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유진 일행은 글람푸스탄에 도착하여 개척 마을로 이동했다.
지난번과 동일하게 유진이 날벌레들을 퇴치하는 약을 가져온 덕분에 일행은 손쉽게 마을로 진입했다.
그런데 그 벌레 퇴치약을 꺼내는 와중에 소란이 일었다.
탓.
유진이 빈손으로 팔찌를 잡아당겼을 뿐인데, 티백 형태로 보이는 퇴치약이 우수수 딸려오는 것이었다.
마치 마술, 아니, 마법 같았다.
“뭐, 뭐야, 또.”
“어? 분명히 아무것도 없었는데? 어디서 이게 나왔어?”
벌레 퇴치약이 평범해 보이는 금팔찌에서 꺼내지니 신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팔찌 속 아공간에 넣어놓았던 벌레 퇴치약을 꺼낸 것이었다.
“너, 뭐 요즘 마술 연습하는 거야?”
“그런 건 아니고.”
유진은 그냥 조용히 숨어서 꺼낼 걸 그랬나 싶었다.
“뭔데…… 그러나?”
아티팩트에 연연하지 말라던 발란트 조차도 유진의 팔찌에 담긴 기능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백호와의 싸움에서 크라우드식 이도류를 선보였을 때도 궁금하다는 눈치를 계속 보이더니.
‘이 양반은 괜찮은 사람이긴 한데, 쿨하지는 못하군. 궁금하면 궁금하다고 그냥 말을 하지.’
물론 알려줄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유진이 대충 얼버무리자 녀석들은 입맛을 다시며 궁금증을 거둬야만 했다.
유진이 팔찌 형태의 화룡검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2주간 화룡검을 사용해본 결과, 굉장히 뛰어난 검이다. 화속성을 머금고 있고, 강한 오러를 불어넣는다면 일시적으로 화룡을 소환할 수 있어.’
사실상 아공간 기능은 부가적인 것이고, 화룡의 힘을 꺼낼 수 있다는 게 중요한 점이었다.
물론 백호와의 대련 때는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었기에 사용하지 않았다.
‘아주 위급한 상황이 되면 화룡검을 꺼내야 할지도 모르겠군.’
완전기억을 하나씩 되짚으며 알아본바, 어머니가 말한 요정족, ‘아이칸’은 대단히 뛰어난 마도구 제작자로서.
전설적 아티팩트들을 아주 소량만 만들어 내는 극소수의 고위 기사들만이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자가 만든 아티팩트 중 하나가 화룡검이니, 그 효과는 굳이 시험해 보지 않아도 되는 수준이었다.
탓.
그렇게 조금 더 걸어 도착한 곳은.
“저기군.”
발란트가 저기 너머에 보이는 옹벽을 가리켰다.
옹벽은 꽤나 견고하게 되어있었지만, 군데군데에 마수의 공격을 받은 흔적이 남아있었다.
출입문으로 보이는 철문 안쪽에는 두 눈만 보일 수 있는 만큼의 작은 홈이 파여 있었는데, 그 틈으로 호위병들이 눈을 빼꼼 내밀었다.
“신분을 밝히시오.”
“펜첼에서 온 주작 기사단입니다. 여기 펜첼의 증명서요.”
호위병은 꽤 직업정신이 투철한지 증명서를 꼼꼼히 훑어보고는 문을 천천히 열었다.
끼이이익…….
철문을 열자, 한 서글서글한 인상의 남자가 유진 일행을 맞이했다.
“오셨구만! 반갑소이다!”
개척마을의 촌장이었다.
촌장은 4, 50대로 보이는 탄탄한 체구의 중년 남성이었고, 펜첼에서 왔다는 유진 일행을 굉장히 친절하게 맞이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촌장은 꽤나 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긴 소매의 옷을 입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촌장님.”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았소, 이리로 오시지요.”
유진은 촌장의 뒤를 따라가며 마을 안에서 보이는 마을의 경치를 둘러보았다.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옹기종기 모여있는 가구들이 마을의 특색을 나타냈다.
건물들은 모두 시멘트와 돌과 같은 단단한 재질로 외벽을 구성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피부가 새카맣게 탄 영지민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초리로 유진 일행을 훑어보았다.
