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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독식자의 회귀는 특별합니다-87화 (87/151)

87화

“미안하다! 내가 이런 짓을 하는 게 아니었어!”

“지금에 와서?”

“무, 물론 용서를 구하긴 어렵다는 걸 알고 있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내가 살아남을 수가 없어서……!”

“네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죽여도 된다는 말 같네.”

“그건 아니지만……!”

유진이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그러면 이렇게 하지. 네가 알고 있는 붉은 전갈과 태양신교에 관한 모든 걸 내게 말 해.”

“그렇게만 하면 날 살려 줄 건가……?”

헤르켈이 무릎을 꿇고 간절한 눈동자로 유진을 올려다본다.

“들어보고.”

헤르켈은 그 즉시 모든 걸 털어놓았다.

붉은 전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무슨 목적이었는지, 누가 누굴 죽였고, 왜 죽였는지.

후에는 어떤 계획이 있었는지.

태양신교에서는 붉은 전갈의 수장을 어떻게 강화했는지, 모든 것을.

“흠, 그렇군.”

이야기를 다 들은 유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헤르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이제 가도 되는 거지? 그렇지?”

“더 말할 건 없는 건가?”

“아는 건 죄다 말했다! 전부 진실이야!”

그 순간.

유진이 헤르켈의 머리통을 쥔 손아귀에 힘을 불어넣었다.

“그러면 더 이상 쓸모는 없겠군.”

“컥!”

콰지직!

헤르켈은 그대로 머리통이 으깨지며, 생을 달리했다.

전생에 길고 긴 악연치고는 너무 쉽게 보내준 듯했지만.

‘진짜는 교황이지. 이런 잔챙이 따위에 만족할 수 없어.’

* * *

비록 왕성은 불에 타고, 건축물들이 흉한 모습으로 변한 모습이었지만.

왕성에서는 큰 파티가 연일 열리고 있었다. 따듯한 기후 덕에 야외에서 모두가 먹고 마시며 왕자의 구출을 축하한다.

그 파티의 주인공은 물론 유진 로베르.

“모두 잔을 듭시다! 우리 유진 경을 위하여! 그리고 다시 일어날 우리 오스틴 왕국을 위하여!”

“위하여!”

펜첼의 주작 단원으로서 왕자를 직접 구출해낸 공을 세웠기에 이 점은 모두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다음이 주작 기사단이었다.

왕자의 납치를 도왔던 공범들을 잡은 공이었다.

물론 실상은 감스탄이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모두 제압한 결과였지만 말이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사이.

유진도 기쁜 마음이긴 했으나 마음에 걸리는 구석이 있었다.

“국왕님, 페드로 부단장은 좀 괜찮습니까? 부상이 너무 컸던 터라 걱정이 돼서요.”

밝은 분위기의 자리와는 다르게 유진은 페드로를 이야기할 때는 한없이 진중한 표정이었다.

왕은 이해한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페드로 경은 지금 오스틴 왕국 최고의 의료진이 붙어서 치료하고 있습니다. 다만…….”

“팔을 완전히 복구해 내는 건 어렵군요.”

“그렇다고 합니다. 그래서 의수가 하나 필요할 것 같은데, 의수라는 게 워낙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도구라…….”

유진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의수는 제가 이미 아이칸님에게 제작 의뢰를 맡겨놓았습니다.”

“아, 아이칸님이 의수를 제작하신다고요? 그쪽은 전문 분야가 아니신 거로 알고 있는데?”

그때 옆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던 금검이 끼어들었다.

“우리 공자가 못하는 게 있겠소이까? 마도구 제작에도 소질이 출중하오. 아이칸 할망…… 아니, 아이칸님을 유진이 도우면 가능하오.”

“정말입니까? 허어!”

실제로도 참혹했던 흑지와 교지의 전쟁 막바지에는 의수 기술이 대폭 발전하여 의수를 낀 기사나 마법사들이 흔하기도 했다.

그랬기에 유진은 아이칸을 도와 의수를 제작할 수 있었다.

“페드로는 전만큼 편한 손과 팔을 갖게 될 거요. 상심이 크지 않았으면 좋겠구려.”

이 순간 국왕은 유진을 무슨 신기한 신수를 보듯 눈동자를 빛냈다.

“아니, 유진 경께서는 그간 시간을 어떻게 써 왔길래 그렇게 할 줄 아는 게 많으십니까? 저도 게을리 살지는 않았지만……!”

“흐하하. 우리 유진 공자의 일생으로 말할 것 같으면…….”

금검이 민망할 정도로 유진을 추켜올리는 동안, 유진이 살짝 뒤로 빠져서 생각에 잠겼다.

