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화
1학년 생도들의 맨손 전투 대련이 시작되었다.
생도들은 자신과 실력이 비슷하다 생각되는 상대를 골랐고, 크리스도 그게 당연하다는 듯 대련을 진행 시켰다.
“검이나 창을 쓰는 녀석들이 역시 제일 잘 싸우네.”
“기본적인 전투 능력이 뛰어나니까, 게다가 근접 전투 경험이 많으니 맨손 전투 실력도 뛰어나겠지.”
근접 전투 관련 클래스의 생도들끼리 붙는 전투는 치열했다.
검이나 창 따위의 무기가 들려있지 않았지만,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박진감 넘치는 전투들이 이어졌다.
“근데 마법사끼리 맨손으로 싸우는 게 더 재미있지 않냐?”
“원래 개싸움이 제일 재미있는 법이야.”
그에 반해 근접 전투 경험이 없는 마법사들의 전투는 우스꽝스러웠다.
크게 휘둘러지는 주먹과 헛발질의 연속.
마법사들의 맨손 전투는 처절해 보일 정도의 허접했다.
“블랑쉬는 의외였어. 단순히 마법 쪽으로만 뛰어난 줄 알았더니.”
“그러게, 민첩하기도 하고 근접 전투 경험도 좀 있어 보이던데?”
마법사 중 블랑쉬만이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법사 가문의 영애라지만, 근접 전투 능력도 꽤 뛰어났다.
체력은 다른 마법사 생도들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그녀의 주먹은 꽤 날카로웠으며 순발력도 뛰어나 상대의 공격도 손쉽게 피해냈다.
“상대가 마법사였잖아. 주먹질 좀 배우면 저런 물렁물렁한 공격은 피하기 쉽지.”
만약 상대가 근접 전투 관련 클래스의 생도였다면 블랑쉬 역시 실력을 발휘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블랑쉬는 그저 마법사 중 근접 전투에 재능을 보였을 뿐이다.
“너흰 지금까지 대련한 사람 중 제일 인상 깊게 본 게 누구냐?”
입학 후부터 뭉쳐 다니며 수다를 떨던 세 명의 생도가 동시에 대련을 끝낸 생도들을 바라봤다.
허먼과 브렌트, 그리고 데이비드는 고민이 된다는 듯 인상을 쓰기도 하며 자기 턱을 쓰다듬기도 했다.
“아무래도 난 칼리아가 가장 인상 깊어.”
가장 먼저 허먼이 붉은 머리칼을 질끈 묶고 구석에서 휴식 중인 칼리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예뻐서 인상 깊었던 거 아니고?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연속으로 뻗어지는 주먹을 피할 때 솔직히 반했다.”
“칼리아 예쁘지. 평민 출신만 아니었다면 바로 청혼했을 텐데.”
브렌트와 데이비드는 비아냥거리는 듯한 말투로 말했고, 허먼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예쁘긴 한데, 솔직히 쟤가 제일 무서워.”
허먼은 조금 두렵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인정. 무슨 싸움을 저렇게 잘해? 칼리아 쟤는 검술 시간에도 무서웠는데, 맨손 전투는 더 무서운 것 같네.”
“평민이 어디서 저런 힘을 키웠을까? 나도 따라가서 배우고 싶네.”
그러자 브렌트와 데이비드도 공포에 질린 듯 몸을 부르르 떨며 대답했다.
확실히 칼리아가 보여준 실력은 대단했다.
자신보다 덩치가 큰 상대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거침없이 공격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모든 공격을 피해내며 유효타를 날릴 때는 몇몇 생도들이 환호성을 내지르기도 했다.
“검술 수업에서도 칼리아랑 대등한 건 한 명밖에 없잖아?”
“라이덴?”
“맞아. 솔직히 라이덴이랑 칼리아가 싸우는 거 보고 싶었는데.”
세 사람의 시선이 칼리아에게서 떠나 라이덴에게 향했다.
라이덴은 연병장 한쪽에 자리를 잡고 여유롭게 몸을 풀고 있었다.
그의 옆으로는 세 명의 생도들이 모여 앉아 응원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권위 의식에 찌든 게 꼴을 보기 싫긴 하지만, 실력만큼은 확실하니까.”
“왕국의 검이라 불리는 몽브레이 가문의 핏줄이 어디 가겠어?”
“그런데 라이덴은 왜 카단을 상대로 골랐을까?”
라이덴을 향하던 그들의 시선이 이번엔 카단을 찾았다.
