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20화 (20/186)

제20화

푸른 머리칼의 여성이 느닷없이 제안해오자 카단은 눈을 끔뻑이며 그녀를 바라봤다.

“대련?”

처음엔 거들떠보지도 않더니, 2차 시험 이후로 쭉 차가운 시선을 보내던 여성.

“너의 입학시험 점수가 나보다 높다고 알고 있어. 그리고 난 그걸 이해할 수 없고.”

“그거랑 대련이란 무슨 상관인데?”

“내가 너보다 강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겠지.”

차가운 목소리와 거만한 말투는 여전히 변함없었다.

“그 말은 지금은 내가 너보다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거야?”

순간 여성의 차가운 얼굴 위로 당혹함이 묻어났다.

“아니. 그렇지 않아.”

여성은 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네가 더 강하다고 치자.”

카단은 귀찮다는 듯 휙휙 손을 내저으며 다시 해골 쪽으로 몸을 돌렸다.

“왜 질 것 같아서?”

비아냥대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카단은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첫날부터 이게 무슨.’

굳이 상대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은 누군가와 대련이 아닌 혼자만의 훈련이 필요한 시기.

배운 것들이 완벽하게 정리되지 않은 시점에서 대련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사람을 잘 못 봤군. 그나마 거슬리는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도발하는 듯한 말이 들려왔지만, 카단은 조금도 동요되지 않았다.

‘저 녀석이랑 한번 붙어보고 싶긴 한데.’

도발에 넘어가진 않았지만, 카단도 그녀의 실력이 궁금하긴 했다.

‘잭 카터 씨도 저 녀석을 조심하라고 했지?’

-이번 신입생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아무래도 마법사 블랑쉬입니다.

-블랑쉬?

-네. 더글라스 가문의 영애이자, 촉망받는 마법사죠. 아마 금방 알아보실 수 있을 겁니다.

-외모의 특이점이 있나요?

-네. 더글라스 가문을 대표하는 건 푸른 머리카락 색입니다. 아마 한 사람밖에 없을 거예요.

입학 전 잭 카터는 영웅 아카데미의 주요 인물과 신입생들의 정보를 정리해 카단에게 전달해주었다.

그리고 그 중 카장 첫 번째로 언급되었던 사람이 바로 블랑쉬.

‘아무래도 이 녀석이 그 블랑쉬겠지?’

촉망받는 마법사. 왕국 최고의 재능을 타고난 마법사.

대마법사이자 가디언인 ‘길버트’의 뒤를 이을 가디언 후보 중 하나.

뛰어난 실력을 지녔다고 하니, 그녀와 한 번쯤은 겨뤄보고 싶긴 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야.’

그러나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대련하는 것은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

시간과 마나만 낭비할 뿐.

척.

생각을 이어가던 카단이 걸음을 멈추더니 뒤를 돌아 다시 푸른 머리칼의 여성. ‘블랑쉬’를 바라봤다.

“한 달.”

나지막이 던진 말 한마디에 훈련을 빠져나가려던 블랑쉬의 걸음이 멈춰졌다.

“한 달?”

“한 달 뒤는 어때?”

그러자 블랑쉬가 코웃음을 치며 카단을 바라봤다.

“한 달이 지나면 뭐가 달라지기는 해?”

“싫으면 말고.”

카단은 아쉬울 게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자 블랑쉬가 잠깐 멈칫하며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내 다시 냉랭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좋아. 한 달. 정확히 한 달 뒤에 여기서 만나도록 하지.”

끝까지 거만한 태도를 유지하던 블랑쉬는 그렇게 말을 남기고 몸을 돌려 훈련장을 빠져나갔다.

***

이주가 지났다.

오전엔 체력 단련, 오후엔 심화 수업, 저녁엔 개인 훈련.

반복되는 하루를 보내다 보니 아카데미에서의 시간은 생각보다 더 빠르게만 흘러갔다.

“기본기도 좋고, 배운 것을 흡수하는 속도도 빠르군요.”

그 사이 카단은 많은 발전을 이뤄냈다.

“교수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아이작의 가르침이 도움이 되었는지, 본인이 체감될 정도로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었다.

‘이 정도면 올해 안에 4성이 되는 것도 문제없겠군.’

아이작은 그런 카단을 보며 몰래 감탄했다.

보통 급하게 성장하는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부족한 기본기 때문에 점차 성장이 더뎌지기 마련이다.

‘확실히 크게 될 녀석이다. 이전 스승이 가르친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을 텐데,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고 내 가르침을 받아들인다.’

