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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독식자의 회귀는 특별합니다-123화 (123/151)

123화

제이드는 보상에 관련한 내용을 알린 뒤 자리를 비켰다.

하지만 기사들은 지금도 제 앞에 제이드가 있는 듯, 숨을 천천히 고르고 있었다.

“가주님이 에이츠 산맥을 그 지경으로 만드신 건 헛소문이 아닌 것 같더군…….”

“후우, 숨쉬기도 힘들었어.”

제이드는 잠시 등장하여 공지사항을 전달한 것만으로도 기사단원들에게 커다란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그도 그럴 게, 제이드와 배니커 아힌이 에이츠 영지에서 싸운 뒤 전장에 남은 무시무시한 흔적을 남겼고.

더불어 에이츠 산맥이 통째로 박살 난 걸 모두가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는 소식지에도 사진으로 실려 그 처참한 광경이 보도된 적 있었으니.

과연 10성 기사의 수준은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영역에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증명한 셈이었다.

그에 따라 기사들은 제이드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심이 한층 더 두텁게 쌓인 상태였다.

여기서 한 가지 더.

“그런데, 그 미친 전장에서 살아남은 데다가 대장전에서 이긴 녀석이…….”

“저 녀석이란 말이지.”

기사들의 시선이 유진에게로 슬며시 돌아갔다.

유진은 굳이 오러를 뿜어내거나 기세를 드러내지도 않았지만, 청룡과 현무, 백호 단원들은 그저 유진이 배니커와의 대장전에서 이겼다는 것만으로도 그를 다시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느낀 체첸이 히죽 웃었다.

-클클, 저 눈빛 좀 봐라. 선망과 질투가 섞인 저 눈빛! 짜릿하겠구만, 그렇지 않느냐?

‘음? 누가 날 쳐다보고 있었나?’

-신경 안 쓰는 척하기는! 다 보고 있었으면서.

유진이 무덤덤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던 차였다.

“유진.”

그의 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클라크였다.

“현무단장님.”

“휴가 다녀온다고 하더니, 배니커와 대장전을 하고 왔다더구나. 게다가 승리까지 했다고.”

“아, 예, 뭐…….”

별거 아니라는 듯 웃음 짓는 유진에 클라크는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누가 주작 아니랄까 봐, 아주 그냥 지 맘대로야.”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해두죠. 그나저나, 단장님.”

“응?”

“저녁 한 끼 하시죠. 그때 대접받은 거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엘도라도 데리고 오셔도 되고요.”

“어? 정말이냐?”

클라크는 잠시 제 귀를 의심했다.

저녁 식사를 먼저 제안하는 유진이라니? 지금까지 펜첼에서 수년을 함께 지내면서 그런 일은 없었다.

유진이 어째서 먼저 식사를 제안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그랬기에 클라크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펜첼 전통 요리 음식점.

클라크는 엘도라와 나란히 앉아 유진을 마주 보았다.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삼촌.”

“검룡께서 식사를 다 대접해준다는데 당연히 와야지. 그렇지? 엘도라.”

엘도라는 근 몇 주 사이에 그라시안의 모래시계 안에서 유진에게 혹독하게 훈련을 받았다.

그 때문인지 엘도라는 이제 유진을 약간 기묘하다는 듯한 눈동자로 보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저렇게 독할 수 있는 거지? 이번에도 훈련 이야기를 하려고 날 부른 걸까?’

원래 유진이라는 녀석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엘도라를 놀래키곤 하였으니, 그녀도 이 저녁 식사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지 예상키가 어려웠다.

유진도 엘도라의 미심쩍은 눈빛을 받고는 피식 웃었다.

“특별한 이야기 하러 온 거 아니니까 너무 그렇게 노려보지 마, 엘도라.”

“큼…… 혹시, 날 개인적으로 수련시킨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음, 생각에 없었는데, 고려해볼게.”

“못 해, 안 해!”

그녀도 알아주는 수련광이었으나, 유진 앞에서는 주름 잡기도 민망했다.

물론 유진 덕분에 이제 7성을 코앞에 두고 있다는 점은 고맙게 생각했지만, 개인 수련을 했다가는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희는 전투 방식을 어떻게 나눌 셈이냐?”

클라크가 물었다.

서열식에서는 크게 3번의 전투가 이뤄진다.

첫째는, 기사단 내에서 제일 강한 자가 1대1로 맞붙는 전투.