‘나 때문에 페드로가 팔을 잃었구나.’

체첸이 혀를 가볍게 찼다.

-너무 상심은 말거라. 본래 대의적인 일에는 작은 희생이 따르는 법이다.

‘내 몸이 대의라는 건 말이 안 맞아. 다만 페드로의 희생에 고마울 따름인 거지.’

-……그러면 매일매일 네놈에게 갈궈지는 나에게도 감사하겠구나.

‘그건 대의가 아니라 데일리적인 일상이잖아.’

-후우…….

금검의 길고 긴 유진 자랑을 모두 들은 왕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타인의 희생을 감사할 줄 아는 자는 많을 것 같지만 흔치 않다. 게다가 능력까지 고루 갖춘 인물이라면…….’

오스틴 왕국에 유진을 영입하고 싶다!

처음 만나 기사단장을 압도할 때부터 알아봤지만, 국왕은 유진의 참된 인성과 능력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물론 인성 측면에서는 체첸이 들으면 거품을 물고 항변할 거였지만 말이다.

‘유진 같은 기사와 함께한다면 몸과 마음이 정말 든든할 것 같다. 검룡이 내 옆에 있다면, 뭐가 두려울까?’

아무리 나이가 적다고 해도, 능력 앞에서는 나이는 그저 숫자일 뿐이다.

확신하게 된 왕이 유진에게 살짝 다가가 넌지시 물었다.

“유진 경, 제가 한 가지 제안드릴 게 있습니다.”

“제안이요? 무엇을.”

“오스틴 왕국으로 오시지 않겠습니까? 자리는 저의 바로 옆, 직속 호위 기사직입니다. 율리츠 기사단장보다도 더 높은 자리로 만들어 놓겠습니다.”

유진은 국왕의 갑작스런 제안에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가볍게 웃어넘겼다.

“저는 아직 펜첼에서 배우고 싶은 게 많아서요. 마음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국왕은 매우 아쉽다는 듯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부디…… 기회가 다시 오면 좋겠습니다. 검룡과 함께 이 나라를 운영할 수 있다면 얼마나 든든할까요.”

유진이 검룡이라 불리자 체첸이 검 속에서 씨부렁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한 유진이 입을 열었다.

“반대로 제가 제안할 게 있습니다, 국왕님.”

“뭐든 말씀하십시오. 유진 기사의 제안이라면야.”

“이참에 펜첼과 확실한 혈맹을 맺는 게 어떻습니까?”

“혈맹이요……?”

유진이 말을 이었다.

“이번 일로 국왕께서도 우리의 적이 누군지 확실히 아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직접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그 적이 바로 태양신교라는 건 알고 있었다.

지하 공동에서 왕비의 진짜 모습을 보고 알아챈 것이다.

유진과 왕이 목소리를 낮추며 조용히 대화했다.

“왕비는 암살자에 의해 습격당한 것으로 밝혔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일단은 그렇게 해야 합니다. 태양신교 오스틴 지부 사람들에게도 진짜 정보는 새어나가면 안 됩니다.”

왕비가 왕자의 납치를 주도한 범죄자라는 사실을 밝히는 순간.

그리고 그 왕비가 태양신교에서 키워진 암살자라는 게 밝혀지면 오스틴은 태양신교와 대척점에 설 수밖에 없었다.

오스틴 왕국 입장에서는 태양신교를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

대륙 전 지역에 지부를 둔 태양신교의 힘은 너무나도 강했다.

교황의 말이라면 불구덩이에도 뛰어들 헤아릴 수 없는 신도와 제국과도 비등한 전력의 성기사들.

그리고 뒤를 지원하는 사제들까지.

일개 왕국으로서는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그러니 유진은 지금부터라도 펜첼과 오스틴이 힘을 합쳐 태양신교에 대항하자는 이야기였다.

유진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계산이 마쳐진 뒤였다.

‘오스틴의 풍부한 암석, 산림자원, 공중을 장악하는 데에 꼭 필요한 와이번의 개체 수, 그리고 외교적으로 모두와 우호적인 것.’

그 점도 있거니와.

‘무엇보다도 시민들의 지지를 받는 현군이 우두머리에 있는 곳이라면, 통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다소 생각이 필요한 제안인 만큼, 왕이 깊은 고민에 잠겼다.

체첸이 히죽 웃었다.

-천하의 검룡, 유진 로베르가 누군가에게 제안을 하는 날이 오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군! 하하!

‘수락을 꼭 받아야 하는 건 아니야. 다만 물밑 작업은 슬슬 해 놔야 하는 거지.’

