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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독식자의 회귀는 특별합니다-64화 (64/151)

64화

그날 밤.

유진의 예상과는 다르게 주작 기사단 단원 모두가 촌장의 집에 초대되어 모였다.

촌장은 하얀 긴소매의 옷을 입고, 다른 시종들도 하얀 복장으로 맞춰 입고 있었다.

유진이 툭, 물었다.

“특별한 날에는 흰옷을 입는 관습이 있나 보네요.”

“예! 이제 내일이면 돌아가신다고 하니 저희로서는 특별한 날인 셈이지요. 마지막으로 대접해드리고자 자리를 마련했으니 마음껏 드십시오. 다들 너무나 감사드리는 바요.”

유진은 최대한 이 마을의 특징을 알아놓을 심산으로 물어본 것이었다.

촌장은 사람 좋은 인상으로 웃으며 기사단원들에게 친절한 태도를 보였다.

발란트와 다른 동기들은 임무가 무사히 끝났다는 생각에 편하게 먹고 마시지만.

유진은 그저 적당히 허기만 달래며 촌장과 그의 집을 살폈다.

‘내 말을 들어서인지 첫날과는 다르게 고가의 장식품들이 많이 치워져 있어. 양탄자도 갑자기 허름한 걸로 바꿔놓고…… 내 기억력을 너무 물로 보는군.’

장식품들이 비워지니 이곳저곳이 빈 공간이 되어있었다.

또한 양탄자를 바꿔서인지는 몰라도 집안이 약간 휑해 보이고, 냉기가 조금 올라오기도 했다.

‘뭔가 이상해, 첫날부터 지금까지.’

그때였다.

“유진 기사님, 요즘 저희 어머니 집에 들어가신다고 들었는데, 이유가 있나요?”

촌장이 대뜸 유진에게 물어 유진이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고대 제국어를 배우다 보니까요.”

“고대 제국어는 왜…….”

“그걸 답할 이유는 굳이 없어 보입니다만.”

묘하게 추궁을 하려는 촌장에게 유진이 딱 선을 긋자 촌장은 흠칫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이 오히려 물었다.

“어머니랑은 사이가 안 좋으십니까?”

“어머니는…… 제가 어릴 적에 가끔 사고를 치고 가출한 것 때문에 아직도 저를 애로 보시는 것 같소. 전부 다 우리 마을을 위해서인데도 말이오.”

촌장은 허허 웃었다.

별다른 내용은 없었기에 의심에 확신을 더할 건덕지는 없었다.

다만.

‘왜 이렇게 서늘하지?’

유진은 왠지 모르게 이상한 직감이 들어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 옆, 유난히 추운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불이 붙어 있는 양초를 하나 들고.

설마 했는데, 발견했다.

양초가 어느 지점에서 외풍으로 인해 불꽃이 휘청이는 것.

유진은 혹시나 하여 화장실 입구 옆 공간을 손가락으로 두드려보았다.

그러자.

탕, 탕-

이곳만 벽돌이 아닌 두꺼운 철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옆에 있던 황금돼지 상의 꼬리 부분이 다른 곳보다 때가 탔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직감에 따라 움직였다.

끼긱, 끼긱…….

이리저리 조작해보던 유진은 미세한 감각을 느꼈다.

꼬리를 왼쪽으로 3번 돌리자 찰칵, 소리가 났고.

다시 오른쪽으로 4번 돌리자 찰칵,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이는 마치 금고를 열 때와 비슷한 작동방식 같았다.

‘꼬리를 어느 방향으로 몇 번 돌리느냐에 따라 문의 개폐가 결정된다.’

유진은 지난 3년간 뼈를 깎는 훈련과 폐관 수련에서 발달시킨 감각을 활용.

착착착착…….

꼬리를 돌릴 때마다 나는 아주 미세한 소음을 들으며 문이 열리도록 조작했다.

그리고 결국.

“……!”

문은 열렸다.

철컥…….

조용히 문을 닫은 유진은 숨을 죽이며 양초를 안쪽에 비추어 보았다.

이런 비밀 공간이 있다니, 안 그래도 의심스러웠는데 더욱 미심쩍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방 안에는 별다른 게 없다.

깔끔하기 치워진 그저 빈방.

어떻게 보면 대피소나 창고로 쓰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유진은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냄새가…… 미묘한 냄새가 나. 이건, 잉크 냄새와…… 피?’

잉크와 피라 하니 자연스레 떠오르는 건 바로 ‘문신’이었다.

특히나 잉크의 냄새가 그저 종이에 쓰는 일반적인 잉크가 아닌, 특별한 약품처리가 된 것으로 보였다.

전생에 맡았던 냄새.

‘어디서 맡았지?’

방대한 기억이 사진처럼 스쳐간다.

태양신교 고문실, 상대편에 앉아있는 것은 전사의 요람 대전사 불칸.

“나를 잡았다고 이 전쟁이 끝나리란 생각은 하지 마라.”

“이미 전사의 요람은 태양신교에 상대가 안 된다. 상태야. 현실을 직시해라.”

