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이곳입니다.”
시험장으로 안내하던 생도가 걸음을 멈추곤 검은색의 문을 가리켰다.
“문을 열고 복도를 지나시면 커다란 방이 나올 겁니다.”
생도는 정중한 목소리로 말을 전했다.
“바로 들어가면 됩니까?”
“네. 부디 좋은 결과를 얻으시길.”
카단은 고개를 끄덕인 뒤, 생도가 가리킨 문을 향했다.
철컥.
문고리를 열고 문을 여는 순간, 검은색의 돌로 만들어진 긴 복도가 보였다.
곳곳에 횃불이 놓여 어둡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 복도 끝에 가면 가디언을 볼 수 있는 건가….’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당장 복수는 할 수 없지만, 샬로트를 죽인 6인 중 한 명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억눌렀던 감정이 자꾸만 새어 나오려 했다.
“수험생?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카단이 걸음을 옮기지 않자, 문 너머에 있던 생도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잠깐 긴장이 되어서.”
카단은 괜찮다는 듯 손을 들어 보였고.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이런 게 선배의 마음이라는 건가?’
생도는 그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안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카단은 짧게 인사를 건넨 후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쿵!
걸음을 옮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뒤쪽에서부터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멀리 봐야 한다.’
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고작 가디언 하나 때문에 계획을 망칠 수는 없었다.
아카데미에 합격해 가디언의 길을 걷는 것. 그것이 카단이 세운 계획의 시작이었다.
‘가디언의 시험은 혼자 볼 수 있어서 다행이군.’
가디언의 시험마저 팀을 이뤄 진행했다면 카단은 꽤 불리했을 것이다.
일인 군단이라 불리는 네크로맨서는 말 그대로 전장이든 던전이든 홀로 다니는 자.
누군가와 호흡을 맞춰본 경험은커녕 그와 비슷한 훈련을 해본 적도 없었다.
‘첫 번째 시험은 운이 좋았고, 두 번째 시험에선 실력을 보여야겠지.’
카단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고, 어느덧 그의 발걸음이 복도의 끝에 다다랐다.
‘가디언 혼자 있는 게 아니었군.’
복도 너머로 보이는 넓은 방 안에는 마탑의 로브를 두른 마법사들이 보였다.
그들의 앞에는 아카데미 정복을 차려입은 남자가 화려한 의자에 앉아있었다.
‘저 사람이 가디언 길버트….’
머리카락이 새하얗게 물들었지만, 외모만 보아선 4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였다.
“꾸물거리지 말고 들어와라.”
마탑의 정복을 입은 사람 중 하나가 복도 끝에 서 있던 카단을 불렀고.
“예.”
카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험장 한가운데를 향해 걸어갔다.
“간단하게 소개하도록.”
카단이 시험장 한가운데 멈춰서자, 길버트가 카단을 바라보며 말을 걸어왔다.
순간, 커다란 위압이 느껴졌다.
어깨가 짓눌리고 보이지 않는 손이 목을 조이는 듯한 느낌.
‘괜히 가디언이 아니군. 고작 앞에 서 있을 뿐인데.’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이런 위협을 느끼다니.
‘역시 지금으로선 할 수 있는 게 없다.’
앞에 선 것만으로도 힘의 차이가 느껴졌다.
복수라는 생각이 새하얗게 사라질 정도로 그 차이는 극명했다.
“카단. 네크로맨서입니다.”
깊게 숨을 들이쉰 카단이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위압감 속에 카단이 대답해내자, 길버트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웃음이 마치 이 정도 위압감쯤은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같았다.
“네크로맨서….”
길버트가 잠깐 생각에 잠긴 듯 천장을 바라보더니, 이내 다시 무덤덤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길게 얘기할 것 없이 시험을 시작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내 시험은 어렵지 않다. 너의 가능성을 인정받아라.”
도시 테누스에서 치렀던 1차 시험처럼 능력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는 뜻일까?
카단은 잘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이어질 길버트의 말을 기다렸다.
“내 뒤에 서 있는 이들 중 하나와 대련을 할 것이고, 난 네가 영웅으로서의 가능성이 있는지를 확인할 것이다.”
길버트 뒤로 마법사들이 서 있던 이유가 이거였구나. 카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법사들을 바라봤다.
‘마법사를 상대하는 건가?’
아버지인 샬로트 말고는 대련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카단은 조금 긴장하고 있었다.
