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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독식자의 회귀는 특별합니다-63화 (63/151)

63화

각자 임무가 마쳐졌기에, 주작 기사단 일행은 휴식 겸 늦게까지 잠을 잤다.

하지만 두 명은 그러지 않았다.

유진과 라울러였다.

아침 일찍부터 그들은 개척 마을의 현자가 있다는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발란트 또한 외출에 관련해서, 마을 내부에만 머물고 있으면 크게 상관없다는 얘기를 했기에 문제 될 건 없었다.

다만.

“형! 형! 오늘도 놀아요? 아직 가는 거 아니죠?”

“형아! 오늘은 술래잡기해요!”

라울러가 마을을 지나가자 어제 같이 놀던 아이들이 창밖의 라울러를 보고는 집 밖으로 뛰쳐나와 매달렸다.

“형아가 오후에 놀아줄게, 오후에, 알겠지?”

“이잉…….”

유진은 라울러의 엄청난 친화력에 혀를 내둘렀다.

가만 보면 할 줄 아는 게 많단 말이지.

탓.

그렇게 유진과 라울러가 현자가 산다는 집에 도착했다.

촌장인 아들의 커다란 집에 비해서 상당히 허름해 보이는 외관이었다.

“집이 좀 낡았네.”

라울러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유진도 뭔가 이상했다.

‘그러고 보니, 모자가 같이 살지도 않고, 제집은 호화롭게 꾸며놓았으면서 어머니의 집은 이 상태고…… 사이가 좋지 않은 건가?’

일단 의문은 접어둔 채 문을 두들겨보았다.

똑똑똑.

“안녕하십니까, 펜첼에서 온 주작 기사단 단원입니다!”

라울러가 목소리를 조금 높여 말했다. 은근히 주작 기사단이라는 걸 강조한다. 자랑스러운 모양.

하지만 정작 집 안쪽에서는 반응이 없었다.

“이상하다…… 여기 맞는데. 다시 불러볼게.”

“잠시만.”

유진이 뒤를 돌아보니, 저쪽에서 등이 약간 굽은 노인이 어깨춤에 바구니를 들쳐메고 걸어오고 있었다.

“마가렛 여사님 되십니까?”

마가렛은 까맣게 탄 피부에 주름이 많고 고집이 세 보이는 인상이었다.

“으응? 누군데 남의 집 앞에서 설치고 계슈?”

“저희는 펜첼의 주작 기사단에서 나온 단원들입니다. 밖에 옹벽 수리하고, 정찰하고, 애들 놀아주는 거 보셨죠? 그거 다 저희가 한 겁니다.”

“펜첼? 아, 왠지 밖이 통 시끄럽더라니, 주작이면 대단한 양반을 아뉴? 근데 여기엔 무슨 일이슈?”

“여쭤볼 게 있어 왔습니다.”

“용건이 있구먼.”

“하하, 네, 어이구, 그거 무겁지 않으세요? 들어드릴게요.”

경계심을 표하던 그녀는 라울러의 설명에 어느 정도 표정을 풀었다.

과연 라울러였다.

라울러에게 바구니를 건넨 마가렛은 손을 탁탁 튕겼다.

“여기, 말 잘하고 못생긴 청년은 볼 일이 없어 보이고, 왼쪽에 잘생긴 기사님이 주인공인 것 같은디, 맞슈?”

라울러는 자신은 못생기고 유진만 잘생긴 기사님이라 하니 그 어느 때보다도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바구니까지 들어줬는데…….

유진은 쿡쿡 웃으며 본론을 꺼내놨다.

“저희에게 고대 제국어로 쓰인 책이 있는데, 해석을 좀 하고 싶습니다.”

“일단 들어오슈.”

* * *

마가렛의 집.

밖에서 보던 것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안쪽은 포근한 분위기다.

마가렛은 글람푸스탄에서만 나오는 약초로 만든 차를 내왔다.

“드셔보슈, 맛있을 거유.”

그 말과는 다르게 라울러의 입맛에는 너무 쓴지,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하나, 유진은 약초차를 마시자 바로 평범하지 않은 차라는 것을 느꼈다.

‘태양신교에서도 이 정도로 고품질의 차를 마신 적은 없었는데.’

독초가 들어간 듯 쓴맛이 약간 있긴 했지만, 뒷맛은 달달하니 유진의 입맛에는 딱 맞았다.

아무 말도 없이 차를 홀짝이는 유진의 표정을 보던 마가렛이 싱긋 웃었다.

“기사님은 역시 맛을 볼 줄 아시는구먼. 이름이 유진이라고 했쥬?”

“여사님, 저도 유진과 똑같은 주작 기사단인데…….”

“그려유, 알겠는데, 이 잘생긴 기사님은 약초차의 맛을 알아보잖아유.”

“끄응…….”

마가렛은 차를 알아보는 유진이 마음에 든 듯 떠날 때 말하면 챙겨주겠다고 말했다.

