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그 말은 즉, 이걸 달라고요?”
벨리드가 헛웃음을 삼키며 손에 들린 스크롤을 들어 보였다.
“네. 보물이지 않습니까?”
카단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고, 뻔뻔하게 내뱉어진 그 대답에 벨리드는 다시 헛웃음을 삼켜야 했다.
‘이 자식 뭐야?’
설마 예시로 보여준 스크롤을 향해 보물을 찾았다고 하는 수험생이 있을 줄이야.
‘이런 상황은 상상도 해본 적 없는데?’
수험생 중 누군가는 카단과 비슷한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카단처럼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이는 없었다.
“제가 이건 보물이 아니라 예시용이라고 하면 어떻게 하시려고?”
남들보다 찾는 시간이 줄어들 것이고, 어쩌면 좋은 기회를 놓칠 수도 있었다.
‘설마’ 하는 생각으로 도전하기에는 무모하다고 할 수 있는 선택.
그러나 카단은 무덤덤하게 위험한 선택지를 골랐다.
“뭐, 그걸 주실 수 없다고 하신다면 지금이라도 다른 스크롤을 찾으러 가야겠죠.”
조금의 걱정과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는 대답이었다. 두려움은커녕 평온함이 느껴지기까지 하는 대답.
“곧바로 그 스크롤을 예시용이라고 하시지도 않았으니, 그것 역시 저희가 찾아야 할 보물이 맞는 것 같고요.”
여유로운 카단의 모습에 벨리드는 눈조차 끔뻑이지 못한 채 멍하니 카단을 바라봤다.
“이 스크롤에 담긴 마법이 텔레포트 마법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
“스크롤에서부터 은은하게 보랏빛 기운이 보입니다. 질 낮은 마법이 담긴 스크롤은 아니니,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
이어진 질문에도 카단은 똑 부러지게 대답하며 벨리드의 입술을 닫게 했다.
헛웃음을 참던 벨리드가 입꼬리를 올리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혹시 처음부터 이 스크롤을 노렸어요?”
“네.”
“왜죠?”
“아마 수험생들이 흩어지면 그것도 어딘가에 숨겨놓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한 번쯤 해볼 수 있는 발상이었다.
‘그렇다고 이걸 달라고 하는 미친놈은 없겠지.’
게다가 카단이 말대로 벨리드는 수험생들이 시야에서 사라지면 생도를 시켜 손에 들린 스크롤 역시 숨겨놓을 생각이었다.
“이거 참 난감하네.”
아카데미 생도도 아닌 수험생에게 한 방 먹었다는 생각이 드니 기분이 묘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정확하시네요.”
벨리드는 수험생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는지 인정한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이 스크롤 역시 수험생들이 찾아야 할 보물 중 하나였죠.”
그녀의 대답에 뒤에 서 있던 알비스는 놀란 듯 헛숨을 삼켰고, 칼리아는 멍하니 카단을 바라봤다.
“희미한 가능성을 보고 대담한 선택을 하시다니, 꽤 간이 크시네요?”
벨리드는 피식 웃으며 카단에게 스크롤을 건네주었다.
“숨기기 전에 찾긴 했지만, 당신의 말대로 이건 저희가 말한 보물입니다. 축하드려요.”
그러자 주변에 있던 교관들이 흠칫 놀라며 빠르게 벨리드를 향해 다가왔다.
그러나 벨리드는 손을 들어 그들을 멈춰 세웠다.
“아카데미 역대 최고의 속도로 합격하시게 되었네요. 부디 두 번째 시험도 통과하시길.”
벨리드는 어서 가보라는 듯 손짓했고, 카단은 스크롤을 건네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카단은 무표정한 얼굴로 걸어왔고, 알비스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말을 걸었다.
“카, 카단 씨. 이게 무슨?”
“보시다시피 보물을 찾았고, 저희는 합격한 거죠?”
카단은 뻔한 걸 물어본다며 피식 웃어 보였고, 이내 알비스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웃어댔다.
“하하…하….”
설마 이렇게 쉽게 첫 번째 시험을 통과하게 될 줄이야.
“어떤 몬스터의 서식지인지 궁금하지만 빨리 아카데미로 돌아가도록 하죠.”
“네? 아? 네. 그럴까요?”
그 어떤 목숨의 위협도 느끼지 못한 채 시험에서 합격하니 현실감이 느껴지질 않았다.
