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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독식자의 회귀는 특별합니다-128화 (128/151)

128화

연무장 내부가 지옥불과 같은 화염으로 가득 물들었다.

그나마 관중석을 경계로 오러 방벽이 설치되어 있었기에 관중들에게는 피해가 없었으나, 거센 불길에 화들짝 놀라야만 했다.

“가, 감스탄 경이 저런 기술도 쓸 줄 아셨나?”

“몰라, 조용히 해 봐!”

구염참의 마지막 공격, 구멸.

그 검격이 유클레이에게 닿는 순간, 유클레이는 거의 체념하다시피 했다.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었다…….’

분명 감스탄은 힘이 빠진 상태였는데, 어떻게 이런 엄청난 공격들을 아홉 번이나 연달아 쏟아낼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감스탄이 유클레이의 왼쪽 무릎을 향해 불꽃을 쏘아냈다.

유클레이는 몰랐을지언정, 저 약점에 구멸을 가한다면 감스탄이 승리할 수 있었다.

오러를 바닥까지 소진한 유클레이가 눈을 질끈 감았을 때였다.

화륵…….

감스탄의 검격이 중간에 멎더니, 연무장을 휩쓸어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치솟던 불꽃이 단숨에 사그라들었다.

“……?”

유클레이가 눈을 천천히 뜨면서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앞에서는 감스탄이 검을 바닥에 찍고 간신히 숨만 고르고 있었다.

“하아아…….”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리던 감스탄은 결국 자리에 주저앉았다.

관중석에서 아쉬운 듯한 탄성이 흘러나온다.

주작을 응원하던 이들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저었으며, 청룡을 응원하던 이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감스탄은 마지막, 구멸을 시전할 힘이 모자란 것이었다.

유클레이가 감스탄에게 뛰어가 손을 내밀었다.

“괜찮으십니까? 감스탄 경?”

감스탄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입가에 피를 닦아내고는 내뱉었다.

“내 패배네.”

유클레이가 무어라 말하기 애매하여 입만 벙긋하고 있자, 감스탄이 히죽 웃었다.

“이제 정말 은퇴를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군. 시간은 어쩔 수가 없구만.”

“무슨 말씀을, 아직 배울 게 많습니다. 은퇴는 꿈도 꾸지 마십시오.”

유클레이도 그제야 농담으로 받아치며 감스탄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는 감스탄의 손을 들어 올리며 관중들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관중들의 눈에 아쉬움이 깃들었다.

감스탄이 만약 마지막 공격을 성공했다면 이번 1대1 대전의 승리는 청룡이 아닌 주작의 것이 됐으리란 것은 관중들도 알고 있었다.

감스탄이 자리로 돌아가며 인스 형제를 돌아보았다.

“감스탄 부단장님……!”

그들은 방금 감스탄이 선보인 기술을 눈에 제대로 담았는지, 존경과 놀라움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인스 녀석들에게 영감이 됐으면 좋겠구만.’

감스탄이 옅은 미소와 함께 유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유진, 네가 돕지 않았다면 나는 유클레이에게 단 일 합에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비록 패배하긴 했지만, 그나마 이렇게 비등비등한 양상을 보인 것만으로도 감스탄은 제 역할을 다 해낸 셈이었다.

유진도 의외라는 듯 감스탄을 보았다.

‘유클레이 부단장이 흑지의 기술을 차용해서 새로운 걸 만들었군. 그게 감스탄 경에게 먹힌 거고. 예상외야.’

유진은 그 생각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청룡의 검진도 나중에 베껴서 내 걸로 만들 생각이었는데, 유클레이의 검사도 가져오면 좋겠어. 저걸 장미검술이나 삼염참…… 혹은 구염참에 섞으면 어떨까?’

그는 이미 남의 재능을 가져와 제 것으로 만드는 데에는 이제 통달한 상태였다.

지금의 유클레이의 ‘검사’도 대단히 인상 깊은 기술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길 거다. 청룡검진을 상대하는 건 예전의 주작이 아니라 완전히 달라진 주작이니까.’

체첸이 껄껄 웃었다.

-100년도 넘게 내려오던 주작 검진을 개조해보겠다는 녀석은 네가 최초일 거다. 정신 나간 녀석. 크하하!

유진은 그라시안의 모래시계와 더불어 감감운무진 속에 주작 단원들을 몰아넣으면서 단원들을 단련시켰다.

그 혹독한 단련의 결과 주작 단원들은 비약적인 성취를 이뤘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바로 주작 검진의 보강이었다.

‘완벽한 건 아니야. 다만 청룡검진에 완전히 반대되는 특징을 추가해서 서열식에 알맞은 검진으로 수정한 것뿐이지.’

-내 도움이 필요한 건 여전한가?

