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37화 (37/186)

제37화

네크로맨서는 4성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피를 다룰 수 있게 된다.

아쉽게도 4성 네크로맨서가 사용하는 피 마법은 순전히 본인의 피만을 사용할 수 있었다.

강력한 만큼 부담도 큰 법.

많은 양의 피를 사용한다면 본인의 목숨 또한 위험했기에 최소한의 피만을 사용해야 했다.

‘치명상은 아니지만, 뭔가 꺼림칙한데?’

칼리아는 당황한 눈으로 카단과 주변에 떠다니는 핏방울을 살폈다.

아무래도 쉽게 다가갈 순 없을 것 같았다.

슥.

카단이 손가락으로 칼리아를 가리키자, 주변에 떠다니던 핏방울들이 칼리아를 향해 날아갔다.

핏방울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에 칼리아는 이를 악물며 검을 고쳐 쥐었다.

‘화살보다 빠르진 않아.’

빠른 속도이긴 했지만, 피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칼리아는 되려 카단을 향해 돌격했다.

한 방. 단 한 방만 맞춘다면 카단을 쓰러트릴 수 있었다.

우웅-

그때. 칼리아를 향해 날아오던 핏방울들이 칼리아 근처에서 멈춰졌고.

슉! 슈우욱!

핏방울은 느닷없이 날카로운 바늘 모양으로 바뀌어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쳇.’

칼리아는 곧바로 검을 휘둘러 바늘 모양의 핏방울을 쳐냈지만.

슥-

칼로 물을 베는 것처럼 무언가 쳐내지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뭐야?’

공중에서 흩어졌던 피들은 다시 뭉쳐져 바늘 모양을 만들어냈고, 그대로 칼리아의 몸을 찔러댔다.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역시 치명상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이 정도는 무시해도 돼.’

이내 칼리아가 바늘 모양의 핏방울을 무시하며 달려가려 했지만.

이번엔 피로 만들어진 단검이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얕은수를.’

재빨리 검을 들어 튕겨내려 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물을 베는 듯한 허무한 감각이 느껴졌다.

“뭐?”

스릉.

피로 만들어진 단검은 어느덧 칼리아 목 앞에서 멈춰 섰고,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베일 것만 같은 위화감이 들었다.

‘순간적으로 고체와 액체 상태를 오가는 마법이라니.’

아무리 베어내도 금방 원상복구 되어버리는 공격에 칼리아는 헛웃음을 지었다.

“내가 졌다.”

결국 칼리아는 패배를 인정한다는 듯 검을 내려놓으며 양손을 들어 올렸다.

스르륵.

그녀가 패배를 인정하자, 그녀의 목을 겨누고 있던 단검이 안개처럼 사라졌다.

이어서 강당 곳곳에 소환되었던 해골들도 가루가 되어 카단의 반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고생했어. 칼리아.”

카단은 미소를 지으며 칼리아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당장 이기긴 힘들겠네.”

칼리아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이내 웃음과 함께 카단이 내민 손을 붙잡았다.

두 사람이 악수하는 순간 잠시 멍하니 서 있던 크리스 교관이 재빨리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카단 승. 두 사람 모두 고생했다. 그만 자리로 돌아가라.”

크리스 교관은 카단의 첫 대련도 지켜봤던 사람이었다.

‘그때보다 더 발전했다. 단순히 4성이 된 것만이 아니야. 피를 자유롭게 다루기 위해서 또 엄청난 노력을 했겠지.’

카단의 빠른 성장 속도에 절로 헛웃음이 지어졌다.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카단과 칼리아는 크리스를 향해 짧게 인사를 한 뒤, 관람석 쪽으로 걸어갔다.

다른 대련들과 다르게 승패가 갈렸음에도 관람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오지 않았다.

대련을 지켜보던 생도들은 모두 할 말을 잃은 듯 눈을 끔뻑이며 카단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 고요 속에서 유일하게 입을 연 건 언제나 수다를 떨어대던 삼인방이었다.

