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25화 (25/186)

제25화

약속의 날이 다가왔다.

‘아무도 없을 줄이야.’

약속 장소인 실내 훈련장에 도착한 카단은 텅 비어있는 훈련장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블랑쉬가 카단을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를 하고 다닌 덕분에 1학년 중 두 사람의 대련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호들갑 떨고 다니더니, 대련은 조용히 치르고 싶었던 모양이네.’

카단을 건들지 말라는 경고만 전했을 뿐, 대련 날짜와 시간, 장소 등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 같았다.

‘구경꾼이 없는 게 편하긴 하지.’

철컥.

빈 훈련장을 둘러보며 몸을 풀고 있던 사이, 출입문이 열리며 블랑쉬가 나타났다.

“도망칠 줄 알았는데, 용케 약속을 지키는군.”

블랑쉬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전하며 카단에게 다가왔고, 그녀의 뒤로는 또 한 명의 사람이 있었다.

“오래 기다렸나?”

“크리스 교관님?”

1학년 생도들을 담당한 교관 크리스의 모습에 카단은 눈을 끔뻑이며 그를 바라봤다.

“중재자가 없는 대련은 위험하다. 이 크리스가 심판을 맡아주마.”

비공식 대련이라고 할지라도 교관 없이 진행되는 대련은 규칙 위반이었기에 블랑쉬가 크리스 교관에게 부탁한 것 같았다.

“두 사람 모두 준비는 되었나?”

크리스 교관이 카단과 블랑쉬를 번갈아 보며 묻자, 두 사람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위치로.”

크리스의 말에 카단과 블랑쉬는 훈련장 가운데로 걸어가 서로를 마주 본 채 섰다.

척, 척.

어쩐지 훈련장 안에 미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나만 보는 건 좀 아쉽군.’

크리스 교관은 두 사람을 보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아카데미 교관과 교수들이라면 이 대련을 분명 관람하고 싶을 것이다.

‘블랑쉬야 뭐 워낙 유명한 녀석이고.’

차기 가디언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지닌 마법사 블랑쉬.

‘그리고 카단은 아이작 님이 인정한 녀석이다.’

아카데미 입학시험 때부터 교관, 교수들 사이에서 빠짐없이 거론되었던 네크로맨서 카단.

과연 두 사람은 어떤 실력을 지니고 있을까?

“이곳에서 누군가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왕 대련하기로 했으니, 전투 중 머뭇거리는 일은 없도록.”

위기의 상황이 오면 알아서 막아주겠다는 듯한 말에 카단과 블랑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대답을 들은 크리스는 곧바로 한 쪽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시작해라.”

크리스가 내밀었던 손을 위로 올리며 뒤로 물러났다.

휙!

그와 동시에 날카로운 얼음 조각이 카단을 향해 날아갔다.

옆으로 몸을 젖히며 얼음 조각을 피해낸 카단은 헛웃음을 지으며 블랑쉬를 바라봤다.

피식.

그녀는 허공에 나타난 수많은 얼음 조각 사이에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반짝이는 얼음 사이에 미소를 짓고 있는 미녀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그러나 카단의 눈에는 그 모습이 위협적으로 보였다.

휙! 휙! 휙!

소환사를 상대하는 기본 중 하나. 무언가를 소환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휙! 휙!

블랑쉬는 그 기본에 충실하게 쉬지 않고 날카로운 얼음 조각을 날려댔다.

‘나름 준비는 한 것 같지만, 네크로맨서를 상대해본 적은 없는 것 같군.’

그러나 네크로맨서는 일반적인 소환사랑은 달랐다.

“죽음을 기억하라.”

충분히 시간이 있어야 하는 소환사와 다르게 네크로맨서는 시체만 준비됐다면 언제든 빠르게 언데드를 일으킬 수 있었다.

달그락!

이내 카단의 앞에 수십의 해골 병사들이 소환되었다.

“얼어붙어라.”

작전이 통하지 않아 당황할 법도 했지만, 블랑쉬는 이 역시 예상했다는 듯 소환된 해골들을 향해 곧바로 마법을 사용했다.

