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29화 (29/186)

제29화

“저에게 말씀입니까?”

카단을 내려다보던 벨리드가 천천히 상체를 숙이더니 카단과 눈높이를 맞췄다.

“불법적인 일은 아니에요. 크게 위험한 일도 아니고.”

“그런데 왜 저에게 의뢰를?”

갑자기 얼굴이 가까워지자, 카단은 천천히 몸을 뒤로 빼며 물었다.

그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는지, 벨리드가 싱긋 웃으며 다시 몸을 세웠다.

“4성 네크로맨서부터 가능한 의뢰거든요.”

“전 아직 3성입니다.”

“곧 4성이 되실 거잖아요?”

카단의 대답에 벨리드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었기에 카단은 반박하는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왕국에 네크로맨서가 없는 것도 아닐 텐데요?”

당장 마탑에만 가더라도 4성 수준의 네크로맨서는 존재한다.

용병으로 등록한 4성 네크로맨서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카단에게 의뢰를 하려는 것일까?

“생각보다 네크로맨서의 수가 많지 않습니다. 특히 공식적으로 활동하는 4성 네크로맨서는 더더욱 수가 적고요.”

“졸업 반에도….”

아카데미에 있는 네크로맨서는 카단을 포함해 총 두 명. 그중 하나인 3학년 생도에게 부탁해도 되지 않을까?

“졸업반은 아무래도 바쁘니까요? 게다가 그 생도는 마탑 소속이에요.”

그에 반해 카단은 평민 출신, 마탑 등 소속된 곳이 없었다.

“무엇보다 개인적인 일이라 공식적으로 알려지고 싶지 않아서요. 소속이 있으면 좀 그래요.”

카단은 잠시 벨리드를 바라보더니, 이내 무언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불법적인 일도 위험한 일도 아니라지만, 아무런 정보도 없이 의뢰를 받아들이겠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급할 필요가 없었고,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따질 건 따져야 하는 법.

“4성 네크로맨서부터 망자의 기억을 들여다볼 수 있잖아요?”

벨리드가 네크로맨서의 기술을 알고 있다는 것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금방 이해는 됐다.

그녀도 마법을 공부하는 자이며, 네크로맨서의 정보도 꽤 풀려있을 것이다.

“네. 맞습니다. 4성 수준이라면 망자가 죽기 전 잠깐의 시간 정도만 들여다볼 수 있어요.”

“그 정도면 충분해요. 제 의뢰는 망자의 기억을 통해 물건의 행방을 찾는 거거든요.”

“물건의 행방?”

“네. 던전에 들어가서 제가 말하는 특징의 시체를 찾아 그 시체의 기억을 들여다 봐주세요.”

벨리드가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며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 이 의뢰는 우리 둘만의 비밀이어야 해요. 말씀드렸다시피 개인적인 일이라.”

그 말에 카단은 잠시 입을 다물고 고민했다.

‘비밀이 얽힌 일은 대부분 위험이 존재하던데.’

개인적인 일, 비밀이라는 단어가 묘하게 거슬렸고, 위험이 의심되었다.

“의뢰를 거절해도 상관없어요. 그건 당신의 선택이니까.”

망설이는 카단을 보며 벨리드는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마도 카단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알고 있는 듯한 눈치였다.

‘나랑 대화할 기회를 만들기 위해 버려둔 해골까지 챙겨둔 노력이 가상하긴 한데.’

가상한 건 가상한 거고, 불법적인 일에 엮이는 건 피하고 싶었다.

“의뢰 보상은 확실하게 준비해놨습니다. 당신이 필요할 만한 거로.”

우웅.

카단이 고민하는 사이, 벨리드가 다시 아공간을 열었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철그렁.

묵직한 쇳소리와 함께 바닥에 놓인 건 녹슨 풀 플레이트 아머였다.

분명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벨리드에게 손가락질했을 것이다.

네크로맨서가 전신을 뒤덮는 전신 갑옷을 입는 경우는 거의 없다. 더군다나 이런 녹슨 갑옷을 보상이라고 내놓다니.

카단에게 전혀 필요 없어 보이는 보상이었다.

“어때요?”

그러나 벨리드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이건….’

카단 역시 녹슨 풀 플레이트 아머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4성이 되었을 때 이 갑옷이 당신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 같은데?”

벨리드의 말에 카단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갑옷이 아니군요.”

“네. 경매를 통해 힘겹게 얻었습니다.”

갑옷에서부터 느껴지는 한기, 한이 가득한 망자의 기운이 느껴졌다.

