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38화 (38/186)

제38화

섬뜩한 말에 움찔했지만, 카단은 애써 당황함을 숨긴 채 질문을 이어갔다.

“교관님께서 시체를 직접 던전 안에 넣고 왔다는 말씀이십니까?”

“제가 죽인 건 아니에요.”

카단이 당황했다는 걸 눈치챘는지 벨리드 교관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저 시체를 보존하기 위해 좀비 던전 안에 넣어 놓고 왔을 뿐이죠.”

아마 망자의 기억을 볼 수 있는 네크로맨서에게 의뢰하기 위해 시체를 보관했다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의심은 풀리지 않았기에 다시 한번 말을 건넸다.

“단순히 시체보관을 위해서였다면 얼리는 방법도 있을 텐데요? 더 안전하기도 하고.”

“보존이라기보다 숨기기 위함이죠. 마법은 위험해요. 마나 추적이라도 당한다면 그 시체를 얼린 사람이 저라는 게 밝혀지겠죠?”

벨리드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 역시도 제가 바라는 상황은 아니에요. 마땅히 숨길 만한 곳도 없고.”

시체를 숨기기 위해 좀비 던전에 넣어두고 왔다니. 어쩐지 영웅 아카데미의 교관으로서의 자질이 의심되었다.

입학시험 당시 봤던 그 위엄과는 다른 섬뜩함이 느껴졌다.

“이렇게 말하니까 꼭 내가 살인자가 된 것 같네. 망자의 기억을 보게 되면 알겠지만, 죽인 건 내가 아닙니다.”

찜찜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녀의 말대로 망자의 기억을 들여다본다면 진실은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교관님께서 죽이신 거라면 전 정보를 드릴 수 없습니다.”

“네. 좋아요.”

벨리드는 결백하다는 듯 자신의 가슴 위로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 모습에 카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을 이어갔다.

“어떤 목걸이를 찾아야 합니까?”

“사파이어가 박힌 금목걸이. 정말 중요한 물건이니 행방 좀 꼭 찾아주세요.”

“던전에 다녀와서 어떻게 보고하면 되겠습니까?”

“이번 휴식기 내내 아카데미에서 지낼 생각이니, 목걸이의 행방을 알아냈다면 아카데미로 와주세요.”

벨리드는 전처럼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당장 출발하고 싶지만, 저도 일정이 있어서 며칠 뒤에 출발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아, 그리고 이건.”

고개를 끄덕이던 벨리드가 서랍에서 돈주머니를 꺼내 책상에 올려놓았다.

꽤 묵직한 소리에 카단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벨리드를 바라봤다.

“적지 않게 넣어뒀어요. 필요한 게 있으면 사고, 식사도 비싼 걸로. 여관도 좋은 곳으로 가세요.”

딱히 돈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이미 샬로트가 물려준 돈만 있어도 평생 먹고살 걱정은 없을 테니.

‘뭐, 주는 걸 거부할 필요는 없지. 게다가 벨리드 교관님이 보시기에 난 평민 신분이니.’

샬로트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이름 모를 상인의 아들로 정체를 숨기고 있었다.

평민이라면 이런 큰돈을 거부할 수가 없을 것이다.

“네. 감사합니다. 교관님.”

***

아카데미에서 빠져나온 카단은 곧바로 주점 ‘고양이들의 저녁’을 찾았다.

“카단 님. 축하드립니다. 상반기 성적 1학년 1등이라는 소문이 돌던데?”

“네. 그렇게 됐습니다.”

“분명 입학 전엔 학년 수석도, 어떤 활동도 할 생각 없으시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잭 카터가 눈웃음을 그리며 질문을 이어갔다.

“조용히 지내고 싶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눈에 띌 생각이 없다고 분명 단호하게 말씀하셨었는데?”

그의 질문에 카단은 난감하다는 듯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뭐, 그렇게 됐습니다.”

“눈에 띌 생각이 없다고 하셨던 분이 상반기 내내 영웅 아카데미 소문의 주인공으로 사셨다는 거 아십니까?”

