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16화 (16/186)

제16화

던전 ‘붉은 난쟁이 소굴’ 깊은 곳.

달그락!

분명 고블린이 서식하는 던전일 텐데, 안에는 이상하게도 해골 병사들이 가득했다.

“슬슬 3개월인가?”

수많은 해골 병사들 한가운데.

한 남자가 바위에 앉아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충 시간은 맞췄군.’

남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카단이었고, 그는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버지의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입학 전에 3성을 달성하는 건 불가능했겠지.’

일반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3성의 경지에 오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육체와 마나 하트가 단련되어 있어야 했고 성장을 위한 충분한 지식이 필요했다.

‘아버지가 왜 그렇게 기초와 이론을 강조하셨는지 이제야 좀 알 것 같군.’

다행히 카단은 그러한 준비과정을 오래전부터 끝내 놓았다.

샬로트 잉그마르의 가르침 덕분에 네크로맨서의 지식이 가득했고, 육체와 마나 하트 역시 단련되어 있었다.

지난 10년의 시간이 빠른 성장의 발판이 되어준 것.

‘3성이라.’

카단은 고개를 돌려 주변에 소환된 해골들을 바라봤다.

달그락. 딱딱!

1, 2성 시절에 소환한 해골들과 다르게 지금의 해골들은 조금 더 강해 보였다.

전보다 뼈가 굵고 단단해졌으며, 광택이라도 나는 듯 표면이 매끄러워졌다.

게다가 천 옷 하나 걸치지 않았던 과거와 다르게 지금의 해골 병사들은 모두 갑옷과 무기로 무장한 상태.

비록 낡아빠진 갑옷과 무기였지만, 무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협적인 모습으로 뒤바뀌었다.

“이쯤이면 아카데미에서도 뒤처지진 않겠지.”

차가운 시선으로 해골들을 살피던 카단이 피식하고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러자.

달그락!

척! 척! 척!

해골 병사들이 카단을 사이에 두고 재빨리 양옆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흡사 기사를 위해 길을 내어주는 병사들 같았다.

꽤 멋스러운 광경에도 카단은 감흥 없다는 듯 무덤덤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아카데미 생활이라….’

***

주점. 고양이들의 저녁.

“그러니까 3성의 경지를 달성하셨다고요?”

천으로 와인 잔을 닦던 잭 카터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네.”

바 테이블에 앉아 오렌지 주스를 마시던 카단은 어려운 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마음먹는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정말 입학식 전에 3성의 경지에 도달할 줄이야. 잭 카터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카단을 살펴봤다.

‘외적으로는 크게 달라진 게 없어. 아니, 키가 조금 컸나? 뭐, 한창 클 시기이긴 하지.’

키가 좀 자라나고 육체가 더 단단해졌다는 것 말고는 큰 변화를 찾을 수는 없었다.

‘아니, 이 사람을 누가 네크로맨서라고 생각하겠어?’

카단의 몸을 살펴보던 잭 카터는 속으로 헛웃음을 내뱉었다.

‘참나. 겉만 보면 어디 기사 가문의 자제인 줄 알겠네.’

네크로맨서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하고 균형 잡힌 몸.

지금 카단의 모습은 네크로맨서보다는 검을 든 기사가 더 어울릴 것 같았다.

“3성이시면 이제 새로운 언데드도 소환하실 수 있겠네요?”

잭 카터가 다시 눈웃음을 지으며 대화 주제를 바꿨다.

“맞습니다. 그것 때문에 고민이 많아요.”

“고민?”

“네. 새로운 언데드에 어울리는 쓸만한 재료가 없거든요. 고블린을 재료로 쓰기도 그렇고.”

카단이 그렇게 말하며 바라보자, 잭 카터가 흠칫하며 고개를 저었다.

“참고로 저는 시체까지는 구해드리지 못합니다. 한 적도 없고 할 수도 없어요.”

그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카단은 피식 웃었다.

“뭐, 그런 부탁은 앞으로도 할 생각 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제야 안심이 된 듯 잭 카터가 목을 가다듬으며 다시 눈웃음을 지었다.

“크흠. 그나저나 시간에 딱 맞춰서 오셨네요. 당장 내일이 입학인 건 아시죠?”

