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화
그가 말하는 효율이란 무엇일까?
카단이 궁금하다는 듯 얌전히 아이작의 말을 기다렸다.
“카단. 당신은 당신이 소환한 해골들의 재능을 파악하고 있습니까?”
하급 언데드인 해골 병사들에게 그 정도의 관심을 지닌 적은 없었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아뇨.”
카단이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아이작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 대부분의 네크로맨서가 간과하는 부분이 바로 이런 부분이죠.”
“하급 언데드에게 관심을 줘야 강해진다는 뜻입니까?”
“뭐, 효율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말을 멈춘 아이작이 손가락을 들어 카단을 가리켰다.
“당신처럼 약한 네크로맨서는 그래야만 하죠.”
약하다는 말에 울컥할 법도 했지만, 카단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음. 관심을 준다는 걸 단순하게 말하자면 해골들에게 적절한 무기를 쥐여 주라는 뜻입니다.”
카단을 가리키던 손가락이 이번엔 카단이 소환한 해골들을 가리켰다.
“약해빠진 해골이라도 저마다 조금씩은 잘하는 게 있거든요.”
아이작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낡은 검을 쥔 해골들이 보였다.
“과연 당신이 소환한 해골들은 살아생전 검을 휘둘러본 사람들이었을까요?”
어째서 해골들에게 똑같은 낡은 검을 쥐여 주었냐는 듯한 질문.
카단은 잠시 해골들을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던전에 묻혀 있던 이름 모를 이들을 되살렸다. 해골 병사로 되살아난 그들의 정보를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언데드는 살아있을 때의 능력과 재능을 미약하게나마 지닌 채 되살아나죠.”
그렇기에 네크로맨서들은 생전 뛰어난 실력을 지녔던 자의 시체를 찾아다니기도 한다.
뛰어난 자의 시체는 훌륭한 언데드가 될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실력자의 시체를 이용해 해골 병사를 만들라는 건 아닙니다. 그건 비효율적이죠.”
좋은 재료는 상급 언데드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해야 하는 건 네크로맨서의 기본적인 상식.
그 사실을 모를 리 없기에 카단은 조용히 고개만을 끄덕였다.
“지금이라도 해골들에게 적합한 무기를 쥐여 주라는 뜻입니다.”
카단은 다시 고개를 돌려 해골들을 바라봤다.
‘적합한 무기라….’
조금의 혼란이 찾아왔다.
‘배운 적 없던 내용이다.’
카단은 해골들에게 적합한 무기를 쥐여 주라는 가르침을 받은 적은 없었다.
“대부분 네크로맨서들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습니다.”
카단이 생각에 잠기려던 찰나, 아이작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대부분 네크로맨서들의 활동 시기는 5성의 경지에 다다랐을 때부터입니다.”
미약하게나마 1인 군단으로서의 위엄을 보인다는 5성.
초반이 약한 네크로맨서들은 그 5성 이전의 경지에서는 몸을 숨긴 채 수련에만 매진한다.
이윽고 5성을 달성하고 나서야 더 강한 시체를 찾아 대외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그러나 당신은 달라야 합니다. 당신은 아카데미에 입학한 순간부터 활동을 시작한 것과 다름없으니까요.”
이해할 수 있었지만, 궁금한 것이 있었다.
“모든 네크로맨서가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겁니까?”
“아뇨. 약한 시기에 숨어 지내는 네크로맨서들은 이러한 과정을 지나칩니다.”
그렇다면 샬로트도 5성 이전의 시기에는 몸을 숨긴 채 수련에만 매진했던 것일까?
“또 재능을 타고난 네크로맨서들도 이러한 과정을 지나치죠. 그들에게 이러한 과정은 너무도 당연한 거니까.”
타고난 천재는 당연하다는 듯 강해지는 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이런 걸 가르쳐주지 않은 거였군.’
샬로트 역시 타고난 천재.
당연하다 여기는 건 카단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다.
천재들은 둔재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마도 샬로트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난 천재는 아니야.’
카단 역시 네크로맨서로서 재능이 있다지만, 샬로트처럼 타고난 천재는 아니었다.
‘그래서 이 사람의 가르침이 나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어.’
그렇기에 아이작의 가르침이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었다.
샬로트에게 배운 것이 헛된 시간이 아니었지만, 어쩌면 아이작이 카단에게 더 어울리는 스승이기도 했다.