“소문의 주인공이요?”

“아카데미 생도들은 미래의 영웅들입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사람들의 관심이 많을 수밖에요.”

수도뿐만 아니라 왕국 곳곳에 영웅 아카데미의 소문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1학년 중 가장 많은 소문을 퍼트리고 다닌 자는 다름 아닌 카단.

“1학년 생도 중 가장 체력이 좋고, 이번에 4성이 되었으며, 그 유명한 더글라스 가문의 영애를 이기셨다고….”

잭 카터의 말이 이어질 때마다 카단은 대답 대신 앞에 놓인 오렌지 주스를 들이켜댔다.

“게다가 제가 그렇게 조심하라고 했던 몽브레이 가문의 자제분이랑은 라이벌 관계라는 소문도 돌던데요?”

“그 마지막 소문은 잘못된 것 같습니다.”

“또 용병왕의 제자인 마티아스와는 뜨거운 우정을 나누는 친한 사이가 되셨다던데, 이건 사실입니까?”

“네. 뭐, 그건 사실이네요. 뜨거운 우정은 뭔지 잘 모르겠지만.”

도둑 길드의 정보력이 이렇게 무서웠다니. 아카데미에서 일어난 일들을 어쩜 이렇게 잘 알고 있는 것일까?

아카데미 안에는 정보원이 없을 텐데.

“카단 님. 제가 이만큼 알고 있다는 뜻은 다른 사람들도 이 정도의 정보는 가지고 있단 뜻입니다.”

잭 카터가 조금 전과 다르게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전했다.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듯한 그의 태도에 카단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조심하겠습니다. 뭐, 생도로서 열심히 살고 있을 뿐이긴 한데.”

“네. 좋습니다.”

잭 카터는 자연스레 카단 앞에 놓인 빈 유리잔에 오렌지 주스를 채워주었다.

‘이대로 카단 님이 복수 같은 걸 잊고 평범하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그러면서 생각했다.

샬로트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저 강하게만 자라서 안전하고 평온하게 살길 바라지 않을까?

‘주제넘을 뻔했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입 밖으로 빠져나오지 않았다.

선택은 본인의 몫. 자기는 그저 고용된 정보원에 불과하다.

복수만을 위해 강해지려는 카단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괜히 마음이 짠하고 갑갑하긴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

어차피 카단이 선택한 길이니, 다른 사람이 왈가왈부할 수 없는 일이었다.

“카단 님. 혹시 지는 걸 싫어하십니까? 그 얌전하시던 분이 아카데미에 입학하시더니 쌈닭이 되신 것 같은데요?”

잠시 씁쓸하게 웃던 잭 카터가 다시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장난스레 말을 걸었다.

“뭐, 지는 걸 싫어하는 건 맞는데, 쌈닭은 아닌 것 같습니다. 먼저 시비 건 적은 없는데?”

“지기 싫어하는 건 샬로트 님과 닮으셨군요.”

잭 카터는 피식 웃으며 바 테이블 위로 지도를 올려놨다.

“이게 뭡니까?”

“샬로트 님의 저택을 표시한 지도입니다.”

지도를 자세히 확인해보니 수도에서부터 꽤 거리가 먼 것 같았다.

‘아버지의 저택이 이곳에 있었구나.’

카단은 평생 혼자서 저택 밖을 나선 적이 없었다. 저택이 왕국 남쪽에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정확한 위치는 모르고 있었다.

“제가 직접 모셔다드리고 싶지만, 제가 이래 봬도 꽤 바쁜 사람이라서. 지도를 드리는 것으로 이해해주시겠습니까?”

“네. 이 정도도 감사하죠. 근처까지만 가도 대충은 알 수 있으니 괜찮습니다.”

스륵.

카단은 지도를 조심스레 접어 아공간 속으로 집어넣었다.

“혹시 저택 근처에 머물던 병사들은 철수했답니까?”

“네. 경비병을 제외한 병사들은 철수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들어온 정보 중 이런 정보가 있었습니다.”

