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화
영웅 아카데미 회의실.
“어젯밤 카단과 블랑쉬의 대련이 있었습니다.”
단상 앞에 선 크리스 교관이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전했다.
순간 회의실이 술렁였지만, 이내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승자는 카단입니다.”
사람들이 다시 술렁이는 사이.
“그게 사실입니까?”
마법 심화 수업의 교수인 ‘콜린’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는 눈도 끔뻑거리지 못한 채 크리스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네. 카단이 이겼습니다.”
콜린은 두 사람이 대련할 거라는 사실은 이미 한 달 전부터 알고 있었다.
‘블랑쉬가 지다니. 말도 안 돼.’
블랑쉬가 누구인가?
대대로 역사적인 마법사를 배출한 마법 명가 더글라스 가문의 영애.
만인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영웅 아카데미에 입학한 최고의 유망주.
그런 그녀가 패배했다니.
“어제 일을 상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크리스 교관?”
콜린이 생각에 잠긴 사이, 누군가가 들뜬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그러죠.”
크리스 교관은 전날 있었던 카단과 블랑쉬의 대련을 상세히 들려주기 시작했다.
“블랑쉬 생도의 선공으로 대련이 시작되었습니다.”
교수와 교관들은 침묵하며 크리스 교관의 말에 집중했다.
“아직 두 생도 모두 3성이라 대련이 화려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대련이 이어지는 내내 입을 다물 수 없었죠.”
두 생도의 대련을 듣던 교수, 교관들은 가끔 짧은 탄성을 내뱉거나 헛웃음을 삼켰다.
“……그렇게 대련은 종료되었습니다.”
크리스의 말이 끝나자, 교관과 교수들은 각자 생각을 내뱉기 시작했다.
“블랑쉬 생도가 성급했군. 왜 무리해서 4성 마법을 사용했을까?”
“무리해야 할 만큼 어려운 상대였던 거겠죠.”
“그만큼 이기고 싶은 상대였을 겁니다.”
그들의 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블랑쉬는 성급했고, 카단은 침착했다.
“결국엔 여유로웠던 자가 승리를 거머쥐었군요.”
“그나저나 카단이라는 그 생도 대단하군요. 대련에서 비전투용 해골을 먼저 소환할 생각을 하다니.”
“블랑쉬 생도가 얼음 마법을 사용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 미끼를 던져본 거겠죠.”
“마법사를 상대로 처음부터 미끼를 던질 만한 대담한 생도가 또 누가 있을까요?”
어느새 회의실은 대련이 아닌 카단을 주제로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군.’
아이작은 자리에 앉아 흐뭇한 미소만을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1학년의 유일한 제자가 블랑쉬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니 기쁜 듯했다.
오늘 회의실에서 평안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자는 아이작 교수뿐이었다.
***
“축하합니다. 카단.”
교단에 선 아이작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대련도 이겼고, 가르쳐드렸던 저주 마법도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군요.”
그 유명한 블랑쉬를 상대로 완벽한 승리를 거뒀으니 어쩌면 콧대가 높아졌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부족한 게 많습니다. 대련 내내 아쉬움도 느꼈고요.”
그렇지만 아이작의 걱정과 다르게 카단은 대련 한 번에 콧대를 높일 정도로 어리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다행이군.’
그런 카단이 예쁘게 보였는지, 아이작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겠어.’
카단의 발전 속도를 보면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뛰어난 재능에 탄탄한 기초가 뒤를 받쳐주니 배움도 빠를 수밖에 없지. 이 녀석이라면 4성의 경지도 금방이다.’
체력, 지식, 마나 하트.
네크로맨서의 기초가 누구보다 탄탄했으며, 습득 속도도 빠르고 게으르지도 않았다.
그러나 4성의 경지에 도달하는 건 카단의 몫. 아이작은 그저 그가 성장할 수 있도록 발판을 잘 놓아주기만 하면 되었다.
‘좋은 스승을 만나 배운 모양이야. 급하게 성장하는 법이 아닌 완벽하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어.’
카단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으면 그의 스승이 궁금해질 정도였다.
“좋습니다. 부족함이야 채우면 그만이죠. 자, 그럼 수업을 시작해볼까요?”
카단을 바라보던 아이작이 얼굴에 미소를 지우더니, 교단을 천천히 거닐기 시작했다.