알비스는 어색하게 웃으며 칼리아를 바라봤다.
‘새로운 표정이네?’
만난 이후로 쭉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어이없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린 채 입을 벌리고 있었다.
“바로 찢겠습니다.”
카단이 스크롤을 펼쳐 찢으려 하자, 칼리아와 알비스가 재빨리 카단의 옆으로 달라붙었다.
찌이익!
두 사람이 모두 자신에게 달라붙은 걸 확인한 카단은 그대로 스크롤을 찢었고.
파앗!
동시에 번쩍하고 나타난 빛에 삼켜져 강당으로 텔레포트 되었다.
“베, 벨리드 교관님. 이래도 되는 겁니까?”
벨리드를 말리기 위해 다가왔던 교관 중 하나가 카단 일행이 사라진 걸 확인한 순간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네. 문제 될 게 있나요?”
“너무 쉽게 통과한 거 아닌가 해서요. 그래도 아카데미 시험인데….”
“네. 맞습니다. 벨리드 님. 이렇게 쉽게 통과시켜버리면 위에서 얘기가 나올 수도….”
그러자 다른 교관들 역시 걱정어린 말투로 질문을 던져왔다.
“제가 돈을 받은 것도 아니고 아는 사이도 아닌데, 형평성은 무슨. 무엇보다 저 수험생은 누구보다 합격에 어울리는 수험생인데요?”
예시용으로 보여준 스크롤이라며 카단에게 주지 않아도 문제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빨리 서식지로 가서 스크롤을 찾으라며 내쫓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벨리드는 그러지 않았다.
“방금 그 수험생의 팀은 그 누구도 다치지 않았고, 그 어떤 피해도 없었습니다.”
몬스터를 만나기도 전에 시험을 끝냈으니, 아무런 피해가 없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자칫 무모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으나, 결단력과 그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는 것 역시 영웅의 자질이었다.
카단은 단 한 번의 순간에 그 자질을 보여낸 것이었다.
“그게 가장 가치 있는 귀환이지 않을까요?”
물론,
“하지만 그건 교관님이 너그럽게 봐주셔서 그런 거지 않습니까?”
반박의 목소리도 들려왔지만, 벨리드는 피식 웃을 뿐이었다.
“자신의 선택이 틀렸다고 하더라도 아마 그 선택에 책임질만한 사람 같았어요.”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제가 사람 보는 눈이 좋잖아요?”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지만, 생각만 하지 않고 빠르게 판단하여 행동한 것만으로도 점수를 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보물을 찾은 건 사실이잖아요?”
벨리드가 단호하게 말하니, 교관들은 더는 따져 묻지를 않았다.
어차피 이번 시험의 결정권은 그들이 아닌 벨리드에게 있었으니까.
‘예시용으로 보여준 스크롤을 주지 않았더라도 분명 합격했을 거야.’
벨리드는 카단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꼭 아카데미에서 보고 싶네.’
그리고 벨리드의 시선이 카단이 서 있던 곳 뒤쪽에 있는 숲을 향했다.
***
아카데미 강당 안.
“호, 혹시 시험을 포기하신 겁니까?”
강당에서 합격자들을 기다리던 생도 중 하나가 갑자기 나타난 세 명의 수험생을 향해 물었다.
시험 장소로 이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갑자기 등장한 세 명의 수험생을 합격자라고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아, 아뇨! 합격했습니다.”
그러자 알비스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생도에게 말했다.
‘하긴, 포기했으면 포탈을 타고 왔겠지. 이 세 사람은 분명 텔레포트로 나타났다.’
이 정도면 아카데미 역대 가장 빠르게 첫 번째 시험을 통과한 수험생들이지 않을까?
생도는 헛웃음을 삼키며 세 사람을 바라봤다.
‘몬스터 서식지가 시험 장소였다면 이렇게 깔끔할 리 없는데.’
조금의 전투 흔적도 없었으며, 지친 기색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옷은 아주 깨끗했다.
무언가 편법을 쓴 것은 아닐까? 잠시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생도는 고개를 저었다.
영웅 아카데미가 성인도 되지 않은 수험생의 편법이 통하는 곳이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이곳에서 시험이 끝날 때까지 휴식을 취하시면서 대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생도는 강당 가운데 정렬된 의자를 가리켰고, 카단과 그의 일행들은 간단한 인사를 전한 후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알비스와 칼리아가 먼저 자리에 앉는 순간, 카단이 그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상의 없이 행동한 것에 사과드립니다.”
