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 독식자의 회귀는 특별합니다-97화 (97/151)

97화

현무 기사단이 기다리고 있던 숙소로 돌아온 유진은 클라크를 마주했다.

“밖에서 뭔가 큰 소리가 나던데, 별일 없었지? 나가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수십 번은 넘게 고민했다.”

클라크는 유진이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구석구석 살폈다.

유진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일은요. 그냥, 좀 재미있는 인사를 나눴죠.”

“재미있는 인사?”

클라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크하하! 재미는 있었지. 다만 처음에는 진짜 미친 놈인 줄 알고 식겁했다.

‘그래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으니, 뭐.’

-아, 고드릭과 싸우겠단 목적을 가진 걸 보면 진짜 미친놈이 맞는 것 같군.

그때, 누군가가 숙소를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똑.

‘고드릭이 오려면 멀었을 텐데?’

유진이 갸우뚱하며 문을 열자, 의외의 인물이 서 있었다.

레나 스피어였다.

그녀는 부끄러운지 그녀의 머리칼의 색깔만큼 얼굴이 붉어진 상태였다.

“안녕하세요, 유진 님.”

“무슨 일이야? 생각도 못 했네.”

레나의 표정을 보던 클라크가 상황을 파악했다는 듯 히죽 웃었다.

“재밌는 인사였다는 게 이런 거였군. 으이구, 혈기왕성하긴.”

“무슨, 그런 의미가 아니었는데.”

레나는 클라크에게도 공손히 고개를 숙여 보인 뒤 유진에게 말했다.

“루한 오빠에게 그랬던 것처럼, 저에게도 가르침을 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녀는 원래 부끄럼을 잘 타는 성격인지 붉어진 얼굴로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클라크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유진이 레나의 말을 이해했다.

‘이 녀석도 배움에 진심인 녀석이군.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싸우기 싫어서 피했던 건가.’

다만, 레나가 원래 이렇게 부끄럼을 많이 타는 성격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전생에서는 직접 말을 섞을 기회가 아예 없었으니까.

‘그런 건 뭐, 상관없으니까.’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여기 말고 나가서 이야기하자. 삼촌, 저 가볼게요.”

“클클, 그래. 가 봐, 빨리 가 봐.”

“……?”

클라크가 능글맞은 웃음을 짓는다.

‘원래 저런 성격이 아니셨던 것 같은데.’

* * *

유진은 레나와 함께 태양신교가 마련한 연무장으로 걸어갔다.

‘레나 스피어는 태양신교와 척을 지고 살아가다가 흑지와의 전투에서 가주이자 아버지인 창왕과 함께 실종된 것으로 처리됐다.’

하나, 유진은 진실을 알고 있었다.

‘태양신교가 비밀리에 레나와 창왕을 처리했었지. 나는 허가도 내린 적 없는 일이었어.’

거슬리는 인물이 있다면 시체도 남기지 않고 없애버리는 놈들.

도대체 교황의 잔혹함은 어디까지일까.

‘비록 나도 태양신교에 소속된 사람이었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건데.’

옆에서 수줍은 표정으로 걷고 있는 레나 스피어를 보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번 생에는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스릉.

연무장에 도착한 유진이 쿠란의 검을 꺼내 들며 레나의 맞은편에 서더니, 다짜고짜 말했다.

“네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공격을 해 봐. 아무것도 숨기지 말고.”

“네? 정말로요? 그렇게 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건가요?”

유진이 헛웃음을 흘렸다.

‘성격은 소심하고 차분한데,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지는 엄청나게 강하잖아? 묘하게 언밸런스한데.’

지금까지 만난 녀석들과 다르게 성격이 독특했다.

“그래, 다 퍼부어 봐.”

유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레나의 눈빛이 돌연 맹수처럼 변모했다. 유진도 흠칫할 정도로 급격한 변화였다.

쐐애액!

어느샌가 찔러온 창날이 유진의 명치로 치달았다.

‘속도는 괜찮…….’

그가 검을 들어 창을 쳐내려던 순간, 창날이 턱으로 확 올라왔다.

“……!”

유진이 흠칫하며 고개를 뒤로 젖히자, 레나가 덤블링을 하며 유진을 빠르게 쫓더니 이번에는 창대로 유진의 하체를 노렸다.

상체에 집중된 유진의 움직임을 간파하고 그 즉시 균형이 무너진 하체를 노린 것이다.

그 짧은 순간에 펼쳐진 레나의 창술에 유진은 두 번이나 놀라야 했다.