“5성 이전의 네크로맨서는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래도 ‘수’만으로 밀어붙이는 단순한 전략은 약한 자를 상대할 때나 효율을 발휘한다.
“많은 수의 언데드도 보다 강한 자 앞에서는 무의미한 존재가 되어버리고 마니까요.”
강한 상대에게는 약하고, 약한 상대에게는 강했기에 네크로맨서를 향한 시선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강한 자를 피하고 약한 자를 상대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 네크로맨서의 생존법이죠.”
비겁하다지만 현실. 카단도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기에 별다른 반론 없이 아이작의 말을 기다렸다.
“자, 카단. 제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십니까?”
느닷없는 질문이었지만, 카단은 준비되었다는 듯 곧바로 입을 열었다.
“네크로맨서는 언제나 강자의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맞습니다. 약자에게 강한 네크로맨서는 늘 강자의 위치에 있어야 하죠. 그게 효율적이니까.”
남들보다 강해진다는 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었다. 빠르게 강해지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
아이작 교수가 이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물론 이 녀석이라면 가능하겠지.’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기초가 탄탄하고 습득이 빠른 카단이라면 분명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급할 필요가 없어요. 당분간은 당신이 패배할 일이 없을 테니까.”
교수, 교관들이 가장 기대했던 생도 ‘블랑쉬’를 이겼으니, 지금 수준에서 카단을 이길 수 있는 생도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패배하지 않기 위해선 빨리 4성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까?”
4성이 되기 위한 준비는 얼추 끝났다. 4성과 관련된 지식도 충분했으니 마나 하트만 조금 더 단련하면 빠르게 4성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뇨. 아직 3성 네크로맨서로서 남은 게 있잖아요?”
일부러 배우지 않았던 두 가지 저주 마법까지 완벽하게 습득했다. 그런데 뭐가 더 남았다는 것일까?
카단이 의문을 담은 표정을 짓자, 아이작이 곧바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플래시 골렘. 완벽하게 다루지도, 효율적으로 다루지도 못하지 않습니까?”
“교수님께서 아카데미 측에서 좋아하지 않을 테니 플래시 골렘은 참아달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분명 ‘재빠른 사냥꾼들의 비밀 기지’로 가기 전 아이작 교수가 했던 말이었다.
“네. 아무래도 영웅 지망생이 다루기에는 좋아 보이진 않으니까요.”
여러 시체를 고깃덩이처럼 뭉쳐놓은 외관의 골렘이었기에 아카데미에서는 확실히 플래시 골렘을 좋아하지 않았다.
“만약 플래시 골렘을 대련에 사용했다면 당신이나 저는 여러모로 귀찮은 일을 겪었을 겁니다.”
아이작은 카단과 블랑쉬의 대련을 알고 있었다.
“참아달라는 거지,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잘못 이해했었군요.”
카단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하긴. 아카데미 안에서만 안 쓰는 거지, 아예 쓰지 말라는 말은 아니잖아?’
영웅 아카데미에서의 시간은 미래를 위한 것.
네크로맨서가 네크로맨시를 쓰는 건 이상한 게 아니었다.
“카단이 아카데미에서만 지낼 건 아니지 않습니까? 아카데미에서 소환하는 게 아니라면 굳이 눈치를 볼 필요는 없죠.”
아이작은 졸업 후까지 대비하여 수업을 진행하려 했고, 카단은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플래시 골렘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는 걸까?’
보통 플래시 골렘은 육중한 거구를 앞세우는 고기 방패 역할을 맡아왔다.
힘이 세다지만 움직임이 둔하니, 마땅한 역할을 찾아주기가 어려운 언데드.
게다가 공포 게임에나 나올 것 같은 징그러운 외관은 소환자마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교수님. 플래시 골렘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지 감이 잡히질 않습니다.”
“음. 그런가요? 저는 플래시 골렘이 3성 네크로맨서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카단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제가 네크로맨서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한 건 이 플래시 골렘 덕분이었습니다.”
그 말에 카단이 놀란 눈으로 아이작을 바라봤다.
쓸모없어 보이는 둔한 시체 덩어리로 무슨 짓을 했기에 명성까지 얻었다는 것일까?
“4성이 되기 전에 이 플래시 골렘을 당신의 가장 강력한 언데드로 만들어 봅시다. 제 제자라면 할 수 있어야죠.”