어째서인지 이어진 잭 카터의 대답에서 불안함이 느껴졌다.

“어떤 정보요?”

“샬로트의 유산을 챙긴 자가 있다.”

순간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돈, 돈이 될 만한 물건, 연구 자료, 네크로맨서 관련 서적 등 샬로트 님의 유산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연하다. 샬로트의 유산은 카단이 끼고 있는 반지 속에 담겨 있었으니까.

“다행히 다른 사람의 흔적도 없었다고 합니다. 당장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긴 하지만….”

“제가 그곳에 갔다가 정체를 들킬까 봐 걱정되시는 건가요?”

“네. 샬로트의 유산을 찾기 위해 조사단이 꾸려진다고 합니다. 아마 그 출발점은 저택이겠죠.”

잭 카터의 말에 카단이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그 생각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아직 꾸려진 건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빨리 다녀와야겠네요.”

“저택엔 경비병만 배치되어있다고는 하지만, 감시를 피하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카단 님.”

“전에 말했듯이 비밀 통로가 하나 있어요.”

왕국에서 샬로트의 저택을 수색한 결과 아무것도 발견된 게 없다고 한다.

그런데 카단은 왜 그런 아무것도 없는 저택에 찾아가려는 것일까?

잭 카터는 이해할 수 없었다.

슥.

“근처까지 향하는 마차 표입니다.”

그러나 카단을 말릴 수가 없었다. 말린다고 말려지는 사람도 아니었고.

“암표라서 카단 님의 정보가 새어나가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리고 이건….”

잭 카터는 바 테이블 위에 마차 표 하나를 올리더니, 이어서 검은색 가면 하나를 올려놨다.

“혹시 몰라서 준비했습니다. 저택에 가실 때 착용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카단은 마차 표와 검은색 가면을 번갈아 보더니, 이내 시선을 옮겨 잭 카터를 바라봤다.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그의 마음이 고마웠는지, 카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감사를 전했다.

“마부가 내일 수도에 도착한다고 하니, 하루 쉬셨다 가셔야 하는 데 괜찮으십니까?”

카단을 멍하니 바라보던 잭 카터는 이내 고개를 휙휙 젓더니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네. 하루쯤이야. 오늘은 저도 좀 쉬고 내일 일찍 출발하도록 할게요.”

“그럼 오늘 식사는 제가 새로 배워온 요리 어떻습니까? 카단 님을 위해 특별히 봉골레 파스타를 배워왔습니다.”

“절 위해서요?”

“그냥 하는 말이죠. 이번에 메뉴를 추가해야 할 것 같아서 열심히 배워왔습니다.”

그 말에 카단은 피식 웃었고, 잭 카터는 의기양양한 걸음걸이로 주방을 향했다.

이내 카단이 표정을 굳히며 고이 접힌 지도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왕국에서 나를 찾고 있다는 거지?’

***

3일 뒤.

‘수도에서 3일이나 걸릴 줄이야. 생각보다 더 오래 걸렸네.’

마차에서 내린 카단은 지도를 보며 열심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흠. 확실히 익숙하긴 한데.’

카단은 혹시라도 정찰 중인 병사를 마주칠까 조심스레 주변을 살피며 걸었다.

다행히 정찰병은 보이지 않았고, 어느덧 카단의 시야에 거대한 저택이 보이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마법으로 숨겨져 있던 곳인데. 이렇게 보니 또 색다르네.’

사람들이 자꾸만 찾아와 귀찮게 군다며 샬로트는 집 전체에 환영 마법을 걸어뒀었다.

덕분에 마법에 가려진 저택에 찾아오는 손님은 없었고, 카단 역시 마음대로 저택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저택이 꽤 망가졌네.’

저택 곳곳에는 전투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전투의 여파로 무너져 내린 벽, 지워지지 않은 피 냄새. 한 섞인 망자들의 기운까지.

“쯧. 정문도 그러더니 후문도 똑같네. 무너진 성벽 쪽에도 경비병들이 지키고 있더니.”

