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유진이 저렇게 수척해 보인 적이 있나?
훈련생 생활을 같이 했지만, 유진은 언제나 괴물 같은 회복력으로 유명했는데 이렇게 수척해지다니.
하지만 유진은 그런 건 개의치 않는 듯 형형히 빛나는 눈빛으로 동기들에게 말했다.
“엘도라. 내가 준 쪽지는 받았지? 형들하고 나눠 읽었어?”
“……어, 읽었어.”
그제야 라울러가 꽥 소리를 질렀다.
“아니, 그런 일방적인 약속이 어딨어! 난 설마 그거 때문에 불렀나 했네.”
인스 형제도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유진, 네가 제시한 훈련의 내용은 좀 비현실적이다. 한 달 동안 아무리 빡세게 굴러도 1성의 성취는 무리야.”
제인스가 거들었다.
“거의 죽음을 각오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아니면 획기적인 방법이 따로 있는 건가?”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유진이 아이들에게 넌지시 물었다.
“내 오러 수준은 들었겠지. 몇 성이라고 들었어?”
“……8성.”
“나도 할 수 있는 걸 왜 내 자랑스러운 동기들은 못 할 거라고 단정 짓고 시작할까? 열 받게?”
웃는 얼굴이었지만, 유진의 목소리에 담긴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깊었다.
애초에 그는 그런 성격이었다.
마음속으로 한계를 정하면 이룰 수 있는 게 어떤 것도 없다는 걸 전생에 아픈 몸으로 살면서 너무도 여실히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제 동료들이 약한 모습을 보이니 부아가 치밀었다.
“팔, 다리, 머리, 다 멀쩡하면서 뭐가 더 필요해서 성장이 거기서 멈춰 있는 거냐고.”
“네가 말도 안 되게 빠른 거지, 우리도 마냥 논 건 아니야!”
“그래, 매일 훈련하느라 밤잠 설칠 때도 많았다고. 너무 매도하지 마라.”
“어, 그러셔.”
유진이 이를 뿌득 갈았다.
“아예 못 자게 해줄게. 성취하지 않고는 잠도 안 오게.”
그의 살벌한 기세에 녀석들이 겁을 집어먹었다.
“앞으로 한 달. 모두의 경지를 1성씩 올린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 * *
동기들은 주작 기사단의 연무장 한구석을 차지한 채 유진의 설명을 들었다.
“이 모래시계를 이용할 거야.”
“그게 뭔데? 그걸로 훈련이 되나?”
“오러를 머금은 모래시계를 곁에 둔 채로 뒤집으면, 마법이 발동될 거야.”
“마법……? 어떤 마법?”
“모래시계를 중심으로 일정 반경을 수련 장소로 인식하고, 범위 안의 오러를 모두 흡수해.”
“그리고?”
“모래시계의 모래가 모두 떨어지면 반대로 훈련장소 안에 오러를 방출하여 회복을 돕지.”
“쉽게 말해서 오러에 의지하지 않게 도와준다는 말이네. 순수한 힘을 키워준다는 거 같은데.”
“엘도라 말이 맞아.”
하나, 의문이 들었다.
“근데 유진. 일주일 동안 방 안에서 틀어박혀서 한 게 혹시 이 모래시계에 관한 연구였던가? 그래서 피곤한 얼굴인 거냐?”
“그렇지.”
“근데 연구할 게 따로 있나? 그냥 오러 넣고 뒤집으면 우리가 알아서 신나게 구르는 거 아닌가.”
인스 형제의 질문에 유진은 어깨를 으쓱여 보일 뿐이었다.
‘기존에 있던 마법의 구조를 조금 바꿨지. 그 덕에 너희들은 더 힘들어지겠지만, 더 빨리 성장할 거야.’
굳이 이걸 말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유진은 라울러를 쳐다봤다.
설명을 듣다 말고 멍하니 딴생각을 하고 있는 모습.
“라울러 형.”
“…….”
“라울러 형!”
“어, 어어? 불렀어?”
유진이 눈살을 좁혔다.
“형의 미래가 걸린 시간인데 왜 집중을 못 하지? 무슨 일 있어?”
라울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 일…… 없어.”
이때 유진은 라울러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 눈치챘으나,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이따 무슨 문제가 있는지 한번 알아봐야겠어.’
“근데, 오러를 밖으로 빼내고 흡수하는 게 그렇게 대단한 건가? 힘이야 우리는 충분한데.”
아인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본적인 육체의 그릇이 되어야 높은 오러의 수준도 감당할 수 있다.
그 점을 간과한 인스 형제는 자만하고 있었다.