불칸은 잠시 말이 없더니 자신의 몸에 새겨진 사자 문신을 보았다.

“이 문신이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긍지는 꺾이지 않는다.”

이어, 첫 만남부터 유난히 긴 옷을 입고 있던 촌장의 모습이 문득 생각난다.

유진이 다시 문밖을 나서려던 참…….

달칵!

돌연, 문이 열렸다.

“……!”

이 공간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촌장뿐.

유진이 어둠 속에서 숨을 참았다. 촌장이 뒤를 돌면 바로 보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젠장, 귀찮게 됐군. 어떻게 해야…… 아!’

촌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방을 둘러보고는 뒤를 돌던-

그때.

샤아악…….

유진의 몸이 사라졌다.

“뭐지……!?”

묘한 기척이 느껴져 촌장이 촛불을 이리저리 밝혔으나,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촌장이 들릴 듯 말 듯하게 중얼거렸다.

“후우, X팔…… 이 문을 열어놓다니, 정신머리가 없었군.”

평소 보여주던 사람 좋은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게 욕지거리를 내뱉더니 방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투명화된 몸의 유진도 열린 문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이게 뭐라고 조마조마하냐.’

몸이 잠시 사라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결계 덕분이었다.

‘줄리아한테 결계 수업을 잘 받아놓은 보람이 있어. 투명화로까지 응용이 됐으니.’

결계 마법은 줄리아가 했던 말 대로 응용법이 정말 다양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투명화 마법이었던 것.

게다가 묵광 4성의 특성인 기척 제거까지 사용했으니, 촌장이 유진을 알아챌 수가 없었다.

유진이 투명화를 풀고 돌아가며 판단했다.

‘방이 수상한 공간인 건 일단 확실하다. 그런데 저 방의 정체가 전사의 요람과 정말 관련이 있다면?’

전생에 있었던 전사의 요람과의 관계를 생각하다 혀를 찼다.

‘흑지의 세력 중 그만큼 강하고 잔혹한 놈들은 없었다. 특히…….’

태양신교에 끈질기게 대항하며 태양신교를 곤란케 만들었던 자, ‘불칸’.

그들은 매우 잔혹하여 놈들이 지나간 곳은 황폐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결국 유진의 전략에 휘말려 궤멸된 후 유진을 인정하긴 했지만.

‘지금 당장 내가 전사의 요람의 몇 급 전사까지 감당할 수 있지?’

전사의 요람은 하급, 중급, 상급으로 구분하는데 유진이라면 지금 중급까지는 가능할 터.

상급 전사가 온다면 임무에 나선 모든 이들이 한꺼번에 덤빈다 해도 위험할 것이다.

유진이 묘한 긴장감을 머금은 상태로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어디 갔다 오셨습니까? 기사님. 다 식은 음식을 드실까 걱정했소만.”

“너무 많이 먹었더니 소화가 안 돼서요. 잠시 나갔다 왔습니다만…… 참, 궁금한 게 많으시군요. 촌장님.”

“하하…….”

촌장은 다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얼버무렸다.

‘촌장의 몸에 문신이 있는지 알아봐야 하는데.’

유진은 비밀스런 방에서 계획하던 걸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촌장의 옷을 벗겨버릴 수도 없고, 어떻게 하면 이 자리에서 녀석의 몸을 확인하지? 실수인 척 잡아서 찢어버려야 하나? 아니면…… 아!’

“물이…….”

유진은 능청스럽게 목이 마른 척하며 촌장의 뒤쪽에 있는 물컵에 물을 따라 그를 지나쳤다.

그러다, 의자에 발이 걸린 척.

“어엇!”

촌장의 어깨에 생수를 쏟아버렸다.

“읏……! 기사님, 괜찮으시오?”

“아이고, 죄송합니다. 물이…….”

촌장은 흰옷을 입고 있었다.

유진은 그 점을 노렸고, 그 덕분에.

“……!”

물에 젖은 어깨에 살갗이 그대로 비쳤고, 유진의 예상대로 문신이 드러나 보였다. 아주 희미하게.

촌장은 재빨리 주변에 자신의 문신을 본 사람이 없는지 훑어보고는 외쳤다.

“여, 여봐라! 걸레로 여기 좀 닦아라.”

촌장은 옷을 갈아입고 곧바로 나왔다.

유진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 모양, 형태…… 전사의 요람이다.’

* * *

개척 마을에서의 유진의 일정은 아주 규칙적이었다.

오전에는 마가렛에게 고대 제국어를 배우고, 오후에는 정찰 임무를 나간다.

그리고 며칠 사이 유진은 마가렛과 고대 제국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수준이 되었고, 남는 시간에는 마가렛과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

특히나 마가렛이 알려주는 약초 차에 대한 정보는 궁귀에게서도 접하지 못했던 정보이기에 더욱 유용했다.

‘독초와 독초를 섞어서 약초차를 만들고, 약초와 약초를 섞어서 독이 만들어질 수 있다니. 이건 나중에 써먹을 수 있겠어.’

특히 약초를 볼 때마다 촌장의 집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던 약초들이 생각났다.

