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길버트 님이라고?”
“운도 없지. 하필 길버트 님의 시험이라니. 빌어먹을.”
“길버트 님의 시험이라면 가디언의 시험 중 가장 어렵기로 유명하잖아?”
가디언의 이름이 밝혀지자 수험생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영웅 아카데미의 2차 시험은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위험하다는 건 잘 아시죠?”
벨리드 교관은 수험생들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히쭉 웃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실제로 시험 중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언제든 여러분에게 포기할 기회를 드릴 생각입니다.”
왕국 내에서 손꼽는 재능과 실력, 그리고 잠재력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죽음의 공포를 떨쳐내긴 쉽지 않았다.
“포기할 생각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영웅이 아니더라도 여러분들은 왕국의 소중한 인재들이니까요.”
목숨보다 소중한 건 없습니다.
벨리드는 그렇게 말하며 해맑게 웃어 보였다.
사악함마저 느껴지는 벨리드의 미소에 수험생들은 마른침을 삼켜댔다.
그렇지만 포기하겠다며 손을 드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뭐, 시험 도중에도 포기하실 수 있으니, 언제든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벨리드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진행을 이어갔다.
“이번 시험은 3인 1조로 팀을 이뤄 진행할 예정입니다. 지금부터 팀을 구할 시간을 드리도록 하죠.”
그녀의 말에 수험생들이 놀란 듯 눈을 끔뻑거렸고, 그중 하나가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질문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벨리드는 여유롭게 시선을 옮기며 말해보라는 듯 손짓했다.
“팀을 지정해주는 게 아니라 저희가 알아서 팀을 맺으라는 겁니까?”
“네. 저희가 지정해주면 재미없잖아요?”
“하지만 저희는 아직 서로에 대한 정보가 없습니다. 목숨을 걸어야 할 시험인데, 아무런 정보도 없이 팀을 꾸리라뇨?”
몇몇 합격자들도 그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벨리드의 답변을 기다렸다.
“그럼 지금 여기서….”
순간, 벨리드가 차갑게 표정을 굳히며 말을 이었다.
“99명 모두 자기소개라도 해야 한다는 말인가요?”
“네? 아니, 그게 아니라….”
“준비성이 부족한 분들이 꽤 있는 것 같군요. 정보라면 풀릴 만큼 풀렸을 텐데?”
그 말에 수험생 몇몇이 당황한 듯 주변 눈치를 살폈고, 또 몇몇은 여유롭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1차 시험이 끝난 순간부터 시험이 시작된 거였네.’
그리고 카단은 헛웃음을 지으며 잭 카터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합격자들의 정보도 알려드리겠습니다. 정보가 빈약하긴 해도 충분히 도움이 되실 겁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다 알려드린다기보다는 주요 인물 위주로만 알려드리려고 정리까지 해놨는데?
잭 카터가 합격자들의 정보를 알려주려 했지만, 카단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거절했다.
‘일부러 정보를 풀었을 줄이야.’
극비로 진행되는 시험에서 합격자의 정보가 풀렸다는 것부터 의심해봤어야 했다.
“정보력은 영웅에게 필요한 자질 중 하나입니다. 안일하게 준비하신 분들은 반성하시길.”
카단이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무대 위에 서 있던 벨리드는 수험생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다행히 정보를 못 구했다고 탈락시키는 일은 없었다.
벨리드의 말에 카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뭐, 어쩔 수 없지.’
지나간 일을 떠올리며 후회만 해봤자 변하는 건 없다. 빠르게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면 그만.
“질문 있습니다!”
이번엔 맨 앞줄에 앉은 수험생이 손을 번쩍 들며 질문했다.
“네. 말씀하세요.”
“만약 팀원 중 한 명이 죽거나 도중에 시험을 포기한다면 남은 팀원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벨리드는 좋은 질문이라며 싱긋 웃어 주었다.
“팀원의 탈락, 사망, 포기와 상관없이 남은 인원끼리 시험을 진행하실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 때문에 탈락할 일이 없다는 사실에 수험생들은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질문은 여기까지만 받고, 진행을 이어가도록 하죠.”
계속 질문만 받을 순 없었기에 벨리드는 손을 든 수험생들을 외면하며 말을 이어갔다.
“지금부터 팀원을 구할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벨리드가 안주머니에서 모래시계 하나를 꺼내 들었다.
“모래시계의 모래가 아래로 다 떨어질 때까지 팀을 구하지 못한 사람은 탈락입니다.”