“최상급 리빙 아머의 재료로 손색없는 갑옷이죠. 적국의 기사가 죽을 당시 입고 있던 갑옷이라더군요.”

살아있는 갑옷. 리빙 아머는 착용자가 없어도 스스로 움직일 수 있었다.

골렘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었지만, 마력의 핵으로 움직이는 골렘과 달리 리빙 아머는 전 착용자의 영혼이 깃들며 움직이게 된다.

‘이 갑옷으로 리빙 아머를 만든다면 상급 던전을 공략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지.’

그리고 리빙 아머의 강함은 갑옷에 깃든 원한의 깊이에 따라 결정된다.

“어때요? 이 정도면 보상은 충분할 것 같은데?”

보상을 보고 흔들리는 카단을 발견한 벨리드가 한 번 더 질문을 던졌다.

“네. 그렇네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반 갑옷으로 리빙 아머를 만들면 골렘만도 못한 수준이겠지만, 이건 다르다.’

이 정도 갑옷을 구하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보상이 큰 만큼 위험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이처럼 큰 보상을 준다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

“생각보다 더 철저하시네요?”

카단이 경계하듯 말하자, 벨리드가 의외라는 듯 눈썹을 들썩이며 말했다.

‘보통 이만한 보상을 보면 판단력이 흐트러질 법도 한데.’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얕볼 수 없었다.

생각보다 더 철저하고 경계심이 짙은 모습을 보고 있자니, 생도가 아닌 웬 베테랑 용병과 대화하는 기분이 들었다.

“저에게 아무런 피해가 없다는 것만 확실해진다면 의뢰를 받아들이겠습니다.”

비록 사는 세계가 다르다지만, 카단의 몸속에 깃든 영혼은 산전수전 다 겪은 조폭의 영혼이다.

얕은수에는 넘어갈 리 없었다.

“좋아요.”

카단의 말이 반갑다는 듯 벨리드가 싱긋 웃으며 카단에게 다가왔다.

“장소는 ‘배고픈 시체들의 동굴’이에요. 말 그대로 좀비들이 우글거리는 중급 던전이죠.”

“좀비 말입니까?”

일반적인 용병들이라면 모를까, 카단에게는 좀비가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네크로맨서가 좀비를 무서워하진 않겠죠?”

무서워할 이유가 없었다.

네크로맨서는 좀비를 일으킬 수 있는 시점부터 좀비 독에는 면역이 되어 있으니, 좀비가 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카단이 아닌 언데드들이 전면에 나서 전투를 치를 것이고 언데드에게 좀비 독은 무용지물.

“아마 제가 말하는 시체도 어디 누워있지 않고 던전 안을 걸어 다니고 있을 겁니다.”

“찾는 데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다는 뜻이군요.”

“어때요? 이 정도면 안전하지 않나? 중급 던전이지만, 공략하기엔 위험부담이 커서 사실상 방치된 던전입니다.”

웬만해선 다른 누군가가 벨리드가 말하는 던전에 들어갈 일이 없다는 뜻이었다.

또한 시간 적으로 여유롭다는 뜻이기도 했다.

“좋습니다. 언제 다녀오면 되겠습니까?”

“급할 건 없잖아요? 아직 3성이시기도 하고?”

“네. 맞습니다.”

“어차피 거리가 멀어서 휴일엔 다녀오긴 힘들어요. 휴식기를 이용해서 다녀오시는 걸 추천합니다.”

1학기가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기 전 생도들에게 주어지는 한 달간의 휴식기.

‘여름 방학 개념이겠군.’

벨리드는 그 휴식기를 이용해 의뢰를 해결해주길 바랐다.

“알겠습니다. 그럼 휴식기가 시작되는 날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카단이 대답하자, 벨리드는 살갑게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그럼 잘 부탁해요. 제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지원은 해줄 테니, 휴식기 전까지 꼭 4성이 되셔야 합니다?”

“네.”

카단은 짧게 대답하며 그녀의 손을 붙잡았고, 벨리드는 피식 웃었다.

“제 목적은 이뤘고, 이제 오늘 수업을 시작해 볼까요?”

“수업이라면?”

“상담하기로 했잖아요?”

붙잡았던 손을 놓은 벨리드는 근처에 있던 의자를 가지고 와 카단의 앞에 앉았다.

“자, 카단. 아카데미 생활에 문제는 없나요?”

***

아침이 되자 1학년 생도들은 여느 때처럼 연병장으로 모였다.

