 시험해 보았다.
힘으로 이 사납고 음습한 기운을 제압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그건 실패했다. 오히려 검에서 나오는 살기가 더욱 심해진 것이다.
‘쿠란의 검을 통제하는 건 나중에 다시 시도해 봐야겠어. 화룡검과는 다른 방법인 게 분명해.’
더군다나 사자의 정령도 이 속에 깃들어 있으니, 통제하는 방법에 힌트를 얻을 수도 있었다.
글람푸스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유진은 기대감을 가진 채 발란트의 뒤를 따라 이동 관문으로 발을 뻗었다.
재능 독식자의 회귀는 특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