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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독식자의 회귀는 특별합니다-149화 (149/151)

149화

크직!

칼이 살갗을 파고드는 소리였다.

하나, 칼에 찔린 인물은 마일스가 아니었다.

“버러지 같은 놈들, 뭔가 이상하더라니.”

라울러가 백호 단원의 목에서 칼을 빼내었다.

“괜찮니? 마일스.”

“혀, 형……!”

마일스는 다시 마주한 라울러의 미소 어린 얼굴을 보며 다짐했다.

‘나는 반드시 주작 단원이 되겠어……!’

두 번이나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라울러에게 깊은 존경심을 가지게 된 순간이었다.

그때였다.

화아악!

붉은 광망이 라울러의 옆에서 잔뜩 휘날린다.

고개를 들어 보니 지금껏 라울러가 보았던 그 어떤 날개보다도 커다랗고 찬란한 두 개의 날개가 연무장에 드리워져 있었다.

홍익이었다.

그 날개의 주인은.

“주작이여! 북벽의 딸이자 전대 주작 단주로서 명한다. 지금부터 모두 백호기사단 단원들을 제압해라! 반항이 심하다면 죽여도 좋다.”

릴리안.

난장판이 된 상황 가운데 유진이 시리우스와 대치하느라 신경 쓸 여력이 없고, 감스탄도 부상을 입은 상태였기에 릴리안이 나선 것이었다.

주작 단원들, 엘도라를 비롯한 유진의 동기.

클라크, 금검과 궁귀까지도 릴리안의 지시에 따라 결연한 표정으로 백호 단원들에게 달려들었다.

* * *

주작 단원들이 백호 단원들을 상대로 혈투를 벌이는 사이.

유진은 이를 부서지도록 갈며 시리우스를 노려보았다.

“기어코 일을 냈구나, 시리우스.”

한데, 시리우스도 이런 일은 예상치 못했다는 듯, 당황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이건 내가 저지른 일이 아니다. 어째서, 갑자기…….”

유진이 버럭 소리쳤다.

“시리우스! 네가 아니라면 네놈의 그 얼어 죽을 양아들 짓이겠지. 뭘 모르는 척하고 있어? 배신당할 거라는 생각은 못 했나?”

“제기랄……!”

시리우스가 흑지로부터 제안받은 것은 간단했다.

-힘을 줄 테니, 유진 납치에 협조해라.

이후 제이드만 처리하면 펜첼의 가주 자리는 시리우스가 차지할 터.

가주가 되기 위한 단계를 차근차근 밟을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펜첼을 무너뜨려 버리겠다는 말은 없었다. 펜첼이 무너진다면 시리우스가 소가주가 되든, 가주가 되든 다 소용없는 일이 되니까.

한데 지금, 흑지 측에서 시리우스와 상의도 없이 펜첼에 대규모 테러를 가하고 있었다.

시리우스는 테러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아챘음에도, 유진의 예상처럼 영웅 행세를 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가 없었다. 이미 문신화를 꺼내 들어 흑지와의 관계를 드러낸 마당에, 영웅 행세는 의미가 없을 테니까. 더군다나 정상적인 사고를 하기에 시리우스는 이미 비정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당신, 이용당한 거라고.”

유진의 일침에 시리우스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감히, 나를, 나를……!”

“어찌 되었건, 당신은 죽어야 하는 운명이다. 일을 너무 키워버렸어.”

제 목표를 이루고자 적과 내통한 결과는 참담했다. 쓰이고 버려지는 신세, 일회용품이 따로 없었다.

챙!

유진이 두 검을 꽉 움켜쥐고 시리우스에게 다가갔다.

시리우스가 이용당했건, 배신당했건 유진이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아둔함을 버리지 못한 덕에 제 가족들과 제 집까지 벼랑 끝까지 몬 멍청이, 시리우스를 오늘 이 자리에서 처단해야 했다.

상황 파악을 끝낸 시리우스가, 돌연 자조적으로 웃기 시작했다.

“큭큭큭…… 결국 이렇게 됐군. 이 몸이, 이 시리우스가 속아 넘어갔…….”

그러다 웃음을 그쳤다.

비록 기괴한 괴물의 모습이었지만, 그나마 사람의 눈빛을 가지고 있던 시리우스였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눈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노, 놈의 머릿속에서 뭔가 변화가 생겼어요. 뭔가, 벌레 같은 게 터지는 소리가 들렸는데?」

유진도 기감에 걸려든 작은 파열음을 눈치챘다.