카단은 먼저 대련을 끝낸 알비스, 칼리아와 함께 앉아 다른 생도들의 대련을 보고 있었다.
“카단이 블랑쉬를 꺾었으니까, 여기서 카단을 꺾으면 자신이 1학년 최강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그게 사실이라면 너무 약아빠진 생각이다. 상대는 근접 전투에 취약하다는 네크로맨서인데?”
“언데드를 못 다루는 네크로맨서를 상대로 이겨봤자 얻을 게 조금도 없을 텐데.”
이겨야 본전일 텐데 왜 카단을 선택했을까? 허먼, 브렌트, 데이비드 세 사람은 고개를 갸웃했다.
“카단이 체력이 좋긴 해.”
“저번에 보니까 힘도 좋던데? 검사인 나보다 무거운 걸 잘 들어.”
“순발력도 좋아. 난 저 녀석이 네크로맨서가 아닌 줄 알았다니까?”
체력 단련 시간에 봤던 카단만 떠올린다면 확실히 네크로맨서보다는 검사 쪽에 가까운 운동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카단이 네크로맨시를 사용한 걸 본 적이 없었기에 아직도 그가 네크로맨서인지도 의심되는 상황.
“그래도 이번 대련은 무조건 라이덴이 이기겠지.”
“이변은 없어. 제한이 없는 공식 대련이라면 모를까, 맨손 전투로는 카단이 라이덴을 이기긴 힘들 거야.”
“네크로맨서가 검사를 상대로 주먹 싸움에서 이긴다? 말이 안 돼. 카단이 이길 가능성은 없다.”
세 사람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적인 라이덴의 우세.
그러한 사실도 모른 체 카단은 즐겁다는 표정으로 생도들의 대련을 지켜봤다.
‘역시 싸움 구경은 재밌어. 옛날 생각도 나고 좋은데?’
생도들의 일대일 맨손 전투를 보며 카단은 전생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조직에서 서열 정리한다고 애들끼리 일대일 대결 붙였을 때도 재미있었는데.’
맨손으로 치고받는 전투에서만 느낄 수 있는 희열.
오랜만에 그 감정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카단은 기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외르크 승. 둘 다 수고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앞서 치러진 대련의 승패가 갈렸다.
승리한 생도는 패배한 생도에게 고생했다는 듯 손을 내밀었고, 패배한 생도는 그의 손을 잡고 일어나 승부를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댔다.
‘이번 대련도 재미있었다. 역시 최고의 재능을 지닌 자들만 모인 아카데미답네.’
카단은 멋진 대련을 보여준 두 사람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그때.
“카단.”
크리스의 시선이 카단을 향했고, 그는 곧바로 카단을 호명했다.
드디어 자신의 차례가 왔다는 사실에 카단은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그리고 라이덴. 앞으로 나와라.”
이어서 라이덴이 호명되었고, 그는 옆에 있던 세 명의 생도에게 호응 속에 손을 들며 대답했다.
“네.”
이내 호명된 두 사람이 걸음을 옮겼고, 크리스 앞에서 그 걸음이 멈춰졌다.
크리스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게 된 두 사람은 서로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끝까지 자존심 부리긴. 평민 주제에. 그 잘난 콧대를 제대로 부숴주마.’
라이덴은 벌써 승리를 직감한 듯한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고.
‘어딜 가나 이런 놈이 하나씩 있단 말이지.’
카단은 그의 도발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듯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규칙은 앞서 설명한 것과 같다. 마나와 오러는 사용할 수 없다. 깨물든 할퀴든 다른 규칙은 없다. 죽을 각오로 싸워라.”
반칙이 존재하지 않는 대련.
명예보다는 생존이 우선시 되는 대련이었기에 마나와 오러만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공격도 허용되었다.
실제로 첫 번째 대련에서는 한 생도가 상대였던 남자 생도의 중요 부위를 걷어차고 귀를 깨물며 승리를 쟁취했었다.
살아남아 승리하는 것이 명예와 자존심보다 중요하다는 크리스 교관의 말이 있었기에 생도들은 그 말에 따라 대련을 치렀다.
“시작해라.”
크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뒤로 물러섰다.
분명 시작하라는 신호가 있었지만, 카단과 라이덴. 두 사람 모두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조금 전과 같은 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잠깐 찾아온 정적 속에 대련을 지켜보는 생도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연 것은 라이덴이었다.
“내가 양심이 있어서 말이지. 선공은 양보할게.”
