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35화 (35/186)

제35화

늦은 밤이 되자, 카단은 어김없이 실내 훈련장을 찾았다.

‘쉽게 발끈하는 게 은근 귀엽단 말이지.’

매번 마주칠 때마다 도발하는 라이덴이 당황하고 발끈하는 모습을 생각하며 카단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기사가 된다는 놈이 그렇게 평정심이 없어서야. 쯧쯧.’

몇 번이고 도발해오지만, 결국엔 울상을 지으며 사라지는 라이덴이 조금은 딱하기도 했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조금 더 걸리고 말았네.’

이내 잡생각을 지운 카단은 눈을 감고 천천히 마나 하트에 집중해보았다.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해진 마마의 벽. 마나 하트가 한 단계 더 성장해진 것을 곧바로 느낄 수 있었다.

카단은 드디어 4성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다.

꾸준히 마나의 벽을 쌓아가며 마나 하트를 단련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당장 새로운 언데드를 소환하자니, 재료가 없고.’

4성이 되었으니 새로 익혀야 할 것들이 생겨났고, 그 사실이 막막하기보다는 기대감으로 다가왔다.

‘4성 마법과 저주가 적힌 책이 있으니, 오늘은 그걸 한 번 좀 살펴볼까?’

샬로트가 남겨준 재산 중 네크로맨서의 기술들이 적힌 책들도 꽤 많았다.

게다가 샬로트가 직접 해석하며 적어낸 책이기에 카단에게는 이보다 귀한 재산은 없었다.

철컥.

그때 훈련장 문이 열렸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훈련 안 하고 뭐 해?”

고개를 돌려보니 마티아스가 출입문 앞에서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늘 대련하기로 한 날 아니지 않아요?”

일주일에 한두 번씩 만나 대련을 하다 보니, 둘 사이는 전보다 훨씬 가까워졌다.

둘은 전보다 편한 모습이었다.

“자랑하러 왔다.”

“자랑? 무슨 자랑 말입니까?”

“이번에 임무를 다녀오면서 스승님을 만났거든?”

그의 스승이라면 용병들의 정점인 용병왕.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가?’

소문에 따르면 가디언 못지않은 강함을 지닌 사람이라고 하니, 카단도 궁금하긴 했다.

“네. 그런데요?”

“스승님께 칭찬받았다.”

그 말에 카단이 눈을 게슴츠레 뜨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무슨 어린 애도 아니고. 그런 걸 저한테 자랑하십니까?”

“2학년 사이에서 내가 꽤 과묵하게 다니고 있어서 이런 자랑 함부로 못 하거든. 너라도 좀 들어줘야 내가 기분 좀 내지.”

“뭐, 축하드립니다.”

카단은 고개를 저으면서도 피식 웃으며 그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건네줬다.

“아, 그리고 네 얘기도 했어.”

“네? 용병왕에게 제 얘기를요? 저에 관해 무슨 할 말이 있다고….”

“그냥 자랑스레 말했지. 내가 도와주고 있는 후배가 있는데 성장이 빠르다. 기대가 된다 등등.”

원한 적도 없었는데, 용병왕에게 카단의 존재를 알리게 되었다.

“기회가 되면 직접 보고 싶다고 하시더라? 네크로맨서가 근접 전투에서 빠르게 발전하는 모습이 재미있다고 하셨어.”

이어진 마티아스의 말에 카단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용병왕을 직접 볼 수 있다면 저야 영광이죠.”

“그나저나 상반기 평가 시험 준비는 잘하고 있어?”

마티아스는 구석에 있던 의자를 가지고 와 앉아 질문했다.

“네. 뭐, 하던 대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듣자 하니, 무기술 대련에서 계속 패배하고 있다던데? 열심히 하는 거 맞아?”

좋은 소문이 빨리 전달되는 만큼 나쁜 소문도 빠르게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열심히 도와주는데 패배라니?”

“단검을 잡은 지 반년도 안 지났습니다. 평생 무기 들고 다니던 녀석들을 이기는 건 쉽지 않죠.”

카단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했다.

그의 말대로 평생 무기를 휘두르던 사람들을 상대로 고작 몇 개월 단검을 휘두른 카단이 이기는 건 쉽지 않았다.

맨손 전투라면 모를까.

“대련 평가는 어찌하려고? 그땐 상대방들이 오러까지 두르고 달려들 텐데?”

“저는 네크로맨서입니다. 저도 마냥 당하고 있진 않겠죠?”

