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 독식자의 회귀는 특별합니다-142화 (142/151)

142화

몰테르가 자리를 뜨고, 그 사이 리처드와 릴리안이 대화를 나눴다.

“몰테르, 저 양반이 도박에 귀재라고 하는 것 같던데.”

“잘 맞추긴 하더라고요. 그래도 우리 아들이 백호가 쉽사리 이기게 두진 않을 거예요.”

릴리안을 보며 리처드는 머쓱하게 웃었다.

“그런데 나도 그냥 당신처럼 당당하게 올 걸 그랬소. 수염이고, 페도라 모자고…… 괜히 변장했어.”

릴리안은 쉽사리 대답하기 어려웠다.

“……미안해요, 여보. 그런 변장까지 하게 만들어서.”

“으응? 그냥 나 편하자고 그런 건데, 미안할 것 없소.”

리처드가 변장을 한 것은 펜첼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였다.

릴리안은 제 발로 나간 것이지만, 어떤 이들은 리처드가 릴리안을 빼앗아갔다고 보는 이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릴리안은 자신이 자기 집에 오는 데 변장까지 할 필요는 없다며 얼굴을 드러내고 다니긴 했어도 그녀 역시 될 수 있으면 조용히 다녔다.

리처드는 옅게 웃었다.

“나는 오히려 나 때문에 장인어른과 당신 관계가 멀어진 것 같아서 미안한데.”

자그마치 15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제이드와 릴리안의 관계는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말을 듣던 릴리안의 표정은 묘하게 밝았다.

“사실, 최근에 아버지에게 편지를 받았어요.”

“편지? 무슨 편지를?”

그녀가 품속에서 편지 몇 봉투를 꺼내 보였다.

딸아.

그간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단다.

네 마음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지난날이 후회되더구나.

네가 나의 딸로서, 나는 너의 아버지로서 아무 불편함 없이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때가 얼마나 소중한 순간인지 몰랐다.

미안하다, 딸아.

……

뒷장에는 리처드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있다며 그에게 사과하는 내용도 있었다.

정말로 이게 북벽 제이드가 쓴 편지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감성적인 문장이 한가득이었다.

‘장인어른께서 이런 면도 있으셨군…….’

북벽이라 불리어도, 그 역시 사람이라는 것일까.

리처드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져 설핏 슬픈 미소를 지었다.

“그 사이에 장인어른께서 마음이 많이 풀어지신 것 같군…… 전에는 나를 죽일 기세로 노려보셨는데, 후, 손수건이…….”

기어코 리처드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아유, 왜 울고 그래요. 당신도 참, 이럴 때 보면 감성적이라니까.”

“장인, 훌쩍, 어른께서, 훌쩍, 이렇게 바뀌실 줄이야……! 내가 더, 싹싹하게 잘해야 했는데!”

“아버지께 싹싹하게 구는 건 유진만으로도 충분해요.”

“그래, 훌쩍, 우리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다 일구어낸, 결과지……! 흐어엉!”

릴리안도, 리처드도 모두 이 모든 게 유진 덕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유진이 아버지와 나를 화해시키려고 서열식 1위를 약속했다는 거, 솔직히 그게 무슨 의미일까 싶었는데.”

“결국 아들놈 덕을 보는군, 크흑.”

물론 릴리안은 자신의 책임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결혼을 지지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그렇게 막무가내로 집안을 박차고 나오는 게 예의가 아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로베르 가에서도 펜첼에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나, 펜첼은 그마저도 거절하고 물려내며 자존심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제는, 서로가 자존심을 내려놓았다.

15년간 풀리지 않던 갈등의 고리는 유진에 의해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당신도 생각이 있는 거요?”

울음을 간신히 그친 리처드가 눈물 콧물을 닦아가며 물었다.

“뭘요?”

“장인어른과 관계가 풀어지면 주작의 단장 자리도 다시 앉을 수 있지 않겠소? 항상 아쉬워했잖소. 다른 이들은 몰라도 주작의 기사들은 보고 싶다고.”

릴리안이 즉답하지 않고 잠시 고개를 돌렸다.

펜첼의 남관이 있는 방향으로.

“그러면 좋겠지만.”

“말리지 않겠소. 다만, 일주일에 주말은 집에 온다는 조건으로…….”

“아니요. 난 당신이 더 좋은걸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제 펜첼에는 저보다 더 훌륭하고 젊은 기사들이 필요할 거예요.”

릴리안이 엘도라를 떠올렸다.

펜첼에 방문할 때마다 항상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이제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펜첼에서의 릴리안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주작 기사단의 단장 자리도 채워질 것이었다.

“이제 곧 유진이 오겠네요. 눈물 닦고, 재밌게 구경합시다. 으이구, 콧물 흐른다!”

“그럽시다! 킁킁.”

* * *

그 시각.

유진은 중앙 연무장에 들어서기 전, 다시 세워진 남관에서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었다.