“네. 그러니 던전에서 나왔죠.”

“1인실이긴 하지만 기숙사에서 생활하실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잭 카터의 질문에 카단이 그게 무슨 의미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단 님은 17년간 혼자 지내시지 않았습니까? 단체 생활은 불편하실 수도 있을 텐데.”

샬로트 말고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본 적이 없을 테니, 아무래도 사회성이 떨어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자유롭게 살아오셨을 텐데, 제약이 많은 곳에서의 생활은 적응하기 힘드실 것 같아서요.”

“어려울 게 뭐 있어요?”

잭 카터의 걱정과 달리 카단은 아카데미 생활이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전생에는 지겹도록 단체 생활을 이어갔다.

좁은 집에 장정들이 모여 살기도 했으며, 여럿이 뒤엉켜 잠을 청하는 건 일상이었다.

게다가 1인실이라고 하는 데 불편할 게 뭐 있겠는가? 오히려 쾌적한 삶이 될 것이다.

“알아서 척척하시니, 제가 딱히 도와드릴 건 없는 것 같군요.”

잭 카터가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정보원으로서 카단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자책하는 듯했다.

“아뇨.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부탁드릴 게 많고요.”

그 말에 카단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상 당장 필요한 정보는 없었고, 정보를 얻더라고 활용하긴 힘든 상황.

던전과 몬스터 서식지의 정보를 얻는 것만으로도 도움은 충분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혹시 아카데미 생활에 있어서 단기 목표 같은 건 있으십니까? 예를 들면 학년 수석이라던가….”

짧은 시간 안에 3성의 경지를 달성한 카단이라면 학년 수석도 가능하지 않을까?

잭 카터가 기대 어린 눈빛으로 카단을 바라봤다.

“아뇨. 학년 수석도, 어떤 활동도 할 생각은 없어요. 그냥 조용히 지낼 생각입니다.”

“조용히요?”

“네. 딱히 눈에 띌 생각은 없거든요.”

카단이 단호하게 말하자, 잭 카터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의문이 들었다.

‘윗사람들의 눈에 띄어 차기 가디언이 될 확률을 높이는 게 더 좋을 텐데?.’

잭 카터는 카단의 계획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아카데미에 다니며 성장하고 동시에 가디언과 가까워지겠다는 계획.

그리고 끝내 6명의 가디언을 죽이고 복수하겠다는 목표까지.

‘그런데 조용히 지내시겠다? 대체 무슨 생각이시지?’

궁금한 건 말았지만, 굳이 입 밖으로 질문을 꺼내진 않았다.

다 뜻이 있는 거겠지. 잭 카터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단 님이 원하는 바를 이루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입학 기념으로 제가 식사 한 끼 대접해도 괜찮겠습니까? 수도에 잘 아는 곳이 있는데.”

잭 카터가 조심스레 물었고, 카단은 유리잔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배가 고팠는데 잘 됐군요.”

***

입학 당일.

와아아아아아!

영웅 아카데미 앞 거리에 수많은 사람이 모여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마치 축제라도 열린 것처럼 거리에는 꽃가루가 휘날렸고, 사람들은 모두 기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새로운 영웅들이다!”

“신의 축복이 함께하길!”

정문으로 향하는 거리는 오로지 영웅 아카데미 생도들에게만 걷고 있었고, 사람들은 측면에 빠져 그들을 반겨주었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다름 아닌 영웅 아카데미의 새로운 입학생들을 축하해주기 위함.

그들이 보내는 뜨거운 열기 덕분에 정문으로 향하는 거리를 걷는 생도들은 벌써 영웅이라도 된 것 같은 착각마저 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리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 모퉁이.

“사람이 참 많네요.”

“영웅 아카데미의 입학식은 왕국의 대대적인 행사이니까요.”

카단과 잭 카터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골목에 숨어 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죄지은 것도 없는데 계속 이렇게 숨어계실 건가요?”

잭 카터가 부담스러워하는 카단을 보며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뭐, 아직 죄지은 게 없긴 하죠.”

이내 체념한 카단이 심호흡을 하더니, 걸음을 옮겨 골목을 빠져나왔다.

“그럼 응원하겠습니다.”