“엄마, 저 사람들 누구야?”
“착한 사람들이야. 고마운 사람들. 우리를 도와줄 거란다.”
“와아……!”
그중에는 한 어린아이가 제 어머니에게 유진 일행의 정체를 묻기도 했다.
“모두 인사드리게나, 우리를 도우러 와주신 펜첼의 기사분들일세.”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주작 기사단의 명예를 알고 있다는 듯, 영지민들이 극진한 예를 갖추며 인사를 올렸다.
그들 대부분의 복장은 매우 고급스러운 소재의 의복이었으며, 평소에 음식도 배불리 먹는지 살이 올라있었다.
또한 그들은 대부분 매우 밝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희한하군. 펜첼에서 지원을 받아 생활하는 입장일 텐데, 그런 것 치고는 너무 부유해 보여.’
묘하게 앞뒤가 안 맞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느낌은 느낌일 뿐이니, 유진은 그들에게서 눈을 떼려다가 다시 영지민 중 한 여자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모두 밝게 웃고 있음에도 저 여자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땅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촌장과 눈을 마주칠까 두려워하는 것 같은 느낌.
‘그냥 기분 탓인가? 아니면 직감인가.’
유진은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이 상황을 의심했다.
혹여 또 다른 사람이 저런 표정과 시선 처리를 하고 있다면, 뭔가 이상한 게 맞았다.
그리고 발견했다.
한 남자도 무엇이 그리 무서운지 고개를 살짝 숙이고 눈동자를 떨고 있었다.
이는 유진이 지난 몇 년간 기감을 발달시켰기에 알아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유진은 이때 촌장을 조금 다르게 보아야 했다.
저 선한 미소 뒤에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
“자, 이쪽으로 들어오시오. 나의 집이자 우리 마을 사람들이 특별히 건축한 예술 작품이기도 하오. 차나 한잔 하고 시작합시다.”
촌장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유진 일행을 안으로 들였다.
유진은 겉으로는 티 나지 않게 입구에서부터 집안을 샅샅이 관찰했다.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기분 탓이 아니야.’
특히 황금돼지 장식과 비싼 약초로 보이는 풀들이 부엌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유진이 자꾸 주위를 살피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발란트가 유진에게 조용히 물었다.
“왜 그러나? 찾는 거라도 있나?”
“아뇨, 신기해서요, 그냥.”
유진이 적당히 둘러대고는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을 눈에 하나씩 담았다.
어차피 완전기억인 유진은 보기만 해도 머릿속에 각 장면들이 남으니, 스쳐놓기만 해도 나중에 정보들을 조합할 수 있을 터였다.
거실 의자에 모여앉은 유진 일행은 촌장이 접대한 차를 마시며 그의 설명을 들었다.
“2년 전 글람푸스탄에서 있었던 소동 이후 글람푸스탄에 있던 함정이나 저주가 대거 사라져 현재는 100여 가구 정도가 이곳으로 이주했고 앞으로도 커질 예정이오.”
발란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다른 마을에서도 촌장직을 맡아오셨습니까? 마을 주민들이 촌장님을 바라보는 눈이 굉장히 따듯하던데요.”
“하하, 전에는 이 옆옆 마을에서 촌장을 했었소. 그때는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랬나 싶어. 그 가난한 상황에서 마을 사람들을 먹이겠다고 사냥을 나섰으니까.”
촌장이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유진은 촌장이 워낙 인상이 좋아 지금까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헷갈리는군. 방금 봤던 건 그냥 착각인가?’
촌장은 어깨를 으쓱하며 설명을 이었다.
“바쁘신 분들이니 얼른 이야기를 마쳐야겠지. 유물의 출처는 복잡하지 않소. 이곳에 마을을 지으면서 하나둘씩 유물이 나와 그것들을 모두 모아두었고, 이미 펜첼에서도 두어 차례 다녀가 마지막 남은 물건들이오.”
“귀중해 보이는 것이 없었습니까?”
발란트가 묻자 촌장이 히죽 웃었다.
“내 눈에는 그러했소만, 전문가들이 보면 또 다를지 모르지.”
