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18화 (18/186)

제18화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다.”

크리스 교관이 바닥에 드러누운 생도들을 향해 말했다.

얼마나 고된 시간을 견뎌낸 건지 멀쩡한 모습을 한 생도가 한 명도 없었다.

누가 귀족인지 평민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

‘근성만큼은 이번 기수가 근접 기수 중 가장 좋은 것 같군.’

크리스가 생도들을 쭉 둘러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개인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개선할 수 있도록. 생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체력이기도 하니까. 그럼 이만.”

크리스는 할 일을 끝냈다는 듯 냉정하게 몸을 돌려 아카데미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너무 힘든데?”

“첫날부터 체력 측정이라니, 예고도 없이 너무 하잖아.”

“일어서질 못하겠어. 누가 좀 일으켜줘.”

교관이 떠나자 생도들의 불평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쯧. 다들 괴물들이었네. 무슨 체력들이 이렇게 좋아?”

물론 꼭 부정적인 말들만 오간 건 아니었다.

한계의 한계까지 몰아갔던 시간을 악착같이 버텨낸 끝에 생도들은 서로를 어느 정도 인정하게 되었다.

“이 정신 나간 놈들. 무슨 체력 측정을 경쟁하듯이 이 악물고 하고 있어?”

분명 개인 체력을 측정하는 시간이었지만, 생도들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체력 측정에 임했다.

‘다 저 자식 때문이야.’

‘저 녀석이 미친 듯이 하니까 나도 모르게….’

‘괴물이다.’

순간 몇몇 생도들의 원망 섞인 시선이 카단을 향했다.

네크로맨서이면서도 체력 측정에서 높은 성적을 받은 카단. 그가 생도들의 자극제가 되었다.

네크로맨서인 카단에게 지고 싶지 않았던 생도들은 본의 아니게 최선을 다해 체력 측정에 임했던 것.

정작 모두를 자극해 한계까지 몰아붙이게 한 카단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힘드네.’

카단 역시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10년 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체력 단련을 하지 않았다면 진즉에 연병장에 쓰러져 숨을 헐떡이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이 정도인가?’

카단은 만족스럽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늘 단련을 목적으로 운동했을 뿐, 한계를 시험해본 적이 없었다.

‘나쁘지 않군.’

10년간 버릇처럼 해온 체력 단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기에, 뿌듯함마저 느껴졌다.

“카단!”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알비스와 칼리아가 땀범벅이 된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같이 식사하러 가자!”

전날 서로를 편하게 대하기로 한 알비스가 해맑게 웃으며 제안하자, 카단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 상태로는 식당에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은데?”

카단은 알비스의 옷을 가리키며 말했고, 알비스는 자연스레 고개를 숙여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흙먼지가 잔뜩 묻은 옷.

아무래도 식당 예절에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아, 그러네?”

“씻고 기숙사 앞에서 보도록 하자.”

카단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고, 기숙사 건물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

어느 동굴 깊은 곳.

타닥.

모닥불을 사이에 둔 두 남자가 고기를 뜯어 먹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 7번이 영웅 아카데미에 입학했다고?”

“네. 입학시험에 보낸 세 명 중 7번만 합격했습니다. 지금쯤 수업받고 있겠네요.”

중년의 남자가 고기를 뜯으며 묻자, 맞은편에 앉은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번에도 7번 녀석이 해냈군.”

“의지도 강하고 실력도 뛰어난 아이입니다. 어릴 때부터 남다른 녀석이었잖아요?”

그 말에 중년의 남자는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했다고 전해주고. 앞으로 최대한 지원해줘. 돈도 좀 많이 쥐여 주고.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해.”

“예. 알겠습니다. 아, 그런데 대장.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해. 안 될 건 없지.”

대장이라고 불린 중년의 남자는 부하의 질문에 너그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알기론 아카데미 교관 중에도 우리 쪽 사람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응. 사실이지. 그런데 7번에겐 말하지 마.”

“예? 왜요? 따지고 보면 둘이 선후배 사이인데, 서로 알고 지내는 것도 좋지 않습니까?”