-이제 가 봐야 하는 것 아니냐? 저 잡룡의 알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으휴, 그놈의 잡룡, 잡룡. 지겹지도 않나? 계약자님께서 괜히 내 알에 관심이 있겠어? 보는 눈 없긴, 쯧쯧.」

-콱, 꿀밤을 때려버릴라. 한 마디를 안 지는구만!

“조용히 해.”

유진이 아공간 주머니 속 화룡알에서 흘러나오는 화기를 잔뜩 흡수했다.

전에는 화기를 흡수하다가 아톰이 거부하면서 열기가 유지되지 않았다.

지크는 직접 흡수, 통과 흡수의 방법을 제시했고, 체첸은 타고난 속성을 예로 들며 다른 속성을 찾아보는 것도 권유했다.

하지만 유진은 정통적인 방법으로 가기로 했다.

‘묵광까지 탑재한 몸인데, 직접 흡수가 맞아. 정면 돌파해야지.’

백호와의 서열식을 치르기 직전인 지금까지 유진은 남관에서 무수히 많은 연습을 해왔다.

오죽하면 감스탄의 비기인 구염참, 구멸까지 쓸 정도까지 올라섰으니까.

게다가.

‘지크가 알려준 약점을 보완하면서 정말 완벽해진 것 같은 느낌이야. 등 뒤에도 눈이 달리고, 나의 모습을 멀리서도 볼 수 있는 것 같은 기묘한 감각까지.’

마치 여섯 번째 감각이 생긴 것처럼.

기감이 예민해지면서 유진은 화염을 더욱 기민하게 느낄 수 있었고, 조금 더 능숙하게 조절하여 체내로 흡수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화르르륵!

유진의 화룡검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불꽃이 응어리졌다.

직전에 주작 단원들에게 선보였던 구멸을 시전했을 때보다도 2, 3배는 강력한 불꽃.

스치기만 해도 모든 걸 불사를 것 같았다.

-뭐, 뭣……?

지크를 무시하던 체첸조차도 화들짝 놀랄 만큼 불꽃의 열기는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놀란 건 유진도 마찬가지였다.

‘이, 감각은 뭐지……?’

유진도 제 몸에서 뭔가, 전등이 하나 켜지는 듯했다.

자세히 몸속을 관조해보니,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원래 검과 내 몸은 따로였다. 그래서 신검합일도 반쪽짜리 기세밖에 보이지 못한 거였어. 하지만 지금은……!’

아톰에서 흘러나오는 오러가 손끝에서 끝나지 않고, 화룡검과 쿠란의 검의 말단부까지 이어져 있었다.

검과 몸이 일체화된 것이었다.

그 점은 지크와 체첸에게 곧바로 영향을 미쳤다.

「어? 어어?」

-내 몸이!

두 녀석의 영혼이 각각의 검에서 유진의 팔을 타고, 어깨를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모습이 세상 밖으로 직접 드러난, 실체화된 영혼이었다.

지크는 작은 화염으로 둘러싸인 아기용의 모습이었고, 체첸은 하얗고 작은 토끼의 몸이었다.

“너네!”

유진도 놀란 표정으로 지크와 체첸을 쳐다봤다.

원래는 둘 다 검 안에서 존재는 하되 유진에게 목소리만 전할 수 있는 상태였는데, 지금은 아예 그 실제 모습이 드러난 것이었다.

아마도 화룡알에서 흘러나오는 근원적인 화기가 아톰을 자극함과 더불어 유진의 극대화된 감각이 어우러지면서 완전한 신검합일을 이뤘고.

각 검에 녹아들어 있던 영혼, 지크와 체첸이 유진의 몸을 연결점 삼아 세상 밖에 나올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지크……? 네가 지크냐?

「네가 체첸이야?」

지크와 체첸이 서로를 감탄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네, 네놈. 아기용의 모습이구나…… 좀, 앙증맞은데?

「너, 너도 뭔가, 못생긴 대머리 정령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 작고 귀여운 토끼였어?」

그렇게 티격태격하던 둘은 서로의 외양을 확인하자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

생각보다 서로 귀엽게 생겼다고 여기는 모양.

하지만, 그뿐이었다.

-흥! 나는 더 귀여워질 수도 있다고. 새끼 사슴도 가능하고, 솜뭉치 같은 걸로도 변신할 수 있지. 그런 불꽃 같은 거추장스러운 효과는 하나도 안 부럽다.

「하! 토끼 구이를 해 먹어버릴까? 사슴 구이를 해 먹어버릴까? 말하는 본새는 여전히 별로네 정말?」

-토끼 구이라니! 말 다 했냐!

「어쩔 건데! 이이익!」

두 놈이 기어코 들러붙어서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유진은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피식 웃었다.

‘정령과 용혼(龍魂)이 실체화되어 밖으로 모습을 보였다는 건, 나와 녀석들의 관계가 더욱 가까워졌다는 거야. 게다가 녀석들은 앞으로 나에게 더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겠지.’