결과적으로는 안전하고 빠르게 합격을 얻어냈다지만, 자칫 카단의 행동에 두 사람이 피해를 볼 뻔했다.
카단은 그 사실을 인정하며 먼저 고개를 숙였다.
“괘, 괜찮습니다!”
알비스는 두 손을 휘저으며 괜찮다고 말했지만, 칼리아는 매서운 눈으로 카단을 노려봤다.
“무모했어.”
조용하던 칼리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자, 알비스가 놀란 듯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카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확률이 낮은 도박이었죠.”
카단이 다시 고개 숙여 말하자, 칼리아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결과적으로 합격했으니 됐어. 하지만 비슷한 상황이 오면 혼자 선택하지 말아줬으면 해.”
칼리아가 진중한 목소리로 충고하듯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화가 끝날 것 같았지만, 칼리아가 조금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 예시용으로 보여준 스크롤도 교관님들이 숨길 거라는 걸?”
“그저 운이 좋았습니다.”
카단은 굳이 길게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설명을 들을수록 그들에게 무모하다는 이미지만 더 짙게 심어줄 뿐이었으니.
물론 카단은 나름대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아무리 왕국의 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스크롤을 낭비하기엔 아깝겠지.’
아카데미 강당으로만 텔레포트 할 수 있는 마법 스크롤이 큰 가치가 있을까?
카단은 그저 아카데미가 예산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숨겨놔야 할 보물을 예시용으로 꺼내 보여주지 않았을까 싶었다.
‘정말 운이 좋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카단 씨가 감이 좋으신 것 같네요!”
냉랭한 분위기를 풀어보려 알비스가 애써 웃으며 목소리를 높였고.
“신중해지길.”
칼리아는 짧게 말을 끝내며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았다.
더는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신체 행동에 카단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알비스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파앗!
강당 구석. 카단 일행이 텔레포트 되었던 그곳에서 빛이 번쩍였다.
그 빛과 함께 세 명의 수험생이 강당에 나타났다.
“합격이다!”
그들은 카단 일행과 다르게 지저분한 모습이었다.
옷 곳곳에 몬스터의 피와 흙이 묻어 있고, 살이 드러난 곳엔 자잘한 상처들이 보였다.
꽤 험난한 시간을 보낸 듯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장 빠르게 합격했다고 생각했는지 다들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먼저 휴식을 취하고 있는 카단과 그의 일행을 발견한 순간 그들의 표정은 굳고 말았다.
심지어 자신들과 다르게 깔끔한 모습을 하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응? 저 여자는?’
새로 강당에 나타난 수험생 중 한 명이 낯이 있었는지, 카단이 고개를 갸웃했다.
푸른 머리칼의 여성.
1차 시험장에서 마주쳤던 그 여성도 표정을 굳힌 채 카단과 그의 일행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왜 또 저렇게 쳐다봐?’
푸른 머리칼의 차가운 시선이 기분 나쁠 법했지만, 카단은 여유롭게 웃어넘기며 먼저 시선을 돌렸다.
‘굳이 귀찮은 일을 만들 필요는 없지. 애도 아니고.’
피 끓는 청춘의 나이지만, 그의 영혼은 산전수전 다 겪어본 조폭의 것.
신경을 곤두세워봤자, 귀찮은 일만 늘어난다는 걸 카단은 알고 있었다.
“왜 우리를 저렇게 보는 거죠?”
푸른 머리칼의 여성과 그의 팀원들이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자, 알비스가 겁먹은 듯한 목소리로 카단에게 물었다.
“우리가 1등이니까 그렇겠죠.”
딱 봐도 그들의 얼굴은 자존심이 상한 이들의 얼굴이었다.
1등을 놓쳤다는 사실이 분했는지, 그들은 입을 꾹 다문 채 빈 의자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파앗!
푸른 머리칼의 여성과 그의 팀원들을 시작으로 첫 번째 시험의 합격자들이 강당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파앗!
강당 구석에서 빠르게 빛이 번쩍이며 사람들이 나타나니, 안내를 맡은 생도가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첫 번째 시험을 통과한 15팀이 모두 강당에 도착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교관이 주도한 첫 번째 시험이 끝났다는 걸 알리는 생도의 목소리가 강당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