부하로 보이는 남자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좋을 게 없어. 정체 감추느라 정신없을 텐데, 아예 모르고 있는 게 서로 마음 편하겠지.”

대장이라는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앞에 놓인 맥주를 벌컥벌컥 마셔댔다.

“예. 대장. 그런데….”

“또 뭐?”

“단장님께서는 왜 영웅 아카데미부터 무너트리려고 하는지 아십니까?”

“내가 어떻게 알아? 다 뜻이 있겠지. 어쨌든”

중년의 남자가 피식하고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그렇다면 왜?”

“나도 자세한 건 몰라. 요즘 감시가 심해서 간부들끼리도 교류가 힘든 상황이거든.”

부하로 보이는 남자는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모닥불을 바라봤다.

“그렇군요.”

“뭐, 7번 녀석한테는 단장의 명령이 떨어질 때까진 열심히 수업이나 받으라고 전해주고.”

중년의 남자는 먹고 남은 고기 뼈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씨익 웃음을 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7번 녀석은 우리에게 굉장한 전력이 되어줄 거야.”

“네. 재능이 있는 녀석이니까요. 그러니 영웅 아카데미에 입학도 했겠죠.”

“그렇지. 아!”

대화를 이어가던 중, 중년의 남자가 무언가 떠오른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리곤 다시 부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7번 녀석에게 전할 것이 있어.”

“네. 말씀하십시오. 대장.”

“거기서 웬만하면 친구는 사귀지 말라고 해.”

“예?”

부하로 보이던 남자가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그러자 중년의 남자는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러는 편이 녀석한테도 좋을 거야. 나중을 생각하자면 말이지.”

***

영웅 아카데미의 오후 수업은 직업군을 나눈 심화 수업으로 진행되었다.

아직 서로가 어색한 생도들은 인사도 나누지 않은 채 강의실을 찾아 떠났고.

‘나는 혼자군.’

카단 역시 네크로맨서 수업을 받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정말 아무도 없네.”

텅 빈 강의실.

네크로맨서 수업이 진행되는 곳은 썰렁함이 느껴질 정도로 고요했다.

‘뭐, 혼자가 편하긴 하지.’

잭 카터의 정보에 의하면 영웅 아카데미 생도 중 네크로맨서는 카단을 포함해 2명뿐.

‘한 명은 졸업반이라고 했지?’

그 남은 한 명도 졸업을 앞둔 사람이기에 특별히 만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즉, 앞으로도 카단은 네크로맨서 교수와 일대일 수업을 받게 될 거라는 뜻이었다.

‘아카데미의 교수까지 맡았으니, 꽤 뛰어난 사람이겠지.’

샬로트 잉그마르 이후로 네크로맨서를 만나는 건 처음이다.

과연 두 번째 스승이 될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실력을 지녔을까?

카단은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순간 카단은 1차 입학시험 전 찾아갔던 ‘비겁한 사냥꾼의 던전’에서 들었던 용병들의 대화가 떠올랐다.

-샬로트의 가디언 자리는 아이작 교수가 잠시 맡게 될 것 같다던데? 사실인가?

-아! 영웅 아카데미의 교수 말인가? 네크로맨서 중 샬로트 다음으로 유명한 사람?

샬로트 다음으로 강하다고 알려진 네크로맨서이자 임시지만 가디언의 자리에 오른 교수.

“아이작….”

명성과 실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면 크게 걱정할 건 없을 것 같았다.

철컥.

그때 강의실 문이 천천히 열리며 단정한 모습의 남자가 나타났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나이. 정장이 잘 어울리는 밝은 느낌의 남자.

‘생각보다 점잖게 생겼군.’

언데드를 다루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분위기였다.

“위대한 왕국의 수호자. 가디언 아이작 님을 뵙습니다.”

카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전 아이작이라고 합니다.”

아이작은 앉아도 좋다는 듯 손짓하며 천천히 교단을 향해 걸었다.

“1학년의 유일한 네크로맨서. 아카데미에서는 당신에게 꽤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아마 당신이 지닌 잠재력 때문이겠죠?”

교단에 선 아이작이 자상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렇지만, 솔직한 얘기로 지금 당신이 강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카단은 그 말을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작을 바라봤다.