체첸이 혀를 가볍게 찼다.
-보아하니 인스 놈들은 6성 초반 정도 되는 것 같은데, 도대체 저 녀석들은 저 머리로 어떻게 경지를 달성한 건지 모르겠군. 어휴…….
다시 정신을 차린 라울러는 그나마 이해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대단한 성능이긴 한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한 달 만에 우리가 경지를 넘어설 수 있을까?”
“그건 그냥 나를 믿어. 그러면 돼.”
말이 끝나자마자 유진은 모래시계를 연무장 가운데에 두고는 오러를 불어넣었다.
말이 끝나자마자, 유진은 모래시계를 연무장 가운데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이들이 그 모습을 멀뚱멀뚱 보는 사이 자신의 오러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지이잉!
눈 깜짝할 새에 모래시계를 중심으로 커다란 원이 하나 그어졌다.
겉으로 보면 그냥 별 차이는 없어 보였으나.
“뭐가 어떻게 된…… 억!”
경계선으로 다가가 손을 뻗어본 라울러는 경계선에 높은 수준의 마법 결계가 걸려 있는 걸 알아챘다.
파즈즉!
전기 스파크가 튀면서 라울러를 강하게 밀어냈다.
“이, 이게 뭐야?”
“수련의 효율을 증가시키기 위해 외부와 이 공간을 차단했어.”
“왜……? 굳이?”
유진의 입꼬리가 한가득 찢어졌다.
“도망갈까 봐.”
“……!”
이는 유진이 밤을 새워가면서 개조한 마법 구조의 효과 중 하나였다.
* * *
모래시계는 뒤집혔다.
유진은 두말 않고 동기들에게 수련의 방식 간단히 직접 보여주었다.
스릉!
검을 꺼낸 유진이 아이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뭔데. 왜 그렇게 무서운 표정으로 칼을 들이밀어!”
라울러가 위협을 느끼고 제 창을 꺼내 유진을 향해 세웠다.
그도 그럴 게, 유진은 이때까지 보여준 적이 없는 살벌한 표정으로 그들을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59분 남았어. 그동안 살아남아. 아니면 팔이나 다리 중 하나는 날아갈 거니까.”
유진이 1성 수준의 오러를 꺼내 검에 휘감았다.
라울러는 의외로 유진이 꺼낸 오러 의 수준이 대단하지 않다는 걸 눈치채고 엘도라와 인스 형제에게 눈빛을 보냈다.
‘전력으로 공격해야 해. 녀석이 원하는 게 그거니까.’
‘하지만……!’
‘약한 소리 할 거면 그냥 팔 하나 내주던가.’
네 녀석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각자의 무기를 챙겨 들었다.
“간다.”
유진이 1성급의 오러로 검격을 휘둘렀다. 처음에는 인스 형제가 힘껏 검을 쳐냈다.
그간 훈련해 온 성과가 있는 모양.
그 살벌하던 표정과는 다르게 의외로 막는 게 어렵지 않았는지 두 녀석의 표정에 자신감이 깃들었다.
오히려 역공으로 두 개의 검을 동시에 내지른다.
유진은 그 공격을 몸을 비틀어 흘리며 히죽 웃었다.
“좀 할만한가 봐?”
“우리를 너무 얕봤어, 너! 그동안 허투루 지낸 게 아니라고!”
엘도라의 검격과 라울러의 창격을 동시에 귀신같이 피해냈다.
그리고 오러의 수준을 올렸다.
화악.
2성급의 오러였다.
이번엔 엘도라에게 감격을 찔렀다. 그녀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검을 올려 쳐내고는 버럭 소리쳤다.
“왜 네 진짜 힘을 안 꺼내? 빨리 제대로 하자고!”
“진짜 힘……?”
유진이 곤란하단 표정을 지었다.
‘내가 힘을 다 꺼내면 너네 다 죽어…….’
그 말을 굳이 할 필요는 없었기에 유진은 엘도라의 말을 무시하고 검을 휘둘렀다.
엘도라가 과감하게 검을 찔러넣으면 유진은 옆으로 쳐내 오히려 인스 형제를 향하게 했다.
인스 형제가 당황하여 뒷걸음질을 쳤다. 유진은 곧바로 따라가며 인스 형제에게 검을 찌르면, 뒷공간에서 라울러가 창을 내리쳤다.
유진은 빙글 덤블링을 돌며 창을 발로 쳐내며 다시 라울러를 공격하고, 옆에서 쇄도해오는 엘도라의 검을 두 손가락으로 잡아당긴다.
“어엇……!”
엘도라가 중심을 잃고 연무장 바닥을 낙법으로 착지한다.
