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화
영혼의 결정을 흡수하는 순간, 텅 비었던 마나가 채워졌고, 상처가 빠르게 회복되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흡수된 마력은 곧바로 카단의 마나 하트에 스며들었고, 마나 하트는 전보다 더 단단한 벽을 세우기 시작했다.
여기까진 처음 영혼의 결정을 흡수했을 때와 똑같았다.
‘아직도 흡수된다고?’
마족의 부하가 아닌 마족이 죽고 남긴 영혼의 결정이어서 그런걸까?
흡수되고 있는 마력의 질과 양은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적어도 1년은 단련에만 집중해야 얻을 수 있는 성취를 단번에 달성하고 있었다.
‘미쳤군.’
전설 속에서나 등장하던 힘이라지만, 단 한 번 흡수만으로 이렇게나 빠른 성장을 하게 될 줄이야.
카단은 헛웃음을 삼키며 자신의 몸을 살폈다.
외관적으로 변한 건 없지만, 몸 안에 흐르는 마나의 질이 달라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대로라면 5성도 금방이겠는데?’
영혼의 결정을 모두 흡수한 후, 카단은 샬로트와 나눴던 마지막 대화를 떠올렸다.
-만약에라도 네가 죽고 다시 살아난다면 가능할 것이다. 나를 넘어서는 것이.
전설을 믿던 네크로맨서. 샬로트는 이 당시 ‘영혼의 결정’을 떠올리며 말했던 걸까?
‘그럼 지금의 난 가능한 걸까? 아버지를 넘어서는 것이?’
죽음을 극복한 네크로맨서는 더 강한 네크로맨서가 될 기회를 얻는다.
전설 속에서나 존재하던 힘을 얻었으니, 샬로트를 넘어서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어쩌면 조금 더 빨리 야망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버지.’
카단은 씁쓸한 표정으로 비밀 창고를 둘러봤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었지만, 카단에게는 나름 추억에 장소.
‘그래. 찌질하게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지.’
카단은 고개를 저으며 빠르게 정신을 차리더니, 곧바로 아공간을 열어 그 안에서 양피지 한 장을 꺼냈다.
스륵.
‘이게 던전 입구 앞으로 좌표가 찍힌 텔레포트 스크롤이라고 했지?’
그가 꺼낸 건 벨리드 교관에게서 받았던 붉은색 마법 스크롤이었다.
마나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저택 밖에서 스크롤을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긴 했으나.
‘시간을 지체하다 마족을 마주치는 게 더 위험하다.’
무너진 저택에서 시간을 더 보내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판단한 카단은 마법 스크롤을 펼쳐 그대로 찢어버렸다.
번쩍!
스크롤이 찢어지는 동시에 스크롤에서부터 빛이 뿜어졌다.
빛에 삼켜지는 동시에 속이 울렁거리며 어지럼증이 느껴졌고, 카단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를 악물었다.
솨아아아.
이내 주변 공기가 달라진 것을 느낀 카단이 천천히 눈을 떴다.
‘빌어먹을. 텔레포트는 몇 번을 당해봐도 적응되지 않는군.’
속이 울렁이는 것을 참으며 앞을 바라보자, 그 앞에는 낯선 동굴 입구가 보였다.
입구 앞에는 쇠사슬이 마구잡이로 걸려 있었고, 그 쇠사슬엔 경고 표시판이 달려 있어싿.
[이곳은 ‘배고픈 시체들의 동굴’. 중급 던전입니다.]
그 아래로 경고문구도 적혀 있었지만, 카단은 던전 이름만 확인한 뒤 곧바로 동굴 안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여우 문양이 새겨진 갑옷을 입고 있는 사람. 아니, 시체라고 했지?’
휴식이 필요할 법도 했지만, 영혼의 결정을 흡수하며 어느 때보다 몸 상태가 좋았다.
‘이것부터 빨리 끝내버려야겠네. 어차피 어려울 것 같지도 않으니.’
카단은 벨리드의 의뢰를 다시 한번 떠올린 뒤 쇠사슬을 넘어 동굴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
달그락!
방패를 든 10기의 해골들이 카단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좀비 던전이라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아무리 네크로맨서가 좀비 독에 내성이 있다지만, 무적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카단도 사람이기에 물리면 아프고 찔리면 죽는다.
좀비가 될 걱정이 없을 뿐이지, 던전의 위험성은 여전히 카단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게다가 이곳은 중급 던전.
‘좀비가 될 수도 있는 위험성 때문에 난도가 높게 측정되긴 했지만, 위험한 건 변함없다.’
그렇기에 카단은 해골들 사이에 숨어 던전 안을 천천히 공략하고 있었다.
“내가 명령할 때까지 방어만 해.”
물론 카단의 목적은 던전 공략이 아닌 특정 시체를 찾는 일.
그렇기에 무작정 좀비들을 휩쓸고 다닐 수는 없었다.