아쉽게도 정문, 후문을 포함해 저택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모든 입구에는 경비병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경비가 허술해졌다는 말은 들었지만, 역시 쉽게 저택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내 집도 내 마음대로 편하게 들어갈 수가 없군.’

여차하면 경비병을 쓰러트리고 들어갈 수도 있지만, 굳이 소란을 일으킬 필요는 없었다.

‘역시 그 길로 가야겠네.’

카단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몸을 돌려 어디론가 향했다.

잠시 후.

카단이 도착한 곳은 저택에서 멀지 않은 절벽 앞이었다.

“여기다.”

이내 절벽 구석에서 커다란 돌로 막혀 있는 동굴 입구를 찾아냈다.

초록빛 넝쿨들로 감춰져 있었기에 유심히 보지 않는다면 찾기 힘들 것이다.

워낙 커다란 돌이기에 움직이기엔 무리였고, 마법이 걸려 있었기에 쉽게 부서지지 않을 것이다.

저벅, 저벅.

그러나 카단은 문제없다는 듯 걸음을 옮겨 커다란 돌 구석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엔 성인 남성이 기어들어 갈 수 있을 정도의 작은 구멍이 나 있었고, 카단은 주저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이 통로도 오랜만이네. 아직 보존되어 있어서 다행이야.’

작고 좁은 통로는 꽤 길었고, 오랜 시간 기어간 끝에 배수구 뚜껑처럼 생긴 철창이 보였다.

스륵.

철창을 조심스레 밀자 톡 하고 빠졌고, 카단은 곧바로 작은 통로를 빠져나왔다.

“여기도 어질러져 있네.”

진한 알코올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이곳은 샬로트의 실험실이었다.

실험실 역시 조사단이 왔다 갔는지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아버지는 지저분한 걸 싫어하셨는데….’

마음 같아선 깔끔하게 정리해놓고 싶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걸음을 옮겼다.

지하 실험실에서 1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조심스레 올라간 뒤 주변을 살펴봤다.

다행히 저택 내부에는 병사들이 보이지 않았다.

‘쯧.’

오랜만에 찾아온 샬로트의 저택.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떠올랐다.

꽈악.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었는지 카단이 주먹을 꽉 쥐었다.

‘추억이나 떠올리자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니니까.’

이내 고개를 저은 카단은 걸음을 옮겼고, 그의 걸음은 샬로트가 밤마다 책을 읽었던 벽난로 앞이었다.

전과 다르게 벽난로는 불이 꺼져 있었지만, 카단은 상관없다는 듯 벽난로 앞에 섰다.

‘이쯤에 있었는데?’

여기저기 더듬거리던 끝에 벽돌 하나가 쑥 눌렸고, 동시에 벽난로가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사단도 여긴 못 찾았던 모양이군.”

벽난로 뒤에 있던 숨겨진 공간은 다름 아닌 샬로트 잉그마르의 비밀 창고였다.

창고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창고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아버지는 여기에 있던 자료들도 모두 반지에 담아서 주셨던 거군.’

창고 안으로 들어서자 벽난로 문이 저절로 닫혔다. 벽 곳곳에 마나석이 빛을 내고 있기에 어둡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창고 끝까지 걸어간 카단은 미소를 지으며 바닥을 내려다봤다.

“다행히 멀쩡하네.”

카단의 시선 끝에 닿은 건 바닥에 새겨진 커다란 마법진이었다.

스릉!

카단은 곧바로 단검을 꺼내 손가락에서 피를 빼냈고, 마법진 위로 뚝뚝 떨어트렸다.

또옥.

피를 충분히 흘렸다 생각한 카단은 단검을 내려놓고, 마법진 위로 손을 올렸다.

그와 동시에 4성이 된 마나 하트를 최대로 활성화했다.

우우웅!

그러자 마법진이 붉은빛으로 빛나기 시작했고, 카단은 마법진을 바라보며 작게 읊조렸다.

“네크로맨서 카단 잉그마르가 피의 계약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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