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10년이 더 지났다.
“지옥이 더 편하지 않을까?”
침대 위에 드러누운 카단이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은 앳돼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균형 잡힌 육체만 본다면 꽤 남성스러웠다.
‘지난 10년이 전생 34년보다 더 힘들었던 거 같은데?’
카단은 헛웃음을 지으며 지난 10년의 시간을 돌이켜 봤다.
후계자가 되기로 한 7살.
샬로트에게 네크로맨서 수업을 받기 시작하며 매일 책을 끼고 살았다.
샬로트의 사역마인 뱀파이어와의 과외 역시 꾸준히 이어졌다.
‘그때가 좋았지. 몬스터 도감을 보는 건 여전히 즐겁고.’
전생의 후회 중 하나가 공부였기에, 무언갈 배우며 지식을 쌓아 가는 것에 재미를 느꼈다.
특히 ‘몬스터’의 존재는 카단에게 흥미롭게 다가왔다.
8살이 되었을 땐 마나 하트를 만들었고, 마력을 기르기 위한 훈련이 추가되었다.
이 역시도 즐거웠다.
마나라는 새로운 존재를 마주하는 일은 설레는 일이었으니.
9살이 되었을 땐 언데드의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며 다양한 생물의 사체를 해부하고 뼈를 조립하는 시간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10살이 되었을 때.
‘이때의 쾌감은 평생 잊지 못할 거야.’
처음으로 언데드를 일으켰다.
비록 팔 하나 없는 미완성된 해골이었지만, 성공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11살이 되었을 땐….
‘사자도 새끼를 그렇게 키우진 않을 텐데.’
샬로트는 네크로맨서에겐 생존력이 필수라며 카단을 무인도로 보내버렸다.
그곳에서 죽는다면 그것 역시 운명이라는 말과 함께.
‘무인도는 너무했어. 시체만 몇 구 던져주고 생존하라니.’
텔레포트 마법으로 이동됐기에 탈출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버림받은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잠시. 카단은 함께 무인도에 온 시체를 일으킨 뒤,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아마 34살의 정신력이 아니었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13살이 되었을 때, 샬로트가 보고 싶었다는 말과 함께 무인도에 나타났고, 그제야 카단은 저택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제 좀 편해지겠지 싶었지만, 저택으로 돌아온 이후부터 카단에게 새로운 지옥이 펼쳐졌다.
‘반복의 지옥이랄까?’
네크로맨시는 물론 왜 배워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건축 이론과 대장장이 이론까지.
-재능이 없다고 좌절하지 마라. 재능쯤이야 노력으로 만들면 그만이다.
부족한 재능을 강제로 만들기 위해 훈련을 끝없이 반복했고.
-재능이 있다고 연습을 게을리하면 그 재능은 썩고 만다.
지닌 재능을 더 갈고닦아야 한다며 매번 같은 훈련을 반복했다.
그렇게 15살이 되었을 때.
샬로트는 네크로맨서의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겠다며 아무도 모르게 카단을 전쟁터에 데려갔다.
‘확실히 강해.’
전쟁터에선 네크로맨서의 위대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아군이 밀리던 상황이었지만, 샬로트의 등장만으로 분위기가 뒤엎어졌다.
‘전략 따위는 없었어.’
인해전술.
그것이 전부였다.
불사의 군단이 보여주는 압도적인 수의 폭력.
‘조폭과 비슷하단 말이지.’
말이 군단이지, 군대처럼 정돈된 멋스러움 따윈 없었다.
단순하고 무식한 돌격.
조폭들의 전쟁을 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모습이었다.
16살이 되었을 때부터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뱀파이어의 개인 과외가 중지되었으며, 샬로트는 이상하리만큼 빠르게 진도를 나아갔다.
기초를 강조하며 10년 가까이 기초만을 가르치던 그가, 느닷없이 이론을 중점으로 가르침을 이어갔다.
네크로맨서의 육성이 아닌, 네크로맨서가 될 수 있는 길을 알려주는 느낌.
이때부터 카단은 배움의 부담을 느꼈다. 해야 할 것이 많았던 그에게 하루라는 시간은 짧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17살이 되었다.
변한 건 없었다.
늘 기초부터 배웠던 것을 반복했고, 샬로트에게 배움을 받으며 하루를 보냈다.
‘아직도 기초 단계라니.’
후계자가 되기로 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카단이 이룬 경지는 고작 2성이었다.
1년 전부터 빠르게 진도를 나아가고 있었지만, 이론만 차곡차곡 쌓일 뿐이었다.
