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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독식자의 회귀는 특별합니다-148화 (148/151)

148화

거울을 거둔 불칸이 옆에 있던 장로에게 말했다.

“장로, 유진에게서 여전히 느껴지는가? 혈석의 기운 말이야.”

회색 로브를 입고 찢어진 공간에 반쯤 걸터앉아 있던 장로가 대답했다.

“혈석은 여전히 유진의 몸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녀석의 몸에서 무르익었기에 유진의 신체를 가져온다면…….”

“내가 10성급에 도달하는 건 시간문제겠군.”

불칸이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품속에 있던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유리병 안에는 발이 셀 수도 없이 많은 검붉은 색의 큼지막한 벌레가 잘그락거리고 있었다.

이 징그러운 벌레는, 혈주술을 이용해 만든 ‘폭혈고’의 모체.

폭혈고의 새끼는 상대방의 뇌에 파고들어 조용히 숨어있다가 모체를 죽이면 폭발하거나, 숙주를 폭주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불칸의 명을 받은 제트는 시리우스를 포함한 상인들에게 폭혈고의 새끼를 귓구멍에 흘려 넣은 상태였다.

유리병의 마개를 딴 불칸이 폭혈고 모체를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는, 잠시 녀석을 응시했다.

“전사에게 긍지를.”

콰직!

그가 주먹을 움켜쥐자, 모체가 불칸의 손바닥에서 체액을 잔뜩 흩뿌리며 터져버렸다.

* * *

카인과 청룡 단원들이 유진이 끌고 나온 맥주 상인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카인은 비록 청룡에서도 말단으로 들어온 입장이었지만, 워낙 뛰어난 성적과 무위 덕분에 기존의 청룡 단원들과 동등한 위치에 서 있었다.

게다가 유진을 도울 기회가 있다면 망설임 없이 그를 도우라는 뮬의 명이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반발은 있었다.

“그런데, 카인. 아무리 유진이라지만, 너무 쉽게 말을 따르는 것 아니냐?”

충분히 일 법한 의문이었으나, 카인은 단박에 고개를 저었다.

“유진의 말대로, 이 전표가 모든 걸 말해주고 있습니다.”

카인이 상인들에게서 걷은 전표들을 펼쳐 보였다.

“전표치고는 조금 두껍고, 잘 찢어지지도 않습니다. 마치 일부러 찢어지지 않게 만든 것처럼요.”

“으음…… 전표를 만드는 공장마다 차이가 있지 않겠나? 그거 하나로 의심을 하기엔, 좀…….”

“그럴 수 있겠죠. 하지만 인상착의도 불분명한 자가 이런 수상한 전표를 이렇게나 많이 들고 다닐 리가 없습니다.”

애초에 전사의 요람과 흑마탑이 합작하여 만든 아티팩트인 만큼, 전표에 흠은 딱히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도 아닌, 유진이 말했잖습니까. 저는 쉽게 말을 따른 게 아니라, 당연히 말을 따른 겁니다.”

유진이 틀렸거나 헛다리를 짚은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의 옆에서 직접 훈련을 하고 성장의 도움을 받아온 카인으로서는 유진의 말이 가지는 무게를 무시할 수 없었다.

“현무가 없는 동안 우리의 임무가 막중합니다. 이봐요, 앞으로 남은 전표가 몇 장…….”

카인이 물어보던 때였다.

우뚝.

맥주 상인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어 섰다.

“뭐, 뭐야?”

청룡 단원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인이 미간을 좁히고 상인의 뒤통수를 응시하는데, 놈이 이상했다.

“크르륵. 크르르륵.”

놈에게서 가래 끓는 소리가 났다.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챈 카인이 검을 꺼내 들며 버럭 소리쳤다.

“당장 피하세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상인의 머리통이 폭발하며 커다란 굉음을 냈다.

상인의 살점이 사방에 비산하고, 흙먼지가 주위를 자욱하게 뒤덮었다.

미처 대비하지 못했던 청룡 단원 몇은 멀리 튕겨 나가버렸지만, 대부분의 단원들과 주변을 걷던 행인들은 무사할 수 있었다.

카인이 찰나에 꺼내든 상징검술 덕분이었다.

파지직!

카인의 상징이었던 적랑은, 어느새 발전해 청룡의 푸른색을 머금은 청랑으로 바뀌어 카인의 앞을 보호하고 있었다.

카인은 뇌전을 뿜어내는 검을 들고서 재빨리 눈을 굴렸다.

“부상자가……!”