그어어어어.
얼마 지나지 않아 좀비 무리가 카단과 해골 병사의 길을 막아섰다.
수십의 좀비 무리가 달려들었지만, 해골 병사로 이루어진 방어진을 뚫을 수는 없었다.
빠득, 빠득!
썩은 이로는 해골 병사의 뼈를 부술 수도 없었고, 좀비의 독 역시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빠득, 빠득!
무는 힘이 강한 것도 아니었기에 해골 병사들은 좀비가 달려느는 것을 막은 채 카단의 명령을 기다릴 뿐이었다.
‘교관님이 말한 좀비는 안 보이네.’
평범한 공략이라면 좀 더 빠르게 전진할 수 있었겠지만, 특정 시체를 찾아야 했기에 속도가 더뎌질 수밖에 없었다.
“죽여.”
갑올을 입었는지, 그 갑옷에 여우 문양이 새겨졌는지까지 확인한 뒤, 둘 다 해당하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학살이 시작됐다.
좀비가 방어력이 뛰어난 몬스터가 아니었기에 해골 병사만으로도 손쉬운 사냥이 가능했다.
‘확실히 네크로맨서에게는 쉬운 던전이야.’
이곳에서 카단에게 위협 요소가 될 만한 것들은 없었다.
좀비의 수가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해골 병사가 사방을 지키고 있으니 그 어떤 상황보다 안전한 상황이었다.
바닥에 숨어 있다 튀어나오든, 옆에서 기습하든, 천장에서 떨어지든 상관없었다.
해골 병사들이 모든 공격을 막아주었고, 해골 병사들이 놓치더라도 뼈로 만들어진 방패가 기습하는 좀비를 막아냈다.
카단은 기습 공격이나 던전에 설치된 함정들만 조심하면 되는 상황.
‘쯧. 바로 찾아내려던 건 욕심이었네.’
그러나 카단의 표정은 좋지만은 않았다.
시체가 썩으며 풍기는 악취가 동굴에 가득했고, 아무리 평생 시체를 마주하며 살아왔던 카단도 시체들이 풍기는 심한 악취에는 적응할 수가 없었다.
‘이것도 고역이군.’
게다가 특정 시체를 찾으며 천천히 전진했기에 한참 동안 악취를 맡아야만 했다.
동굴 안을 한참을 돌아다녔지만, 벨리드 교관이 말했던 시체는 좀처럼 보이질 않았다.
꽤 깊은 곳까지 들어왔고, 꽤 많은 좀비를 사냥했다.
‘냄새 때문에 편히 쉴 수도 없고.’
그렇게 던전의 끝자락에 다다랐을 때.
‘계단?’
동굴 끝 벽에 아래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발견하게 되었다.
“하아.”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에 카단은 한숨을 내쉬었고, 이내 고개를 저으며 계단로 향했다.
다행히 곳곳에 마나석이 박힌 채 빛을 내고 있기에 어둡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자, 다시 시작하자.”
아래층으로 내려온 카단은 1층에서 했던 것과 같이 해골 병사들을 앞세워 전진하기 시작했다.
좀비를 마주하면 해골로 그들의 걸음을 묶은 채 좀비들을 확인하고 사냥하는 것을 반복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그어어어.
“찾았다.”
3시간 넘게 동굴을 탐사한 끝에 여우 문양이 새겨진 갑옷을 입은 좀비를 발견했다.
좀비 무리 틈에 끼어 힘없이 걷고 있던 목표물.
다른 좀비들은 이제 확인할 필요도 없었으니, 카단은 사냥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내 갑옷을 입은 좀비가 해골 병사를 향해 달려왔고.
“그 녀석은 죽이지 말고 데려와.”
카단은 곧바로 해골 병사를 향해 명령했다.
해골 병사는 좀비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목표였던 좀비를 붙잡고 카단 앞으로 데려왔다.
“꽉 붙잡고 있어. 나도 물리면 아프니까.”
딱딱딱.
명령받은 해골 병사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더니, 좀비의 입 안으로 팔을 집어넣었다.
그어어어!
좀비는 입에 물린 뼈를 열심히 씹어댔고, 옆에 있던 다른 해골 병사들이 좀비의 몸을 붙잡았다.
달그락.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듯 해골 병사들이 안광을 빛내며 카단을 바라봤고.
“잘했어. 그대로 있어.”
카단은 천천히 손을 뻗어 좀비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려놓았다.
크아아아!
좀비는 발버둥을 쳤지만, 해골들에게 붙잡혀 있었기에 카단에게 아무런 위협도 줄 수 없었다.
“너의 죽음을 내가 기억하겠다.”
카단은 눈을 감은 채 마나를 활성화하며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파앗!
카단의 머릿속으로 타인의 기억이 영상처럼 재생되기 시작했다.
기억의 주인은 숲속 어딘가, 이끼가 잔뜩 낀 축축한 바닥에 앉아있었다.