‘싸움이라면 전생에서 지독하게 했었지만, 마법사를 상대하는 건 또 처음이네.’
어떤 식으로 상대해야 할까? 게다가 길버트 휘하의 마법사들이라면 어정쩡한 실력의 마법사는 아닐 터.
“테베스. 나오거라.”
“예!”
그 사이 길버트가 누군가를 불렀고, 마법사 중 하나가 로브를 벗으며 카단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경갑?’
희한하게도 테베스라는 마법사는 천으로 만들어진 옷이 아닌 가벼운 갑옷을 입고 있었다.
한 손에는 메이스를 쥔 채.
“반갑다. 난 테베스라고 한다. 실전이라 생각하고 죽일 듯이 덤벼라.”
테베스는 메이스를 들어 보이며 인사를 건넸다.
“카단입니다.”
카단은 미간을 찌푸리며 테베스와 그 뒤로 보이는 길버트를 바라봤다.
“선공은 테베스가 양보할 것이다. 준비되면 시작하도록.”
길버트가 말을 끝내며 의자에 몸을 기댔고, 카단은 그의 뒤에 서 있는 마법사들을 보며 생각했다.
‘직업에 맞춰 카운터를 준비해놨군.’
수험생이 불리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고 대처할지를 보려는 걸까?
“이길 생각은 하지 말라고. 이 대련은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게 아니니까. 그래도 죽을힘은 다하도록 해. 합격하고 싶잖아?”
메이스를 붕붕 돌리던 테베스가 피식 웃으며 자세를 낮췄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모습이 위협적이었지만, 카단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마법 위주의 전투가 아니라면 오히려 익숙하다.’
카단은 생각을 끝냈는지 옆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곤 다른 사람들이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죽음을 기억하라.”
스으으으윽!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에서부터 흰색의 가루들이 빠르게 빠져나와 바닥 곳곳에 뿌려졌고.
달그락!
가루가 뿌려진 바닥에서부터 해골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오?”
“괜히 1차 시험에서 합격한 게 아니었네.”
“이 많은 해골을 아무렇지 않게 소환하다니. 제법이잖아?”
“테베스 녀석, 꽤 귀찮겠는데?”
해골들이 시험장을 가득 채우자, 길버트 뒤에 서 있던 마법사들이 작은 감탄사와 함께 말을 주고받았다.
“…….”
길버트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그저 묵묵히 카단과 그가 소환한 해골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무기도 쥐지 않은 해골들이라니. 너무 쉽잖아?”
해골들의 상태를 확인하던 테베스가 피식 웃으며 카단을 바라봤다.
“준비됐으면 시작하자고?”
우웅.
순간 테베스의 몸이 연한 녹색 빛으로 반짝였다.
‘마법?’
힘과 속도를 상승시키는 마법이었다.
‘베틀 메이지였군.’
마탑의 로브를 두르고 있던 자가 둔기를 들고 있어 의아했지만, 마법을 쓴다면 이상할 게 없었다.
카단은 손가락을 들어 테베스를 가리켰고, 동시에 해골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공격해.”
달그락!
그러자 해골들은 두려움 따윈 느끼지 않는다는 듯 테베스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작전이나 계획 따위는 보이지 않는 돌격이었지만, 그 모습이 꽤 위협적이었다.
그렇지만 테베즈는 어렵지 않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달려드는 해골들을 향해 메이스를 휘둘렀다.
빠가가각! 빠각!
메이스를 한 번 휘둘렀을 뿐인데, 해골들이 무참하게 부서져 나갔다.
‘메이스에도 강화 마법이 걸려 있군.’
카단은 푸르스름한 빛을 머금은 메이스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확실히 상성이 좋지 않았다.
빠가각!
“겨우 이 정도로 영웅이 되겠다고 시험을 치르는 건가?”
테베즈가 여유롭게 해골들을 부숴가며 카단을 도발했고.
달그락!
카단은 말없이 부서진 해골들을 다시 일으키며 공격을 이어갔다.
네크로맨서 전투의 기본.
계속해서 해골들을 일으키며 상대의 체력을 갉아먹는 것.
카단은 기본적인 방식으로 테베즈를 위협하려 했다.
“날 지치게 할 생각이라면 너무 안일한 작전이야. 이렇게 약해 빠진 해골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걸?”
빠각!
그러나 테베스는 카단의 계획대로 움직여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타앗!