차를 마지못해 홀짝이던 라울러가 대뜸 입을 열었다.

“촌장님과는 같이 살지 않는 이유가 따로 있으세요?”

마가렛이 흠칫하더니,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여기도 괜찮여, 뭣하러 거까지 가서 산댜.”

왠지 모르게 말을 많이 아낀 느낌이 든다.

라울러는 여기서 말을 끝내지 않았다.

“촌장님은 실제로 어떤 분이십니까?”

“……실제로라니유? 직접 보고 온 거 아녀유?”

“네, 그래서 여쭤보는 거예요. 촌장님의 ‘실제’ 모습이요.”

“실제로, 뭐, 훌륭한…… 아들이지.”

마가렛은 자꾸 아들의 이야기가 나오는 게 불편한지 말을 돌리려 했기에 라울러는 더 추궁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유진에게 눈을 찡긋했다.

마치 ‘내가 너 위해서 하나 해줬다?’라는 듯.

쓸데없이 섣부른 질문을 꺼낸 라울러에게 유진은 꿀밤을 먹이려다 참았다.

물론 아주 못한 짓은 아니었다.

‘여사가 스스로 입을 열 수 있게끔 좀 더 천천히 들어가야겠다. 자세한 건 물어보기 어렵겠어.’

마가렛이 촌장에게 느끼는 게 어떤 감정인지는 알아냈으니 말이다.

“근디, 그것이 잘생긴 기사님의 용건이슈? 고대 제국어 어쩌구 하시더니.”

“아, 여사님, 그건요.”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마가렛에 당황한 라울러가 죄송하다며 사과를 했다.

하나, 유진은 태연자약한 얼굴로 대답했다.

“여러모로 여쭤보고 싶은 게 많았습니다. 우선 아드님 관련한 궁금증은 해결되었습니다.”

“그려유, 아들놈은…… 몰러, 알아서 잘 살겠제. 에휴.”

촌장과 관련한 스토리가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유진은 그 생각을 머릿속에 넣어둔 채 고대 제국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여사님, 이 고대 제국어는 어떻게 읽는 겁니까?”

종이와 펜을 꺼낸 유진이 책 두 장가량에 달하는 문장 전체를 종이에 모두 적어 내려갔다.

그러자 마가렛이 놀란 표정으로 유진과 종이를 번갈아 보았다.

“아니, 모르는 언어 맞어유?”

“예, 뭐…… 그냥 생각나는 대로 썼습니다. 맞긴 한가요?”

“필기체로다가, 기똥찬디?”

사실 책 한 권을 통째로 다 쓸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러지는 않았다. 괜한 의심을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는 무슨 뜻입니까? 여기랑, 여기……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하하, 똑똑한 양반한테 이 노인네가 도움이 된다면야. 알려줄 테니 잘 들으슈.”

유진은 마가렛이 알려주는 모든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며 내용을 기억했다.

유진은 원래 고대 제국어를 조금은 읽을 수 있었지만, 마가렛이 가르쳐주니 훨씬 더 편하게 읽는 법을 습득할 수 있었다.

하나, 그 내용이 워낙 방대했기에 하루만으로는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여기는, 대륙어로 읽으면 요로코롬 읽는 것이고, 여기는…….”

“드르렁…… 드르렁…….”

“아따, 이 청년은 많이 피곤했는갑네.”

라울러가 코를 골다가 화들짝 일어나 사과했다.

유진은 라울러에게 진짜로 꿀밤을 먹이려다가 간신히 참았다.

그렇게 3시간 뒤.

“후, 여사님, 감사합니다. 오늘은 이쯤 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유. 근디, 또 올거유?”

“예. 그래도 되죠? 대신, 제가 여사님이 원하시는 거 하나를 들어드리겠습니다.”

자신감 넘치던 마가렛이 살짝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아, 아니유, 나는 그런 거는 없슈. 어쨌든 간에, 난중에 또 오슈.”

“감사합니다.”

유진은 마가렛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 단박에 알아챘지만, 당장 추궁하지는 않았다.

‘모든 것에는 순서가 있다. 아직 여유가 있으니 다시 찾아오면 돼.’

유진과 라울러는 마가렛에게 인사를 올리고 자리를 떠났다.

* * *

유진이 임무로 인해 글람푸스탄으로 떠나고 며칠 뒤.

펜첼에서는 릴리안이 이동 관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리고 방금 소식을 듣고 보좌를 위해 황급히 나온 금검이 옆에 섰다.

“부인께서 직접 마중까지 나올 정도라니, 대체 누가 오시기에 그러시는 거요?”

금검은 릴리안이 어째서 로베르가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남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건지 궁금하여 그녀에게 물었다.

릴리안은 작은 미소를 지었다.

“요정족 출신 마도구 장인이에요. 그러니 이렇게 마중을 나올 수밖에 없죠.”

“요, 요정족……?”

금검은 그 말에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그가 놀란 이유는 유진이 처음 요정족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와 마찬가지의 이유였다.