실전에 사용하기 위해선 더 많은 성취가 필요했다.
문득 궁금했다.
과연 지금의 자신은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충분한 힘을 지녔을까?
“모르겠다.”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은 애초에 하지 않겠다는 듯 카단은 몸을 일으켜 침대를 빠져나왔다.
“오늘은 하체 하는 날이군.”
조폭이었던 전생의 경험을 어느 정도 활용할 수 있다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네크로맨서가 된다고 무조건 생존을 장담할 수는 없는 일.
‘아버지도 그러셨잖아?’
샬로트 역시 네크로맨서의 약점이 ‘근접 전투’라는 것을 인정했다.
-걱정하지 마라. 적이 다가오기 전에 죽이면 그만이다. 그러면 약점이 없는 것과 다름없지.
카단은 샬로트의 말을 떠올리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버지처럼 강하다면 모를까, 지금의 나로서는 근접 전투는 위험해.’
그렇기에 카단은 꾸준히 몸을 단련해왔다. 비상시에 도망칠 힘이라도 길러놔야 한다며.
“이왕 다시 사는 거 오래 살고 싶으니까.”
전생의 마지막 순간 느꼈던 미련과 아쉬움을 다신 느끼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다시 죽을 때는 ‘잘 살았다’라고 느끼며 죽고 싶었다.
짝!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인지 손바닥으로 자신의 볼을 때린 카단은 곧바로 방구석에 놓인 쇳덩이를 향해 걸어갔다.
“하체가 모든 것의 중심이지.”
***
샬로트 저택의 식당.
딱딱!
뼈만 남은 해골들이 정장을 차려입은 채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그리고 식탁에는 두 남자가 앉아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느긋하게 이어지던 식사가 끝나고 식탁 위에 찻잔이 올려졌을 때.
“아버지.”
카단이 먼저 침묵을 깨고 샬로트를 불렀다.
“제가 아버지만큼 강한 네크로맨서가 될 수 있을까요?”
다소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샬로트는 어느 정도 예상하였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불가능하다.”
자상한 미소와 어울리지 않는 단호한 대답.
“네가 아닌 그 누구라도 나만큼 강해지는 건 불가능하지.”
자만이 아닌 확신이었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네크로맨서이자, 살아있는 전설이라 불리는 자만이 할 수 있는 말.
“그렇군요.”
그렇기에 카단은 실망과 의심이 아닌 수긍과 체념의 자세로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에라도 네가 죽고 다시 살아난다면 가능할 것이다. 나를 넘어서는 것이.”
죽음을 극복한 자는 더 강한 네크로맨서가 될 수 있다는 헛된 전설.
카단도 언젠가 책에서 본 적이 있었다.
“사람이 되살아날 수도 있는 겁니까? 아버지?”
“말이 되는 소릴. 되살아나면 그게 언데드지 사람이겠냐?”
샬로트를 넘어서는 것. 아니, 샬로트만큼 강해지는 건 앞으로도 불가능하다는 말로 들렸다.
“카단.”
“네. 아버지.”
샬로트가 찻잔을 들어 올리며 질문을 던졌다.
“강해지려는 이유가 무엇이냐?”
“살아남기 위함입니다.”
생존. 그 한마디에 샬로트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폐허가 된 도시 속에 홀로 살아남았던 아기는 본능적으로 생존을 위해서 살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아들아.”
쓴웃음을 삼킨 샬로트는 카단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강함의 목적이 생존이 되어선 안 된다. 그 당연한 목적이 너를 안일하고 나태하게 만들 것이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야망을 품어라.”
전생에도 딱히 야망이라는 것을 품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살기 위해 살아갈 뿐이었다.
환생한 지금 역시 그저 살기 위해 살아갈 뿐, 야망 따위는 품질 않았다.
“아버지는 어떤 야망을 품고 강해지려 하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카단에 질문에 샬로트가 방긋 웃으며 차를 마셨다.
“네크로폴리스를 찾으려 했다.”
네크로폴리스.
고대 네크로맨서들이 만들었다는 죽은 자들의 도시.
‘또 전설 속 이야기인가.’
고대 네크로맨서들의 지식과 고귀한 재료가 존재하는 곳.
네크로맨서들에게는 꿈의 땅이라고 할 수 있는 전설의 도시.
“그곳을 찾아 부족한 지식을 쌓고 더 성장하고 싶었단다. 지식의 갈증이랄까?”
“그곳은 전설 속에나 존재하는 도시 아닙니까?”