잭 카터는 여전히 골목에 남아 카단을 향해 두 손을 흔들어 주었다.

정문을 향하는 거리는 오로지 새로 입학하는 생도들을 위한 거리. 그렇기에 잭 카터는 골목 안에 남아 카단을 배웅할 수밖에 없었다.

‘이유야 알고 있지만, 저 눈웃음을 보니 괜히 얄밉군.’

카단은 그런 잭 카터를 잠깐 바라보더니, 피식 웃음을 지으며 다시 아카데미 정문으로 향하는 거리를 바라봤다.

‘쯧. 부담스럽네.’

그저 아카데미에 입학했을 뿐인데 수많은 인파의 환영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앞섰다.

카단은 깊게 한숨을 내쉰 뒤, 천천히 정문을 향하는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아!

카단을 발견한 누군가가 함성을 치자, 이어서 다른 사람들도 흥겹게 환호성을 내질렀다.

‘미안하지만 그렇게 환호받을 사람은 아닌데.’

카단은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는 사람들을 보며 죄책감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그들을 지키기 위해 영웅이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카단은 그들을 지켜주는 자를 죽이기 위해 아카데미에 입학한 것이다.

“쯧.”

최대한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앞만 보며 걷기 시작했다.

이내, 정문에 도달하자, 거대한 덩치의 문지기가 카단의 앞을 가로막았다.

“합격 통지서를 보여주시겠습니까?”

까다롭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연한 절차였다.

그 사실을 이해하고 있던 카단은 자연스레 통지서를 꺼내 보내줬고.

“입학을 축하드립니다.”

통지서를 확인한 문지기는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길을 내어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정문을 지나 아카데미 공터로 들어서자 어깨를 짓누르던 부담감과 죄책감이 사라졌다.

‘감회가 새롭네.’

생도가 되어 아카데미 안에 들어서니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그런 기분을 카단만 느낀 건 아니었는지, 강당을 향해 걷는 많은 입학생의 표정에는 설렘과 비슷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입학생들은 모두 시험을 치렀던 강당으로 모이시길 바랍니다!”

“입학생들은 길 잃지 말고 안내에 따르십시오!”

아카데미를 둘러보는 사이, 아카데미 정복을 입은 생도들이 입학생들을 안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카단은 그들의 안내에 따라 자연스레 걸음을 옮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입학식이 치러지는 강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잠시 후.

32명의 입학생이 강당에 모이자, 기다렸다는 듯 교관 벨리드가 무대 위로 올라섰다.

“다들 오랜만입니다. 또 제 소개를 할 필요는 없겠죠?”

벨리드가 입학생들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자, 입학생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박수로 그녀를 맞이해주었다.

짝짝짝짝짝!

박수 소리가 점차 잦아지자, 벨리드 교관은 입학생들을 쭉 둘러보며 흥미롭다는 미소를 지었다.

“빠르게 입학식을 시작해보겠습니다. 우선, 영웅 아카데미에 합격하신 걸 다시 한번 축하드려요.”

벨리드가 싱긋 웃으며 말하자, 입학생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걸렸다.

고생했던 지난 시간을 보상받는 듯한 기분이 다시 한번 그들의 입꼬리를 잡아당겼다.

“앞으로 여러분은 영웅 아카데미의 생도로서 이곳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영웅이 되기 위한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벨리드의 말을 듣자 입학생들은 비로소 이곳의 생도가 되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영웅이 되기 위한 길.

이제 그 길에 한 걸음을 내디뎠다는 생각에 자꾸만 미소가 지어졌다.

“입학식은 간단하게 진행될 것이며, 이후에는 기숙사를 배정하고 필요한 물품을 나눠드릴 겁니다.”

벨리드는 하루 일정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러던 도중.

‘음?’

카단은 어디선가 불쾌한 시선이 느껴졌고, 그 시선을 느낌과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불쾌한 시선을 보내던 자는 다름 아닌 카단을 하대했던 금발의 귀족 ‘라이덴’이었다.

“헙!”

카단과 눈을 마주친 라이덴은 깜짝 놀라더니 재빨리 시선을 돌려버렸다.

‘아, 맞아. 저 녀석이 있었지?’

그리고 카단의 입가에는 작게 미소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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