일찍이 스승을 둔 네크로맨서는 다른 네크로맨서에게 배우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두 사람의 가르침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에 혼란스러워하기도 했고.

그러나 카단은 온전한 신뢰를 보여주며 아이작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그뿐인가?

하루도 빠짐없이 훈련장에 남아 밤늦은 시간까지 배운 것을 복습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발전이 느릴 수가 없었다.

“새로운 전투 방식이 어색할 법도 한데, 이 정도면 혼자서 중급 던전 정도는 공략할 수 있겠군요.”

보통 3성 네크로맨서가 혼자 던전을 공략할 땐 하급 던전을 선택한다.

혼자서 중급 던전을 공략하기에는 위험부담이 컸기에 웬만하면 다른 사람들과 힘을 합쳐야만 했다.

“중급 던전 말입니까?”

“네. 다른 네크로맨서라면 몰라도 당신은 가능합니다. 효율을 살렸으니, 죽을 위험도 없겠죠.”

임시지만 가디언의 자리에 있는 자가 하는 말이니 그 말이 의심되지는 않았다.

카단 역시 아이작에게 배운 것이 실전에 통할지가 궁금하긴 했다.

“슬슬 새로운 언데드도 소환해야 할 때니, 그에 걸맞은 재료도 필요하지 않습니까?”

아이작이 자상하게 웃으며 질문하자, 카단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이 읽히는 기분인데?’

3성이 되고 새로운 언데드를 소환할 수 있게 되었지만, 적당한 재료가 없었기에 시도조차 하고 있지 않았다.

“플레쉬 골렘을 소환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좀 참아주시고요. 아카데미 측에서 별로 좋아하진 않을 겁니다.”

아이작의 말에 카단은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시체들을 고깃덩이처럼 뭉쳐서 만든 골렘이라면 외관상으로 좋지 않겠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영웅을 육성하는 곳에서 시체 덩어리로 만들어진 골렘을 소환한다면 분명 사람들의 눈살을 찡그리게 할 것이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귀찮은 일이 생길 수 있으니 카단도 아이작의 말에 동의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카단.”

교단에서 이리저리 걸으며 말을 이어가던 아이작이 걸음을 멈추며 카단을 바라봤다.

“네. 교수님.”

“일주일의 시간을 드릴 테니, 던전에 좀 다녀오시겠습니까? 거부하셔도 괜찮습니다. 준비가 더 필요하다면야.”

“아카데미 밖으로 나가는 게 가능합니까?”

“미리 아카데미 측과 얘기는 끝내 놓았습니다. 교수의 ‘임무 수행’을 위한 것이라면 가능하죠.”

어느 정도 실력이 쌓인 생도들을 대상으로 교수들은 특정한 임무를 내려 아카데미 밖으로 내보내기도 한다.

보통은 2학년부터 임무를 받고 외부로 나가지만, 학기 초에 1학년이 임무를 받고 외부로 나가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물론 위에서 승인하기도 했고요. 당신의 선택만 남았습니다.”

아이작이 다시 한번 묻자, 카단은 고민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새로운 시체를 구할 수도 있고, 배운 것을 실전에서 활용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

카단이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이것부터 받으시죠.”

카단이 고민 없이 임무를 받아들이자, 아이작은 미소를 지으며 품 안에서 돌돌 말린 양피지를 건넸다.

“아카데미로 토벌 의뢰가 들어온 것 중 적절한 곳으로 골라봤습니다.”

양피지는 두 장이였다.

한 장은 던전의 위치가 표시된 지도였고, 한 장은 누군가가 작성한 의뢰서.

“수도에서 멀지 않은 곳입니다. 마차를 타면 하루 정도 걸리겠죠.”

“저 혼자 가는 겁니까?”

“혹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가요? 걱정된다면 다른 생도를 붙여줄 수는 있는데.”

아이작이 자상하게 웃으며 묻자, 카단은 고민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혼자가 편합니다.”

네크로맨서는 누군가와 함께 다니기보다는 혼자 다니는 것을 선호한다.

카단 역시 그와 다르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지원금입니다. 일주일 동안 사용하기엔 부족하지 않을 겁니다.”

이번엔 돈이 든 돈주머니를 건넸고, 카단은 고개를 꾸벅인 후 그것을 건네받았다.

‘돈이 없는 건 아니지만.’

교수의 개인 돈이 아닌, 아카데미에서 주는 지원금이었기에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언제 나가면 되겠습니까?”

