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5화 (5/186)

제5화

입학시험 당일.

카단은 영웅 아카데미 시험 장소로 지정된 테누스 기사단 건물을 찾았다.

‘신분 제한이 없다더니, 사람이 꽤 많네.’

영웅을 꿈꾸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던가? 대기 장소인 공터엔 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

남녀 할 것 없이 근방에 사는 사람들이 죄다 모인 것 같았다.

이들 전부를 경쟁 상대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1차 시험은 남들과의 경쟁이 아닌 본인의 능력을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시험.

즉, 본인과의 경쟁이 될 것이다.

‘재능과 잠재력만 보여주면 된다고 했으니, 1차에서 떨어질 일은 없겠네.’

자신감에서 나오는 여유일까?

다른 사람들과 달리, 카단은 굉장히 여유로워 보였다. 긴장한 기색이라곤 찾을 수 없었다.

‘뭐, 떨어지면 어쩔 수 없지.’

카단은 이번 시험을 통해 현재 자신의 수준, 위치 따위를 파악해 볼 계획이었다.

17년간 실력을 비교할 대상이라곤 오로지 샬로트뿐이었기에 본인이 어느 정도의 실력을 지녔는지 파악하지 못한 상태.

합격 여부보다는 그것을 중점에 두고 있었다.

샬로트를 죽인 가디언들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는지, 아니면 턱없이 부족한지.

‘뭐, 시험이 끝나면 대충 방향성을 잡을 수 있겠지.’

혹시라도 탈락한다면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에 걸맞은 계획을 세우면 그만이었다.

‘왕국과 전면전을 벌이는 법도 있고, 외국에서 힘을 기르는 법도 있다.’

그렇다고 카단이 간절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탈락하면 어쩔 수 없겠지만, 확실히 합격하는 게 가장 빠른 길이다.’

강해지는 것도, 가디언들을 마주할 기회가 찾아오는 것도.

영웅 아카데미에 합격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안전한 길이었다.

어쩌면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가장 간절한 사람은 카단일 것이다.

‘갚아야지. 은혜도 원수도.’

카단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곤 시험을 준비했던 며칠간의 기억을 떠올렸다.

‘준비도 끝났으니.’

***

비겁한 사냥꾼의 던전 앞.

용병들이 여기저기 모닥불을 피웠고 그 근처는 술자리로 변해있었다.

“다들 얘기 들었어? 이번에 있었던 샬로트와 가디언들의 전투.”

“반역자 주제에 끈질기게 버텼다지? 왕국군을 상대로 3일씩이나 버텼다던데?”

술자리의 대화 주제는 ‘샬로트의 반란’이었다.

“영웅이던 사람이 왜 반란을 준비했을까? 돈이면 돈, 명예면 명예. 부족한 게 없을 텐데?”

“원래 가진 놈이 더 하잖아?”

“네크로맨서가 다 그렇지. 시체나 부리는 음흉한 놈들.”

살아있는 전설. 왕국의 영웅.

샬로트가 반란을 계획했고, 처형당했다는 사실은 왕국 전체를 떠들썩하게 했다.

“…….”

구석진 곳에 서 있던 카단은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숙였다.

던전에 왔다 우연히 용병들의 대화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결국… 돌아가셨구나.’

살아계시진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은 용병들의 대화로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시체는 어떻게 처리했대? 네크로맨서니까 리치 이런 몬스터로 부활할 수도 있잖아?”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영웅이었던 자가 리치가 된다면 재앙이지 않은가?”

“듣기론 성수를 뿌린 뒤 불로 태워버렸다는군. 참 다행이지.”

외면하려 했던 진실을 마주하게 되자 괴로움이 밀려왔다.

더는 듣지 못하겠다는 마음에 다시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샬로트의 가디언 자리는 아이작 교수가 잠시 맡게 될 것 같다던데? 사실인가?”

“아! 영웅 아카데미의 교수 말인가? 네크로맨서 중 샬로트 다음으로 유명한 사람?”

영웅 아카데미라는 단어에 다시 귀를 쫑긋 세워야 했다.

“지금 가디언들은 언제까지 그 자리를 지켜주려나?”

“요즘 다시 마족의 흔적이 발견된다던데, 조금 더 지켜주길 바라야지.”