‘시리우스의 머릿속에 심겨 있던 뭔가가 터졌어. 그리고…….’

“크아아아아아!”

시리우스가 포효하자 강대한 오러의 파장이 쫙 퍼졌고, 반경에 있던 주작 단원들은 물론 백호 단원들까지 연무장의 외곽으로 강하게 튕겨 나갔다.

“컥!”

“무, 무슨……!”

주작 단원들이 화들짝 놀라 시리우스를 돌아보았다. 릴리안마저도 시리우스의 변화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응시했다.

“크윽……!”

심지어 그의 앞에서 마주 보고 있던 유진조차도 팔을 교차해 오러 방벽을 강하게 덧씌워야 했다.

「설마!」

‘……폭주다. 혈주술이 시전된 것 같아.’

-놈의 정신이 완전히 망가졌다!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니야!

쿵!

시리우스가 발을 굴렀다.

원래도 소름 끼치는 살기를 쏟아내던 시리우스가, 이제는 아예 격이 다른 기세를 퍼뜨렸다.

크드득, 크드드득!

연무장의 바닥이 깊이 깨어지며 파편이 공중으로 떠오른다.

백색이 아닌 흑색의 기운이 연무장 내부를 잔뜩 메우더니, 공기의 무게를 달리했다.

그 기운을 정통으로 맞이하던 유진이 순간 무릎을 휘청였다.

‘아무리 못해도 9성, 심마의 벽에 먹힌 건가?’

머릿속에서 폭주가 일어나면서 시리우스는 순간적으로 무위가 급증했고, 심마의 벽을 두들겼다.

그러나 제 몸을 통제하기는커녕 이성도 유지하기 힘들었기에 심마의 벽에 그대로 먹혀버린 것 같았다.

「시, 심마의 벽을 정상적으로 넘지 못하면, 본래 지닌 생명력까지 파괴력으로 승화해 모든 걸 부수고 죽는다…….」

-위험하다! 위험해! 도대체 저 자식은 껍질을 몇 개나 까는 것이냐!

곧이어, 유진은 시리우스의 몸 뒤로부터 칠흑 같은 어둠이 스멀스멀 드리우는 것을 목도했다.

자세히 보니 이 어둠은 시리우스의 팔을 타고 흘러나와 귀흑아를 거쳐 공기 중으로 나온 일종의 기운이었다.

저 어둠이 가지는 의미를, 유진이 피부로 체감하기 시작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시야도 점점 가려지고 있고, 미약하게 감돌던 시리우스의 연초잎 냄새도 거짓말처럼 사라졌어.’

어느새 어둠은 공간을 뒤덮어 시리우스와 유진, 둘만을 남겨놓았다.

그나마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있었다면.

‘바람.’

아마 주 속성으로 풍속성을 사용하는 시리우스였기에, 바람까지 지워버린다면 자신의 공격이 가지는 위력도 약해지므로 바람만은 남겨둔 것 같았다.

유진이 명경지수의 마음으로 연무장 안의 공간을 새하얗게 물들여 고도의 집중을 끌어냈다면.

시리우스는 귀흑아를 이용, 제가 가진 무위와 기세를 더하여 어둠을 빚어내 자신에게 최적화된 전투 환경을 갖춘 것 같았다.

이제, 오로지 감각만으로 시리우스를 상대해야 했다.

휘잉.

목 언저리를 스치는 얕은 바람의 촉감.

유진이 발작적으로 보법을 밟아 뒤로 빠졌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기에 속도는 빛과 같았다.

그러나.

피짓……!

목젖에 얕은 상처가 생기며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속도가……?!’

한 방울 피가 목줄기를 타고 흘러내린다.

아무리 월광계와 감감운무진, 청룡검진 등을 겪으며 차단된 감각 사이에서 벌이는 전투가 익숙해졌다고 하지만.

‘수준이 다르다. 촉감이 살아있는 상태인데도 대응하기가 까다롭……!’

심지어 문신화를 통해 내구도와 신속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린 상태였음에도, 시리우스는 그보다 빨랐다.

휭…….

이번에는 왼쪽 뺨에 바람이 스친다.

이번에는 조금 전보다 더 빠르게 반응했다.

하지만.

촥!

이번에도 공격을 허용했다. 조금이라도 반응이 늦었다면, 머리통이 사선으로 두 동강 났을 터였다.

이제 시작이었다.

어깻죽지와 팔, 다리, 복부, 급소와 더불어 정수리, 심지어는 등 뒤에서도 한 줌 미풍이 유진을 건드렸다.