그것들이 무언가 촌장의 구린 구석을 밝힐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주작 기사단이 마을에 머무는 것이 6일째 되던 날.

유진은 마가렛을 찾아 고대 제국어 학습의 마무리를 하고 있었고, 라울러는 아이들을 피해 이곳으로 도망쳐와 구석에서 졸고 있었다.

“제국어를 이렇게 빨리 익히는 게 말이 되는가 싶구먼. 머리가 아주…… 비상혀.”

“근데, 마가렛 여사님.”

“왜, 드디어 이해 안 되는 게 생긴겨?”

“촌장님이 말씀하신 게 있어요.”

“뭘? 뭘 말해?”

“촌장님이 종종 외박을 하곤 했다고요.”

“……그려, 그 애는 툭하면 밖에 나돌아다니고 그랬제. 연락할 방법도 없으니께 걱정도 많이 했고. 근데 그게 어쨌다는 거여?”

유진이 마가렛을 직시했다.

“연락이 안 됐다면 어머니로서 걱정도 되셨겠군요.”

“그라제. 그거야 당연…….”

“근데 왜 어떠한 기사단이나 용병한테도 도움을 요청한 적은 한 번도 없으십니까?”

“……!”

마가렛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도와 달라고 했는지 안 했는지는 어째 안다고-”

“펜첼의 정식 기사단에서 그 정도도 조회하지 못할까요. 한 가지만 대답해 주세요, 여사님.

“……뭔데 그랴.”

“촌장님이 흑지에 오랫동안 머무른 적이 있었죠?”

“……흑지는, 개뿔이, 말도 안 되는 소리여?”

유진은 마가렛의 머릿속이 복잡하단 걸 단번에 알아챘다.

“여사님. 죄송하지만 이건 부탁이 아닙니다. 촌장님은 물론 마을 전체가 위험해요. 그리고…….”

“…….”

“지금 하는 질문은 확인차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냥 예, 아니오만 하시면 됩니다. 촌장님이 흑지에 머무른 적이 있었죠?”

이미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마가렛의 손이 미세하게 떨린다.

유진은 태양신교의 참모로서 적의 입을 열게 하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그랬기에 지금 타이밍에 뭘 해야 하는지 잘 알았다. 협박도, 회유도, 질문도 아니었다.

“잘 알겠습니다.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끝까지 입을 유진은 이미 대답을 들었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는 협상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 사용하는 일종의 밀고 당기기였다.

어차피 대답을 안 해도 유진은 머릿속 계획을 실행할 생각이었으니, 아쉬울 게 없었다. 진짜 아쉬운 사람은 먼저 입을 열게 되어있다.

그때, 마가렛이 유진의 손목을 잡았다.

“자, 잠깐만. 그라면 이거 하나만 약속혀.”

“들어보고 결정하죠.”

“우리 아들은 무죄여, 이거 하나만 장담혀. 그러면 내가 아는 건 죄다 털어놓을 텡께……!”

세상의 모든 모성애는 감동적이다.

하지만 가끔은 비이성적이기도 하다. 이렇게 박학다식하여 현자라 불리는 사람도 모성애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걸 보면 말이다.

유진은 씁쓸한 미소를 머금으며 거짓말을 했다.

“알겠습니다.”

마가렛은 구석에서 코까지 골며 쿨쿨 자고 있는 라울러를 힐긋 쳐다보고는 모든 걸 털어놓았다.

“아들놈은, 한, 십몇 년 전에 전사의 요람이란 데에 들어갔다 나왔다고 했어.”

“예.”

역시 맞았다.

“근디 나중에 교지로 돌아와서는 거기를 탈퇴했다고 말했당께. 그리고 그저, 그저 착실하게 살았을 뿐이여.”

유진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전사의 요람이 무슨 사교모임도 아닌데, 탈퇴 같은 게 가능할 리가 없다. 일단 촌장이 거짓말을 한 거고.’

“그리고 더 말할 건 없으십니까?”

마가렛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실, 요즘 통 수상하긴 혀…….”

“뭐가 말입니까?”

“보름달…… 말이여.”

마가렛은 제 아들이 보름달이 뜨는 날만 되면 마을 사람들 중 몇과 함께 외부로 나가 식량이나 사치품을 받는 것 같다고 했다.

“공정한 거래는 아닌 것 같긴 했지…… 어떤 돌대가리가 받는 것도 없이 식량을 그냥 주겠댜.”

처음에 촌장이 펜첼에 보낼 유물을 밖으로 빼돌리는 건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다고 실토했다.

유진이 촌장과 전사의 요람과의 관계를 정리했다.

‘촌장은 전사의 요람과 확실히 관계가 있다. 그리고 무언가를 대가로 마을을 살찌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알아내야 했다.

“알겠습니다, 여사님.”

“자네만 믿겠네, 응……? 그냥 조용히, 조용히 넘어가면 좋겄어……!”

“……네.”

조용히 넘어가기에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같았지만.

유진은 착잡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드님을 제가 지킬 수 있을까요.’

그리고.

오늘 밤은 보름이 뜰 것이었다.

재능 독식자의 회귀는 특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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