“무기술 대련에서 매번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서 얕봤었는데, 대련 상대로 카단 골랐으면 큰일 날뻔했다.”

“아무리 그래도 저 칼리아를 이길 줄이야.”

“생각해보니까 카단 저 자식 무기술 대련에서 먼저 공격해온 적이 없었어. 늘 방어만 해댔지.”

마지막에 내뱉은 데이비드의 말에 허먼과 브렌트가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카단은 근접한 적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방법을 동원해야 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단검을 이용한 방어.

한 번의 공격을 막기 위해 그동안 여러 번 공격을 막아내는 연습을 이어왔다.

허먼과 브렌트, 그리고 데이비느는 멍한 눈으로 카단을 바라보며 동시에 입을 열었다.

“맞다. 쟤 네크로맨서였지?”

한 편, 카단과 칼리아의 대련을 지켜보던 교관, 교수들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검사가 피를 다루는 네크로맨서를 이기려면 오러를 이용해 피를 증발시켜야만 하죠.”

“네. 그러나 3성의 오러로는 피를 증발시킬 만한 힘을 낼 수가 없었을 겁니다.”

카단이 4성이 된 순간부터 3성 검사인 칼리아가 이길 방법은 없었다.

만약 카단이 근접 전투에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면 모르겠지만, 카단은 단검과 뼈 마법을 적절히 사용하며 공격을 막고 거리를 벌리는 것을 반복했다.

“마법사였다면 이겼을까요?”

“글쎄요. 레이스를 소환한다면 마법을 방해받았겠죠. 마법도 없이 네크로맨서를 상대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해야 할 겁니다.”

모두 카단의 승리를 순순히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카단의 중심으로 대화가 이어지던 중, 아이작 교수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칼리아 생도도 참 대단한 재능이었습니다. 순발력도 좋고, 움직임도 수준급입니다.”

카단이 칭찬받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칼리아 역시도 존중받아 마땅한 실력을 보였다.

상대에 대한 존중을 잊지 않는 것이 아카데미의 대련.

“맞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녀석이지만, 재능이 뛰어난 검사입니다.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죠.”

“왕국의 큰 힘이 될 생도인 것 같습니다.”

아이작을 시작으로 칼리아를 향한 칭찬들이 이어졌지만, 그것이 오래가진 않았다.

“사실상 1학년 중에 카단을 이길 생도는 없겠군요.”

“3성 팔라딘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죠. 아쉽게도 이번 신입생 중 팔라딘은 없었지만.”

“놀랍습니다. 입학시험 당시엔 2성. 입학할 땐 3성. 그리고 1학기가 끝나기 전에 4성이 된 것 아닙니까?”

무려 17살에 4성이 된 네크로맨서.

카단은 이 순간 공식적으로 1학년 최강자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재능을 타고났으면서도 게으른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그 성실함마저도 재능이겠지.’

카단을 향한 칭찬을 들으며 아이작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관중석을 향하는 카단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

잠시 후.

생도들의 대련 시험이 끝나고, 1학년 생도들은 모두 관람석에서 내려와 강단 앞으로 모였다.

“모두 고생했다. 그럼 곧바로 성적을 발표하도록 하지.”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크리스 교관을 제외한 교관, 교수들은 강당을 빠져나갔고, 크리스 교관만이 교단에 서서 생도들의 성적을 발표했다.

“블랑쉬. 이론 B, 대련 A”

블랑쉬를 시작으로 이론과 대련 성적이 발표됐고, 크리스 교관의 목소리가 이어질수록 생도들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마지막으로 카단. 이론 A, 대련 A. 참고로 카단은 이론 만점이다.”

1학년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카단은 상반기 1등을 차지하게 되었다.

“저 자식 따로 과외라도 받았나? 매번 훈련장에 사는 놈이 어떻게 이론 시험에서 A를 받아?”

“이론 시험 꽤 어렵지 않았어? 외울 게 너무 많기도 했고.”

카단의 성적을 들은 생도들은 신기하다는 듯 카단을 바라봤다.