평소와 다르게 그들은 연병장을 달리며 체력 단련을 하는 게 아닌, 가만히 서서 크리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 말했던 것처럼 오늘은 전투 훈련을 진행할 것이다.”

크리스 교관은 근엄한 표정으로 생도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맨손 전투 훈련이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전투 중 무기가 파손될 수도 있습니다.”

“무기 없이 입장해야 하는 귀족의 저택이나 왕궁에서 갑작스러운 전투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근접 전투 관련 클래스의 생도들이 손을 번쩍 들며 크리스의 질문에 답했다.

“그렇다. 그 외에도 우리는 무기가 없이 싸워야 하는 다양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지.”

무기 없이도 생존하는 법. 아카데미는 영웅이 되려는 자들에게 어떠한 상황에도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려 했다.

“가장 먼저 너희들의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 대련의 시간을 가져볼 생각이다.”

대련이라는 말에 생도들이 놀란 눈으로 크리스를 바라봤다.

“무기는 물론 마나와 오러를 사용하는 것을 금한다. 마법 역시 사용할 수 없다.”

오로지 맨손으로만 진행하는 대련.

“공식적인 대련은 아니다. 생존을 위한 훈련이니 최선을 다하도록.”

“네!”

맨손 대련이라지만, 입학 후 처음으로 진행되는 대련.

근접 전투 관련 클래스의 생도들은 드디어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찾아왔다며 기뻐했다.

그 외의 생도들은 모두 불편한 듯 미간을 좁혔다.

“대련 상대는 너희들이 알아서 고르도록 해라. 짧게 시간을 줄 테니 서로 협의가 된 자들만 내 앞으로 올 수 있도록.”

비슷한 실력의 생도들을 대련시킬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선택권을 주었다.

생도들은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주변을 둘러보며 대련할 만한 상대를 찾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근접 전투와 거리가 먼 생도들은 자기들끼리 시선을 마주치고 있었다.

‘재미있겠군.’

그에 반해 카단은 네크로맨서임에도 불구하고 자신 있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이 상황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것 같았다.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주변을 살피자, 이상하게도 몇몇 생도들이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근접 전투와 거리가 먼 생도들이었다.

네크로맨서라지만 괴물 같은 체력을 보여준 카단과의 대련이 꺼려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근접 전투 클래스의 생도들은 달랐다.

‘체력이 뛰어나다지만 네크로맨서야. 근접 전투 경험은 내가 훨씬 뛰어나.’

‘카단 정도는 쉽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카단을 이기면 내 입지가 좀 올라가긴 할 것 같은데.’

비공식 대련이라지만, 카단은 1학년 최강자로 손꼽히던 블랑쉬를 이긴 장본인.

그런 카단을 제대로 된 대련에서 이기기 힘들더라도 맨손 전투라면 가능성이 있었다.

어쩌면 이 시간이 카단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기회.

그렇기에 근접 전투 관련 클래스의 생도들은 호시탐탐 눈치를 보며 카단을 바라봤다.

그때 누군가가 카단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어? 제기랄.”

“쯧, 늦었네.”

기회를 놓친 듯 카단을 노리던 생도들이 아쉬움을 표현했다.

술렁이는 주변 분위기에 카단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자를 바라봤다.

‘라이덴?’

카단에게 다가오는 자는 입학시험 당시부터 시비를 걸어왔던 금발의 귀족 라이덴이었다.

아무래도 이번 기회를 통해 설욕을 갚을 생각인 듯했다.

“대련할 상대가 없으면 나랑 해보는 게 어때?”

라이덴은 카단이 블랑쉬를 이겼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열심히 카단을 피해 다녔었다.

카단도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 라이덴을 보며 몇 번 피식한 적도 있었다.

‘당연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러나 대련을 제안해오는 라이덴은 어느 때보다도 여유로워 보였다.

실제로 라이덴은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교관님이 계시니, 뼈 하나 정도만 부숴주마.’

입학 후 검술 심화 수업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으며, 오로지 카단에게 복수하겠다는 생각 하나로 열심히 훈련해왔다.

무기를 사용할 수 없다는 제약이 있긴 하지만 라이덴은 맨손 전투 역시 자신 있었다.

“혹시 복수할 생각?”

카단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끝까지 자존심 세울 생각인가 본데, 무서우면 나랑 대련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겁먹어서 내 제안을 피했다는 소문은 내지 않을 테니까 안심하고.”

라이덴은 드디어 한 방 먹였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괜찮겠어? 사람들 앞에서 망신당해도?”

“뭐?”

“쪽팔려도 상관없다면 네 제안을 받아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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