테베스가 달려들던 해골을 박살 낸 뒤, 곧장 땅을 박차며 카단을 향해 달려갔다.
빠가가가각!
해골들이 그의 앞을 막아서려 했지만, 맥없이 부서질 뿐 그의 전진을 멈추게 할 순 없었다.
“이걸로 시험 끝이다.”
이내 카단 앞에 도달한 테베스가 있는 힘껏 메이스를 휘둘렀다
.
휙!
카단은 재빨리 땅을 박차며 뒤로 물러서려 했다.
메이스가 허공을 갈랐지만, 테베스는 이 역시도 예상하였다는 듯 땅을 박차며 공격을 이어갔다.
‘네크로맨서가 근접 전투에 취약하다는 걸 노리고 있군.’
네크로맨서를 상대하는 법을 알고 있다는 듯 테베스는 쉬지 않고 메이스를 휘둘렀다.
“저 공격을 다 피하네?”
“네크로맨서가 원래 저렇게 몸을 잘 썼나?”
“보통은 저렇게까지 잘 피하진 못하지.”
그러나 테베스의 메이스는 카단을 맞출 수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슉! 슉!
카단은 중간중간 뼛조각을 소환하여 테베즈에게 날려댔다.
캉! 카앙!
가벼운 공격들이었기에 테베스가 만들어낸 마나 실드에 막히고 말았지만, 공격을 늦추는 데는 확실한 효과를 보였다.
카단이 테베스를 상대하는 사이, 길버트는 차분한 눈으로 카단을 살펴보고 있었다.
‘저 정도의 실력으로는 영웅의 길을 걸을 자격이 부족하다.’.
분명 많은 해골을 소환하여 조종하고, 간단한 마법과 신체 능력으로 공격을 피하고 있었지만, 길버트의 인정을 받기에는 부족한 것 같았다.
그때 뒤에 서 있던 마법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근접 전투도 꽤 하는데?”
“아직 2성 정도의 네크로맨서인데 벌써 약점 보완 훈련이라도 한 건가?”
카단은 테베스의 공격을 피해 낼 뿐만 아니라 뼛조각을 소환해 날리고 소환된 해골들을 이용해 상대의 공격을 방해했다.
“뭐, 그것만으로는 이기기 힘들걸?”
“애초에 우리를 상대로 생도도 아닌 수험생이 이긴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고.”
“저렇게 버티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잖아?”
카단의 퍼포먼스를 보며 감탄한 마법사들의 목소리가 들리자 길버트가 눈을 감았다.
‘아니면 내 눈이 너무 높은 것일지도 모르겠군.’
길버트는 잠시 전 동료였던 샬로트 잉그마르를 떠올리며 쓴웃음이 지었다.
‘가디언이었던 놈과 비교하면 안 된다지만, 놈의 빈 자리를 생각하니 아쉽긴 하군.’
길버트도 카단이 보통 네크로맨서보다는 뛰어나다는 건 인정하고 있었다.
‘하긴 어릴 때부터 샬로트 녀석의 재능을 옆에서 봐왔으니, 저 정도로는 만족이 안 되지.’
길버트는 고개를 저으며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냉정하게 보자고. 영웅의 자질을 확인하는 시간이지, 가디언과 비교하는 시간이 아니니까.’
가디언과 비교하자면 영웅 아카데미의 입학할 수 있는 생도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길버트는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떴다.
‘음?’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에게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역시 이렇게 끝나는 건가?’
공격을 피해 다니며 기회를 노리던 카단이 테베스에게 붙잡혀 있었다.
멱살을 붙잡힌 카단은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고, 테베스는 승자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쉽네.”
“테베스 녀석. 인정머리 없기는. 좀 더 봐주면서 하지.”
“테베스가 결정타 날리지 않은 게 어디야?”
“그래도 저 수험생 대단하던데? 어찌 됐든 공격은 성공시켰잖아?”
길버트 뒤에 서 있던 마법사들은 시험이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거뒀다.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한 것 같기도 하고, 이 정도의 네크로맨시라면 나쁘지 않아.’
길버트 역시 아쉬움을 뒤로한 채 시험을 끝내려 했다.
‘저 정도의 실력이라면 잘 키워서 아카데미 교관 정도 시킬 수 있겠지.’
그때.
“커, 커헉! 뭐야?”
테베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에 시험장에 있던 모두가 카단과 테베스를 바라봤고.
두 사람을 확인한 길버트의 얼굴이 빠르게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