툭.
“그럼 시작할까요?”
말을 끝내는 동시에 벨리드가 모래시계를 뒤집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시간이 주어졌지만, 수험생들은 서로 눈치만 살필 뿐 적극적으로 움직이질 않았다.
합격자들의 정보를 얻은 사람들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얻은 합격자 정보만으로는 특정 인물을 단번에 알아보긴 힘들었다.
인상착의와 신분, 능력, 그리고 시험 점수가 정보의 전부.
그 정보만으로 원하는 사람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정보가 아예 없는 사람들의 상황은 더 좋지 않았다.
오로지 겉모습만으로 상대를 파악한 후 팀원을 구하거나, 정보가 있는 이들의 제안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팀원이라.’
카단 역시 아무런 정보가 없었기에 자리에 앉아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
‘내가 대충이라도 아는 정보는 그 여자뿐인데.’
주변을 살피던 카단의 시야에 1차 시험장에서 만난 푸른 머리칼의 여성이 들어왔다.
“허?”
그녀는 이미 수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팀원 제의를 받는 것처럼 보였다.
‘하긴 푸른 머리칼을 지닌 여성 마법사는 저 여자 하나뿐이구나.’
평범한 이들과 다르게 화려한 외모와 푸른 머리칼이 눈에 띄었다.
간단한 인상착의만 알고 있어도 그녀를 찾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인기가 많네.’
게다가 시험장을 얼려버릴 정도의 실력을 지닌 마법사.
찾아내기도 쉽고 능력도 인증되었다면 인기가 많을 수밖에.
‘뭐, 어차피 아직 사람은 많으니까.’
카단은 굳이 사람들 틈에 껴서 그녀에게 팀이 되어달라고 애원할 생각은 없었다.
‘1차 시험에 합격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실력은 인증되었겠지.’
굳이 그녀가 아니더라도 이곳에 모인 수험생들 모두가 뛰어난 인재들.
‘불편한 사람만 피하자.’
단체 생활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관계’였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분위기 자체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과 함께한다면 그 시간이 괴로울 것.
‘힘으로 해결할 일도 아니고.’
상하관계가 아닌 동등한 관계로 이루어진 팀이라면 상성을 고려하는 것이 더 좋았다.
‘어차피 인증된 실력과 능력보다는 성격을 위주로 구상해보는게 좋을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려던 찰나.
‘음?’
푸른 머리칼의 여성이 고개를 돌렸고, 두 사람은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뭐야? 왜 저렇게 봐?’
푸른 머리칼의 여성은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 카단을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뭐 잘못했나?’
카단은 고개를 갸웃하다 이내 헛웃음을 지으며 먼저 시선을 돌렸다.
‘다들 움직이기 시작했네.’
정보를 입수한 이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정보가 없는 이들 역시 여기저기 서성거리며 팀을 구하기 위해 조심스레 행동했다.
그때.
“이건 불공평합니다!”
한 수험생이 교관들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가며 크게 외쳤다.
팀원을 구하던 사람들의 이목이 순식간에 집중되었고, 교관들 역시 그를 바라봤다.
“정보를 살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정보를 구하란 말입니까!”
왜소한 체격의 남성.
“이건 차별입니다! 돈 많은 귀족만이 영웅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팀을 꾸려야 한다는 것도 잊은 채 남성을 바라봤고, 그는 쏟아지는 시선을 무시한 채 목소리를 높여갔다.
“영웅 아카데미가 귀족들을 위한 곳입니까? 평민도 영웅이 될 수 있다면서요? 아카데미가 공평하다는 것도 옛말입니까!”
점차 목소리가 커지자, 몇몇 생도들이 그를 제지하기 위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돈이 없는 게 우리 탓인가?”
그때, 벨리드 교관이 생도들을 멈춰 세우더니, 불만을 토로하는 남성을 향해 걸어가며 말을 이어갔다.
“조금 전에 정보력은 영웅의 자질 중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전보다 차갑고 날카로운 목소리. 해맑게 그려지던 주름이 없는 사나운 모습.
“돈이 없으면 벌어서라도 정보를 사던가. 아니면 정보를 훔치던가. 방법은 많았을 텐데요?”
감정하나 섞이지 않은 이성적인 목소리 때문인지 강당 안 분위기가 급격히 무거워졌다.
“그러니까 불공평하다는 겁니다! 귀족들은 손쉽게 정보를 얻고, 가난한 사람들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평민들은 어떻게 정보를 구하라고!”