-호오! 저 녀석, 겉으로 봤을 때랑은 완전히 다르구나! 라울러와는 또다른 스타일이야.

‘그러게!’

유진이 숨을 빠르게 들이켜며 검을 반시계방향으로 빙글 돌렸다.

카아앙!

쇠붙이 두 개가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연무장을 크게 울렸다.

‘라울러는 일격마다 무게가 실리는 타입이라면, 이 녀석은 창을 아주 변화무쌍하게 다루는군. 지능적이야.’

-라울러와 좋은 호적수가 되겠구나.

“후우!”

레나가 거친 날숨을 내뱉는다. 그 와중에도 눈빛은 예리하게 살아 있었다.

“실전 경험이 많아 보이네.”

체첸은 그 말에 어이가 없단 듯 역정을 냈다.

-네놈이 이상한 거지, 저 정도면 전장을 수없이 구르고 구른 실력이다. 그냥 많은 게 아니라고!

그 말마따나 레나도 히죽 웃었다.

“아버지와 함께 임무를 처리한 게 꽤 많은 편이에요.”

하지만 유진은 그 와중에도 레나의 부족한 점을 알아챈 뒤였다.

저벅.

그가 레나에게로 걸어가며 검을 천천히 휘둘렀다.

분명 그 느린 검에는 힘이 하나도 실려있지 않은 듯했으나.

쾅!

“……!”

고개를 갸웃하며 검을 막아내던 레나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유진의 완력이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너는 루한과 반대네. 공격은 좋은데 방어에 약해. 예를 들면 이런 곳.”

유진이 레나의 왼쪽 무릎으로 검을 확 쏘아내자, 그녀가 멈칫하며 창을 돌렸다.

그러나.

피짓.

레나의 창은 유진의 검을 쳐내지 못했고, 결국 무릎 끝에 검이 닿아버렸다.

레나의 무릎이 아주 약간 찢어져 피가 새어 나왔다.

“공격도 마찬가지지만, 힘은 기본이야. 변화무쌍한 창술은 좋지만 완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건 그냥 무용에 불과하다고. 추가로, 오러도 부족해.”

“네……!”

“만약에 방금 이 공격이 실전이었다면 너는 한쪽 다리를 잃었겠지.”

오싹하리만치 현실적인 조언에 레나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보아하니 영약도 제대로 먹은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런 것도 알 수 있나? 이거 혹시 돌팔이 아니야?

‘보면 알아, 100년 산 할아버지가 그것도 몰라서 쓰나.’

-할아버지한테 반말이나 툭툭 뱉고, 하아…….

레나가 다시 착해진 눈빛으로 유진의 말을 경청했다.

“기술적으로는 초신성들 중에서는 제일 나은 것 같다. 하지만.”

“오러가 부족하다는 거죠?”

“그래. 근본적인 문제지.”

사실, 이는 레나 또한 이미 알고 있는 문제였다.

스피어 가문은 대대로 영지도 없는 명예직인 가문이었기에 따로 돈을 버는 수단이 없었다.

돈을 번다고 하면, 마치 용병처럼 임무를 맡고 그 성과로 다른 영주나 왕에게서 보상을 받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니 영약 같은 건 제대로 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체첸이 그제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 스피어 가문이 여유롭지 못하다는 걸로 유추해 낸 거군. 맞지? 응?

유진은 체첸을 무시하며 레나에게 물었다.

“영약이 필요하다면 나와 거래를 하는 게 어때?”

“거래요……?”

“내 친가는 로베르 가문이야. 대륙 제일의 상인 가문.”

“아!”

그제야 유진의 말뜻을 이해한 레나가 물었다.

“임무를 완수하면 보상으로 재물이나 영약을 주겠다는 거예요?”

유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레나가 잠시 갈등했다.

“하지만…… 끙.”

유진도 레나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돈이 없다고는 해도 제 마음대로 임무를 수락하고 말고 할 수가 없겠지. 엄연히 가문의 주인은 창왕이니까.’

유진이 레나가 부담을 덜 수 있게끔 한마디 말을 덧붙였다.

“이건 나와 너의 거래가 아니라, 로베르 가문과 스피어 가문 간의 거래야. 그리고 계약서도 지금 당장 쓰지 않아도 되니 지금은 구두로만 해도 좋아.”

레나는 조금 갈등하는 듯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좋지만, 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서…… 일단 아버지께 말씀드려 볼게요.”