그에 따라 유진은 필사적으로 보법을 밟아 빠르게 반응했지만, 단 한 번도 완벽히 회피해낼 수 없었다.

귀신의 속삭임처럼 다가오는 부드러운 바람은, 찰나도 되지 않아 살을 찢는 면도날로 변모해 유진의 몸에 상처를 쌓아갔다.

“크윽……!”

어디서, 어떻게 공격이 날아올지도 모르는 채, 유진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단 한 번의 방심은 곧 죽음이었다.

어느새 그는 피칠갑을 한 몸으로 숨을 헐떡였다.

반격은커녕, 공격을 피하거나 막는 것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으니까.

조그마한 성냥개비 하나만큼의 불빛이라도 있다면 상황이 훨씬 나아질 터인데.

잠시 마법을 사용해 광망을 소환해 냈으나, 그마저도 이 짙은 어둠에 잡아먹혀 이내 바스러졌다.

심지어는 왼쪽 손에서 불타고 있던 화룡검도 제 모습을 언뜻 비출 뿐, 주변을 밝히지는 못했다.

‘화룡의 불까지도 먹어치우는 어둠이라니, 도대체 시리우스의 힘은 어느 정도인 거지?’

화룡의 불꽃은 화룡이라는 신수의 힘을 빌렸기에 그 어떤 불빛보다 강렬하다.

그런데 이마저도 집어삼키는 어둠이라니, 아무리 9성의 시리우스라지만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정말 화룡이라도 나타나야 이 어둠을 밝힐 수 있을까?

그때였다.

‘잠깐, 화룡?’

유진은 서열식 직전, 연무장에서 화룡검이 미세하게 떨려오던 것을 생각해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쩌면 화룡을 불러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여전히 몰아치는 무수한 칼날의 바람 속, 유진이 지크를 불렀다.

‘지크, 네 힘이 필요해.’

「어떻게 도우면 되겠습니까!」

‘화룡의 성정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뭐라고 할 수 있지?’

「성정이요……? 그야, 물론 ‘분노’입니다! 불이라는 속성이 가지는 고유한 성질은 분노라는 감정과 매우 닮았기에, 화룡은 분노에 시초하여 탄생한 신수라 할 수 있…… 아, 설마!」

‘그러면 내가 가진 분노의 권능을 이용해볼 수 있겠군.’

가만히 생각해보니, 화룡검이 갑작스레 떨려온 이유 중 하나는 분노의 권능도 있었다.

유진은 배니커 아힌에게서 분노의 권능을 빼앗아 온 이후,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며 분노의 권능을 신체에 적용했었다.

당시에는 미처 알지 못했지만, 자연스레 분노의 권능이 유진의 몸에 녹아들었고.

신검합일을 완벽에 가까이 이루며 신체와 화룡검이 연결, 화룡의 령이 분노의 기운에 반응한 것이다.

탓…….

바람이 잠시 멎은 찰나, 유진이 눈을 감고 온 신경을 왼쪽 손에 들린 화룡검에 집중했다.

릴리안에게 화룡검을 받아 화룡을 불러낼 때는 무식하게 힘만을 이용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방법을 달리하여, 정석적으로 화룡을 불러내기로 했다.

‘교감을 해야 한다.’

물론, 유진은 지크를 잊지 않았다.

‘지크, 아공간 주머니에 있는 네 알 말고, 화룡검 자체에 화룡의 환영이 녹아들어 있을 거야. 진짜 화룡인 너보다는 훨씬 약하지만, 쓸만한 놈이야.’

「왠지, 연무장에서도 뭔가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딱히 보이질 않…….」

유진이 분노의 기운을 화룡검에 집중하여 불어넣자, 지크가 기겁했다.

「헉! 화룡의 환영이 조금 보입니다! 아니, 점점 더 진해지고 있-」

유진이 내뱉었다.

‘합체해.’

「예?」

‘합체하라고.’

교감의 끝이자 마지막은 ‘일체화(一體化)’.

유진과 계약을 맺은 지크는 곧 유진의 일부.

그러니 지크가 화룡의 환영과 교감하는 것은, 유진이 화룡의 환영과 교감하는 것과 동일했다.

유진의 말뜻을 알아들은 지크가 곧바로 화룡검 내부에서 일렁이는 ‘화룡의 환영’ 에 달려들었다.

그리고 이내.

화르르르륵!

「감히, 내 앞에서 어둠을 들이미는 자가 있는가?」

화룡의 환영에 녹아든 지크가 짙은 어둠을 뚫고 세상 밖으로 나와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재능 독식자의 회귀는 특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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