“영웅 아카데미 출신 중 차기 가디언으로 꼽히는 자들이 고작 둘뿐이라더군.”

“적절한 세대교체도 필요할 텐데 말이지.”

세대교체.

대화를 엿듣던 카단이 피식 웃었다.

들끓던 분노가 사라진 느낌. 차분해진 머릿속엔 복수라는 단어만이 남게 되었다.

‘차기 가디언이 된다면 분명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성급하지 않게 준비하자. 카단은 그렇게 생각하며 던전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이봐!”

그때 용병 중 하나가 급하게 카단을 불러 세웠다.

“이 밤 중에 던전에 들어가려는 건가?”

“네.”

“아무리 하급 던전이라지만, 한밤중에 누가 던전에 들어가나? 그것도 혼자서? 쯧, 자살하려거든 다른 곳을 알아봐!”

카단이 들어가려던 던전은 하급 던전이었다.

보통은 용병패나 토벌 자격이 있는 병사만이 던전에 드나들 수 있지만, 하급 던전은 일반인도 드나들 수 있는 곳.

주로 용병을 꿈꾸는 이들이나 하급 용병들이 실력을 쌓기 위해 찾는 사냥터였다.

게다가 한밤중엔 몬스터들이 더 강해지기에 용병이 카단을 붙잡은 것이다.

“꼭 들어가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하루만 쉬고 내일 우리와 같이 들어가는 게 어때?”

용병은 걱정 어린 목소리로 제안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카단은 간단한 인사만 건넬 뿐, 그의 경고를 무시했다.

다시 걸음을 옮기는 카단을 보며 용병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어댔다.

“놔둬. 죽겠다는데 뭘 말려?”

“용병끼리 의리가 있지. 게다가 딱 봐도 어려 보이잖아?”

“의리는 개뿔. 저 녀석이 죽으면 제일 먼저 달려가서 짐 가방 뒤질 생각이지?”

“어허? 이 사람이! 내가 언제 그런 짓을 했던가?”

“걱정되면 따라가던가?”

“에잉. 됐네. 뭐, 나도 지켜야 할 가족이 있는데.”

카단을 말리던 용병이 던전 입구로 향하는 카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괜찮으려나? 앳된 용기에 저러는 거라면 위험할 텐데.’

그의 걱정과 다르게 카단의 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죽음을 각오했다기보단 어딘가 마실이라도 나가는 자의 뒷모습 같달까?

척.

던전 입구에 들어선 카단이 걸음을 멈춘 뒤 주변을 살폈다.

‘역시 이곳에 오는 건 아주 좋은 선택이었어.’

그리고 그의 얼굴엔 싸늘한 웃음이 옅게 피어났다.

‘시체가 가득한 곳이야.’

***

“카단 님 계십니까?”

긴 기다림의 끝에 카단의 차례가 다가왔다.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카단은 기지개를 켠 뒤 안내인에게 다가갔고.

“카단 님 맞으십니까?”

“네.”

“따라오시죠. 대기실로 안내하겠습니다.”

이내 안내인을 따라 기사단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대기하시다가, 저 문이 열리고 전 시험자가 나오면 곧바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안내인은 커다란 문을 가리키며 말했을 이었다.

“들어가면 감독관님들이 계실 겁니다. 그분들의 지시에 따라 시험을 진행하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혹시 대련 상대나 표적이 필요하십니까?”

“아뇨. 괜찮습니다.”

카단은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저었다.

안내인은 알겠다는 말과 함께 옆에 있는 의자에 몸을 기대앉았고, 카단은 주변을 훑어봤다.

‘음. 한 명씩 들어가서 시험을 보는 방식인가?’

2차 대기실로 보이는 방 안에는 카단과 안내인 둘 뿐이었다.

‘이러니 대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쯧.’

아무리 시험이 빠르게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공터를 꽉 채웠던 인원이 모두 시험을 보려면 하루도 부족할 것이다.

‘나는 그나마 빨리 보는 편이네.’

카단은 피식 웃으며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그 모습을 본 안내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긴장을 안 하네?’

보통 대기자들은 시험장 앞에서 심호흡하거나 몸을 풀며 긴장을 떨쳐내려 했다.

아니면 시험 삼아 본인들의 능력을 사용해보기도 하며 시험을 준비했다.