이 개척 마을은 엄연히 따지면 펜첼의 땅이었다. 펜첼의 현무 기사단을 시작으로 모든 좀비들과 좋지 못한 사건들이 처리된 셈이니 말이다.
그랬기에 이곳에서 유물 따위가 나오면 펜첼에 가져다주는 게 맞는 일이었다.
거기까지는 의심할 만한 구석이 없었다.
그러나 유진은 유물 이야기가 아닌 다른 얘기를 했다.
“개척된 지 얼마 안 된 마을치고 시설이 상당히 좋네요. 마을 주민들도 풍족해 보이고요.”
그에 촌장이 넉살 좋게 웃었다.
“전부다 펜첼에서 지원이 나왔기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펜첼이 한 일입니다.”
“펜첼의 지원이 그렇게 큰가요? 그 정도는 안 될 것 같은데?”
촌장이 멈칫하다 자연스레 말을 이었다.
“아, 그거 말고도 주민들이 열심히 생활한 점도 있지요. 약초를 캐다가 옆 마을에 팔고, 일손을 보태고 하면서 받은 보상도 있소이다.”
“음, 알겠습니다.”
입구에서부터 보이는 황금돼지 장식.
가난했을 적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보인 지긋지긋하다는 표정.
그리고 지나치게 부유해 보이는 촌장과 마을 사람들의 모습까지.
‘돈 욕심이 많은 인물이야. 원래 많았지만 지금까지 성취할 수가 없었고, 최근에 이 개척 마을에 들어서면서 돈을 많이 지원받은 모양인데.’
이때, 촌장은 유진의 눈치를 보듯 억울하게 이야기했다.
“저희 개척마을에 주민들이 열심히 일한 덕분이외다. 기사님들.”
억울함을 비치는 촌장의 말에 발란트가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닙니다. 유진, 왜 촌장님을 추궁하려 하나? 안 그래도 힘드신 분인데. 촌장님,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촌장은 유진의 추궁으로 무섭다는 듯이 눈을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에 유진은 피식 웃고는 발란트의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발란트 선배님, 나중에 저랑 이야기 좀 하시죠.”
“음……? 그래.”
이 양반은 감이 좀 없네.
‘촌장은 조금 더 지켜봐야겠어.’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유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다른 일행도 유진의 질문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지만, 유진은 신경 쓰지 않았다.
“촌장님, 이제 유물이 모아둔 곳으로 가죠.”
발란트의 말에 촌장은 마을의 중앙으로 향했다.
유물의 안전을 위해서인지 마을 중앙에 유물을 모아두는 창고가 있었다.
그렇게 유진을 비롯한 주작 기사단 앞에 거대한 크기의 창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 * *
촌장은 입구까지만 안내하고 유진 일행이 유물을 확인하러 창고에 들어갔다.
대부분이 오래된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이가 나간 접시나, 항아리 등이었다.
“야…… 이거, 진짜 뭐가 없군.”
“책 같은 거는 쓸모가 있어 보여.”
처음에는 발란트와 라울러가 서책에라도 무언가 있는지 열심히 살폈지만.
“이거 고대 제국어 같은데. 어으, 눈 아파.”
“뭔…… 이게 글자야, 지렁이 기어간 흔적이야……?”
난해한 고대 제국어를 해석할 능력이 없었기에 그냥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미 두어 번이나 유물 호송이 이루어진 만큼 별다른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유물이야 호송만 하면 그만이니까, 뭐 더 볼 건 없겠어.”
유진을 제외한 다른 인원들은 흥미를 잃었는지 다들 유물들을 무성의하게 지나쳤다.
하지만 유진은 이곳에 들어온 이후 무언가에 자꾸 신경을 쓰고 있었다.
우우웅.
유진의 손에서 진동하는 폭군의 반지였다.
이미 반지의 기능은 알고 있었다.
‘반지는 지독한 원념이나 폭군과 관계된 것이 있으면 반응한다. 여기에도 그러한 물건이 있겠군.’
그중에서도 특히 무언가에 가까워질수록 반지의 진동이 크게 울렸다.
“유진! 뭐해?”
“이제 나와도 될 것 같다. 별다른 게 없어.”
“잠시만요.”
재능 독식자의 회귀는 특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