“드래곤이라도 삶아 먹지 않은 이상, 5성 이하의 네크로맨서가 강하긴 힘들죠.”

약한 건 당연한 거라는 듯 전해지는 말에 카단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일반인보다야 강하겠지만 강자들 사이에서 5성 이하의 네크로맨서는 제대로 된 활약을 보일 수 없었다.

“초반에 약할 수밖에 없는 네크로맨서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게 무엇인지 압니까?”

아이작이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카단의 대답을 기다렸다.

“생존입니다.”

어려울 건 없었다. 샬로트에게 배울 때도 살아남는 법을 배웠으니까.

‘생존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강해지려면 일단 살아남아야지.’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아이작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당신에게 생존법을 가르칠 것입니다. 약한 네크로맨서로서 살아남는 방법을.”

의미심장한 그 목소리에 카단은 왠지 모를 긴장감을 느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은 아주 좋은 재능을 지녔습니다.”

아이작이 검지를 이용해 카단의 심장 부근을 가리켰다.

“수백의 해골을 소환해도 멀쩡한 그 단단한 마나 하트. 그건 타고난 재능이죠.”

샬로트의 기초를 강조한 훈련 덕분인지 아니면 타고난 카단의 재능인지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카단은 남다른 생존 능력을 지녔다는 것.

“그렇습니까?”

카단은 고개를 갸웃하며 아이작을 바라봤다.

자신과 비교할만한 비슷한 실력의 네크로맨서를 만난 적이 없기에 카단은 늘 부족하다고만 생각했다.

언제나 카단의 비교 대상은 아버지인 샬로트 잉그마르였다.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던 네크로맨서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

카단은 속으로 피식 웃으며 다시 입을 열어 말을 건넸다.

“가디언님. 질문 하나만 해도 되겠습니까?”

“교수라고 불러주세요. 가디언이란 말은 아직 적응되지 않아서.”

“생존법을 가르쳐주신다고 하셨는데, 정확히 어떤 걸 배우게 될지 궁금합니다.”

카단의 질문에 아이작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효율입니다.”

“효율 말입니까?”

“무작정 수백, 수천의 언데드를 소환한다고 해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수준의 해골 병사 수만을 소환한다고 하더라도 전쟁터에서 승리를 확정 지을 수 없다.

“지금의 수준에서 최고의 효율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약한 네크로맨서의 생존법입니다.”

무작정 강하면 된다는 샬로트와는 다른 가르침이었다.

샬로트가 두루뭉술하게 설명해줬다면, 아이작은 섬세하게 대답해주었다.

“자, 그럼 해골 병사를 소환해보시겠습니까?”

“얼마나 말입니까?”

“할 수 있는 만큼. 단, 마나 하트에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로.”

아이작이 텅 빈 강의실을 가리키며 말했고, 카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네크로맨서로서 언제나 해오던 일.

슥.

“죽음을 기억하라.”

여느 때처럼 반지가 끼워진 손을 옆으로 뻗으며 작게 주문을 외웠다.

달그락!

‘수는 대략 300 정도인가?’

순간적으로 강의실을 가득 채운 해골들을 바라보며 아이작은 속으로 헛웃음을 삼켰다.

게다가 카단은 그 많은 해골을 소환했음에도 식은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이 많은 해골을 전부 무장시켰군. 게다가 이 정도 해골이라면…. 벌써 3성이 된 건가?’

아이작이 봤던 카단의 정보가 적힌 서류에는 분명 무장하지 않은 허약한 해골들이 소환했다고 적혀있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소환된 해골들은 낡은 무기와 갑옷으로 무장했으며 해골들의 뼈도 단단해 보였다.

카단은 주변의 해골을 둘러본 뒤, 아이작의 이어질 말을 기다렸고.

저벅.

아이작은 가장 가까이에 보이는 해골 병사에게 다가갔다.

“역시 형편없군요.”

해골을 몇 번이나 살펴보던 아이작이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자존심이 상할 법도 했지만, 카단은 묵묵히 이어질 아이작의 말을 기다렸다.

“그럼 효율을 한 번 찾아볼까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