그러나 카단은 멀뚱히 서 있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보아하니 어디 귀족의 자제께서 구경이라도 오신 모양이군. 아카데미 시험이 만만한 게 아닌데. 쯧.’

안내인은 카단 몰래 혀를 차며 커다란 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철컥.

굳게 닫혔던 커다란 문이 열렸다.

‘한기?’

문이 열리면서 문 너머에서부터 차가운 한기가 밀려 나왔다.

동시에 그 한기와 어울리는 푸른 머리칼의 여성이 문을 통해 빠져나왔다.

“비켜.”

카단이 문 앞에 서 있자, 여성은 무감정한 눈으로 카단을 바라보며 말했다.

거만한 목소리와 말투, 거들떠보지 않는 듯한 시선까지.

‘불쾌한데?’

카단은 헛웃음을 지으며 여자를 바라보다가 옆으로 길을 내어주었다.

푸른 머리칼의 여자는 카단에게 관심도 없었는지, 그가 내어준 길을 따라 대기실을 빠져나갔고.

“바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안내인이 들어가라는 손짓과 함께 말을 건넸다.

카단은 고개를 끄덕인 후 곧바로 활짝 열린 문을 통해 시험장 안으로 들어섰다.

‘뭐야?’

시험장 곳곳이 얼어 있었다.

시원하다 못해 차가운 공기.

시험장이 아닌 냉동창고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방금 그 여자가 한 짓인가?’

운동장이라고 할 정도로 넓은 시험장 안을 얼어붙게 할 정도의 능력이라니.

‘실력자였네.’

카단은 내심 감탄하며 다시 시선을 옮겨 감독관들을 찾았다.

벽면 한쪽에 기다란 테이블과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고, 그곳엔 꽤 지쳐 보이는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시험장 곳곳이 얼어붙어 있었지만, 감독관들의 근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깨끗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감독관들은 모두 펜을 들고 무언가 열심히 적고 있을 뿐, 카단에게는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인사를 하고 가까이 다가갔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카단을 바라보지 않았다.

‘뭘 저렇게 열심히 적는 거지?’

사람들 앞에 서서 심사 당하는 기분이 꽤 낯설었다.

게다가 아무런 말도 걸어 주질 않으니 흘러가는 시간이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 죄송합니다.”

잠깐의 기다림 끝에 가운데 앉은 감독관이 카단을 발견하며 펜을 내려놓았다.

“아닙니다.”

“성함이?”

감독관이 지친 목소리로 카단에게 묻자, 다른 감독관들도 슬쩍 고개만 들어 카단을 바라봤다.

“카단이라고 합니다.”

사락.

카단의 말과 함께 감독관들은 옆에 쌓인 서류를 뒤적였고, 이내 가운데 앉은 감독관이 말을 건네왔다.

“평민 출신이시군요.”

“네. 맞습니다.”

평민이기 때문일까?

가운데 앉은 감독관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관심 없다는 듯 다시 고개를 숙이고 펜을 들었다.

“출신지는 테누스군요.”

말을 걸어온 감독관에게서도 기대감 따위는 찾을 수 없었다.

귀찮음을 감수하고 있는 듯한 표정, 지루함이 느껴지는 얼굴.

만약 샬로트의 아들이자 하나뿐인 제자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이들은 지금처럼 태평하게 카단을 심사했을까?

‘뭐, 지금 상황에서는 내 정체가 밝혀지면 붙잡혀 감옥에 가던가 살해당하겠지.’

카단은 피식 웃으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대련 상대나 표적 같은 건 필요 없으신 건가요?”

카단이 멀뚱히 서 있자 감독관이 다시 말을 걸어왔고, 카단은 살짝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네.”

“흠. 뭐, 준비되시면 지닌 능력을 보여주시면 됩니다.”

감독관은 지친 목소리로 말하며 손짓했다.

다른 감독관들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애꿎은 종이에 펜만 긁적일 뿐이었다.

“알겠습니다.”

분위기가 꽤 무거웠다.

정작 감독관들은 무관심한 태도로 앉아있었고, 그 누구도 카단에게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카단은 주눅 들어 하지 않았다. 그들의 무관심 속에도 카단은 평온함을 유지했다.

슥.

철저한 외면 속에 카단은 천천히 한쪽 팔을 들었고, 감독관들이 들을 수 없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죽음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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