차가운 벨리드의 대답에도 남성은 전혀 움츠러들지 않았다.
“정보력만이 영웅의 자질은 아니지 않습니까!”
오히려 전보다 더 큰 소리로 따지듯 외쳐댔다.
“네. 맞습니다. 정보력만이 영웅의 자질은 아니죠.”
벨리드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정보력이 부족하다면, 다른 능력을 키워야 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불만만 토해낼 게 아니라?”
이어진 벨리드의 말에 남자는 말문이 막혔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자 벨리드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인생은 원래 불공평합니다.”
“뭐, 뭐라고요?”
“귀족과 차이를 좁히고 영웅이 되고 싶다면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노력했어야죠. 죽을 듯이.”
벨리드가 무대에서 내려와 남자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정보력이 없으면 관찰력이라도 좋던가. 그러면 괜찮은 팀원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벅.
“보는 눈이 없으면 말재주라도 좋아서 누군가를 현혹하든, 설득하든 해보던가.”
저벅.
“그도 아니라면 실력이라도 뛰어나야지. 사람들이 알아서 달라붙을 정도로.”
척.
이내 불만을 터트린 수험생 앞에 선 벨리드가 무감정한 얼굴로 말했다.
“이런 쓰레기가 도대체 1차 시험은 어떻게 합격했지? 아, 이건 혼잣말.”
불만을 토로하던 남자는 억울하다는 듯 표정을 일그러트렸지만, 대꾸는 하지 않았다.
“자기 연민에 빠져서 상황 파악도 못 하고 목소리만 높이시네요? 저희가 당신들 투정이나 받아주려고 이곳에 있는 줄 아십니까?”
“저, 저는 그저….”
벨리드는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발음을 곱씹으며 말했다.
“영웅의 자질이 없네요.”
“……그게 무슨?”
“당신은 2차 시험에서 탈락하셨습니다. 시험에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생도들이 퇴장을 도와줄 겁니다. 그럼 이만.”
벨리드는 남자를 데려가라며 생도들을 향해 손짓했다.
“아, 마지막으로 하나만 알려드릴게요.”
몸을 돌려 자리로 돌아가려던 벨리드가 걸음을 멈추더니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남자를 쏘아보며 말했다.
“영웅은 불만을 토해내는 자가 아니라 해결하는 자입니다.”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그곳을 극복하고 해결하는 자가 영웅이고, 그 역시 영웅의 자질이다.
휙.
벨리드는 그렇게 말을 남기고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갔다.
“이, 이렇게 내가 탈락이라고?”
남자는 무대 위로 올라가는 벨리드의 뒷모습을 향해 악에 받친 듯 외쳐댔다.
“이렇게는 못 가!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내 남자가 주먹을 쥐고 벨리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척.
그러나 생도 하나가 빠르게 나타나 그를 제압했고.
“이거 놔! 놓으라고 새끼야!”
그대로 그를 질질 끌며 출입문 밖으로 빠져나갔다.
콰앙!
“…….”
출입문이 닫히는 동시에 강당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수험생들은 팀원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잊은 채 멍하니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멍하니 있을 때가 아닐 텐데요? 인원은 변함없습니다. 3인 1조. 팀을 구하지 못한 분들은 탈락입니다.”
그 침묵을 깬 사람은 무대 위로 올라간 벨리드였다.
“99명이면 33팀이 꾸려질 텐데, 이제 32팀밖에 못 꾸려지겠네요?”
비아냥거리는 듯한 그녀의 말에 합격자들이 놀란 듯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99명 중 1명이 탈락했으니, 앞으로 2명은 팀을 구하지도 못한 채 탈락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이.
‘해결하는 사람이라.’
카단은 자리에 앉은 채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버지도 늘 그렇게 날 가르치셨었지. 불만을 말하지 말고, 해결법을 말하라고.’
카단은 씁쓸히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때.
“네크로맨서. 카단? 맞지?”
누군가가 카단에게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금발의 남성이 보였다.
“그런데?”
카단이 고개를 끄덕이자, 금발의 남성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정보에 적힌 그대로군. 짙은 흑발의 건장한 체구. 검붉은 보석이 박힌 반지까지.”
아카데미에서 흘린 합격생들의 정보 중 카단의 정보는 금발의 남성이 말한 대로 적혀 있는 모양이다.
카단은 고개를 갸웃하며 남성을 바라봤고, 그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 내 밑으로 들어와라.”
거만하고 무례한 말투. 아주 기분 나쁜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