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철퍼덕!
테베스가 재빨리 카단을 바닥으로 내던졌다.
큰 소리와 함께 내쳐졌음에도 카단은 의식을 잃었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 새끼가!”
테베스는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메이스를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카단을 향해 내리찍었다.
“테베스 잠깐!”
“야! 이미 기절했잖아!”
살의가 담긴 갑작스러운 공격에 마법사들이 깜짝 놀라 며 테베스를 말리려 했다.
무방비한 상태로 이 공격을 받는다면 머리가 부서져 죽고 말 테니.
까아아앙!
그때 쓰러진 카단의 머리 위로 마나 실드가 생겨나더니, 테베스의 공격을 튕겨냈다.
“거기까지다.”
그의 공격을 튕겨낸 건 길버트였다.
“길버트 님?”
“의식을 잃은 수험생을 살해할 생각이었더냐? 나와 마탑의 명예를 얼마나 추락시킬 생각이지?”
“그, 그게…. 죄송합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테베스가 다급히 변명하려 했지만, 길버트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급히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침착한 놈이 이 정도로 당황할 정도라면 생명의 위협이라도 느낀 건가?’
길버트는 미간을 좁히며 쓰러진 카단을 바라봤다.
“어찌 된 것이냐?”
길버트가 다시 시선을 옮겨 테베스를 바라봤고, 무표정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분명 녀석이 정신을 잃은 것을 확인했습니다.”
테베스는 조금 전의 일들을 빠르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계속 도망만 다니는 카단에게 답답함을 느낀 테베스는 한 번 더 신체 강화 마법을 사용했었다.
힘과 속도가 늘어난 테베스를 고작 2성 네크로맨서가 소환한 해골들이 막아낼 순 없었다.
결국 카단은 도망 다니는 것만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반대로 테베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테베스는 이 시험을 끝낼 생각으로 마나를 머금은 메이스를 휘둘렀다.
그러나 메이스는 이번에도 허공을 갈랐다.
카단이 상체를 숙이며 공격을 피해 내더니, 빈틈이 생긴 테베스의 몸 안쪽으로 파고든 것이다.
“그리곤 뼈로 만들어진 검을 소환해 저를 찌르더군요.”
공격을 피한 동시에 뼈로 만들어진 단검을 소환했고, 빠르게 테베스의 배를 향해 휘둘렀다.
급하게 마나 실드를 사용해 공격을 막아내긴 했지만, 테베스로서는 꽤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카단은 수험생이었고, 네크로맨서였으니.
슬슬 끝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테베스는 카단의 멱살을 붙잡았고, 메이스 손잡이 쪽을 이용해 카단의 얼굴을 가격했다.
턱을 제대로 맞았는지, 카단은 의식을 잃고 말았고, 테베스를 포함한 모두가 시험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몸에 힘이 풀리며 마나가 녀석에게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나가 빨려 들어간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테베스의 말에 주변에 있던 마법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척.
길버트는 가볍게 손을 들어 보이며 그들에게 침묵을 강요했다.
“…….”
다시 시험장이 조용해지자, 테베스는 길버트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실제로 몸에서 급격히 마나가 줄어들었고, 순간 정신을 잃을 뻔했습니다.”
많은 양의 마나가 급격히 빠져나가니 피로감이 몰려왔고, 위협을 느낀 테베스는 그대로 카단을 내던졌었다.
테베스가 고개를 숙이며 설명을 끝내자 길버트의 시선이 다시 카단을 향했다.
‘위험한 재능을 지녔군.’
무의식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사용했던 걸까? 카단은 여전히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의무실로 데려가라.”
카단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던 길버트가 이내 테베스에게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간 김에 너도 치료를 받도록 하고.”
“예?”
테베스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한 얼굴로 자기 몸을 살펴봤다.
‘뭐야? 이거 언제?’
허벅지 옆에 뼈로 만들어진 단검이 꽂혀있었다.
깊게 꽂혀있진 않았지만, 인지하고 나니 따끔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아, 알겠습니다.”
테베스는 급히 바닥에 쓰러진 카단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톡- 톡-
호기롭던 대답과 다르게 테베스는 손가락으로 카단의 팔을 조심스레 찔러보았다.
조금 전의 상황이 되풀이될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을까?