차라리 해골 병사를 더 소환하는 게 효율적이지 않을까?
‘다 뜻이 있겠지.’
의구심은 들었지만, 굳이 내색하진 않았다.
여태까지 아이작의 가르침에는 다 뜻이 있었고, 카단에게 이득을 안겨주었으니.
“알겠습니다.”
“자, 카단. 우선 플래시 골렘을 소환해보시겠습니까? 혹시 재료가 부족하면 말씀하세요.”
“재료는 충분합니다.”
고블린 던전부터 놀 던전까지 몇몇 던전을 공략했기에 몬스터 사체는 충분히 모아뒀다.
카단은 아공간을 열어 곧바로 고블린과 놀의 사체들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재료는 준비됐고.’
골렘은 다른 언데드와 다르게 단순히 ‘망자를 일으키는’ 개념이 아니었다.
우웅.
카단의 손바닥 위에 생겨난 짙은 녹색의 구체.
그것은 골렘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코어였다.
처척! 촤륵! 추륵!
녹색의 구체를 시체들 위로 조심스레 밀어내자, 괴상한 소리와 함께 사체들이 코어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크르르르….
이내 고깃덩이를 마구잡이로 뭉쳐놓은 골렘 하나가 바닥을 집고 일어섰다.
“역시 정석대로 잘하시는군요. 참 흉측하게 생겼습니다.”
아이작은 카단이 만들어낸 플래시 골렘을 보며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정석대로만 하면 쓸모없는 고기 방패로 쓰일 뿐입니다.”
“이 골렘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쓸 수 있습니까?”
카단은 육중한 거구의 플래시 골렘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무리 봐도 정감이 가지 않는 외관. 이런 골렘을 어떻게 쓸모있는 언데드. 아니, 가장 강한 언데드로 만든다는 걸까?
“카단. 플래시 골렘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아이작의 질문에 카단은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도 플래시 골렘에 대해선 별다른 설명이 없으셨었는데.’
플래시 골렘의 탄생.
샬로트에게 들은 적도 없으며, 책에서도 본 적 없는 내용이었다.
“옛 네크로맨서들이 강한 언데드를 연구하던 끝에 키메라를 만들어냈었죠.”
“설마….”
“네. 키메라를 연구하던 중 탄생한 것이 시체로 만들어진 플래시 골렘입니다.”
플래시 골렘은 키메라 연구 중 파생된 네크로맨시였던 걸까?
“어릴 적 우연히 얻은 고대 서적에서 확인했던 내용이죠. 전 이 내용을 토대로 제 플래시 골렘을 완성했죠.”
휙.
말을 이어가던 아이작이 옆으로 손을 펼쳤고, 그의 옆으로 커다란 포탈 하나가 생겨났다.
“나와라.”
그의 명령과 동시에 포탈 너머에서부터 2m는 되어 보이는 거구의 생명체가 걸어왔다.
저벅, 저벅.
“이, 이건.”
“제 플래시 골렘입니다.”
포탈 너머에서 나온 아이작의 플래시 골렘을 본 카단은 놀란 듯 눈조차 끔뻑이지 못했다.
“이건 키, 키메라 아닙니까?”
“키메라 제조법은 오래전에 잊힌 고대 네크로맨시입니다. 제가 그런 걸 알고 있을 리가 없죠.”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으나, 사람이라고는 부를 수 없었다.
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 몸 곳곳에는 바늘로 꿰맨 듯한 흉터들이 가득했다.
플래시 골렘의 머리에는 투구가 씌워져 있어 그 안을 확인해볼 수는 없었지만, 팔과 다리는 분명 몬스터의 것.
“마력의 핵과 여러 사체를 합쳐 만든 명백한 플래시 골렘입니다.”
“어떻게 이런….”
카단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네크로맨서이자 그의 아버지인 ‘샬로트 잉그마르’조차 이런 플래시 골렘을 만든 적은 없었다.
“이 플래시 골렘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모르겠습니다.”
“재료만 있다면 언제든 신체 부위를 교체할 수 있다는 거죠. 즉 성장할 수 있는 언데드입니다.”
그 말에 카단은 할 말을 잃었다는 듯 멍하니 아이작의 플래시 골렘을 바라봤다.
“카단. 네크로맨서는 창의적이어야 합니다. 제조법을 알려드릴 테니, 제 연구실로 이동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