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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독식자의 회귀는 특별합니다-102화 (102/151)

102화

이변은 없었다.

“……미안하다.”

율리아는 그새 꼬리를 내리고 유진에게 사과하고는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녀의 뒤쪽에 있던 에드뮬은 치욕스러운 표정이었다.

아마도 제 가문의 대리인으로 온 고모라는 사람이 펜첼의 사람에게 호되게 당하는 꼴을 보는 게 고역인 모양이었다.

‘에드뮬도 수준 이하고, 실린 가문의 대리인도 이 정도 수준이라니. 아군으로 둘 가치가 전혀 없어.’

멍청한 지휘관은 수만의 병사를 죽인다.

실린 가문에 대한 유진의 평가는 점점 박해지고 있었다.

“허, 방금 록타르를 대하던 것과는 또 다른 태도군. 펜첼 소속 사람들은 원래 저렇게 얼굴이 여러 개인가……?”

“태도가 명확하군.”

사람들은 저마다 유진의 행동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명이 검룡이라더니, 저 정도 수준이라면 광룡이 더 맞는 것 같다. 그때 보이던 기세는 새 발의 피였어.’

‘에드뮬 표정 좀 봐라, 큭큭. 실린 가문의 대리인이 저 정도로 쫄아서 줄행랑을 칠 줄이야.’

초신성들은 유진을 다시 한번 보며 기함을 토했고.

‘우리 가문의 아이들이 고생깨나 하겠군…….’

‘저게 열다섯짜리라니, 요즘 애들은 어떻게 크는 거야?’

‘유진 로베르를 뛰어넘어야 우리 가문의 위상이 살겠구나.’

명문 육가의 대리인들은 유진과 같은 동시대를 살아야 하는 제 초신성들을 보며 걱정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와중에 클라크는 옆에 있던 사람들에게 넌지시 자랑했다.

“저 녀석이 우리 가문의 초신성이오.”

“아, 펜첼의 대리인 되십니까……?”

“하하, 자랑은 아니고, 그냥 그렇다는 말이오.”

그는 평소와 다르게 유난히 들뜬 모습이었다.

그만큼 초신성의 파티는 대륙에서도 알아주는 자리란 말이었다.

유진은 자리에 앉으며 주변에서 쏟아지는 시선을 온전히 받아냈다.

‘루한의 대리인은 따로 오지 않았군. 그만큼 루한을 믿는다는 이야기겠지.’

그럴 만도 한 게, 루한은 이미 가문에서 소가주로서의 입지를 굳힌 상태였다.

“다들 뭐해? 안 앉고?”

“어, 응.”

유진이 테이블 주변에서 쭈뼛대고 있는 초신성들을 향해 말하자 녀석들이 엉거주춤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에솔 아힌과 아힌 가문의 대리인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유진과 가장 먼 자리에 착석했다.

그거야 상관할 바 아니었지만, 유진은 잠시 어리둥절해야 했다.

‘에솔 옆에 있는 자는 누구지? 처음 보는데.’

–네 녀석이 모르는 정보도 있구나! 이 묘한 쾌감은 뭐지?

유진은 체첸을 무시하고 기감을 확장했다.

‘오러는 8성급 중반. 또 뭐라고 소곤대는 것 같은데.’

에솔과 대리인이 나누는 대화에 집중하니 어렴풋이 이야기가 들렸다.

‘저 녀석이 검룡이구나. 저 나이에 저런 기세라니, 이명이 어울리긴 하군.’

‘삼촌……! 감탄만 하실 때가 아닙니다. 저 녀석이 제 앞니를 부쉈다고요……! 이거 보이십니까? 앞니가 완전 어색하잖습니까!’

‘상황은 이미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어찌!’

‘정당한 대결에 진 것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아직도 투정만 부리다니. 가문에 돌아가면 죽을 만큼 수련에 정진해야겠구나.’

‘크윽…….’

어림짐작한 생각과는 다르게 에솔의 삼촌은 정상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다.

아힌 가문에 정상인이 있었다니.

유진의 완전기억이 돌아가고, 기어코 아힌 가문에 관한 정보를 찾아냈다.

‘아힌 가주의 동생이자 가문의 그림자 무사라 불리는 사람. 내가 태양신교에 들어오기도 전, 즉 앞으로 5년 안에 독살을 당해 죽었다는 사람이었어.’

아힌 가문과 어울리지 않는, ‘정상적인’ 사람이 독살을 당해 죽었다는 말이었다.

유진이 가볍게 혀를 찼다.

펜첼도 그러했지만 명문육가도 가문 내부의 골육상쟁은 처절하기로 유명한 구석들이 있었다.

‘가문도 팔아먹었던 에솔에게 삼촌을 죽이는 것은 별일도 아니었겠지.’