길버트는 테베스의 행동을 이해한다는 듯 차분히 그를 기다려 주었다.
이내 아무런 이상함도 느껴지지 않았는지, 테베스가 카단을 들어 올려 자신의 어깨 위로 올렸다.
“저, 저기 길버트 님.”
걸음을 옮기려던 테베스가 잠시 멈칫하더니 조심스레 길버트를 불렀다.
길버트는 시선을 슬쩍 올려 그를 바라봤고, 테베스는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혹시 이 수험생에겐 뭐라고 말해줘야 할까요?”
카단이 깨어난다면 합격 여부를 물어볼 테니, 테베스는 그때 시험 결과를 들려줄 생각이었다.
“합격이다.”
길버트는 그 말뜻을 이해하곤 곧바로 시험 결과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조금 전의 상황은 수험생에게는 비밀이다.”
“네!”
말을 끝낸 길버트가 얼른 가보라는 듯 손짓했고, 테베스는 고개 숙여 인사를 전한 뒤 몸을 돌려 시험장을 빠져나갔다.
‘저런 재능을 지닌 녀석을 풀어줄 순 없다. 여기서 관리해야 해.’
길버트는 한참 동안 테베스와 카단이 빠져나간 복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
“정신이 좀 들어?”
카단이 정신을 차리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떠보니, 조금 전까지 무자비하게 메이스를 휘둘러대던 테베스가 보였다.
“여긴 어디죠?”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몸을 일으키려 하자 어지러움과 동시에 지끈거리는 두통이 느껴졌다.
“누워있어. 아카데미 의무실이야.”
테베스는 조심스레 카단의 어깨를 누른 뒤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내 공격을 맞고 그대로 기절했어. 턱을 맞았으니 아직은 일어나기 힘들 거야.”
카단은 헛웃음을 지으며 천장을 바라봤다.
“그렇군요.”
허무함과 함께 허탈함이 몰려왔다. 무언가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시험이 끝나고 말았다.
그렇다고 자신에게 실망하진 않았다.
‘지금 내 수준은 이 정도인가?’
가디언의 휘하에 있는 부하에게 손쉽게 당해버릴 정도의 수준.
오히려 지금 자신의 실력을 인정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수정하려 했다.
‘제대로 보여준 게 없으니 시험은 탈락했을 테고,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카단이 무표정한 얼굴로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자, 옆에 있던 테베스가 말을 걸어왔다.
“너무 세게 쳤지? 미안하다.”
그 목소리에 카단이 고개를 돌려 테베스를 바라봤다.
‘꽤 순박하게 생겼었네.’
대련할 때와 다르게 온순해 보이는 표정을 보니 괜히 웃음이 나오려 했다.
“괜찮습니다. 시험이지 않습니까?”
“그래도 수험생을 상대로 너무 거칠게 했던 건 아닌가 싶어서. 내 언행도 무례하게 느꼈다면 사과할게.”
테베스가 앉은 채로 고개 숙여 사과를 전했다.
아마도 그가 사과하는 건 대련이 끝난 이후, 의식을 잃은 카단을 공격하려 했던 것에 죄책감을 덜기 위함일 것이다.
‘어차피 죽은 것도 아닌데, 사과까지 할 필요가 있나?’
물론, 그 사실을 알 수 없는 카단은 의아함을 느끼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나름 재미있었습니다. 대련은 처음이었거든요.”
카단은 다시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고, 그 말에 테베스는 다시 한번 놀라고 말았다.
‘처음?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게 처음이라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샬로트’와 ‘해골’을 제외한 다른 사람과의 대련이 처음이었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테베스는 헛웃음을 삼키며 멍하니 카단을 바라봤다.
‘네크로맨서로서도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 그런데 몸놀림은 네크로맨서라고 믿기엔 힘들었어.’
고작 2성 수준밖에 되지 않았지만, 정석적인 네크로맨서의 전투 방식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칭찬받을 만했다.
도망치는 중에도 침착하게 해골을 다시 일으키고, 뼛조각을 소환해 날리며 거리를 벌리려고 했던 것은 실력과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것.
‘특히 녀석의 마지막 움직임은 마치 베테랑 용병을 상대하는 기분이었어.’
공격을 피해 내며 소환한 단검으로 배를 찌르려던 그 모습은 분명 근접 전투에 익숙한 사람의 행동이었다.