라이덴은 손을 까딱거리며 카단을 도발했다.
“왜? 질까 봐 겁나냐? 아니, 두들겨 맞는 게 두려운 건가?”
이어지는 도발에도 카단은 무덤덤한 표정을 유지했다. 라이덴의 도발은 카단에게 그 어떤 데미지도 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라이덴. 이 녀석도 잭 카터 씨가 주의하라고 했던 놈이었지?’
카단은 무표정한 얼굴로 라이덴을 바라보며 잠시 잭 카터의 경고를 떠올렸다.
-라, 라이덴이라고 하셨습니까? 라이덴이랑 다툼이 있었다고요?
-네. 문제 있습니까?
-문제가 있죠! 라이덴은 왕국 5대 기사단 중 하나인 라이언 기사단의 기사단장 애런 몽브레이의 자식입니다!
미세한 차이로 가디언이 되지 못하고 왕국 5대 기사단의 기사 단장이 된 애런 몽브레이.
왕국의 검이라 불리는 가문의 공자와 입학하기도 전에 사이가 틀어졌다는 사실에 잭 카터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었다.
-그 사람의 자식이지, 그 사람처럼 강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라이덴은 애런 몽브레이의 자식 중 가장 많은 재능을 물려받았다고 소문난 자입니다.
-그 녀석이요?
-네. 이번 입학생 중 차기 가디언 후보로 불리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잭 카터와의 대화를 떠올렸던 카단이 피식 웃음을 지으며 앞에 서 있는 라이덴을 바라봤다.
‘허세를 부릴 만한 실력은 지녔다는 건가?’
차기 가디언 후보로 불릴 정도면 그의 재능은 아카데미 생도 중에서도 특출날 것이다.
라이덴의 모습을 살짝 살펴봐도 꽤 오랫동안 단련해온 사람인 것은 알 수 있었다.
귀족 특유의 고급스러움이 가득한 외모와 다르게 그의 손은 굳은살로 가득했다.
옷에 가려졌음에도 탄탄해 보이는 근육들을 토대로 균형 잡힌 몸은 그가 강해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엿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저 재능만 타고난 게 아니라 노력도 하는 녀석이다.’
비록 입학시험 때부터 카단에게 몇 번이고 자존심을 구겨야 했던 라이덴이지만, 방심할 수 없는 상대였다.
‘네크로맨시를 쓸 수 있다면 모를까, 이런 녀석이랑 근접 전투를 벌이는 건 자살행위지.’
카단 역시 알고 있었다. 라이덴을 상대로 근접 전투를 벌이는 건 미친 짓이라고.
‘하지만 마나와 오러를 사용하지 못한다면 가능성은 있지.’
그렇지만 이번 대련은 마나와 오러가 금지된 대련. 순수히 신체 능력만으로 펼쳐지는 대련이었기에 카단은 나름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만약 가능성이 없었다면 그의 대련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선공을 양보한다고? 거절하진 않겠다.”
카단은 순간적으로 자세를 취한 뒤 왼손을 앞으로 내질렀다.
그 동작은 분명 복싱의 ‘잽’이었다.
힘을 빼고 앞으로 내질러진 빠른 공격에 라이덴은 우습다는 듯 고개를 뒤로 빼며 공격을 피했다.
당연하다는 듯 카단의 왼손은 라이덴의 코끝도 스치지 않았다.
‘멍청한 놈. 이딴 걸 공격이라고 하는 거야?’
카단의 기습 공격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생각한 라이덴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어떻게 카단을 골려줄지 고민했다.
그때.
퍼억!
스텝 한 번으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카단이 내질렀던 왼손을 재빨리 가져와 옆으로 휘둘렀다.
바로 이어진 레프트 훅.
방심하고 있던 라이덴은 갑작스러운 공격을 피할 수 없었고, 카단의 왼 주먹은 그대로 라이덴의 턱에 명중했다.
“억?”
대비하지 못했던 공격은 극심한 충격을 안겨주었고, 라이덴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쿵….
순간 연병장이 고요해졌다.
크리스 교관과 생도들은 눈이 뒤집혀 바닥에 쓰러진 라이덴을 멍하니 바라봤다.
갑작스러운 결과에 충격이라도 받았는지, 생도 몇몇은 쩍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 고요 속에서 카단만이 여유롭게 몸을 움직여 몸을 바로 한 뒤 라이덴을 내려다봤다.
“뭐야? 한 방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