매우 소수의 종족이며, 그들이 만드는 마도구는 그 수준이 대단히 높기로 유명하니까.

“제가 아는 그 요정족이 맞습니까? 부인?”

“그래요, 그 괴팍하고, 유별나게 손재주가 좋은 종족 말이에요.”

오죽하면 그들의 손길이 지나치면 돌멩이도 다이아몬드로 바뀐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애초에 마도구를 전문으로 제작하는 인물이 대륙에서도 흔치 않은데, 그 종족이 요정족이라면?

기대가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 이동 관문에서 신호가 왔다.

번쩍-

이동 관문에서 잠깐의 발광이 일었고, 요정족 아이칸이 모습을 드러냈다.

탓.

발을 내디딘 아이칸의 외양은 말 그대로 요정족 그 자체였다.

기다란 귀, 푸른 빛깔의 피부색. 날카로운 눈매와 큰 키까지, 척 봐도 대단히 시크할 것 같은 외양이다.

그가 입을 열었다.

“얼굴 좀 보자! 이 도안 만든 녀석!”

“……?”

“……?”

“릴리안, 아들은 어디 있어? 질문할 게 많단 말이다.”

유진은 릴리안에게 미스릴로 만들고자 하는 물건의 도안을 아이칸에게 전달해주길 부탁했고, 아이칸은 그걸 받아 확인한 모양이었다.

아이칸이 실제로는 300살에 가깝지만, 겉모습은 20대 초중반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금검이 릴리안을 두둔했다.

“어허, 이보게. 릴리안 부인에게 말을 높이시게.”

아이칸은 금검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젊은 양반, 귀엽게 구는 건 좋은데, 내가 보기보다 나이가 많아.”

“며, 몇 살…….”

릴리안이 금검을 만류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금검님보다 6배 가까이 많으니까, 그냥 계세요…….”

“헙…….”

금검이 입을 다물었다.

아이칸은 그러거나 말거나 잔뜩 흥분한 얼굴로 주위를 휙휙 둘러보았다.

“잠깐만, 아이칸님, 왜 이렇게 흥분해 있어요? 저는 잠깐 들르는 건 줄 알았는데.”

“내가 어디 나가는 걸 좋아하진 않잖아. 이 도안 만든 네 아들을 꼭 보고 싶어서 온 거지.”

“유진은 임무에 나가 있어요. 돌아오려면 조금 있어야 해요.”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계속 유진의 행방을 찾는 아이칸에 릴리안은 그녀를 진정시키면서 펜첼의 응접실로 안내했다.

아이칸은 다소 당황한 얼굴의 릴리안과 금검과 함께 의자에 앉았다.

“근데 왜 그렇게 흥분해 있는 거예요? 도안에 문제가 있나요?”

“문제? 문제라면 문제지. 신의 손이라 불리는 이 몸이 보지도, 듣지도 못한 도안을 받아 당황하게 만들었으니까.”

아이칸이 아공간 주머니에서 도안을 꺼내더니 테이블에 펼쳤다.

촤악!

“이 부분의 연결 부위를 평면으로 하지 않고 고리로 만든다는 건 도대체 무슨 발상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유연성을 대폭 강화시킨다는 점에서 효과적이야.”

“아…….”

“게다가 턱 부분에 육각형 막이 아닌 칠각형 막으로 덮어서 빈 공간을 만들어내 마력의 통기성을 증가시킬 방법은 어떻게 생각한 건지 모르겠다니까.”

“음…….”

릴리안과 금검은 아이칸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서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그렇군요.”

“덕분에!”

아이칸이 테이블을 내리쳤다.

쾅!

“네 아들의 비상한 머리 덕분에, 원래 아티팩트에는 최대 두 가지 기능까지만 들어갈 수 있다는 이 세상 만물의 법칙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단 말이다!”

“그, 그게 무슨 말이오?”

“이 아티팩트에는 세 가지 기능이 들어갈 수 있단 말이지.”

아이칸의 말에 따르면.

유진이 부탁한 아티팩트를 만들면 공격 1회 무효화와 투명화, 그리고 착시 효과 발생까지 총 세 개의 기능이 아티팩트에 담긴다고 한다.

릴리안도 그 말에 눈이 커다래졌다.

“저, 정말로요?”

“내가 뭣하러 릴리안한테 거짓말을 하겠어? 임무는 언제 끝나고 돌아온대?”

“적어도 2주는 있어야 해요.”

“끙…….”

아이칸이 무척 아쉬운 표정을 짓다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직접 찾아갈게, 어디야?”

“아니, 어차피 임무 수행 중이라서 만나기도 어려울 거예요. 그냥 여기서 기다리는 게…….”

“끄응…… 그 아이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만 있다면…….”

한편, 금검이 아이칸을 좁힌 눈으로 응시했다.

‘궁귀에 이어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났군.’

재능 독식자의 회귀는 특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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