그때, 여기서 라울러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아니 근데, 모래시계의 범위 내에서는 오러를 흡수한다면서? 너나 우리나 오러를 쓸 수 있는데?”
유진이 히죽 웃었다.
“얼마나 갈까? 지금 2분 지났어.”
“으응……?”
라울러가 오러홀에 감각을 집중하니, 뭔가 다른 점을 느꼈다.
원래 그가 쓰던 오러는 마치 화살처럼 모자라면 다시 휴식을 통해 보충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물이 차 있는 독이 깨져서 물이 줄줄 흘러나가고 있는 모양새였다.
2분밖에 지나지 않은 초반이었기에망정이지, 한 10분만 지나도 모든 녀석들의 오러는 소진될 터였다.
라울러가 이를 뿌득 깨물며 유진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러면 너는? 너도 오러를 못 쓰게 되는 거잖아!”
유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오러가 모자랄 일 없어.”
“……뭐라고?”
“모자랄 일이 없다고.”
체첸이 푸하하 웃었다.
-오러가 너무 많아서 그 정도 새는 건 끄떡도 없다 이거지. 크하하! 더럽게 재수 없는 녀석!
유진의 말뜻을 알아챈 라울러 일행이 일제히 유진에게 달려들었다.
지금이 아니면 유진을 제압할 기회가 없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유진이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해내라고 만든 훈련이 아니야. 미안하다, 날 용서해라.’
유진이 오러를 3성으로 끌어올렸고, 그가 정리해 놓은 검술 중 ‘중검’을 꺼내 가로로 크게 휘둘렀다.
“이 정도 느린 검격 따위는…… 엇?!”
쾅!
아인스가 호기롭게 검을 쳐내려다가 유진의 검을 정 그대로 멀리 튕겨 나갔다.
분명 느렸지만 그 검에 담긴 힘을 가늠할 수 없었다. 유진 특유의 묵직한 검은 오러를 잔뜩 꺼낸 인스 형제조차도 감당할 수 없었다.
이어 엘도라가 이를 꽉 깨물며 유진에게 검을 내리쳤으나.
“아악!”
중검을 밑바탕으로 한 유진은 방어는 마치 커다란 바윗덩어리 같은 내구도를 자랑했다. 엘도라가 뒤로 넘어지며 바닥을 굴렀다.
유진이 스산한 기운을 내뿜었다.
고작 3성의 오러를 꺼냈음에도 펜첼의 네 주작 단원이 맥을 못 추리고 흠씬 당하고 있었다.
라울러가 숨을 헐떡이며 유진에게 소리쳤다.
“유진! 진짜로 널 베야 이 말도 안 되는 훈련이 끝나는 거냐?!”
인스 형제도 신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이제 더 이상은 안 된다! 애초에 너 같은 괴물이랑 진검으로 싸우는 건 너무 위험하다!”
그에.
유진이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였다.
“팔 하나 날아갈 각오로 하랬지. 그게 꼭 너희 팔일 필요가 있어?”
“아무리 그래도……!”
“닥쳐, 전장에서도 그렇게 나약하게 굴 거야?”
라울러 일행은 오러홀의 오러가 점점 동나는 것을 체감했다.
그 점은 유진 또한 마찬가지였으나.
유진은 밑 빠진 독에서 새는 물보다 더 많은 물을 붓는 듯, 오러의 기세가 더욱 세지고 있었다.
라울러는 굳은 표정으로 유진을 노려보았다.
“굳이 오러를 못 쓰게 하는 이유가……!”
“이유? 잘 생각해봐.”
유진은 평소와 달리 너무나 단호한 태도였으니, 라울러가 이렇게 생각할 법도 했다.
하지만 이내 그는 유진의 의도를 알아챘다.
‘유진은 지금 우리의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오러를 천천히 올리고 있다. 그리고 모래시계의 효과 역시 오러의 수준을 가늠하기 위한 장치야.’
그렇다면?
‘오러를 있는 대로 다 꺼내고, 또 꺼내고, 나중에는 순수한 힘으로 싸워야 해.’
오러를 놔두고 왜 자꾸 신체의 능력을 길러야 하는가?
그에 대한 답은 라울러도 알고 있었다.
‘오러도 결국 몸에 담기는 기운일 뿐. 그릇이 커져야 한다는 거겠지.’
이쯤 되니 엘도라와 인스 형제도 눈치를 챈 것 같았다.
유진이 4성급의 오러를 꺼내며 내뱉었다.
“상징검술이든, 역전검이든, 팔천무극창이든, 합격술이든…….”
다 꺼내라고.
재능 독식자의 회귀는 특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