둘째는, 검진을 펼칠 수 있는 최소한의 인원인 4인이 4대4로 맞붙는 전투.

마지막으로, 기사단 대 기사단으로 싸우는 전투였다.

그리고 각 전투에서는 같은 기사의 중복 참여가 불가능했다.

단장과 부단장도 서열식에 참여해야 했으니, 매번 기사단장이 참여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을 터.

더불어 3번의 전투 중 2번의 승리를 먼저 거둔다고 해도 승리로 인정되지는 않았다.

유진은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가 답했다.

“생각 중입니다. 더군다나 제가 단장인 위치도 아니라.”

“아닌 척하기는! 이미 뭐, 8성에 접어든 녀석이 두려울 게 뭐가 있다고.”

클클 웃음을 흘리던 클라크가 돌연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보탰다.

“유진.”

“예, 삼촌.”

“너의 성취가 뛰어나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 어떻게 보면 아직도 기고만장하지 않고 묵묵히 할 일을 하고 있는 네가 신기할 지경이야.”

“말씀 감사합니다.”

“하지만, 서열식은 개인의 능력만 좋아서는 성과가 좋지 못하다. 펜첼의 역사를 보았을 때, 뛰어난 기사는 많았지만,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기사는 흔치 않았어.”

“맞습니다.”

“물론 어딜 가나 마찬가지겠지만, 그만큼 단체와의 호흡은 어렵다는 말이다. 특히, 뮬 형님은 지략가잖니. 방심해서는 안 된다.”

유진은 클라크의 조언을 뼈에 새기듯 귀담아들었다.

그만큼 클라크가 유진을 생각하는 마음이 엿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현무는 어떻게 싸울 생각이십니까?”

“백호…… 시리우스 형님도 이를 갈고 있는 것 같던데, 흑지 파견 중에도 서열식 준비를 했다고 하더구나.”

“기발한 전략이라도 있을 것 같네요.”

“뭐, 우리도 생각 중이지?”

클라크가 장난스러운 미소로 응수하자 유진도 피식 웃었다.

‘흑지와의 실전 경험이 백호의 실력을 엄청나게 상승시켰을 거다. 나를 보던 눈빛에 확신이 있었어.’

유진은 안 본 척했지만, 시리우스가 쏘아 보내던 그 살벌한 눈빛을 기억했다.

“어쨌든, 난 주작과 현무가 맞붙는 장면을 꼭 보고 싶단다. 살살 해줄 테니까 꼭 올라와! 흐하하.”

농담조로 던진 말이었는데, 엘도라가 정색하며 말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온 길을 보면 주작이 1위를 할 거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어.”

“으응……? 아, 그, 그러니? 딸?”

“청룡이고, 현무고, 백호고, 다 쓸어버리자. 유진.”

살벌한 표정으로 내뱉는 말에는 정말 깊은 확신이 담겨 있었다.

클라크는 고개를 저으며 작은 목소리로 유진에게 물었다.

“얼마나 애들을 굴린 거냐……! 유진! 엘도라가 제정신이 아니잖아……!”

“다 들려! 아빠!”

“크흠.”

식사 막바지가 되면서 잡담을 나누던 중, 유진이 입을 열었다.

“방금 말씀해주신 게 떠올라서 말인데.”

유진이 잠시 말을 골랐다.

“뮬 삼촌이 요즘 새로운 검진을 개발 중인 것 같던데, 맞죠?”

“……그걸 어떻게 알았지? 그건 나랑 가주님만 알고 있을 텐데?”

검진(劍陣).

검을 늘어놓는 진영이란 뜻으로, 일종의 전술을 말하는 것이었다.

사실 유진은 전생의 기억을 통해 뮬이 새로운 검진을 개발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뮬은 유진 덕분에 전생과는 다르게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었지만, 그가 뻗어 나가고자 하는 길은 다른 삶을 살아도 같았다.

그는 지략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고자 하는 것이었다.

유진은 아무렇지 않은 듯한 얼굴로 거짓말을 했다.

“원래 뮬 삼촌께서 학문적 지식이 많으시니 서열식에 맞춰 새로운 전략을 가져오시리라 생각했습니다. 한 가지만 확인하려고 합니다.”

“신통력이라도 있는 게냐? 어떻게 딱 검진이라는 것을…… 허, 어쨌든, 확인하려는 게 뭐냐?”

