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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네크로맨서-12화 (12/186)

제12화

우웅.

15팀이 도착했다는 생도의 외침이 있고 한참이 지나 강당 출입문 앞에 포탈 하나가 생겨났다.

곧이어 포탈에서부터 수험생들이 터벅터벅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앞서 들어온 합격자들처럼 그들 역시 지저분한 모습이었다.

피에 물들고 흙에 더럽혀진 옷, 크고 작은 상처까지.

그들은 대부분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탈락했다는 사실에 상심한 듯했다.

“먼저 지나가겠습니다! 부상자입니다!”

“부상자는 곧바로 의무실로 보내!”

크게 다쳐 생도들에게 업혀서 나오는 수험생도 몇몇 보였다.

그 모습들이 참혹한 시간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내, 포탈이 닫혔고 마지막으로 포탈을 넘어온 벨리드 교관이 탈락한 수험생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러분은 탈락하셨습니다. 부상자가 꽤 많지만, 사망자가 없어서 다행이군요.”

위로 따위는 없었다. 벨리드 교관은 탈락한 이들에게 더 냉혹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탈락자 여러분들은 생도들의 안내에 따라 신속히 아카데미에서 나가주시길 바랍니다. 다들 고생했어요.”

길게 말을 이어가지도 않았다.

그들에게 더는 미련이 없다는 듯 벨리드 교관은 등을 돌린 채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탈락한 분들은 저희를 따라와 주시면 됩니다!”

곧이어 아카데미의 생도들이 탈락자들을 데리고 강당 밖으로 빠져나갔다.

“제가 준비한 시험을 통과해주신 45명의 수험생 여러분. 고생하셨고 축하드립니다.”

어느새 강당 무대 위로 올라선 교관 벨리드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냈다.

좀 전과 다른 분위기로 말을 꺼내니 이질감마저 느껴졌다.

그러나 45명의 합격자들은 진중한 표정으로 이어질 벨리드의 말을 기다릴 뿐이었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즉흥적으로 호흡을 맞춘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다들 잘 해주셨습니다.”

그녀의 말대로 수험생들은 즉흥적인 상황에 크게 당황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 중 팀원을 골라야 했고, 낯선 사람과 호흡을 맞춰 몬스터 서식지 한복판을 돌아다녀야 했다.

그 와중에 마법 스크롤까지 찾아야 했으니, 꽤 고단하고 난감한 시험이었다.

“영웅이 된다면 이보다 더 즉흥적인 상황도 찾아오게 될 겁니다. 그때도 이번 시험처럼 잘 해결해내시길.”

그녀의 말에 수험생들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꽤 힘든 시험이었나 보군.’

그러나 몬스터를 만나기도 전에 시험을 통과해버린 카단과 그의 일행들은 전혀 공감하지 못한 얼굴로 벨리드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제 제 차례는 끝났고 이제 가디언의 시험만이 남았네요.”

그녀가 말을 이어가자, 지쳐 보이던 수험생들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여기만 졸업하면 새로운 인생이 펼쳐진다고 했어.’

‘이제 평민 생활도 끝이다. 무시했던 놈들부터 혼내줘야지.’

‘산 하나만 넘으면 끝이다.’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는 인원은 32명.

45명 중 13명만 제친다면 왕국 최고의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게 된다.

그 사실이 수험생들에게 의욕을 불어 넣어주었다.

의욕이 생겨난 수험생들의 모습에 벨리드 교관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말씀드렸다시피 최종 시험인 가디언의 시험을 담당하신 분은 길버트 님입니다.”

이어진 그녀의 말에 다시 한번 강당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가디언. 왕국의 수호자이자 마족으로부터 7인의 영웅 중 하나.

그에게 인정받아만 입학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긴장감이 더욱 짙어졌다.

“시험 전에 잠깐 휴식 및 점검할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참고로 가디언의 시험은 한 명씩 진행될 예정입니다.”

팀으로 진행되는 시험은 끝났다는 말에 수험생들은 자신의 팀원들을 격려하는 듯한 행동들을 취했다.

이제 아군이 아닌 경쟁자가 되었지만, 짧은 시간 안에 정이라도 든 모습이었다.

“자, 그럼 편하게 휴식과 점검의 시간을 보내시도록 하세요. 아! 부상자는 무대 아래쪽으로 오셔서 치료받으시면 됩니다.”

그 말을 끝으로 벨리드 교관이 다시 무대에서 내려왔다.

시간이 주어지자 수험생들은 각각의 방법으로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가디언. 곧 보게 되겠군.’

모두가 분주하게 시험을 준비하는 사이, 카단은 자리에 앉은 채 생각에 잠겼다.

