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27화 (27/186)

제27화

“지금은 이게 최선이군요.”

아이작은 실험대 위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험대 위에는 피부 곳곳에 꿰맨 듯한 자국이 있는 놀 시체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건 그냥 놀… 아닙니까?”

“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건 플래시 골렘입니다. 쓸만한 재료가 놀 사체뿐이었으니, 어쩔 수 없죠.”

아이작의 말에 카단도 동의한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봐도 그냥 놀인데.’

그러나 의문이 들었다.

사체들이 마구잡이로 뭉쳐져 있던 때와는 다르게 지금 플래시 골렘은 그저 수술을 끝낸 듯한 놀의 시체.

이 골렘이 정말 강할까?

“자, 이제 마력의 핵을 명치 부근에 넣어보시겠습니까?”

“네.”

아이작의 말에 카단은 손바닥 위로 영롱한 녹색 빛을 띠는 구체를 만들어냈다.

‘마나 소모가 심하군.’

해골 병사를 소환할 때와 다르게 상당한 마나가 몸속에서 빠져나가는 느낌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스륵.

카단은 마력의 핵을 플래시 골렘 상체에 천천히 밀어 넣은 뒤, 두 걸음 정도 뒤로 물러섰다.

뜨드드득!

그러자 무언가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놀의 시체. 아니, 플래시 골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뜨득.

실험대 위에서 몸을 일으킨 골렘은 멍한 눈빛으로 카단을 바라봤다.

명령을 기다리는 듯 골렘의 멍한 눈빛은 카단을 향했다.

“뭔가 움직이는 인형 같군요.”

해골 병사들은 작게나마 자아가 남아있는 것 같았지만, 플래시 골렘은 그저 움직이는 인형을 보는 듯했다.

호흡도 하지 않고, 움직임도 없이 가만히 있는 모습에 왠지 모를 이질감도 느껴졌다.

“플래시 골렘은 원하는 부위를 언제든 교체할 수 있는 만큼 성장할 수 있는 언데드입니다. 분명 귀중한 전력이 되겠죠.”

다양한 시체를 합쳐 만든 플래시 골렘은 각각의 부위를 바꾸는 것 역시 가능했다.

더 강한 몬스터의 신체 부위를 가져다 붙인다면 아이작이 말하는 성장도 불가능한 게 아니었다.

“카단. 그거 아십니까?”

플래시 골렘을 살펴보던 아이작이 카단을 바라보며 질문했다.

“어떤 걸 말씀이십니까?”

“전설 속 네크로맨서는 골렘 안에 영혼을 넣어 사용했다고 합니다.”

하급 언데드와 다르게 상급 언데드는 원한이 깃든 망자의 영혼을 불러와 시체에 깃들게 한다.

영혼이 깃든 언데드는 자아를 갖게 되며 의지대로 움직이고 때론 성장하기도 한다.

“골렘은 생명체가 아니지 않습니까? 생명체가 아닌 것에 영혼을 넣을 수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영혼이 깃들기 위해선 필요한 조건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살아있던 것의 시체’.

그러나 골렘은 인위적으로 만든 움직이는 병기에 불과했다.

“아무리 시체로 만든 골렘이라지만, 그게 가능합니까?”

“다른 골렘들에게도 가능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마력의 핵이 없다면 움직일 수도 없는, 영혼이 깃들 수 없는 그릇을 지닌 병기.

생명체도 아닌 골렘에 영혼을 넣는다고? 카단의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카단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멍한 표정을 짓고 있자, 아이작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전설 속 이야기일 뿐입니다. 아무리 네크로맨서라고 하더라도 무생물에 생명을 깃들게 하는 건 불가능하죠.”

“아, 그렇죠. 전설….”

“전설로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영혼의 결정을 이용해 영혼을 부여하고 골렘의 힘을 강화한다고 하더군요.”

이어진 아이작의 말에 카단이 흠칫했다.

“영혼의 결정 역시 전설 속에나 존재하는 거 아닙니까?”

“네. 전설에 불과한 얘기죠.”

아이작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카단은 그와 함께 웃을 수가 없었다.

‘영혼의 결정을 그런 식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거였어?’

죽음을 경험한 자만이 얻을 수 있다는 ‘영혼의 결정’. 전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그 특수한 힘의 결정체를 카단은 이미 손에 넣었다.

“저도 전설 속 네크로맨서처럼 영혼의 결정을 얻을 수 있었다면 더 빨리 가디언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아쉽군요.”

“전설을 믿으십니까?”

“제 우상이었던 분께서는 믿었지만, 저는 크게 믿는 편은 아닙니다. 아쉬움만 남으니까요.”

“우상이었던 분이라면?”

“있습니다. 지금은 뵐 수 없는 분이죠.”

카단은 잠시 고민했다.

어쩌면 아이작에게 영혼의 결정을 얻었다고 말한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아니다. 밝혀봤자 좋을 건 없어.’