‘1등을 해버렸네….’

기뻐해도 좋을 일이지만, 어쩐지 카단은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 내일부터는 상반기 휴식기에 들어간다는 거 알고 있지? 이왕 모인 김에 여기서 공지하고 내일은 날이 밝는 순간 집으로 돌아가도록 해라.”

성적 발표를 끝낸 크리스가 성적이 적힌 양피지를 내려놓고는 휴식기에 관한 공지를 전하기 시작했다.

휴식기라는 말에 생도들은 조금 전까지 느끼고 있던 우울함을 털어버리고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크리스를 바라봤다.

치열했던 아카데미 생활을 잠시 내려놓고 평온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설레임마저도 느끼는 것 같았다.

“아카데미가 정한 1학년 생도들의 상반기 주목표는 적응이었다.”

상반기는 치열한 아카데미 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시간.

또한 영웅이 될 자질을 성장시키기 위한 기반을 다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교관님들과 교수님들은 입 모아서 목표를 달성했다고 하셨다.”

크리스 교관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생도들은 인정받았다는 느낌에 뿌듯한 표정을 지어댔다.

“하반기에는 실전 투입을 위한 실전 훈련들도 추가될 것이다. 던전 탐사부터 시작해 몬스터 토벌, 도적단 퇴치 등 다양한 임무에 투입될 것이다.”

자세한 건 하반기가 시작되면 알려준다며 크리스는 말을 아꼈다.

당장 휴식기를 앞둔 생도들에게 하반기 수업에 관련된 내용은 잘 전달될 것 같지 않았다.

“휴식기라지만, 너희가 생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아카데미의 명성을 더럽히는 자는 퇴학. 크리스 교관은 근엄한 표정으로 경고했다.

“네!”

“그리고 다치거나 죽지 마라. 던전에 들어가던 전쟁터에 참여하던 자유지만, 불법은 저지르지 마라.”

생도들의 첫 휴식기가 걱정된 크리스 교관의 잔소리가 한동안 이어졌다.

“무엇보다 오늘 시험이 너희에게 자극제가 되었길 바란다. 휴식에도 풀어지지 말고 단련하도록 해라.”

영웅 아카데미의 생도가 왜 존재하는지, 너희가 되려는 게 무엇인지 늘 생각해라.

크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공지를 맞췄고, 생도들은 큰 소리로 대답했다.

“네!”

“좋아. 해산. 모두 시험 치르느라 고생했다.”

“고생하셨습니다. 교관님!”

생도들의 대답을 들은 크리스는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더니 이내 강당을 빠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생도들은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곳곳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카단! 칼리아! 우리 식사부터 할까?”

알비스는 카단과 칼리아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고, 두 사람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칼리아 너는 휴식기 동안 뭐 할 생각이야?”

“단련.”

알비스는 해맑게 웃으며 칼리아에게 물었고. 칼리아는 짧게 대답하며 웃었다.

“카단 너는?”

“할 일이 있어서 조금 바쁘게 지낼 것 같아.”

“다들 휴식기에 만나기는 힘들겠구나.”

두 사람의 대답에 알비스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야, 네크로맨서.”

세 사람이 대화를 나누며 강당을 빠져나가려던 순간, 라이덴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옆으로는 언제나 라이덴을 따라다니는 두 명의 생도도 함께 있었다.

“왜 대련 상대로 나를 고르지 않았지? 질까 봐 두려웠던 건가?”

카단은 하찮다는 듯 웃고는 고개를 저으며 걸음을 이어가려 했다.

“막상 명성이 높아지니까, 무너지는 게 두려웠나? 그래서 친구 불러서 져달라고 부탁이라도 해썽?”

라이덴이 계속해서 도발했지만, 카단은 작은 반응도 해주지 않았다.

그때.

“크리스 교관님 멀리 안 가셨을 텐데, 부탁드려서 정식으로 대련 신청하던가.”

블랑쉬가 카단 옆으로 다가오며 라이덴에게 말했다.