유진의 눈이 잠시 이채를 띠었다.

‘에솔은 쓸모가 없지만, 저 대리인으로 온 양반은 아군으로 삼는다면?’

아힌 가문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하나씩 조각이 맞춰지는 듯했다.

한편.

연회장의 2층에서 유진의 모습을 뚫어져라 지켜보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교황 테오스였다.

‘상황과 사람마다 태도를 달리하며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준다…….’

그의 눈매가 호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무력만 뛰어난 게 아니라 처세술 또한 일국의 재상 못지않구나. 줄 수만 있다면 우리 교단의 2인자 자리라도 주고 싶군.’

교지는 물론 대륙을 넘어선 권력을 지닌 교황의 안목에도 유진은 부족함이 없었다.

테오스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옆에서 시중을 들던 고드릭을 불렀다.

“고드릭.”

“예, 교황이시여.”

“유진을 데려와라.”

“알겠습니다.”

고드릭은 계단을 내려가 유진에게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유진 기사님, 교황께서 대면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그 말에 체첸이 몸을 흠칫 떨었다.

-붉은 전갈의 뒤에는 태양신교가 있다. 그런데 그 붉은 전갈의 수장을 죽인 게 너잖느냐?

‘그런데?’

-이거야말로 완전 범의 아가리에 목을 집어넣고 있는 것 아니냐? 뭔가 알아낸 게 아닐까?

‘부정 타는 말 하지 마. 그리고 그런 게 걱정스러웠으면 애초에 여기서 주목받을 짓은 하지도 않았어.’

-태평해서 좋겄다, 아주 그냥. 네놈이 죽으면 나만 버려진 신세라고.

‘그건 알 바 아니고.’

유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교황은 저렇게 강한 힘을 가지고서도 뭐가 그리 두려운지 모든 걸 힘으로 해결하려 들지 않아. 가장 빠른 길을 두고 항상 조금씩 돌아가는 선택을 해왔다.’

교황만의 신념이 있는 것 같았다.

흑지까지 점령했던 교황이 유진을 죽일 때도 굳이 명분을 만들었던 것도 교황의 성격에서 비롯된 것일 터.

물론 유진은 걱정되지 않았다.

전생과는 다르게 펜첼이 유진의 든든한 배경으로 있었으니까.

유진이 고드릭을 따라 교황이 앉아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교황에게 접근하자 외부에서 들리던 모든 소음이 차단되었다.

단순히 소리만 막은 게 아니라 이 공간 안에서는 교황에게 어떠한 위해도 가할 수 없겠다는 걸 감각적으로 느꼈다.

‘지금 내 최대의 전력은 문신화 이후 신검합일을 펼치는 것. 하지만 전력을 뽑아내도 교황에게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을 것 같아.’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것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척.

마침내 유진이 교황의 앞에 서자, 고드릭이 고개를 숙이며 유진에게 넌지시 말했다.

‘예법에 따라 인사하시지요.’

유진은 군말 없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태양신교의 교황을 마주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한 치의 떨림도 없는 목소리.

이미 유진은 회귀한 이후 수많은 경험을 쌓았기에 교황을 두고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었다.

신검합일을 깨달은 이후부터 묘하게 몸이나 감정의 조절이 쉬워진 느낌이었다.

교황은 그런 유진을 보며 은은한 미소를 띠었다.

“나도 반갑소, 유진 경. 그간 불편한 점은 없으셨소?”

부드러운 목소리에는 한치의 위협이나 중압감도 담지 않았다.

그는 진심으로 유진을 정말 편안하게 대하고 있었다.

“덕분에 편안하게 지냈습니다.”

“다행이오. 나중에라도 필요한 게 있거든 고드릭에게 언제든지 이야기하시오.”

유진은 교황이 사람을 대할 때 어떤 전략을 쓰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저 친절함이 사무치게 역겨웠다.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았지만, 유진은 전혀 내색하지 않고 미소지어 보였다.

“예, 배려에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떤 일로.”

“유진 경의 행보를 들었소. 고드릭, 읊어보아라.”

옆에 있던 고드릭이 마치 준비했다는 듯 유진의 업적을 줄줄이 나열하기 시작했다.

“최연소로 사자의 시험에 통과, 최단기간에 주작 기사단에 입단, 임무로 간 글람푸스탄에서 혈귀 유리를 상대로 승리, 수많은 기사단이 실패한 오스틴 왕자 구출에 성공, 그 밖에 또…….”

“이쯤 하면 내가 왜 유진 경을 불렀는지 예측이 갈 거라 믿소.”

유진이 말없이 고개를 숙여 보이자 교황이 싱긋 웃었다.

“고드릭에게 듣기로, 태양신교에 대한 신심도 매우 깊다고까지 하니, 탐이 나지 않을 수가 없더군.”

