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33화 (33/186)

제33화

‘화난 게 맞는 것 같은데?’

카단은 자신을 향해 겨눠진 마티아스의 창끝을 보며 생각했다.

분명 경험을 위한 대련이라고 했으면서 왜 창끝에서 살기가 느껴질까?

날이 서 있지 않은 뭉툭한 창날이라지만, 찔리면 아플 것이다.

“시작할까?”

그런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티아스가 해맑게 웃으며 창끝을 살짝 흔들었다.

“네. 알겠습니다.”

어차피 거부할 생각은 없었다.

언제 어디서 용병왕의 제자와 대련할 기회를 얻을 수 있겠는가?

감사한 마음으로 열과 성의를 다해야지.

마티아스는 2학년 최강자라 불리는 실력자다. 게다가 명성 높은 용병왕의 제자 중 한 명.

한 마디로 이 대련은 값진 경험. 그런 값진 경험을 주기적으로 시켜주겠다는데, 거절할 수는 없었다.

슥.

마음의 준비가 끝났는지 카단이 단검을 고쳐 쥐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아니, 형님! 방어 자세를 먼저 취해야 한다니까요? 몇 번 말씀드립니까? 단검은 무기가 아니라 방패입니다.

단검을 쥐고 자세를 취하는 순간 전생의 기억이 스치듯 떠올랐다.

-형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조폭 세계에서 유명한 칼잡이지 않습니까? 저 쌍칼입니다!

-자랑이다. 인마.

-형님. 제가 사람을 패서 감방에 간 적은 있어도, 사람을 찔러서 가본 적은 없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무슨 말인데?

-이 칼을 오로지 방어용으로만 사용했다는 거죠.

맨손으로만 싸우던 카단. 아니, 이석훈이 단검을 든 이유는 무기를 든 상대방에게부터 살아남기 위함이었다.

-형님. 상대를 죽을 만큼 패도 되는데, 찌르진 마십시오. 이 칼이란 놈들이 사람의 이성을 잡아먹는 놈이라 늘 정신 꽉 잡고 있어야 합니다.

방어 수단으로 배운 단검술이 과연 이 세계에서도 통할까?

확신도 없고 자신도 없었다.

무기를 들고 치르는 전투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달인 수준으로 창을 다루는 자이다.

창과 단검.

용병왕의 제자와 네크로맨서.

이 말도 안 되는 차이의 대련에서 카단의 패배는 불 보듯 뻔했다.

‘그래도 해 봐야지.’

피할 생각은 없었다.

죽이지 않으면 죽어야 하는 세계에서 강해지기 위해선 수많은 경험이 필요했으니.

시작도 하기 전에 겁먹고 도망치고 싶진 않았다.

“오?”

카단이 자세를 취하자 마티아스가 놀란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 자식 생각보다 차분하네?’

카단에게서 두려움이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오로지 이 순간에만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카단의 눈은 마티아스의 창끝, 어깨, 무릎을 살피고 있었고 언제든 반응할 수 있도록 긴장 상태를 유지했다.

‘어떻게든 해보겠다 이거지?’

아카데미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입생.

그런 신입생이 2학년 최강자를 앞에 두고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니.

내색하진 않았지만, 마티아스는 그런 카단을 보며 놀라고 있었다.

‘뭔가 자세가 이상하긴 한데, 조금 섬뜩한 기분도 드네.’

신입생의 자만심, 패기 따위가 아니었다. 카단은 진지하게 이 대련을 준비하고 있었다.

“난 너의 수준을 맞춰주겠지만, 너는 이길 각오로 덤벼.”

“네. 알겠습니다.”

“그럼 시작한다?”

카단의 대답이 끝나는 순간, 마티아스의 창이 앞으로 내질러졌다.

단순한 찌르기.

슉!

기본적인 공격 동작이었지만, 앞에 서 있던 카단은 당황스럽다는 듯 재빨리 단검을 휘둘렀다.

채애앵!

힘을 싣지 않은 것일까? 단검과 부딪친 창은 힘없게 땅으로 추락했다.

휙-

마티아스는 여유롭게 추락하던 창을 회수하며 다시 자세를 취했다.

‘쯧. 엄청 빠르네.’

순간이지만 마티아스의 움직임을 놓치고 말았다.

‘집중하고 있었는데.’

한눈을 팔거나 방심하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긴장 상태를 유지한 채 마티아스의 움직임을 주시했었다.