“좋아. 너는 지금 당장 깨달음을 얻는 것보다 오러의 양을 늘리는 게 먼저야. 그게 내가 내리는 처방이다.”

“감사합니다!”

“임무에 관해서는 초신성의 모임이 끝나고 알려줄게. 구두계약은 성사된 걸로 알게.”

“네!”

레나가 활짝 웃으며 인사하고는 숙소로 돌아갔다.

그사이 유진이 연무장 밖으로 나갔다.

묘하게 느껴지는 시선이 있었다.

“고드릭 사제님, 구경은 재밌게 하셨습니까?”

그가 나무가 우거진 숲쪽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소리가 울리자마자 고드릭은 히죽 웃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검룡의 눈은 피할 수가 없네요. 나름 숨긴다고 숨겼는데 알고 계셨네요?”

유진은 대답하지 않고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어려서부터 묵광을 수련한 유진의 기감은 이미 같은 성급의 기사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수준이었다.

기감만 따진다면 9성급의 기사와도 견줄 수 있을 정도.

물론 고드릭은 그 사실까지는 알아채지 못했다.

“장소를 옮겨야 하죠?”

유진이 툭, 묻자 고드릭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호오, 저를 배려해주시는 겁니까? 맞습니다. 이곳에서 싸우면 연무장은 다 박살이 나고 저는 본청에 불려갈 겁니다.”

“예, 뭐, 그럴 것 같았어요.”

“……그럴 것 같았다라…….”

유진의 말을 가만히 되짚던 고드릭의 순간 무섭게 돌변했다.

“처음 뵀을 때도 그렇고, 초신성들을 박살 낼 때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네요.”

“뭐가 말입니까?”

“수상하다는 거요.”

유진이 멈칫했다.

“저는 분명 유진 기사님을 처음 봤는데, 기사님은 묘하게 낯이 익는다는 눈빛을 하셨습니다.”

“…….”

“그런데 이후에도 마치, 태양신교에 이미 한 번 몸담았던 사람처럼 모든 걸 너무 잘 아십니다.”

고드릭이 유진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놈의 얼굴이 유진의 시야를 가득 메웠다.

“누구십니까? 당신.”

유진은 잠시 말을 않다가, 피식 웃으며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의외로 겁이 많으시군요.”

“……예?”

“제가 누구건 간에 고드릭 사제님과 결투가 예정되어 있다는 건 똑같습니다. 혹시, 방금 말씀하신 걸 빌미로 결투를 물리고자 하는 겁니까?”

고드릭의 표정에 균열이 갔다.

“결투를 물릴 일은 없습니다, 기사님. 다만…….”

“제가 누군지 말씀드리죠.”

유진이 북쪽을 가리킨다.

“싸움의 본질은 나를 알고 적을 아는 것입니다. 태양신교는 펜첼에 있어 적과 같은 존재. 그러니 적을 알려고 노력했습니다.”

“하, 하하! 지금 태양신교의 내부에서 태양신교를 적으로 지칭하는 겁니까?”

유진이 가볍게 혀를 찼다.

“쯧, 다만 저는 펜첼의 방식에 불만이 있습니다.”

“……?”

“처음 뵀을 때도 말했습니다.”

“무얼 말입니까?”

“저는 태양신교의 신실한 교인이라고요. 그때도 제 옆에 계시던 클라크 경은 한마디도 않으셨죠.”

그제야 유진의 말을 이해한 고드릭이 표정을 풀었다.

‘이 녀석…… 펜첼에서도 말리지 못 하는 태양신교의 교인이었나.’

이로써 어떻게 유진이 태양신교에 관한 정보를 이토록 잘 아는지 설명은 모두 된 상황이었다.

고드릭이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제가 실수를 했군요, 형제님.”

“서운합니다. 그런 만큼 제대로 상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하하! 투지 하나는 저 못지않군요.”

고드릭의 의심을 피해 나가는 유진을 보던 체첸이 혀를 내둘렀다.

-하! 말빨 하나는 알아줘야겠군. 언제부터 네놈이 태양신교를 따랐다고.

‘이게 태양신교에 침투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니까.’

-완전히 고드릭의 머리 위에서 노는구나. 하긴, 좀 신기하긴 해. 정말 태양신교에 몇 년 있었던 사람 같다니까.

유진은 체첸의 말을 무시했다.

그렇게 둘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도착지는 태양신교의 중앙에 위치한 연무장이었다.

재능 독식자의 회귀는 특별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