테베스는 아직 계급이 높진 않지만, 길버트 휘하에 있는 마법사 중 하나였다.
그런 테베스를 상대로 네크로맨서가 위협적인 공격을 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좀 전의 대련을 떠올리던 테베스가 피식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떨궜다.
‘하긴. 이 정도는 되어야 네크로맨서로서 영웅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겠지.’
테베스가 다시 고개를 들더니 방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축하한다.”
“축하요?”
카단은 눈을 끔뻑이며 테베스를 바라봤다.
“합격한 거 축하한다고.”
“합격이라고요?”
카단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본인이 생각하기엔 제대로 된 무언가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 뭘 보여준 게 없는데요?”
허탈함이 느껴질 정도로 거리만 벌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도망만 다녔다.
마지막 단검을 휘두른 것 말고는 공격 한 번 해보질 못했다.
심지어 마지막 공격도 마나 실드에 막혀 버리고 말았었다.
수많은 해골도, 뼛조각을 날리는 마법도 속수무책으로 막히고 말았다.
“보여준 게 없긴? 나는 6성 경지에 오른 베틀 메이지야. 2성 네크로맨서가 나를 상대로 그 정도 버틴 거면 대단한 거라고.”
사실이었다.
고작 2성의 네크로맨서가 가장 취약한 근접 전투에서 이 정도 실력을 보여준 건 대단한 일이었다.
“다른 네크로맨서였다면 더 빠르게 결판났을걸? 나한테서 도망 다니며 네크로맨시를 사용하는 건 대단했어.”
테베스가 열정적으로 설명을 이어가자 카단은 의아하다는 투로 대답했다.
“그런가요?”
“그러니 길버트 님도 합격이라고 하셨지. 어쨌든 축하해! 내가 네크로맨서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특별히 넌 응원해주마.”
고맙긴 했지만, 카단은 그 응원이 달갑게 느껴지진 않았다.
‘가디언의 직속 마법사라면 언젠가 이 사람과도….’
언젠가 대련이 아닌 전투를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대가 응원해준다고 하니 씁쓸한 웃음이 지어졌다.
“의사 말을 들어보니 다행히 큰 문제는 없다고 해. 회복 마법까지 걸어뒀으니 조금만 쉬면 금방 움직일 수 있을 거야.”
툭툭.
수고했다. 테베스는 그렇게 말을 끝내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는 왜?”
테베스가 일어나자 붕대가 둘린 허벅지가 보였고, 카단이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이거? 직접 찔러놓고 기억 안 나?”
테베스는 헛웃음을 지으며 자기 허벅지를 가리켰다.
“마나 실드로 공격을 막아냈다고 생각했는데, 나한테 붙잡힐 때였는지 공격이 튕겼을 때인지 내 허벅지를 찔렀더라고?”
테베스는 엄지를 치켜들며 웃어 보였다.
“이건 자랑스러워해도 좋아. 나한테는 부끄러운 일이지만.”
가디언 휘하에 있는 마법사의 허벅지를 단검으로 찔러넣은 수험생이라면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수 있었다.
“아무튼 회복되면 합격자 대기실로 가보라고. 안내는 생도들이 해줄 거야. 그럼 또 보자.”
테베스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인 뒤 의무실을 나갔고, 카단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6성의 경지도 꽤 가파른 벽이군.’
가디언의 부하들도 버거운 상대들인데, 정작 가디언은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무언갈 하기도 전부터 괜히 사기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가디언은 생각보다 더 높은 벽이었고, 가디언에게 도달하기까지의 길이 멀고도 험난했다.
그러나 카단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우선 첫발은 내디뎠군.’
첫 목표였던 영웅 아카데미의 입학을 성공시켰으니, 이제 힘을 키우기만 하면 된다.
‘잭 카터 씨가 또 놀라겠지.’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어지럼증이 느껴졌지만, 카단은 침대를 벗어났다.
“벌써 나가시게요? 아직 회복하셔야 할 텐데? 아직 시험이 끝나지 않았으니 더 쉬십시오.”
그러자 의무실에 있던 생도 하나가 다급히 카단에게 다가오며 말을 걸어왔다.
“괜찮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결과가 궁금하기도 해서요.”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라보던 생도를 향해 괜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고, 이내 의무실을 빠져나왔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