“나는 살아있는 전설인데?”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카단이 입을 꾹 다물자 샬로트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처럼 나에게 허황한 꿈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 그렇지만 난 헛된 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네크로폴리스가 있다고 내가 믿고 있으니, 그걸로 된 거 아니겠느냐? 난 아직도 믿고 있다. 그곳의 존재를.”
그 목표가 있었기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샬로트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찻잔을 기울였다.
“카단.”
“네.”
“강자에겐 생존은 어울리지 않으니, 생존에 절박해지지 않도록 강해지거라.”
“명심하겠습니다.”
지금이야 네크로맨시의 기초만 무한정 반복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불사의 군단을 이끄는 네크로맨서가 되는 날도 오겠지.
‘야망이라.’
카단은 잠시 자신의 미래를 그리며 찻잔을 들어 올렸다.
그때.
콰아아아앙!
어디선가 폭발음이 들렸고,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흔들렸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자연재해가 아닌 누군가의 공격이라는 것을.
“아버지!”
갑작스러운 상황에 카단은 식탁을 붙잡은 채 샬로트를 불렀다.
호로록-
그런데 샬로트는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으로 차를 마시고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
“아침 식사가 맛있어서 다행이구나. 좋은 대화의 시간이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당장 전투를 준비하고 다음 공격에 대비해도 모자랄 상황에 왜 이토록 여유로운 것일까?
“아들아. 이제는 내 그늘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온 것 같구나.”
“예?”
찻잔을 내려놓은 샬로트가 자신의 손가락에서 반지 하나를 빼냈다.
“이 반지 안에 너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담아 두었다.”
검붉은 보석이 박힌 백금색의 반지. 샬로트가 애용하던 마도구 중 하나였다.
“받거라.”
더는 미련 없다는 듯 담담하면서도 아쉬움이 담긴 표정.
“아니, 이걸 왜….”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한번 폭발음이 들려왔고, 이번엔 식당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이 전투를 너에게 보여주고 싶지만, 아무래도 힘들 것 같구나.”
도대체 공격해오는 이들이 누구기에 이렇게 약한 소리를 하는 것일까?
“저도 함께 싸우겠….”
“카단. 너는 지금 할 수 있는 게 없다. 알고 있겠지?”
냉철한 말이었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샬로트가 죽음을 각오한 전투라면 카단이 힘을 보탠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없을 테니.
“지금의 너로서는 내 이름을 감당할 수 없을 테니, 당분간 잉그마르의 이름은 버리고 살아라.”
자리에서 일어난 샬로트가 카단에게 다가갔다.
“아, 아버지?”
“네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때 다시 잉그마르의 이름을 쓰도록 해.”
그리곤 그의 손에 강제로 반지를 쥐여 주었다.
주름이 가득한 얼굴. 이제는 노인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애정이 가득했다.
“너는 내 아들이다. 나의 모든 것을 물려받은 내 유일한 제자다. 그러니 어디 가서 고개 숙이고 다니지 말고….”
콰아아아앙!
샬로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폭발음이 들려왔고, 이번엔 식당 벽면이 무참히 부서져 내렸다.
“더 얘기를 나누고 싶지만, 아무래도 그 시간마저 허락해 주질 않는구나.”
샬로트가 카단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아비로서의 말은 여기까지다.”
그 말을 끝으로 샬로트가 몸을 돌려 무너진 벽면 위를 향했다.
전보다 좁아 보이는 어깨. 그런데도 듬직함이 느껴지는 뒷모습이었다.
촤락!
무너진 벽면 위에 올라선 샬로트가 양팔을 넓게 벌렸다.
쿠웅!
그러자 그의 주변으로 수많은 언데드가 나타났다.
손짓 한 번에 불사의 군단이 나타나는 광경은 전율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딱딱! 달그락! 달그락!
늙어버린 샬로트와 달리 불사의 군단은 여전히 전과 같은 모습으로 경악스러운 강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제 이 아비는 오랜 친구들을 만나러 가봐야겠구나.”
무너진 벽면, 돌무더기 위에 선 샬로트가 고개를 돌려 카단을 바라봤다.
“덕분에 즐거웠다. 카단.”
따악!
말을 끝내는 동시에 샬로트가 손가락을 튕겼고.
“아, 아버지! 잠깐….”
동시에 카단의 몸이 환한 빛에 삼켜지며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파앗!
그 마지막 순간 카단은 보고 말았다.
무너진 성벽 너머로 보이는 리베라 왕국의 깃발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