‘이곳에 오길 잘한 것 같군.’
아이작의 실력을 인정한 카단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지금 제가 해야 할 일은 해골들의 재능을 찾아주는 일이겠군요.”
“맞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아이작이 검지를 펼치며 말을 이었다.
“약한 해골을 많이 소환하는 건 대단하다지만 지금으로선 의미가 없습니다.”
“수를 줄이라는 말씀입니까?”
“네. 똑같이 생긴 해골 병사라고 하더라도 등급이 나뉩니다. 소수정예를 선정해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세요.”
의미 없이 많은 해골을 소환하는 것은 마나를 낭비하는 짓. 소수만을 선정해 그들을 강화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아이작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두 손을 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제 수업은 이런 식으로 진행될 겁니다. 지금 상황에서 최고의 효율을 찾을 것이며, 당신의 약점을 보완할 겁니다.”
대기만성형이라는 기대감을 버리고 당장의 생존을 위해 효율적으로 강해지는 법을 가르치겠다.
카단은 그러한 방식이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교수님.”
아이작은 싱긋 웃어 보이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저야말로. 뭐, 오늘은 첫날이기도 하니 수업은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죠.”
그저 인사 후 짧게 대화를 나누었을 뿐인데 수업이 끝났다.
아쉬워할 수도 있었지만, 카단은 아이작의 가르침에 만족하고 있었다.
“예. 감사합니다.”
***
늦은 밤, 카단은 홀로 아카데미 실내 훈련장을 찾았다.
수업 첫날이어서 그런지 늦은 시간까지 훈련하는 생도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카단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앞으로 뻗었다.
“죽음을 기억하라.”
달그락!
카단은 텅 빈 훈련장에 해골들을 소환했고, 해골들은 여느 때처럼 뼈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집중.”
단 한 마디에 훈련장에 소환된 해골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려 카단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어쩐지 섬뜩했다.
어두운 훈련장에 하얀 안광을 빛내고 있는 해골 무리의 모습은 두려움을 자아내기엔 충분했다.
‘해골들은 전부 던전에서 찾아낸 시체들로 일으켰으니, 어느 정도 전투 능력은 있겠지.’
카단은 무덤덤한 얼굴로 해골들을 바라보더니, 이내 입을 열어 명령했다.
“지금부터 서로를 죽여라.”
달그락!
카단의 명령이 떨어지자, 해골들은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존재였기에 해골들은 거침없이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빠각! 달그락.
동족, 아군이라는 개념이 지워진 듯한 광경.
“서열 정리도 한 번쯤은 할 필요가 있었어.”
느닷없이 해골끼리 싸우라는 명령을 내린 이유는 정예를 뽑기 위함이다.
해골에게도 등급이 존재한다지만, 지금 카단에겐 그들의 등급을 확인해 볼 능력이 없었다.
해골들의 살아생전 능력을 직접 본 게 아닌 이상, 그들의 등급을 나누기 위해선 이러한 과정이 필요했다.
‘마치 조폭들의 전쟁을 보는 기분이 드네.’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의 전투.
팔다리가 날아가거나 뼈가 부서져도 해골들은 멈추지 않았다.
화려한 기술을 선보이며 눈을 즐겁게 해주는 전투는 아니라지만, 치열하고 처절한 전투는 작은 전율까지 느껴지게 했다.
‘이쯤이면 되겠지. 많이는 필요 없으니.’
무기 없이 치러진 전쟁은 치열하게 이어졌고,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만.”
해골들의 전투를 지켜보던 카단이 손을 들어 명령했고, 미친 듯이 동족을 공격하던 해골들이 일제히 동작을 멈췄다.
‘스물이라. 지금은 이 정도면 적당하겠지.’
부서진 뼛조각이 바닥을 뒹굴었고, 그 위로 20마리의 해골 병사가 서 있었다.
죽이기 위한 전투를 치르면서 흥분한 모습도 지친 모습도 보이지 않는 해골들을 보고 있으니 조금은 소름이 돋았다.
‘이 녀석들이 내가 소환한 해골 중 상위권에 해당하는 녀석들인가?’
확실히 지금 서 있는 20마리의 해골들은 다른 해골들과 움직임이 달랐다.