그러나 공격해오는 찰나의 순간을 놓쳤고, 다가오는 창끝을 보곤 겨우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너 생각보다 제법인데?”

마티아스도 카단의 반응속도 놀라고 있었다.

자세가 엉성해서 기대하진 않았는데, 설마 기습 공격을 막아낼 줄이야.

‘힘을 뺀 단순한 공격이긴 했지만, 네크로맨서가 반응할 만한 속도는 아니었는데.’

힘을 뺀 공격이긴 했지만, 순간적인 공격 속도는 빨랐다.

네크로맨서는 물론이고, 근접 전투에 자신 있는 자들도 당황할 만한 속도였다.

“재밌네. 그럼 계속해볼까?”

마티아스가 즐겁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묻자, 카단은 무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카단은 생각했다.

아무래도 오늘 편히 잠들기는 글렀다고.

잠시 후.

“근접 전투에도 재능이 있네.”

벤치에 걸터앉은 마티아스가 자신의 창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놀랐어. 너 정도면 어떤 기사 아카데미에 들어가던 중간 이상은 해낼 재능이야.”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체계적인 배움이 있었다면 기사 아카데미 상위권에서 놀았겠지.’

카단을 지켜보며 느낀 결과 근접 전투와 관련해 체계적인 배움을 받은 적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카단은 순간순간 효율적인 선택과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마티아스를 놀라게 했다.

“체력은 또 왜 이렇게 좋아?”

심지어 체력도 좋았다.

2학년 중에 카단 만큼 뛰어난 체력을 지닌 생도는 몇 없었다.

“너 네크로맨서 아니지?”

“네크로맨서입니다.”

카단의 목소리는 연병장 바닥에서 들려왔다.

체력 단련 시간에도 지친 모습을 보인 적 없던 카단이 땀범벅이 된 채 연병장 바닥에 누워있었다.

‘역시 괴물은 괴물이다.’

카단은 멀쩡한 모습으로 벤치에 걸터앉아 떠드는 마티아스를 보며 생각했다.

‘대련이 아니었다면 1분도 못 버티고 죽었을 거야.’

대련 내내 먼저 공격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피하고 막아내는 것도 힘에 부칠 정도였다.

내내 방어만 하다가 체력이 바닥나 주저앉게 되었고 그렇게 대련은 종료되었다.

‘괜히 차기 가디언이 아니구나.’

입학 후 처음으로 벽을 느꼈다.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높고 커다란 벽.

고작 한 살 차이인 마티아스가 이 정도의 실력자인데, 그 위에 있는 사람들을 얼마나 더 뛰어나다는 것일까?

‘갈 길이 멀군.’

까마득한 미래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카단. 너도 가디언이 되기 위해 아카데미에 입학한 거냐?”

“뭐, 그렇죠.”

느닷없는 질문에 카단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왜 가디언이 되려고 하는데?”

“은혜를 갚으려고요.”

모든 진실은 말할 수 없었지만, 이 말도 거짓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버지인 샬로트 잉그마르의 은혜를 갚기 위해 가디언이 되고자 했다.

가디언이 된다면 복수의 기회가 더 가까워질 테니.

“은혜? 어떤 은혜?”

“비밀입니다.”

“치사하네.”

“선배님은 왜 가디언이 되려고 하십니까?”

“나도 비밀이다.”

카단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마티아스는 그런 카단을 보며 말을 이었다.

“너한테 특정한 기술을 가르쳐줄 수는 없어. 가르쳐준다고 해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겠지만.”

뜬금없는 말에 카단이 눈을 끔뻑이며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대련을 통해 경험을 쌓아주고 강제로 자세를 교정해줄 수는 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했잖아. 매일은 힘들어도 이렇게 만나서 대련 상대가 되어준다고. 그래서 내 목표를 말해주는 거야. 난 목표 없이 움직이는 게 싫거든.”

마티아스는 몸을 일으키더니, 곧바로 카단에게 다가왔다.

“그러니 앞으로 나랑 대련하게 되면 집중해.”

카단 앞에 멈춰선 마티아스는 손을 내밀었고, 카단은 그의 손을 붙잡고 일어섰다.

“알겠습니다. 선배님이 도와주신다면 저야 영광이죠.”

이날 카단은 생각했다. 아카데미를 졸업할 때쯤이면 더는 근접 전투를 약점이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

“오늘은 4성 네크로맨서가 다룰 수 있는 언데드에 대해 수업하도록 하죠.”