‘당연하지. 위대한 체첸님께서 화룡점정을 놓아줘야 이 서열식은 마무리될 수 있어.’

-크하하하! 그래, 그래. 100년도 넘게 펜첼에서 군림하던 이 사자의 정령을 무시할 이가 누가 있겠느냐!

‘좋댄다.’

유진은 체첸을 살살 구슬려 곧 이어질 단체전 대전을 준비했다.

체첸의 정신 마법은 아주 유용한 역할을 할 터였다.

* * *

4대4 대전은 곧바로 준비되었다.

감스탄의 분전을 목도한 유진의 동기들은 복수심이라도 타오르는지 짙은 투지를 내뿜고 있었다.

감스탄이 그들 옆에서 한마디 했다.

“인스, 이번에 너희들이 승리한다면 보상 하나를 내가 개인적으로 주마.”

“보상이요? 어떤 보상입니까?”

인스 형제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내가 오랜 세월 동안 갈고 닦은 구염참, 그걸 알려 주지.”

그 말을 들은 인스 형제의 눈이 불을 뿜었다.

안 그래도 구염참을 보며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더할 나위 없이 잘된 일이었다.

“다 찢어발겨 주마.”

아인스와 제인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나, 그렇다고 승리가 보장된 것도 아니었다.

카인을 비롯해서 청룡기사단원들은 한 줌의 방심도 하지 않는 모습이었으니까.

아니, 오히려 이번 경기를 이기면 청룡의 승리가 확실하기에 더욱 의지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유진이 라울러, 엘도라, 인스 형제에게 다시 한번 일렀다.

“청룡검진을 이기기 위해서는 현혹되지 않아야 해. 내가 말한 거 기억하지?”

“응. 눈을 감는다. 모든 감각을 차단한다.”

이는 유진이 감감운무진을 통해 훈련시키며 누누이 강조했던 말이었다.

하나, 아직까지도 라울러를 비롯한 4인은 유진이 알려준 이 괴상한 파훼법을 못 믿는 눈치였다.

적을 깨부수겠다는 열의와는 별개로 그 방법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게, 감감운무진을 통해 감각을 예민하게 만드는 법을 터득해 놓고, 다시 눈을 감고 감각을 차단하라고 하니 미심쩍은 것이다.

유진이 녀석들의 면면을 훑으며 답답하단 듯 말했다.

“우리가 했던 훈련을 생각해봐. 오감이 막힌 채로 나와 부단장님의 공격을 피하던 순간들 말이야. 너희들은 지금 생각보다 더 발전했어.”

“……응.”

“감감운무진에서 배운 게 뭐야? 감각이 아닌 본능을 믿으라는 거였잖아. 아직도 의심이 들어? 너희들은 본능을 믿었기에 그 훈련을 버텨낼 수 있었다고.”

확신을 실어주려는 듯, 유진이 평소 내지 않던 열을 내가며 목청을 높이자 네 명의 표정이 서서히 달라졌다.

“좋아. 믿을게.”

“내가 아니라 너희들을 믿어. 나도 믿을 테니까. 그리고 내가 말한 청룡검진의 약점, 잊지 마.”

라울러가 유진이 말한 약점을 천천히 되뇌며 자신의 발에 오러를 불어넣었다.

‘점프가 관건이다. 얼마나 높이 뛰어서 큰 공격을 하는지가 중요해.’

삐익!

에막스가 4대4 대전을 알리는 호루라기를 불었다.

* * *

아인스, 라울러, 엘도라, 제인스 순으로 배치를 한 주작이 맞은편에 있는 청룡의 4인을 응시했다.

카인 일행은 여전히 긴장감을 놓지 않은 채 주작 4인방을 응시했다.

그들은 이미 감스탄이 유클레이를 상대로 얼마나 드센 기세를 보여줬는지 목격한 바 있다.

그랬기에 아무리 꼴찌인 주작이라고 하더라도 경계를 늦출 수가 없는 것이다.

카인을 필두로 4인이 검을 세로로 바로 세웠다.

이어 그들이 오러를 서로에게 보내면서 순환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그들의 발밑에 검푸른색의 운무가 생겨났다.

“오……! 뭐지? 뭘 하려는 거지?”

“검진인 것 같은데…… 못 보던 효과야!”

청룡검진은 애초에 세상에 나온 적이 없기에 이를 처음 본 관중들은 탄성을 뱉어내며 눈을 크게 떴다.

라울러 일행도 침을 꿀꺽 삼키며 카인의 눈을 응시했다.

검푸른 운무가 바닥에 깔리기 시작하자 청룡 단원 넷의 입가에도 결국 미소가 그려졌다.

이 운무가 주작의 눈과 귀를 포함한 모든 감각을 차단하면 승리는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운무가 라울러 일행의 발끝에 닿고, 청룡이 검진을 펼치기 직전이었다.