“영광입니다.”

“하지만.”

교황의 눈이 호선으로 휘었다.

“영입 제안은 하지 않을 것이오.”

고드릭은 이야기를 듣는 내내 미소를 짓다가 표정이 바뀌었다.

이 정도로 성대한 연회를 치르고, 직접적인 관심을 보여놓고는 정작 영입 제안은 하지 않겠다니 의아한 것이었다.

물론 유진은 교황이 이렇게 나올 줄 알고 있었다.

-칭찬은 그렇게 줄줄이 하더니, 이상한 성격이구나.

‘아니. 그만큼 나를 잘 파악하고 있다는 거야.’

교황이 말을 이었다.

“유진 경이라면, 설령 태양신교의 2인자, 참모 자리를 내어 주어도 여기로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소.”

체첸이 화들짝 놀랐다.

-아니, 정말 2인자 자리를 주면 가도 되지 않겠느냐? 간혹 명문가에서도 태양신교에 귀의하는 이들이 있다고 들었다. 가문에서도 태양신교에 입교하는 것은 허용되고 말이다.

유진은 체첸을 무시하고 교황에게 물었다.

“어찌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대는 적절한 시기가 뭔지를 잘 알고 있는 것 같더군. 지금은 시기가 아닌 것 같았소.”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제가 입교 제안을 받아들일 것 같습니까?”

“5년 뒤, 20살이 된다면?”

이는 전생과 똑같은 이야기였다.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점이 있다면, 유진은 타이밍을 잘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분에 넘치는 대우와 직위는 독이라는 걸 알았다.

교황, 테오스는 그 점을 유진이 회귀한 뒤에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통찰력 하나는 여전하군. 능구렁이 같은 자식.’

저 깊은 눈매 속에 어떤 생각과 이지가 담겨있는지는 전생을 통틀어 보아도 헤아릴 수 없었다.

유진은 애써 소름을 숨기며 화답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하십니다.”

“그만큼 내가 유진 경을 눈여겨보고 있다는 걸 알아주면 좋겠소.”

“그렇다면 저를 부르신 연유가.”

“초신성 중 가장 뛰어난 자에게 맡기고픈 임무 하나가 있소.”

유진은 의외의 주제에 고개를 살짝 들었다.

“어떤 임무를……?”

테오스가 눈짓하자 고드릭이 품속에서 종이를 하나 꺼내 유진에게 건넸다.

유진이 문서를 읽어내려갔다.

‘기록의 탑 탐사 임무. 필요한 만큼의 군사를 무제한 지원하며, 난도가 높은 만큼 기간은 무기한으로 원할 때 임무를 수락하면 된다…….’

기록의 탑.

그곳은 그 누구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미지의 탑이었다.

그러나 분명 존재하는 곳이었으니.

‘테오스가 기록의 탑을 이 시기에 찾는 이유가 뭘까.’

그런 궁금증이 들었지만, 유진은 차분히 대답했다.

“영광입니다. 다만, 제가 수락해도 가문에서 사안을 판단하여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하하.

교황은 능글맞게 웃었다.

“유진 경 정도의 인물이라면 그 정도의 자유는 있을 거라 믿소. 다만 워낙 어려운 일이니 고민이 되겠지.”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한 임무를 나서는 동안은 일시적으로 교황 바로 아래 직위인 추기경의 지위를 주겠소.”

고드릭의 눈이 커지고, 유진도 흠칫 몸을 떨었다.

너무나 파격적인 제안이었기 때문이다.

-저 교황이란 놈이 너에게 단단히 빠진 모양이군. 네놈한테는 득 될 것밖에 없는데?

체첸의 말대로 유진 입장에서 딱 잘라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내가 원할 때 임무에 나서면 되는 일이다. 안 그래도 기사단 서열식이 코앞이라 무리였는데, 잘 됐어.’

게다가 오스틴의 수호 신수, 나막스탈스도 기록의 탑으로 가야 한다고 했었다.

‘기록의 탑은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전생을 겪었던 유진도 아리송한 곳이 바로 그곳이었으니.

‘교황을 죽이는 것과 더불어 나의 회귀에 관한 비밀이 그곳에 있는 게 아닐까.’

마침 태양신교에서 기록의 탑에 궁금증을 드러냈으니, 이는 분명한 기회였다.

‘어차피 찾으려고 했던 곳, 오히려 태양신교를 이용하면 훨씬 편하겠지. 나의 목표도 이루고,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좋습니다. 가문을 설득해서라도 임무를 이행하겠습니다.”

“호오?”

의외로 흔쾌한 수락에 교황이 처음으로 놀란 눈치를 보였다.

재능 독식자의 회귀는 특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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