-어째서 태양신교에 대항하려 하는가? 지금 펜첼만 하더라도 정의와 패도를 걷는 대가로 많은 이득을 놓치고 있다고 본다만.

복수해야 하니까.

유진이 이 말을 삼키며 국왕에게 말했다.

“지금의 오스틴 말고도 태양신교를 적대하는 교지의 나라는 많습니다. 모두 숨죽이고 있을 뿐이죠.”

고민에 잠겨있던 왕이 입을 열었다.

“제게는 사실, 펜첼과의 혈맹도 좋지만 유진 경과의 단단한 신뢰가 더 중요합니다. 그 점만 약속된다면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아, 저와의…… 음. 당연히 저는 펜첼의 소속이니 신뢰는 더 강해지겠죠?”

“좋습니다.”

왕이 유진을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았다.

‘겸손한 태도라. 갖추지 못한 게 뭐지? 정말 보면 볼수록 훌륭하군.’

오스틴의 왕이 이토록이나 강하게 호감을 드러내니 약간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그때였다.

“아버지, 유진 경!”

왕성의 치료실에 있어야 할 왕자가 나타났다.

극진한 치료를 받아서인지 많이 회복된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온전치는 않은지 목발을 짚는 상태였다.

“아들아, 왜 나왔느냐? 상태가 좋지 않을 텐데?”

“성의라도 보여야 할 것 같아서요. 유진 경께요. 생명의 은인이지 않습니까.”

유진의 앞에 선 왕자가 공손히 인사하며 밝게 웃었다.

“경, 제가 정신을 차린 뒤로 통성명도 못 드렸습니다. 오스틴 왕국의 왕자로 있는 쥬달이라 합니다.”

“쉬고 계시지 그러셨습니까. 유진 로베르라 합니다.”

유진은 납치된 당시와는 다르게 멀끔한 모습인 쥬달 왕자를 보며 작게 웃어 보였다.

‘인사도 할 겸, 자신이 많이 회복되었다는 걸 시민들에게 알리려는 것 같네. 그래야 오스틴 왕국 내부에서 쓸데없는 소문이 돌지 않을 테니까.’

아버지나 아들이나, 꽤 괜찮은 인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유진의 마음 한편에서는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왕자여! 이 유진 로베르가 자네의 하나뿐인 능력을 뺏어간 당사자라네, 내 말 들리는가?

‘매를 번다, 벌어. 아주 확 그냥.’

체첸이 장난스레 꺼낸 말이었지만, 실제로 유진은 왕자에게 미안한 감정이 있었다.

쥬달이 악수를 청하였기에 유진이 손을 잡던 차.

우웅.

유진의 감각에 쥬달의 몸속에서 꿈틀대고 있는 미약한 기운이 느껴졌다.

지배의 권능이었다.

‘음? 왕자의 몸에 지배의 권능이 아직 남아있잖아?’

유진은 순간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뭐야. 제대로 흡수를 안 했나? 다시 해야 하나?’

동시에.

‘아니, 내가 인성이 이렇게 못됐던가. 이미 와이번도 충분히 다룰 수 있는 몸이잖아.’

체첸이 거들었다.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구나. 인성 하나는 정말 수준급인 유진 로베르의 민낯을 세상에 다 까발려야…….

‘파티 끝나고 보자. 쿠란의 검이 민트 초코로 절여지는 모습을 마주하게 될 거니까.’

-내가 장난이 좀 지나쳤지?

유진이 고개를 털어내고 왕자를 응시했다.

‘어떻게 능력이 남아있는 거지? 탐욕이 통한다고 해서 무조건 모든 능력을 말끔히 빼앗아오는 게 아닌 건가?’

그 말인즉슨.

-네가 가진 탐욕의 권능에도 수준이 있나 보군.

‘그래. 격이 더 높아질 수 있는 것 같아. 나중에 실험을 해 봐야겠어.’

-역시, 실험과 경험을 반복하며 지금의 위치에 온 유진 로베르, 대단…….

‘그 정도 아부로는 민트 초코 샤워는 못 피해가.’

-…….

‘지배의 권능이 아직 미약한 새싹처럼 남아있으니 공을 들인다면 예전처럼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겠어.’

물론 왕자는 유진이 지배의 권능을 빼앗아간 사실을 몰랐다.

아니, 오히려 왠지 모르게 유진에게 친근함을 느끼고 있었다.

“제가 18살이고, 유진 경께서는 15살이라 들었습니다. 하지만 능력에 있어서 나이란 무용지물이니, 형님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형님이요?”

유진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재능 독식자의 회귀는 특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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