전생의 경험이 답을 알려주었다.

남들에게 질투나 선망을 받게 될 무언가를 지닌 사람은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다.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불행이 찾아온다는 걸 알고 있으니.

‘어쩌면 전생에서 내가 죽은 이유도 비슷하겠지. 그 당시 난 필요 이상의 진실들을 알고 있었으니.’

잠시 전생을 떠올렸던 카단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놀랐습니다. 교수님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군요.”

어쩌면 그 우상이 샬로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쉽게 그 이름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순 없었다.

“네. 있었죠. 그나저나 시간이 많이 늦었군요. 4시라니.”

“벌써 그렇게 지났습니까?”

실험실 한쪽에 놓인 시계를 바라보니, 4시를 넘기고 있었다.

얼마나 집중했던 것일까?

저녁 시간 이후 곧바로 실험실에 들어와 플래시 골렘을 만들었는데, 벌써 새벽이 되었다니.

“골렘도 완성되었으니,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다행히 내일은 휴일이니 푹 쉬시고요.”

“알겠습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이곳 청소는 제가 할 테니 어서 기숙사로 돌아가 보세요.”

카단이 돕겠다며 말하려 했지만, 아이작이 자상하게 웃으며 어서 가라고 손짓했다.

어쩐지 그의 눈빛에서 기대감이 담겨 있는 것만 같았다.

***

다음날.

“저 녀석 네크로맨서잖아? 왜 저렇게 뛰어다녀?”

점심시간이 지나자 카단이 연병장에 나타났다.

“네크로맨서라면 어디 구석에서 언데드 연구 같은 걸 해야 하지 않아?”

“한 달 넘게 지켜봤지만, 적응 안 돼. 네크로맨서가 뭐 저렇게 체력이 좋아?”

카단이 연병장에 나타난 지 3시간. 간단한 근력 운동 후 뜀박질까지 이어가는 그를 보고 있으니 절로 혀가 둘렸다.

보는 사람이 질릴 정도로 체력 훈련을 하는 네크로맨서가 어디 또 있을까?

“그런데 그거 사실일까?”

“블랑쉬를 이겼다는 거?”

“하긴 어제 수업도 불참했잖아? 블랑쉬가 안 보이던데?”

블랑쉬와 대련이 끝나고 이틀이 지났다.

두 사람의 대련 결과는 교관, 교수들은 물론 생도들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다.

“언데드쯤이야 마법으로 얼려버리면 그만이잖아? 얼어붙은 언데드는 되살리지 못하니까.”

“블랑쉬가 그걸 안 했겠니?”

“듣기론 뼈 방패로 마법을 막고 저주 마법으로 허를 찔렀다더라.”

대련이 끝나고 이틀이 지나서야, 두 사람의 대련이 화제가 되었다.

아마도 교수 중 누군가가 심화 수업에서 생도들에게 대련 결과를 말해준 것 같았다.

‘그 녀석은 괜찮으려나?’

카단 역시 이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연병장을 뛰는 내내 다른 생도들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니 모를 수가 없었다.

‘꽤 자존심이 강해 보였는데.’

명가의 영애. 귀족 가문 출신의 촉망받는 마법사.

아마 그 누구보다 블랑쉬 본인이 가장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소문까지 나버렸으니, 그녀의 자존심에 꽤 많은 상처가 새겨졌을 것 같았다.

‘체력 단련 수업에도 보이질 않더니, 심화 수업도 빠진 모양이군.’

무리해서 4성 마법을 쓰려다 마나 하트에 이상이 생긴 걸까? 아니면 자존심 때문에 수업을 빠진 걸까?

신경 쓰고 싶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대련 상대였기 때문인지 신경이 쓰였다.

“이봐. 네가 카단 맞지?”

잠시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던 중 누군가가 카단의 앞으로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보니 낯선 얼굴이 보였다.

큰 덩치에 험악하게 생긴 외모. 어쩐지 영웅보다는 악당에 어울리는 사내였다.

아카데미 훈련복을 입고 있으니 생도가 분명했지만, 모르는 얼굴이었다.

“맞습니다.”

2, 3학년 중 하나겠지. 카단은 그렇게 생각하며 정중하게 대답했다.

“네가 블랑쉬를 이겼다던데 사실이냐?”

3학년의 입에서 뜬금없이 블랑쉬의 이름이 튀어나오는 걸까?

카단은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네.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크하하하하!”

카단의 대답을 듣자, 클로제는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연병장에 쩌렁쩌렁 울리는 웃음소리가 왠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잘했다! 고맙다!”

“네?”

“그 녀석 콧대를 꺾어주고 싶었는데, 그걸 해주는 녀석이 아카데미에 존재했다니!”

클로제는 기쁘다는 듯 카단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어댔다.

“이왕이면 지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었는데! 아! 아쉽다! 그래도 잘했다!”

“저기 이거 좀 놓고….”

“아, 이런 미안하다. 너무 기쁜 나머지 실례를 했네.”