“크아아악……!”

청룡 단원 두셋이 바닥에 쓰러져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터져버린 상인의 머릿속에는 맹독이라도 담겨 있었는지, 살점이 묻은 청룡 단원들의 몸이 연기를 내며 부식되고 있었다.

그 외에 미처 청랑의 보호를 받지 못한 행인 몇도 바닥을 뒹굴고 있다.

카인이 이를 뿌득 갈았다.

“마법 같은 건가……! 그렇다면, 설마.”

바닥에 흩뿌려져 있는 전표들이 눈에 들어온다. 맥주 상인의 품에 있던 것이었다.

카인이 아차, 하는 순간, 전표들이 새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저것들을 찢어발겨라!”

칼에 찔린 듯, 카인이 본능에 따라 발작적으로 그 전표들을 향해 청랑을 쏘아 보냈다.

뇌전이 솟구치며 전표들의 대다수가 순식간에 타올랐으나.

몇몇 장의 전표는 공중을 흩날리고 있었고, 이윽고.

뻐엉! 뻐어엉!

상인의 머리통에 이어, 전표들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꺄아아악!”

“포, 폭발……!”

미처 회수하지 못한 전표가 있는 지역에서 폭발음이 연달아 들려왔다.

끔찍한 비명과 귀가 멍멍할 정도로 커다란 굉음이 이어졌다.

* * *

시리우스의 얼굴에 혈관을 따라 붉은 기운이 뻗어져 나간다.

눈동자가 붉게 물들고, 불길한 기운이 사방에 퍼져나갔다.

“크으으으!”

성대를 거칠게 긁으며 인간 같지도 않은 기괴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도 모자라, 놈의 덩치가 점점 커지더니 옷을 찢고 붉은 털이 삐죽삐죽 드러나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주둥이는 호랑이의 것이나, 눈은 늑대의 것, 또 털은 사자의 것처럼 줄무늬가 없었다.

시리우스라면 백호의 형상을 띌 줄 알았는데, 이상할 정도로 기괴한 모양새였다.

“저, 저게 뭐야?”

“시리우스 경의 모습이……!”

“뭔가 이상하다, 이거, 보고만 있어도 되는 건가?”

관중석은 물론, 주작 단원들도 놀란 얼굴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다만, 전혀 동요하지 않고 무섭도록 덤덤한 얼굴을 한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백호 단원들이었다.

시리우스의 기괴한 변신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한 태도였다.

릴리안이 눈을 가늘게 좁힌 채 백호 단원들을 예의주시했다. 허튼짓을 하면 당장이라도 튀어 나갈 태세.

이어 시선을 돌리니, 자리에 있어야 할 전대 주작 단주가 모습을 감춘 상태였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게 확실한데, 섣불리 나설 수가 없어……!’

가장 위험한 자리, 시리우스의 눈앞에 자신의 아들이 서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이젠, 너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시리우스의 목소리가 울렸다. 마치 짐승이 말을 하듯, 두껍고 흉포하기 그지없는 목소리.

그 모습을 마주한 유진이 의문을 넣어둔 채 조용히 내뱉었다.

“문신화라니, 이제 분명해졌군. 더 볼 것도 없겠어. 언제부터 흑지와 내통했나?”

“내통이라니? 네놈도 쓰는 문신화인데, 나라고 쓰지 못할 게 뭐지? 나도 그저 너처럼 강해졌을 뿐인데.”

“차이가 있다면 나는 당당하다는 것이고, 너는 그동안 계속 감추어야 했다는 점이지. 통제하지도 못하는 힘을 가지면 죽음밖에 남지 않는다. 그것도 모르고 그저 강함, 강함…… 안타깝군.”

무엇이 저자를 저토록 어리석게 만들었는가?

시리우스의 목적이 펜첼의 가주가 되는 것이라면, 밟아야 할 계단은 유진이 아닌 과거의 자신일 터였다.

한데 시리우스는 오로지 무위만을 갖추어 경쟁자인 유진을 찍어누르려는 생각만 가진 것 같았다.

한 치 앞만 내다보고 사는 하루살이처럼.

“네 덕분에 내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 게다가 펜첼은 어차피 강자존이다. 강함 말고 무엇이 더 필요하지?”

“정도를 걸어야 문제가 해결될 터인데.”

“너를 죽여 없애는 게 정도를 걷는 것이다.”

유진은 시리우스의 말을 들으며 회귀 전 자신을 겹쳐보았다.