“뭐냐면…….”

“아, 그런데 나도 알려줄 수 있는 데에 한계가 있다. 아무리 내가 너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서열식은 공평해야 하는 거니까.”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클라크의 말도 맞았다.

물론, 유진은 그렇게 대단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었다.

“뮬 삼촌의 새로운 검진, 펼칠 때 퍼지는 기운의 색깔이 뭡니까?”

“색깔?”

클라크는 의아한 눈을 떴다.

본래 검진의 색깔 같은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검진의 색깔은 그저 무작위로 정해지는 외적인 효과일 뿐, 파훼법이나 약점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진은 이상하게도 검진의 색깔을 물었다. 이는 알려주든 알려주지 않든 도움이 될 정보가 아니었다.

“뭐, 표현을 해보자면…… 청룡답게 푸른 빛이긴 하나, 묵빛이 섞여 조금 어두운 청색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근데 색깔은 왜 묻는 거냐?”

유진은 히죽 웃었다.

“그냥요. 영업 비밀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유진이 입가를 슥 닦고는 고개를 숙여 보였다.

“도움 감사합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어, 그래, 벌써 가는 거냐? 술이라도 한잔하지 그래?”

“아빠! 쟤 아직 15살이야.”

엘도라가 클라크를 찰싹 때린다.

“아, 그렇군. 근데 오러가 8성이면 취기도 안 오를 텐데…….”

“괜찮습니다. 들어가 볼게요.”

클라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유진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도대체 검진의 색깔을 알아서 뭘 하겠다는 거지?”

* * *

유진은 이번에 회귀자로서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기로 했다.

‘묵빛을 띤 푸른색. 그렇다면 청룡검진이겠네.’

청룡검진(靑龍劍陣).

이 검진은 펼침과 동시에 주변 적들의 감각을 무디게 만드는 전술을 나타냈다.

이 역시 유진은 전생에서 십여 년간 수십만 권의 역사서와 지식서를 탐독한 결과 그의 머릿속에 있던 지식 중 하나였다.

청룡검진은 아직 이 세상에 나오지 않은 것이었지만, 뮬이 처음으로 개발해내며 학술지에 실린 검진이었다.

물론 뮬은 오러 불구의 몸이었기에 청룡검진을 직접 펼쳐내지는 못했기에 증명해낼 수 없는, 이론뿐인 전술에 불과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당시 학술지에는 뮬 삼촌이 검진의 효과와 더불어 단점까지 모두 적어놓았었다. 그랬으니 파훼법은 쉬워.’

다만, 그 파훼법을 그대로 실행에 옮기려면 대단히 강한 힘과 체력, 그리고 정신력을 필요로 한다는 게 문제였다.

따라서.

‘주작을 아예 죽음 직전까지 몰아붙여서 훈련시켜야 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청룡검진은 파훼법을 알아도 속수무책이다.’

유진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자 체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죽음 직전까지 몰아붙여……? 서열식 전에 누구 하나 죽는 꼴이 나오겠구만, 허어.

‘너의 도움도 필요해.’

-으응?

유진은 전직 태양신교의 참모이자 총지휘관으로서의 면모를 가감 없이 드러내기로 작심했다.

-뭘 어떻게 도와주면 되는데?

‘청룡검진과 똑같은 효과가 담긴 진법(陣法)을 직접 만들 거야. 그리고 그 속에 주작을 전부 몰아넣을 거고.’

-그다음에는?

‘네가 주작 전부에게 정신 마법을 걸어줘. 최대한 강한 걸로.’

-에엥……? 그게 무슨?

유진은 청룡검진의 파훼법을 알고 있었고, 그에 따라 이를 역이용하여 청룡을 격파할 작전을 세우고 있었다.

그 파훼법은 바로, ‘감감운무진(感減雲霧陣)’이라는 진법이었다.

운무진(雲霧陳).

구름을 닮은 진영이라는 뜻으로, 때로는 미로나 상대를 교란하는 수법으로서 쓰이는 작전 중 하나였다.

거기가 감각을 덜어낸다는 뜻이 붙었으니, 감감운무진이랑 그 속에 들어가면 모든 감각이 무뎌지는 효과를 지닌 진법이었다.

이번 서열식으로서 유진은 많은 것을 얻게 될 터였다.

명예와 보상.

그리고 남이 가진 재능까지 말이다.

재능 독식자의 회귀는 특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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