쏴아아아아악!

허공에서부터 냉기를 머금은 돌풍이 해골 병사들을 덮쳤고.

까드득!

순식간에 해골 병사들이 얼어버리고 말았다.

‘확실히 성가신 능력이네.’

얼음 속에 갇혀버린 해골들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역 소환도 안 되는 건가?’

해골들을 덮고 있는 얼음 때문인지 역 소환도 되지 않았다.

이대로면 몇 번을 소환해도 제대로 된 공격도 못 해볼 것 같았다.

“아무리 소환해봤자 날 이길 수 없어.”

가볍게 사용한 마법 한 번에 해골 병사들이 얼어붙어 버린다면 카단이 불리할 수밖에.

“죽음을 기억하라.”

카단은 상관없다는 듯 다시 한번 손을 뻗어 네크로맨시를 사용했다.

달그락!

반지 속에서 빠져나온 뼛가루는 곧바로 해골의 형태를 취했고, 이내 수십의 해골 무리가 카단의 앞에 소환되었다.

“소용없다고 했을 텐데?”

쏴아아아아악!

해골들이 소환되는 동시에 다시 한번 냉기를 머금은 돌풍이 불어왔고, 해골들은 아무런 공격도 해보지 못한 채 얼음 속에 갇히고 말았다.

“소모전으로 이어갈 생각이라면 응해주지.”

네크로맨서의 주특기인 소모전 역시 자신 있다는 뜻일까? 블랑쉬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무기도 들지 않은 해골들이라니. 고작 이런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 한 달을 기다리게 했던 건가?”

이미 승리를 확신한 듯 내뱉어진 비아냥에도 카단은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모전에 자신이 있다는 거지?”

카단은 다시 손을 뻗어 해골들을 소환했다.

‘잠깐. 이번 해골들은 뭔가 좀 다른데?’

이번에 나타난 해골들은 얼어붙은 해골과 달리 전부 무장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 소환한 해골들이 진짜 전력이라는 건가?’

게다가 훈련받은 병사처럼 들고 있는 무기에 맞춰 진형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봤자. 해골일 뿐이다.’

상관없었다. 뭐든 얼려버리면 그만이니까.

쏴아아아악!

냉기를 머금은 돌풍이 해골들을 향해 빠르게 불기 시작했다.

“응?”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그때, 뼈로 만들어진 거대한 벽이 나타나 그녀의 마법을 막아냈다.

“소모전에 자신 있다니, 기대되는군.”

카단은 기쁘다는 듯 미소를 머금으며 뼈의 벽을 가리켰고.

으득.

블랑쉬는 이를 악물며 빠르게 마나를 활성화했다.

콰지직! 콰직!

동시에 그녀의 옆으로 대포알처럼 생긴 얼음덩어리들이 생겨났다.

부웅! 붕!

얼음 포탄들이 뼈의 벽을 향해 쏘아졌고.

콰직! 콰과앙!

폭격당한 뼈의 벽은 무참하게 부서져 내렸다.

‘순발력도 좋은 녀석이었군.’

뼈의 벽을 단번에 무력화시킬 줄이야.

좀 더 당황할 줄 알았는데, 곧바로 파훼법을 찾아내는 블랑쉬를 보며 카단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공격해라.”

달그락! 달그락!

포탄에 의해 뼈의 벽이 무너지는 순간, 해골 부대가 기다렸다는 듯 돌격했다.

블랑쉬는 곧바로 마법을 바꿔 사용하려 했지만.

“큭! 콜록! 콜록!”

순간 목이 타들어 가는 듯한 갈증을 느끼며 헛기침했다.

덕분에 마법 시전이 늦어졌고 해골 병사들은 그 틈에 거리를 바짝 좁혔다.

“어딜!”

다시 한번 냉기를 머금은 폭풍이 해골들을 향했지만.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이번에도 역시 뼈의 벽이 나타나 법으로부터 해골 병사들을 지켜냈다.

“이 자식이!”

블랑쉬가 다시 얼음 포탄을 만들기 위해 마나를 활성화하자.