흔들거림에서 탈출하게 된 카단은 헛웃음을 삼키며 클로제를 바라봤다.

“누구신데 이러시는 겁니까?”

블랑쉬에게 원한이라도 있는 사람인가? 아니, 영웅 아카데미의 생도라면 분명 뛰어난 실력을 지닌 사람일 텐데.

카단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클로제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 소개를 안 했군. 나는 3학년 클로제 더글라스라고 한다.”

클로제가 커다란 손바닥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블랑쉬의 오빠이기도 하고.”

“네?”

카단은 놀란 눈을 뜨며 그를 바라봤다.

‘거짓말.’

블랑쉬가 성격이 나빠 보이긴 해도 꽤 뛰어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전혀 닮은 구석이 없는데?’

험악하게 생긴 클로제의 외모에서는 블랑쉬와 닮은 곳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블랑쉬의 차가운 성격과 다르게 클로제는 호탕하며 밝은 느낌이었다.

외모의 성격. 그 어느 것도 닮은 게 없는데 남매라니. 아무리 봐도 믿을 수가 없었다.

“이거 내 손이 무안한데?”

“아, 죄송합니다.”

클로제가 피식 웃으며 다시 말을 꺼내자, 카단은 조심스레 악수를 받아주었다.

악수를 받아주는 순간 손을 부러트리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었지만.

‘복수하려는 건 아닌 것 같고.’

클로제는 행여나 카단이 다칠까, 가볍게 카단의 손을 쥐고 있었다.

“잠깐 앉아도 되겠지?”

“아, 네.”

악수하던 손을 놓은 클로제는 카단의 동의하에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 녀석 지고 나서 울진 않았지?”

“네. 처음부터 끝까지 차가운 얼굴이었습니다.”

“끝까지 자존심 부리기는. 쯧. 패배의 쓴맛에 눈물도 흘려보고 해야 하는데. 아쉽네.”

동생이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아쉬워하는 오빠가 있을까?

“블랑쉬 녀석은 어려서부터 지는 법을 몰랐어. 언제나 1위가 아니면 만족하지 않았고.”

그녀의 뛰어난 재능은 어려서부터 개화한 모양이었다.

“그랬습니까?”

전혀 관심이 없는 이야기였지만, 우선은 들어보기로 했다.

우락부락한 그의 외모에서 친근함이 느껴졌기에 처음 느껴지던 부담감이 점차 사라지기도 했으니, 불편하진 않았다.

“응. 아카데미에 온다고 했을 때도 걱정했거든? 그 녀석의 재능이라면 이곳에서도 패배할 일은 없겠다 싶었으니까.”

그런데 입학한 지 한 달 만에 블랑쉬가 무너졌다.

“입학시험 점수가 너보다 낮다면서 자존심 상해하던데, 결국 패배까지 맛보다니. 아, 속이 다 시원하네.”

동생의 패배를 기뻐하는 모습이 이질감이 들 수도 있었지만, 카단도 어느 정도 그의 말에 공감하고 있었다.

“무너진 적 없는 사람은 극복하는 법을 모르는 법이죠.”

전생에 카단. 아니, 이석훈이 모시던 사람이 했던 말이었다.

-석훈아. 무너진 적 없는 사람은 극복한 법을 모르는 법이다. 그래서 난 네가 부럽다.

-형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넌 수없이 무너졌어도 극복해왔잖아? 난 무너진 적이 없어서 극복해본 적이 없거든.

-…전 형님이 더 부럽습니다.

먼 하늘을 보며 잠깐 전생을 떠올리던 사이.

짜악!

커다란 손바닥이 카단의 등짝을 두드렸다.

“커헉!”

“내 말이 그 말이다!”

등짝을 후린 장본인, 클로제는 호탕하게 웃어댔다. 아무래도 카단의 대답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패배를 아는 영웅은 더 강해지는 법이지! 덕분에 내 동생이 큰 은혜를 입었다!”

대련에서 패배시킨 것이 은혜라고 부를 일일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카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저 대련이었습니다. 그런 거창한 게 아닙니다.”

“아카데미가 아니라면 언제 목숨을 내놓지 않고 패배를 경험할 수 있겠어? 녀석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을 거야.”

클로제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카단을 바라봤다.

“무너진 적 없는 사람은 극복할 줄 모른다…. 마음에 드는 말이다.”

“감사합니다.”

“언제든 무너지고 싶으면 말만 해! 내가 무너트려 주마!”

“사양하겠습니다.”

카단의 대답을 들은 클로제는 피식 웃으며 다시 한번 악수를 청했다.

이번엔 곧바로 카단도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앞으로도 내 동생을 잘 부탁한다. 되도록 많이 이겨달라고.”

짧은 악수가 끝나고 클로제는 다시 아카데미 어딘가를 향해 걸어갔고, 카단은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봤다.

‘이상한 사람이네.’

그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어쩐지 짧게 이어질 인연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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