교단에 선 아이작이 카단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4성부터는 중급 언데드인 리빙 아머와 레이스를 다룰 수 있습니다.”

철그럭.

아이작은 아공간에서 녹슨 전신 갑옷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우선 리빙 아머는 망자가 깃든 갑옷으로만 일으킬 수 있는 언데드입니다.”

스륵.

아이작의 손에서부터 녹색의 마나가 흘러나와 바닥에 놓인 갑옷을 휘감았다.

철그럭! 철그럭!

그러자 갑옷은 저절로 조립되더니 마치 안에 사람이 있는 것처럼 스스로 몸을 일으켰다.

투구 사이로 녹색의 안광을 내뿜었고, 알 수 없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아이작을 바라봤다.

“리빙 아머는 갑옷에 깃든 망자의 원한이 깊을수록 강해집니다. 이런 기초는 알고 있죠?”

“네.”

모를 리가 있을까?

10년간 지식을 쌓았고, 샬로트가 부리는 다양한 언데드를 직접 보면서 자랐다.

그렇기에 아이작의 리빙 아머를 보면서도 놀라거나 신기해하지 않을 수 있었다.

“리빙 아머의 특징을 설명해보시겠습니까?”

“갑옷이 부서지더라도 네크로맨서의 마나만 충분하다면 몇 번이고 복구됩니다.”

리빙 아머는 적으로 만났을 때 상대하기 까다로운 언데드였다.

“또한 물리적인 공격만으로는 쓰러트릴 수 없습니다. 본체인 갑옷 속 망령을 없애야만 완벽히 쓰러트릴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네크로맨서 사이에서는 100개의 해골 병사보다 원한 짙은 리빙 아머 하나가 더 강하다는 말이 돌기도 하죠.”

리빙 아머는 4성 네크로맨서가 다룰 수 있는 언데드 중 가장 효율적이며 강한 언데드였다.

“물론 그렇다고 무적은 아닙니다. 마나를 다룰 수만 있다면 충분히 쓰러트릴 수 있겠죠.”

약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마나, 오러, 신성력을 사용한다면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는 언데드이기도 했다.

“해골 병사보다 내구성도 좋고 강력합니다. 또한 골렘과 다르게 리빙 아머는 망자의 힘으로 움직이기에 지능 수준도 높죠.”

다방면으로 뛰어난 언데드이기에 리빙 아머는 4성 네크로맨서가 가장 먼저 다루는 언데드이기도 했다.

“자, 그럼 다음 언데드인 레이스는 어떤 언데드입니까?”

이어진 질문에도 카단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실체가 없는 영체의 언데드입니다. 적의 생명력을 흡수하는 능력을 지녔습니다.”

“맞습니다.”

따악!

아이작은 빙긋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검은 천을 뒤집어쓴 사람 형태의 반투명한 유령이 허공에 나타났다.

“주로 정찰할 때 사용되는 언데드입니다. 아쉽게도 햇빛에 약해 전투용으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언데드죠.”

레이스는 리빙 아머와 다르게 물리적인 타격에 완전한 내성을 지니고 있었다.

오로지 마나를 이용한 공격으로만 쓰러트릴 수 있는 언데드.

생명력을 흡수하는 능력이 있다지만,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아 전투용으로 쓰이는 언데드는 아니어다.

“게다가 햇빛을 싫어하기에 밤에만 다룰 수 있다는 큰 단점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레이스가 중급 언데드로 분류될까요?”

“네크로맨서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하급 언데드인 해골, 좀비, 구울, 플래시 골렘과 다르게 중급 언데드부터는 자아가 존재했다.

덕분에 더 세심한 명령도 내릴 수 있고, 다양한 의사소통까지 가능했다.

“그러나 이런 레이스로도 활용할 수 있는 전술들은 존재한다. 우선….”

아이작은 즐겁다는 듯 레이스와 리빙 아머의 활용법과 효율적인 전략들을 가르쳐 주었다.

‘역시 아이작 교수님도 모르시는 것 같군.’

아무리 기다려도 아이작의 입에선 카단이 기다리는 언데드의 설명이 나오지 않았다.

‘정말 아버지만 알고 있는 네크로맨시였구나,’

카단은 그렇게 생각하며 잠시 고개를 돌려 창문 너머를 바라봤다.

‘아버지 말에 따르면 4성 네크로맨서가 가장 먼저 다뤄야 하는 건 리빙 아머나 레이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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