“아, 깜빡했다. 네가 네크로맨시를 쓰는 걸 본 적이 없으니, 매번 네크로맨서라는 사실을 잊게 된단 말이지.”

카단은 잠깐 지난날을 떠올리듯 천장을 바라보더니 이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러고 보니 생도들 앞이든 마티아스 앞이든 네크로맨시를 써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뭐,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저랑은 만나면 무기 들고 대련만 했으니.”

“그래서 말인데.”

마티아스가 장난기 어린 얼굴을 지우고 진중하게 분위기를 바꿔 말했다.

“괜찮으면 시험 삼아서 대련 한 번 해보는 게 어때? 아무런 제약 없이.”

그 말에 카단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규칙 위반입니다. 제약 없는 대련은 위험하기 때문에 중재자가 필요합니다.”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규칙.

왕국 최고의 재능을 지는 이들이 모인 곳에서 자유롭게 대련할 수 있게 했다간, 죽음까지 이르는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마나와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는 대련에선 꼭 중재자를 맡아줄 교관, 교수가 필요했다.

“아, 맞다. 그럼 내가 교관님 한 분 모셔올까?”

“이 시간에 실례입니다.”

“그렇겠지?”

마티아스와의 대련은 좋은 기회가 되겠지만, 아쉬워도 규칙은 지켜야지.

“대련 평가 자신 있어?”

“뭐, 질 자신은 없습니다.”

카단이 무덤덤한 얼굴로 말장난을 하자, 마티아스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너 그런 농담도 할 줄 알아?”

“아직은 네크로맨서로서 진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거든요.”

카단은 피식 웃으며 답했고, 마티아스도 그런 카단을 보며 씩 미소를 지었다.

“뭐, 그럼 아쉬운 대로 대련이나 하자.”

“규칙 위반이라니까요?”

“무기만 들고 하자고. 무기만. 어차피 나 오늘은 할 거 다 끝내서 시간이 남거든.”

“저는 하려고 했던 게 있는데?”

“어서 무기나 들어.”

***

시간이 지나 어느덧 아카데미 생도들의 상반기 평가 시험 날이 찾아왔다.

“첫 번째 시험은 이론 시험이다.”

기대와 걱정이 섞인 강의실 안에서 크리스 교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1학년 생도들은 첫 평가 시험이었기에 조금씩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었고, 크리스는 그런 생도들이 귀엽다는 듯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동안 이론 수업도 열심히 들었으니, 다들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겠지?”

“네.”

생도들의 대답 이후, 크리스 교관은 다른 교관들을 향해 시작하자는 듯 눈짓했고.

“지금부터 시험지를 나눠주겠다. 두 손 머리 위로 올리고 대기하도록.”

교관들은 생도들에게 시험지를 건네주기 시작했다.

“이 모래시계가 다 떨어지면 시험은 끝이다. 그러니 집중해서 문제를 풀고 제출할 수 있도록.”

크리스 교관이 모래시계를 뒤집으며 시험이 시작되었다.

사락. 사락.

여기저기서 시험지를 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왕국의 역사라….’

시험 내용을 확인한 카단은 어렵지 않다는 듯 여유로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릴 때 배운 내용이네.’

카단은 어린 시절 샬로트의 사역마인 뱀파이어에게 귀족 수업부터 시작해 왕국의 역사까지 다양한 수업을 받았었다.

왕국의 오랜 역사를 지켜본 뱀파이어 덕분에 역사와 관련된 문제를 푸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슥, 슥.

카단의 펜은 다른 생도들과 다르게 거침없이 움직였다. 문제량이 꽤 많았지만, 부담스럽지도 않은 듯한 모습.

‘뭐야? 대충 휘갈기는 건가?’

‘쉽게 포기할 성격은 아닌 것 같았는데….’

‘매번 훈련장에서만 지낸다니, 이론 시험은 아예 포기한 건가?’

그 여유로움에 교관들이 카단을 바라보며 의문을 품었다.

잠시 후.

“모두 수고했다. 다음 시험을 위해 강당으로 이동한다, 질서 지켜서 움직여.”

길었던 이론 시험 시간이 끝나고 1학년 생도들은 대련 시험을 위해 강당으로 이동했다.

“아니, 무슨 역사까지 공부해야 해? 과거보다 중요한 건 미래 아니야?”