고대서에는 정령과 용에 관한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왔는데, 실제로 이러한 경우가 드물게 있었다고 한다.

‘지크는 나에게 불의 기운과 통찰안을 더 적극적으로 제공할 수 있고, 체첸은 정신 방벽이나 정신 공격을 더 효과적으로 쓸 수 있겠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각보다 이 자식들, 진짜 귀엽게 생겼네.’

체첸은 사자의 시험 때도 토끼 모습을 한 채 얼음 동굴을 안내했다. 아마 체첸이 좋아하는 동물인 것 같다.

물론 유진이 일부러 드러내지 않는 이상,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이 두 녀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 둘은 세상에 소속된 영혼이 아닌, 유진의 통제에 따라야 하는 영혼이니까.

그때, 화룡검의 안쪽에서, 어떠한 진한 떨림이 이는 것이 느껴졌다.

혹시?

‘어쩌면, 지크의 힘을 조금 더 일찍 확인해 볼 수도 있겠어.’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리던 유진이 시선을 아톰으로 옮겼다.

‘묵광 6성은 아직도 요지부동이야.’

이 정도로 화기를 흡수했는데도 묵광에 변화가 없다니. 아직도 때가 아닌 듯했다.

탓!

유진이 자세를 잡고, 삼염참부터 실험했다.

탓! 타앗! 타아앗!

앞으로 쭉쭉 뻗어 나가며 화룡검을 휘두르자 사나운 불꽃이 허공에서 연달아 터져 올랐다.

역시나 전보다 훨씬 강해진 위력이 엿보였다.

몸싸움을 하다 지친 지크와 체첸은 유진의 양어깨에 매달려 소리쳤다.

-또 연무장 무너질라! 조심하거라!

「대박이다……! 어떻게 그사이에 이 정도로 발전을!」

유진은 곧이어 구멸을 펼치려다가, 이내 검을 내렸다.

지크가 외친 외마디 비명 때문이었다.

「큭……! 자, 잠깐만요! 계약자님.」

‘왜 그래? 시간은 아직 남았는데.’

지크가 코를 격하게 씰룩였다.

「그게 아니라, 뭔가, 불길한 기운이 느껴져요. 아주…… 사악한 누군가!」

체첸은 또 자기 이야기를 하나 싶어서 입을 열려다가 말았다.

지크의 말에 유진도 기감을 확 펼쳐보았으나, 딱히 걸리는 게 없었다.

하지만 지크의 말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뭔 기운이 느껴진다는 거야?

체첸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유진이 기운을 거두어들이고 곧바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디야? 정확히 위치는?’

「분명 기운이 느껴지긴 하는데, 조금 더 돌아다녀 봐야 알 것 같은데……!」

유진이 입술을 짓씹었다.

‘시리우스인가? 아니면 그 끄나풀? 아니, 아니야.’

유진이 서열식을 코앞에 두고도 지크의 말에 크게 동요한 이유는 간단했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모인 자리에서는 테러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으니까.’

태양신교의 참모로 있을 적에도 큰 규모의 행사와 파티에서는 늘 인원을 더 풀어 경계를 2, 3배는 삼엄하게 유지했다.

어떤 이가 악의를 품고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해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흑지와 내통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시리우스가 펜첼의 고위급 인사로 있는 상황.

무슨 커다란 악재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여 지크의 말에 따른 것이다.

‘서열식이 직전이니, 악의를 품은 녀석은 분명 중앙 연무장 근처를 서성이고 있을 거다.’

중앙 연무장 외곽에 도착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이다. 가까이에 오니 살기 비슷한 게 느껴져.’

다만 유진은 이 기운이 생전 느껴보지 못한 낯선 것이란 걸 인지했다.

‘안 되겠어.’

몹시 안 좋은 예감을 한 유진이 재빨리 묵광 4성의 효과, 기척 숨기기를 발동하고 중앙 연무장으로 들어섰다.

테러의 표적으로 지목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건 당연히도 유진, 자신이었다. 그러니 우선 모습을 숨긴 뒤, 면밀히 주변을 살펴야 했다.

유진이 사람들 사이를 귀신처럼 옮겨 다녔다.

“유진 로베르 기사는 어디에 있는 거야? 왜 안 오지?”

“서열식 시간이 다 돼가는데.”

유진이 바로 옆을 지나가는데도 사람들은 그를 눈치채지 못했다.

「계약자님, 능력이! 와…… 뭐지?」

-하하! 우리 검룡이 이 정도라고! 너는 모르는 걸 난 알고 있다, 이 말이야.

괜히 체첸이 어깨를 으쓱인다.

유진은 그런 잡담은 들을 새가 없었다.

평범함 속에 어색함.

서열식도 서열식이지만,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이토록 진한 사악함이 흘러나오는 것인지 알아내야 했다.

어쩌면, 큰 사고가 터질 수도 있으리란 불길한 예감이 강하게 들었으니까.

재능 독식자의 회귀는 특별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