‘태양신교에서 인정받고, 권력을 가지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지. 힘을 가지기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어.’

물론 그 역시 태양신교의 2인자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경쟁자가 있었지만.

‘나도 이 정도로 경쟁자 제거에만 골몰하지는 않았어.’

척 봐도 시리우스의 문신화는 어딘가 이상했다.

문신화라 함은 각자의 몸에 새긴 동물이나 마수, 신수 등의 모습을 심상에 떠올려 변모하는 기술.

그런데 시리우스는 호랑이도, 늑대도, 사자도 아닌 웬 처음 보는 동물의 모습이었으니.

‘마치 조악한 조립품을 흉내 낸 것 같은 모습이다. 누구보다도 백호에 대해서 능통한 자가 백호가 아닌 굳이 저런 이상한 동물로 문신화를 펼친다니.’

아마도 전사의 요람에서 받은 저 혈석에 문신화를 가능케 해주는 기능이 담겨있긴 하나, 뭔가가 빠져 있는 모양이었다.

「저, 저건 도대체 무슨 동물입니까? 무슨 놈의 살기가……!」

-크으윽…… 귀가 오그라든다!

지크가 기겁하고, 체첸이 제 두 토끼 귀를 말아 감춘다.

채앵!

유진이 흑룡이 휘감긴 쿠란의 검과 화룡검을 앞세웠다.

괴물로 변신한 시리우스에게서는 전에 느껴보지 못한 기묘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겉모습이 괴상하다고 하여 우습게 볼 수는 없었다.

백호의 어금니에 이어 상징검술까지 나왔는데 또 남은 한 수가 있다니, 까도 까도 끝이 없었다.

‘아마도 문신화를 쓰는 건 최후의 보루였겠지. 자신이 흑지와 내통했다는 것까지 밝혀야만 하는 위험부담이 있었을 테니까.’

캬아아악!

흑룡이 경계심을 머금은 포효를 내질렀다. 녀석조차도 위협을 느낀 모양이었다.

이때, 유진은 흑룡의 포효를 따라 화룡검이 미세하게 떨려오는 것을 감지했다.

‘흑룡은 오른손에 쥐었다. 그리고 왼손에는 화룡의 열기를 머금고 있으니. 운이 좋다면…….’

그것이 나올 수도 있을 터였다.

쿵!

시리우스가 발을 구르며 유진에게 치달으려던 차.

쾅! 콰광! 콰아앙!

관중석에 앉아있던 몇몇 사람들의 머리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뭐, 뭐야!”

“폭발했어! 머, 머리가……!”

다시 보니 머리통이 터져나간 이들은 죄다 외부에서 들어온 상인 출신들이었다.

그들의 주위에 앉아있던 많은 수의 관객들이 깨어진 두개골 파편에 맞아 바닥에 쓰러져 고통을 호소했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연무장 사이에서, 전대 주작 단주의 목소리가 벼락같이 울려 퍼졌다.

“테러요! 펜첼 전역에서 시체를 이용한 테러가 벌어지고 있소! 서열식은 모두 취소되었으니, 당장 자리를 떠나시오!”

“미, 미친……!”

“도망가!”

사람들이 부리나케 자리에서 일어나 정문과 후문으로 달려나가는데,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스릉! 스릉!

연무장 안쪽, 시리우스의 뒤편에 도열해 있던 백호 단원들이 돌연 검을 꺼내 들더니-

“컥……!”

“왜, 왜 이러시오! 왜 우릴…… 크업!”

그들과 가장 가까이에 앉아있던 관중석을 향해 무자비하게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무 잘못도 없는, 무고한 이들이 칼에 찔리고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릴리안이 리처드에게 빠르게 말했다.

“여보, 당장 주작 단원들의 곁에 섞여요.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야 해요. 지금 이 테러, 펜첼에서만 일어난 게 아닐 거예요.”

리처드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릴리안.”

“사랑해요.”

“살아서 봅시다.”

리처드가 떠나고.

어느새 백호 단원들은 눈이 회까닥 돌아 관중들의 깊숙이까지 파고들어 그들의 전용 검술까지 꺼내 들고 있었다. 척 봐도 제정신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죽어라…….”

백호 단원 하나가 무언가에 홀린 듯, 표정 없는 얼굴로 검을 위로 쳐들고 한 아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안돼, 마일스……!”

주작 단원을 장래 희망으로 품은 어린아이, 마일스였다.

녀석의 어머니가 반응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마일스가 눈을 질끈 감았다.

재능 독식자의 회귀는 특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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