꾸욱.

샬로트를 죽인 가디언 중 하나를 마주한다는 생각에 절로 주먹이 쥐어졌다.

힘이 들어갔는지 미세하게 그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고 그의 눈빛도 매섭게 변해버렸다.

‘쯧.’

카단은 짙은 한숨을 내뱉으며 눈을 감았다.

‘감정을 드러내선 안 돼.’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애써 그 감정을 억누르려 했다.

분노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의 수준으로는 제대로 된 공격도 못 해보고 가디언에게 죽임당할 것이 뻔했다.

‘아버지를 넘어서지 않는 한 복수는 꿈꿀 수 없어.’

샬로트를 넘어서는 네크로맨서가 아닌 이상 복수는 그저 꿈일 뿐이다.

‘목표를 잊지 말자. 지금은 복수가 아니라 정체를 숨기고 힘을 기를 때다.’

때가 아니다. 카단은 그렇게 말하며 분노를 억눌렀다.

가디언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리는데, 직접 마주한다면 얼마나 더 화가 날까?

카단은 괜히 처음부터 오해받을 만한 모습을 보일 생각도 시험장에 들어가 가디언과 싸울 생각도 하지 않았다.

눈에 띄지 않게 시험만 통과하면 된다.

‘괜히 섣불리 행동해서 계획을 망칠 순 없지.’

복수의 대상 앞에서 감정을 숨기는 게 쉽진 않겠지만, 어떻게든 해내야 했다.

아무런 감정 없이 가디언을 마주해야 했다. 분노를 드러낸다면 괜한 오해를 받을 것이다.

다른 이들처럼 존경을 표현할 수 없더라도, 적대하는 감정을 보여선 안 됐다.

카단이 분노를 삭이기 위해 눈을 감는 순간.

“재수 없는 낯짝을 또 이렇게 보게 되다니. 너 운이 좋았나 보다?”

누군가 다가와 카단에게 말을 걸어왔다.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보니, 첫 번째 시험 전 카단에게 팀을 제안했던 금발의 남성 ‘라이덴’이 보였다.

‘이 녀석도 통과했나 보군.’

높은 자만심을 받쳐줄 실력은 있었나 보네. 카단은 어깨를 들썩하며 라이덴을 바라봤다.

‘뭐야? 이 자식 왜 이렇게 눈빛이 매서워?’

하필 카단이 분노를 다스릴 때 찾아왔기에, 카단의 눈에는 아직 차가운 살기가 담겨 있었다.

‘재수 없는 새끼. 평민 주제에 귀족을 저딴 눈으로 쳐다봐?’

잠시 위협을 느꼈지만, 이내 자존심에 상처가 생긴 라이덴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 운이 다음 시험에서도 따라주길 기도나 하라고. 하찮은 평민이 가디언 님의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라이덴이 비아냥거리듯 말했지만, 카단은 그의 말에 눈빛조차 흔들리지 않았다.

“행운을 빈다는 뜻인가? 고맙군.”

자존심을 굽히지 못하고 시비를 걸기 위해 찾아온 어린 귀족.

굳이 상대하기도 귀찮았는지, 카단은 지루하단 표정을 지으며 라이덴을 외면했다.

‘이 자식이….’

라이덴은 말 문이 막혔는지 입을 꾹 다문 채 부들부들 떨어댔다.

아무래도 평민에게 또 한 번 무시당했다는 사실에 상처받은 것 같았다.

“할 말 없으면 그만 가도록 해. 할 게 없으면 무릎 꿇고 사과하는 법이라도 배워두던가.”

카단은 가보라는 듯 손을 저어댔다.

“이 자식이!”

명령하는 듯한 카단의 말투에 라이덴이 화가 난 듯 주먹을 휘두르려 했다.

“거기 수험생?”

그러자 근처에 서 있던 생도 하나가 라이덴을 불렀고, 라이덴은 이를 악문 채 그를 노려봤다.

“정비하라고 주어진 시간입니다. 소란을 피우신다면 즉각 탈락 처리하겠습니다.”

단호하고 차가운 생도의 말에 라이덴은 주먹을 풀며 손을 제자리로 돌려놨다.

“다시 한번 말하는 데 너 꼭 합격해라. 탈락하면 차라리 죽는 게 더 좋겠단 생각이 들게 해줄 테니까.”

라이덴은 협박하듯 말을 내뱉고는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재밌는 놈이네.’

카단은 그런 위협에도 조금도 타격을 입지 않았는지 피식 웃으며 멀어지는 라이덴을 바라봤다.

“카단 씨. 괜찮으세요?”