“문제가 너무 어려웠어. 아니, 100년 전 전쟁에서 누가 뭘 어떻게 무엇을 위해서 죽었는지까지 알아야 하는 건가?”

“역사를 잊으면 미래가 없다잖아. 같은 일 반복하지 않으려고 역사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거겠지.”

늘 수다를 떨어대는 허먼, 브렌트, 데이비드는 강당으로 이동하는 내내 시시콜콜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 말에 공감하는 몇몇 생도들도 한 마디씩 보태기도 했다.

이내 생도들은 대련 시험이 치러지는 강당에 도착했고, 교관의 지시에 따라 관람석에 앉았다.

“공지했듯 이번 시험은 대련 평가다.”

모든 생도가 관람석에 앉아 있는 모습을 확인한 크리스 교관은 교단에 올라 말을 전했다.

이어진 시험은 대련 평가.

무작위로 생도 한 명을 선정하여 대련 상대를 지목할 수 있는 지목권을 주고, 대련 장소에 나와 대련 상대를 지목하는 방식.

상대를 누구로 고르느냐 부터가 시험의 시작이기도 했다.

극한의 상성을 고르거나, 비교적 약자를 선택했을 때는 어느 정도 점수가 감점되기도 한다.

“너희들의 시험을 관람하기 위해 교관, 교수님들이 지켜보고 계시니 최선을 다해라.”

크리스 교관은 자신의 뒤쪽을 가리켰고, 그곳에는 교관과 교수들이 앉아 생도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안전 역시 걱정하지 마라. 사제 님들도 모셨고, 마탑에서도 지원을 나왔으니. 다치는 걸 무서워하지 마.”

맨손 대련이나 무기술 대련처럼 제한이 걸린 대련이 아니었다.

모든 능력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대련.

“또한 살생의 위험이 있다면 내가 나설 것이니, 상대를 위해 싸우지 말고 승리를 위해 싸워라.”

사고를 막아줄 교관이 있으니, 생도들은 최선을 다해 대련에만 집중하면 되었다.

“그럼 시작하겠다. 공평하게 이름을 적은 종이를 뽑도록 하지.”

크리스 교관은 옆에 있는 상자에 손을 집어넣었고, 이내 작게 접힌 종이 하나를 꺼내 펼쳤다.

“허먼. 나와라.”

제비뽑기로 뽑힌 허먼에게 첫 번째 지목권이 주어졌고, 그렇게 대련 시험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대련 시험이 시작되었고, 교수들은 기대를 가득 담은 눈으로 대련장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눴다.

“이번 신입생들은 발전 속도가 상당하군요.”

“2학년은 마티아스가 워낙 압도적이라 다른 생도들의 재능이 묻혀버렸지 않습니까?”

“네. 그에 비해 1학년들은 상향평준화 된 것 같아서 기쁘군요. 뭐, 마티아스를 뛰어넘는 재능은 보이지 않지만.”

2학년과 다르게 1학년은 마법사부터 검사, 궁수, 그리고 네크로맨서까지 차기 가디언 후보로 거론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교관, 교수들은 자신들의 가르친 제자가 승리 퍼포먼스를 보여줄 것을 자신하는 듯 여유롭게 대련을 관람했다.

그때.

“카단. 앞으로 나와라.”

크리스 교관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교관, 교수들의 시선이 가장 끝 쪽에 앉아 있는 아이작 교수에게 쏠렸다.

즐겁게 대련을 관람하던 카단은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자리에서 일어서 대답했다.

“네.”

카단은 빠르게 대련 장소로 내려왔고 그를 바라보던 크리스 교관은 관람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련 상대를 지목하도록.”

그의 말에 따라 카단은 천천히 관람석을 둘러봤다.

이미 몇 번의 대련이 치러졌기에 카단이 고를 수 있는 상대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눈에서 불이라도 뿜을 기세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블랑쉬였다.

지난번 비공식 대련의 패배를 만회하기 위함인지, 열정적으로 자신을 호명하라는 듯 시선을 보내왔다.

그러나 카단은 그녀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다.

‘저 녀석은 질리지도 않나?’

이어서 카단의 눈에 들어온 건 금발의 귀족 라이덴.

그는 어서 자신을 호명하라는 듯 손짓하고 있었고, 카단은 가볍게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두 사람이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카단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고, 이내 그의 시선이 어딘가를 향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대련 상대가 호명되었다.

“대련 상대로는 칼리아를 선택하겠습니다.”

순간 생도들은 침묵했고, 강당은 고요함이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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