“저녁 드시고 바로 출발하시면 됩니다. 아카데미에 보고는 제가 다 해두었으니 편하게 다녀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던전만 공략하고 오면 됩니까?”

“다녀오신 후 저에게 새로운 언데드도 보여주셔야겠죠?”

***

“벌써 임무를 간다고?”

식당에서 만난 알비스가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응.”

“1학년이 교수님의 임무를 받는 일은 별로 없다고 들었는데.”

알비스가 거짓말하지 말라는 식으로 말하자, 카단은 품 안에서 아이작에게 받은 양피지를 꺼내 식탁 위로 올렸다.

“지, 진짜네? 부럽다.”

“혼자 가는 건가?”

알비스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양피지를 확인했고, 옆에 있던 칼리아도 관심이 생겼는지 카단에게 질문을 던졌다.

“뭐, 혼자 가게 되었어.”

“잘 다녀와라. 언제나 판단은 신중하게 하고.”

칼리아 역시 그런 카단이 부러웠는지, 양피지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저녁 먹고 출발한다고 했지?”

알비스가 묻자, 카단은 양피지를 챙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어디서 시체 냄새나지 않아?”

그때, 뒤쪽에서 익숙하고 기분 나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체를 만지는 직업이면 예의상 구석에서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슬쩍 시선을 옮겨보니, 그곳엔 금발의 귀족. 라이덴이 고기를 썰고 있었다.

이주 사이 친구를 꽤 사귀었는지, 그의 옆에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생도들도 보였다.

‘제 버릇 개 못 준다더니.’

카단에게 망신을 당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또다시 시비를 걸어왔다.

“카단….”

그러자 알비스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카단을 불렀고.

“신경 쓰지 말고 먹어. 나한테 당한 게 자존심 상해서 괜히 저러는 거니까.”

카단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듯 반듯하게 썰린 고기를 하나 집어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알비스. 다시 말하지만, 이곳은 귀족도 평민도 노예도 없는 곳이야. 기죽지 말고 행동해.”

어쩌면 카단이 없는 일주일 동안 라이덴이 알비스를 괴롭힐 수도 있었다.

그게 불안하긴 했지만.

“만약 저 녀석이 건들면 나한테 말하고.”

어차피 심화 수업 빼고는 알비스와 칼리아가 붙어 다니니, 라이덴도 섣부른 행동을 하진 않을 것이다.

‘칼리아도 보통 실력이 아닌 것 같으니, 걱정이 덜 되긴 하네.’

카단이 고기를 씹으며 칼리아를 바라보자, 그녀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인생에 네크로맨서랑 같은 공간에서 식사하게 될 줄이야. 참 기분 더럽네.”

카단의 무시에도 라이덴의 비아냥은 끝나질 않았다.

“시체를 다루는 놈을 뭘 믿고 이런 곳에 합격시킨 거지? 졸업하고 반란이라도 일으키면 어쩌려고?”

이번엔 칼을 썰던 카단의 움직임이 멈춰졌다.

분명 라이덴이 내뱉은 말은 ‘샬로트 잉그마르’를 연상하며 내뱉은 말.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라이덴은 카단의 아버지를 모욕하는 동시에 카단을 모욕했다.

카단의 움직임이 멈추자, 앞에 앉아있던 알비스와 칼리아도 이상함을 눈치채곤 눈치를 살폈다.

그때.

“식사 예절을 배운 적이 없는 건가?”

차갑게 내려앉은 여성의 목소리가 라이덴을 향했다.

‘블랑쉬?’

카단은 건너편에서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을 곧바로 알아봤고, 시선을 옮겨 그녀를 바라봤다.

블랑쉬는 불쾌하다는 눈으로 라이덴을 노려보고 있었다.

“시끄럽고 기분 나쁘니까, 닥치고 밥이나 처먹어.”

“뭐, 뭐라고?”

라이덴이 눈을 부릅뜨며 블랑쉬를 노려봤다.

그러나 블랑쉬는 부들거리는 라이덴을 신경 쓰지 않고 식사를 이어갔다.

이상한 건 라이덴도 블랑쉬를 노려볼 뿐, 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거만한 표정과 목소리로 하대하듯 욕을 내뱉었을 텐데.

‘대충 알겠군.’

아마도 라이덴은 자기보다 높은 귀족 가문의 사람에게는 대들 수 없는 사람 같았다.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블랑쉬는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으며 라이덴에게 말했다.

“그리고 저 녀석은 내가 먼저야.”

순간 근처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카단에게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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