와르르르!

뼈의 벽이 갑자기 무너져 내렸고.

딱딱! 달그락!

벽 너머에서 잠시 대기하던 해골 병사들이 다시 걸음을 이어갔다.

달그락!

뼈의 잔해를 뚫고 전진하는 해골 병사들의 모습은 두려움을 자아냈다.

‘쯧. 일단 거리를….’

거리를 벌리며 마법을 사용할 생각으로 땅을 박차려 했지만.

꽈악!

어느새 나타난 뼈의 손이 그녀의 두 발목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이 빌어먹을 네크로맨서가!’

블랑쉬는 인상을 찡그리며 다시 한번 얼음 포탄을 만들어 카단을 향해 날려댔다.

콰직! 콰지직!

블랑쉬를 향해 달려들던 해골들은 얼음 포탄에 맞아 산산이 부서지며 바닥을 뒹굴었다.

수많은 포탄 세례에 살아남은 해골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죽음을 기억하라.”

카단의 명령에 따라 부서졌던 해골들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얼어붙지만 않는다면 되살리는 건 문제없지.’

불사를 자랑하듯 해골 병사들은 되살아나자마자 블랑쉬를 향해 돌격했다.

달그락! 달그락!

블랑쉬는 해골들과 카단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단순한 마법으로는 이길 수 없다. 그렇다면….’

순간 그녀의 눈이 푸른 안광을 내뿜었고, 그녀의 주변으로 냉기의 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얼음 폭풍은 블랑쉬 주변을 회전하며 그 범위를 늘려갔다.

마치 주변에 있는 것들을 모두 얼려버릴 듯한 기세였다.

‘저, 저건 4성 마법이잖아?’

심판을 맡은 크리스가 놀란 눈으로 블랑쉬를 바라봤다.

‘블랑쉬가 언제 4성이 된 거지? 그런 얘기는 들은 적이 없는데?’

빠른 성장이 대단하긴 하지만, 지금은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4성 마법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면 죽음까지 이를 수 있었기에 대련을 멈추고 카단을 구해야 했다.

‘어라? 뭔가 좀 이상한데?’

그러나 크리스는 움찔할 뿐, 곧바로 움직이진 않았다.

‘저 녀석…. 설마 3성인 주제에 4성 마법을 쓰려는 건가?’

다시 보니 그녀의 마법이 무언가 불안정해 보였다.

일정한 범위를 그리며 회전하는 얼음 폭풍이 균형을 잃은 팽이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범위를 넓힐수록 그 불안정함도 커졌다.

‘이 멍청이가!’

아무래도 카단을 이기기 위해 마나 하트를 갉아가며 상위 마법을 사용한 듯싶었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카단 보다 블랑쉬가 더 큰 위험에 빠질 것이다.

크리스가 그녀의 마법을 멈추기 위해 땅을 박차려던 순간.

“어?”

블랑쉬 주변으로 빠르게 회전하던 폭풍의 속도가 점차 줄어들었다.

‘마법이 제대로 발동되지 않은 건가? 아니면 마나가 부족했나? 뭐지? 왜 마법이 중단된 거야?’

이내 폭풍은 힘을 잃고 허공으로 흩어졌고, 블랑쉬가 지친 듯이 풀썩하고 주저앉았다.

“이 빌어먹을….”

그녀는 분하다는 듯 카단을 노려봤다.

“비겁하게 저주를 사용하다니.”

“누가 무리해서 4성 마법을 사용하라고 했나?”

그녀의 마법을 멈춘 것은 카단이었다. 물론 카단이 디스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3초에서 5초 정도 기력을 약하게 만드는 쇠약의 저주.

카단은 블랑쉬에게 저주를 걸어 무리해서 발동한 마법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비록 3~5초 정도만 통하는 저주였지만, 무리해서 사용한 마법을 저지하는 데는 충분한 시간.

블랑쉬는 몸에 기력이 쫙 빠지자 집중력을 유지하기 힘들었고, 무리해서 사용한 마법은 그대로 소멸하고 말았다.