‘뇌가 없다지만 지능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순간순간 상황에 따라 행동하는 것도 달라.’
카단은 살아남은 스물의 해골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턱을 매만졌다.
‘이제 다음으로 할 일은 재능을 찾아주는 건데.’
겉만 봐서는 해골들의 재능을 알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 지능이 있는 녀석들이니 시도는 해볼 법하군.’
카단은 무언가 생각해놓은 것이 있었는지, 곧바로 손을 뻗어 아공간을 열었다.
그리곤.
철그럭.
낡은 무기들을 하나씩 꺼내 바닥에 내려놓기 시작했다.
‘챙겨오길 잘했군.’
던전을 돌아다니며 해골만 주야장천 일으켰던 건 아니다.
던전 안에는 주인 없는 무기들이 있었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버려진 무기들을 모두 챙겨뒀다.
비록 그 수가 많다고 할 수 없고, 질이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종류는 다양했다.
기본적인 검부터 창, 활, 방패까지.
무기를 꺼내 종류별로 정리한 카단은 다시 몸을 돌려 해골들을 바라봤다.
“원하는 무기를 하나씩 골라봐. 가장 익숙한 무기로.”
해골들이 생전의 능력, 재능 따위가 미약하게나마 남아있다면 아마 생전의 자주 쓰던 무기를 고르지 않을까?
카단은 그렇게 생각하며 뒤로 세 걸음 물러섰다.
달그락. 달그락.
딱딱딱!
해골들은 턱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고, 카단이 정리해 놓은 무기 더미 앞을 향했다.
잠시 후.
‘확실히 단순히 검을 쥐여 준 것보다 이게 더 나은 것 같군.’
전과 다르게 해골들의 손에는 각자 다른 무기가 들려 있었다.
“방패를 든 놈은 맨 앞으로, 창을 든 놈들은 그 뒤, 활을 든 녀석들은 맨 뒤로 이동해라.”
무기를 나눴으니, 다음은 그룹을 나눠 배치할 차례.
달그락! 달그락!
해골들이 분주하게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골들의 걸음이 멈춰졌다.
‘방패 넷. 창 여섯, 활 둘. 그리고 나머진 검이군.’
검을 든 해골 8마리만이 멀뚱히 서서 카단의 명령을 기다렸고, 나머진 모두 카단이 말한 자리로 이동한 상태.
‘이렇게 보니 교수님의 의도를 대충 알 것 같네.’
소수의 해골을 선정해 재배치하고 나니 어느 정도 정돈된 느낌이 들었다.
단체로 낡은 검을 들고 있을 땐 어설픈 도적무리 느낌을 주었지만, 지금은 정돈된 병사의 느낌을 주었다.
“검을 든 놈들은 사이사이 빈 자리로 가라.”
마지막으로 검을 든 해골들까지 배치하고 나니 나름대로 구색이 갖춰진 것 같았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군.’
물론 강하다곤 할 수 없었다.
지금 카단의 상태에선 정예로 뽑은 해골만으로 전투하는 것보단 많은 해골을 소환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다.
‘지금 이 상태라면 당연히 약할 수밖에 없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이작이 내준 과제는 해골의 수를 줄이고 해골의 재능을 찾아주는 것.
‘그리고 마나가 낭비되는 것을 줄이는 만큼 이 녀석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
카단의 시선이 정예 해골들이 아닌 바닥에 흩어져 죽어 있는 해골들을 향했다.
그리곤 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철컥.
막 입을 떼려는 찰나,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카단은 들었던 손을 내리며 고개를 돌려 출입문 쪽을 바라봤다.
출입문 앞에는 익숙한 사람이 서 있었다.
“…….”
첫 만남부터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던 푸른 머리칼의 여성.
‘이 녀석은 이 시간에 왜 안 자고 훈련장에 온 거야?’
어색한 사이에서 오는 불편함에 카단은 곧바로 고개를 돌려 해골들을 바라봤다.
안면을 텄을 뿐, 친하다고 할 수 없는 사이였기에 그녀를 무시한 채 훈련을 이어가려 했다.
“마침 잘됐네. 너한테 볼일이 있었는데.”
푸른 머리칼의 여성의 싸늘한 목소리가 카단을 멈춰 세웠다.
‘볼일?’
카단은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뒤를 돌아 여성을 바라봤다.
“너 나랑 대련 한번 해볼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