느닷없이 등장한 블랑쉬에 라이덴이 깜짝 놀랐지만, 애써 여유로운 척 웃으며 대답했다.

“하? 이미 대련에서 지친 놈을 상대로 이기면 수치스러워서 죽고 싶을 것 같은데?”

“지친 녀석에게 지기라도 할까봐 겁먹은 건 아니고?”

“뭐, 뭐야? 위대한 가문의 영애라고 봐줬더니, 이게!”

“쉽게 발끈할 거면 시비 좀 적당히 걸어. 도발도 제대로 못 하면서 그렇게 어깨만 펴고 다니면 다야? 난 지금 네 모습이 더 수치스러워 보이는데?”

블랑쉬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고, 라이덴은 주먹을 꽉 쥔 채 부들거리는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휙 몸을 돌려 강당을 빠져나갔다.

‘뭐야? 왜 도와주는 거지?’

카단은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옆에 있는 블랑쉬를 바라봤고, 블랑쉬는 그 눈빛을 읽고는 차가운 시선으로 카단에게 말했다.

“착각하지 마. 도운 게 아니라 꼴불견인 녀석을 눈앞에서 치운 것뿐이니까.”

“뭐, 그래. 고마워.”

“그리고 1등이라고 우쭐하지 마. 하반기에는 무조건 내가 이길 거니까. 나도 곧…. 흠. 나 먼저 간다.”

무언가 말을 이어가려던 블랑쉬가 멈칫하더니, 빠르게 말을 바꾸며 강당을 빠져나갔다.

‘흠. 내가 생각했던 아카데미 생활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

다음 날.

카단은 벨리드 교관실을 찾았다.

“축하해요. 4성에 도달했다죠?”

카단이 교관실에 들어서자, 벨리드 교관이 박수를 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3학년 담당 교관의 귀에도 카단의 소식이 전해진 것 같았다.

“네. 맞습니다.”

“약속도 지켜주셨고, 그럼 이제 의뢰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벨리드는 자리에 앉으며 카단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서랍에서 돌돌 말린 양피지 두 장을 꺼내 책상 위로 올려뒀다.

“이게 뭡니까?”

“텔레포트 마법이 담긴 마법 스크롤입니다.”

텔레포트 마법 스크롤이라는 말에 입학시험이 떠오른 카단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어쩌면 이 마법 스크롤로 인하여 벨리드에게 의뢰할 수 있는 계기를 심어주었으니.

“이 붉은색 스크롤은 배고픈 시체들의 동굴 입구 앞. 이 초록색 스크롤은 수도 근처 숲속으로 텔레포트 위치가 지정되어있어요.”

“오고 가는 게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다행이군요.”

“돈 좀 썼어요. 아무래도 제가 지원해주기로 했었으니까요?”

카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책상 위에 있던 스크롤을 챙겼다.

“제가 찾아야 할 사람은 누굽니까?”

“던전에 들어가 여우 문양이 새겨진 갑옷을 입은 사람을 찾으시면 됩니다. 그 사람의 기억을 들여다 봐주세요.”

“행방을 알아야 할 물건은 뭐죠?”

“그 사람이 차고 있던 목걸이를 누가 가져갔는지만 알려주시면 됩니다.”

시체와 어떤 관계인지 등 더 자세한 걸 묻고 싶었지만, 개인적인 일이라며 대답해줄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그 사람이 그 던전에 있는 건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순간 의문이 들었다.

그 사람이 죽었다는 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차고 있던 목걸이가 없어진 건 또 어떻게 알고 있고?

‘이마저도 개인적인 일이라며 답하면 의뢰를 받는 것도 다시 생각해봐야겠는데?’

수상한 일에는 발을 들이진 않을 것이다. 카단은 그렇게 생각하며 벨리드의 답변을 기다렸다.

벨리드는 카단의 의문이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무뚝뚝한 목소리로 답했다.

“제가 그 사람의 시체를 그곳에 두고 왔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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