라이덴이 멀어지자, 알비스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네. 뭐.”

괜찮을 것이 없을 정도로 괜찮았던 카단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알비스는 조금 전 상황을 지켜보면서 죄책감을 느꼈는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괜히 저 때문에…. 마음이 편칠 않네요. 사과 같은 거 받지 않아도 정말 괜찮은데….”

카단이 자길 위해 나서줬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고맙기도 했지만, 그만큼 걱정되기도 했다.

“만약 카단 씨가 아카데미에 입학하지 못한다면 정말 힘들어지실 텐데….”

“혹시 제가 떨어지길 바라시는 겁니까?”

카단은 그런 알비스의 말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 아뇨! 그런 뜻이 아니라!”

“이미 벌어진 일이고, 제가 나서고 싶어서 나선 일입니다. 전 정말 괜찮으니까 맘 편히 시험 준비하도록 하세요.”

카단은 신경 쓰지 말라는 듯 피식 웃으며 말했고, 알비스는 입을 삐쭉 내민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알비스 씨도 저랑 한배를 탄 거나 매한가지라, 꼭 합격하셔야 할 겁니다.”

“네?”

“제가 합격해버리고 알비스 씨가 떨어진다면, 저 녀석은 저한테 풀어야 할 화를 알비스 씨한테 풀겠죠?”

카단이 싱긋 웃으며 말하자, 알비스는 사색이 된 얼굴로 헛숨을 들이마셨다.

“그러니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다음 시험 준비부터 하죠.”

그 말을 끝으로 카단은 다시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눈을 감았고, 알비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몸을 풀기 시작했다.

어쩐지 알비스의 발등에 불이 붙은 것만 같았다.

***

잠시 후.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간 벨리드 교관이 수험생들을 향해 말했다.

각각의 방법으로 시험을 준비하던 수험생들은 하던 것을 멈추고 무대를 바라봤다.

“한 사람씩 이동할 것이니, 호명되지 않은 분들은 이곳에서 계속 기다려주시면 됩니다.”

시험이 시작된다는 말과 함께 강당 안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과연 누가 첫 번째 순서일까?

“아, 저는 이 마지막 시험에서 안내역을 맡았습니다. 제가 수험생을 모시고 시험장까지 안내해드릴 거니, 싫은 티는 내지 말아주시길.”

벨리드는 미소를 그린 채 말을 이어갔다.

“혹시 마지막으로 질문하실 분 계십니까?”

그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다.

길버트가 감독하는 시험이기에, 벨리드 교관에게 질문해봤자 전처럼 속 시원한 대답은 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수험생들은 묵묵히 벨리드의 다음 말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좋습니다. 그럼 호명하는 분은 제 앞으로 나와주세요.”

질문자가 없다 벨리드가 다시 한번 활짝 웃으며 수험생들을 쭉 훑어봤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은 카단이 앉아있는 곳이었다.

“참고로 첫 번째 시험의 합격하신 순서대로 시험이 진행될 겁니다. 다른 분들도 참고하시길.”

설명을 끝낸 벨리드 교관의 시선이 한 곳을 향했고, 그녀의 얼굴에 작게 미소가 걸렸다.

“카단 수험생은 앞으로 나오세요.”

가장 처음으로 호명된 건 카단이었다.

첫 순서라는 부담과 시험이라는 긴장감에 몸이 굳을 법도 하지만, 카단은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툭.

“카단! 시험 잘 봐요! 꼭 아카데미에서 봐요!”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옆에 있던 알비스가 카단의 등을 툭 치며 말을 걸어왔고.

“잘 가.”

이어서 그 옆에 앉은 칼리아가 작은 목소리로 던지듯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짧은 격려와 감사를 끝으로 카단은 벨리드 교관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첫 번째. 나쁘지 않네.’

벨리드 교관 앞에 멈춰서자, 그녀가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카단을 훑어봤다.

“부디 좋은 결과를 얻으시길.”

벨리드는 방긋 미소를 지어주며 말했고, 이내 그녀의 옆에 있던 생도가 카단에게 다가왔다.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다가왔던 생도는 이내 몸을 돌려 강당 출입문을 향했고, 카단도 그의 뒤를 따랐다.

“아, 맞다. 카단 수험생?”

막 강당을 벗어나려던 순간, 벨리드가 카단을 불러 세웠다.

“네?”

카단이 뒤를 돌아 다시 벨리드를 바라보자, 벨리드는 입꼬리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몬스터 서식지에 두고 가신 게 있던데, 합격하시면 그때 돌려드리도록 하죠.”

할 말이 끝났다는 듯 벨리드는 손을 흔들어 보였고, 카단은 속으로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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