질끈!

라울러 일행이 눈을 꽉 감았다.

관중들이 주작 4인의 기행에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항복하겠다는 건가? 뭐지?”

“새로운 기술인가……?”

청룡단원들도 순간 미간을 와락 찌푸리며 멈칫했다.

“뭐 하는 거지?”

카인이 따져 묻듯 하다가, 이내 표정을 진중하게 가라앉혔다.

“뭘 하든 상관없겠지. 청룡! 방심하지 마라.”

그도 지금껏 해 온 수련이 있었다.

상대가 뭘 하든 흔들리지 않고 자기 것을 해야 했다.

‘주작이 얼마나 훈련에 열중이었는지 나는 다 보았다. 이 또한 유진의 전략이겠지.’

운무가 연무장 내부에 자욱이 퍼진 지금, 라울러 일행은 심연에 갇힌 듯 감각이 무뎌질 대로 무뎌졌을 터.

타앗!

카인을 중심으로 청룡 단원들이 발을 굴렀다.

눈을 감은 라울러가 잠시 자신의 몸을 관조했다.

‘감각이 무뎌졌다. 감감운무진에서의 그 까마득한 어둠 속에 있는 것보다 더 막막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여유가 생기는 느낌이었다.

지금, 카인이 치닫고 있는 순간이 매우 느리게 흘러가는 듯했다.

본능.

동물적인 감각이 깨어난 것이다.

이윽고.

쐐애액!

오러를 한가득 담은 카인의 진검이 라울러의 복부로 향했다.

그러나.

채앵!

라울러는 눈도 뜨지 않은 채 그 검을 강하게 튕겨냈다.

“……!”

카인이 놀란 눈을 떴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공격을 이었다.

하지만 뒤이은 공격도 마찬가지였다.

다리를 노리면 다리를 방어하고, 가슴을 노리면 가슴을 방어했다.

청룡 검진으로 인한 검푸른 운무진이 분명 주작의 네 단원에게 먹혀들었을 것이고, 게다가 놈들은 눈까지 질끈 감은 상태였는데, 어떻게?

라울러와 엘도라, 아인스와 제인스는 제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청룡 단원들의 공격을 죄다 방어하고 있었다.

한쪽 기사단은 발에 돌덩이라도 올려놓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고, 한쪽 기사단은 분주히 공격하지만 싸그리 막히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보는 이들은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대체 뭐지? 왜 공격은 않고 방어만 하고 있는 거야?”

“거기다가 한 번도 안 베였어!”

“발이 땅에 붙었나?”

그 모습은 주작과 청룡의 전대 단주도 생생히 목격하고 있었다.

“……무슨 꿍꿍이인 거지.”

전대 청룡단주, 베르세이가 중얼거리자 달탄이 히죽 웃었다.

“꿍꿍이라기보다는, 실력의 차이 아니겠나?”

“그래봤자 방어만 하고 있는데, 무슨 실력의 차이?”

“보지도 않고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고 있는데, 공격에 나서면 결과가 어떻게 될까?”

달탄의 말을 듣기라도 한 듯, 라울러가 돌연 외쳤다.

“분석은 이쯤 했고, 이제 우리 차례다.”

라울러는 어떠한 시각이나 청각, 혹은 다른 감각에 기대지 않고 오로지 본능으로만 청룡의 검격을 막아냈다.

이는 유진의 감감운무진에서 피땀을 흘려내며 수련한 덕분이었다.

‘청룡검진의 약점. 청룡검진의 진형을 조금 무너뜨린 뒤, 카인을 위에서 노린다.’

포인트는 공중에서 아래로 공격을 가한다는 것이었다.

그 원리는 청룡검진의 진형을 파악하기 위함이기도 했으며, 운무의 밀도가 바닥보다 위쪽이 훨씬 낮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떠올린 라울러 일행이 마치 폭탄이라도 터뜨리듯, 커다란 오러의 폭발을 일으켰다.

꽈앙!

그와 동시에 청룡 단원들이 뒤로 튕겨 나갔고, 일정하게 유지되던 검진의 진형이 무너졌다.

그 찰나를 놓쳐서는 안 되었다.

끄덕.

라울러가 인스 형제에게 신호를 주었다.

그리고.

“……!”

카인이 제 눈을 의심했다.

바닥에 목석처럼 서 있던 라울러가 어느새 자리에서 사라진 것이다.

‘라울러가 없어졌어……?’

하나, 그 의아함은 이내 경악으로 변모했다.

눈동자가 위쪽으로 향하고 나서야 그는 발견할 수 있었다.

자신을 향해 팔천무극창을 펼치는 라울러의 모습을.

재능 독식자의 회귀는 특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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