“그리고 네크로맨서가 저주 마법을 쓴다고 비겁한 건 아니지.”

어느새 해골 부대가 그녀의 앞에 도달했고.

스릉!

방패를 든 해골 병사 사이사이로 튀어나온 삐죽한 창들이 그녀를 겨눴다.

“네크로맨서가 언데드만 이용해서 싸운다고 생각했나? 그것 역시 오산이다.”

완벽한 카단의 승리였다.

‘제기랄. 4성만 되었어도 뼈의 벽이든 해골이든 죄다 얼려버렸을 텐데.’

블랑쉬는 분하다는 눈빛으로 카단을 바라봤다.

그러나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낡은 창들이 그녀를 노리고 있었고, 이대로 마법을 사용해 해골들을 얼린다고 하더라도 승패를 뒤집긴 힘들 것 같았다.

“내가 졌다.”

블랑쉬는 고개를 숙이며 패배를 인정했다.

그녀는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더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미 무리해서 4성 마법을 사용해버리는 바람에 마나 하트도 엉망이 되어버린 상태.

‘안일했다. 그저 뼈 마법과 언데드만 소환할 줄 안다고 생각했는데, 저주라니.’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4성 마법을 쓴 순간 밑바닥이 드러났음을 알리는 것과 다름없었으니.

무리해서 사용한 마법으로 승부를 볼 수 없었다면 패배는 당연한 결과.

“승자. 카단. 두 사람 모두 고생했다.”

승패가 갈리자 크리스가 둘 사이로 걸어오며 말했다.

“블랑쉬. 승부욕이 강한 건 좋지만, 완벽하지 않은 마법은 너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집어삼킬 것이다.”

심판이 아닌 교관으로서의 사명도 잊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

“좋다. 주의해라. 자, 대련의 끝 역시 예를 갖춘 인사다. 서로 마주보고 서도록.”

크리스의 말에 블랑쉬는 어렵게 몸을 일으키더니, 오른손을 심장 부근에 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척!

카단 역시 그녀와 같은 동작을 취하며 예를 갖췄다.

“블랑쉬는 곧바로 신관을 찾아 치료받을 수 있도록. 마나 하트에 무리가 갔을 것이다.”

“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교관님.”

“그리고 카단. 너는 승리한 기념으로 이곳을 청소하고 숙소로 돌아갈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크리스는 빠르게 상황을 종료시키며 명령에 따라 흩어지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이대로 잘 성장해주기만 한다면 위험한 녀석들이 되겠는데?’

크리스는 이번 대련을 보며 속으로 쉬지 않고 감탄했다.

비록 기대했던 만큼의 화려한 대련은 아니었으나, 아직 3성에 불과한 그들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었고, 그들은 제한된 기술만으로 승부를 이어 가야 했다.

그렇기에 중요했던 건 순간적인 선택과 판단.

카단과 블랑쉬는 실시간으로 서로를 공략해나가며 대련을 이어갔다.

아쉽게도 블랑쉬가 성급한 선택을 내리는 바람에 대련이 종료되고 말았지만.

‘블랑쉬는 급한 성격만 잘 다스리면 더 뛰어난 마법사가 될 거고.’

물론 다른 선택을 했다고 하더라도 승부의 결과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진 않았다.

‘저 녀석은 끝까지 날 놀라게 하는군.’

크리스가 놀랍다는 눈으로 카단을 바라봤다.

설마 차기 가디언으로도 언급되는 블랑쉬를 손쉽게 이겨낼 줄이야.

게다가 대련이 시작되고 나서 끝날 때까지 평정심을 잃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늘 대련에서 보인 실력이 전부는 아닐 것 같단 말이지.’

마법사가 아닌 검사와 전투를 벌인다면 어땠을까? 크리스는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카단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슥- 슥-

카단은 소환된 해골들을 이용해 훈련장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저주를 사용하는 것도 충분히 숙련되었지.’

승리로 얻은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아이작 교수의 말만이 맴돌고 있었다.

-두 마법을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부턴 4성이 되기 위한 수행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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