흐릿한 시야로 보이는 건 피로 물든 바닥.
죽기 직전의 기억이어서 그런지 호흡 역시도 불안정했다.
저벅, 저벅.
멀지 않은 곳에서 잔디를 짓밟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기억의 주인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흐릿한 그의 시야로 용병 차림의 남성이 보였다.
갈색 머리의 사납게 생긴 남자. 목에는 괴상하게 생긴 문양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곱게 죽을 것이지. 귀찮게 여기까지 숨어들어?”
바로 앞까지 다가온 남자는 기억의 주인을 향해 손을 뻗더너니.
촤락!
기억의 주인이 차고 있던 목걸이를 강제로 빼앗았다.
“배신자 새끼.”
기억의 주인은 남은 힘을 짜내 이를 악물며 말했지만, 배신자로 지목당한 남자는 입꼬리만 올릴 뿐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용병차림의 남자는 손을 흔들더니, 몸을 돌려 어딘가를 향해 걷기 시작했고, 기억의 주인은 그 뒷모습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억울함과 분노 등의 감정들이 느껴졌고 그렇게 망자의 기억은 끝이 났다.
“이런 거였나?”
망자의 기억을 읽는 것이 이처럼 생생하게 느껴질 줄이야.
카단은 마치 자신이 죽음을 경험한 것처럼 고통스럽다는 듯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러웠으며, 망자가 느꼈던 감정들이 밀물처럼 밀려 들어왔다.
‘쯧. 자주는 못 써먹겠네.’
직접 죽음을 경험한 것 같은 느낌에 기분도 좋지 않았다.
‘그 녀석이 가져간 목걸이는 교관님이 말했던 목걸이가 맞는 것 같고.’
망자의 기분을 계속 품고 있을 순 없었기에 카단은 고개를 빠르게 저으며 잡다한 생각을 털어내고 할 일에 집중했다.
‘목에 있던 문신은 뭔가 문어 같았는데.’
다행히 망자의 기억이 뚜렷하게 카단의 머릿속에 남았다.
목걸이를 가져간 남자의 인상착의도 뚜렷하게 기억했기에 벨리드 교관에게 이 기억을 그대로 전하기만 하면 의뢰는 끝.
‘그 목걸이가 도대체 뭐기에 그런 걸까?’
목걸이에 얽힌 사연이 궁금하긴 했지만, 굳이 깊이 관여하고 싶진 않았다.
괜히 깊이 관여했다간 목숨의 위협을 느끼게 될 것 같았으니.
“그나저나 배신자라….”
카단은 ‘이석훈’이었을 때 부하의 배신으로 생을 마감했었다.
그래서일까? 눈앞에 좀비에게 묘한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망자에게 동질감이라니.’
그러나 좀비는 어차피 더는 사람이 아닌 존재. 망자를 위해서라도 깔끔하게 죽여주는 것이 옳았다.
스릉.
카단은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단검을 꺼내 좀비의 목숨을 거둬주었다.
벨리드 교관과 관련된 사람이었지만,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뭐, 죽이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으셨으니 죽이는 게 맞아.’
카단은 손을 털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 좀비의 수는 많았고 해골 병사들이 좀비가 다가오는 것을 열심히 막아내고 있었다.
“의뢰도 끝냈으니, 이제 속도를 좀 내봐야겠군.”
더는 더디게 공략할 필요가 없었기에 카단은 곧바로 해골들에게 자유롭게 전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뿐이 아니었다.
“나와.”
아공간을 열더니, 그곳을 향해 명령을 내렸고.
크르릉.
명령과 함께 아공간 안에서 놀 한 마리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마음껏 놀아라.”
본래 살아있는 생명체는 아공간 안에 담을 수 없지만, 골렘은 생명이 없는 존재.
아공간에 보관하는 것도 가능했다.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는 골렘에게 충분한 경험도 시켜줄 겸 끝까지 던전을 공략할 생각이었다.
그어어어!
좀비들은 드디어 물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났다며 신나게 달려들었지만.
그어어?
제대로 물어보기도 전에 놀이 휘두른 앞발에 그대로 영원한 죽음을 맞이했다.
크르릉.
놀의 형태를 한 골렘은 언데드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강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물론 살아있는 놀 만큼 빠르고 강한 건 아니었지만, 일반적인 언데드보다 훨씬 빠른 속도를 보여주었다.
해골 병사에 이어서 플래시 골렘까지 합세하니 사냥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네크로맨서가 공략하기 쉬운 던전이라지만, 재료 수급이 불가능한 건 좀 아쉽군.’
다른 힘에 의해 되살아난 언데드들은 네크로맨시로 되살리거나 재료로 수급할 수가 없었다.
던전을 공략하다 죽은 이들도 결국엔 좀비가 되어버리니, 이 던전에서 카단이 되살릴 수 있는 시체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재료는 다른 곳에서 구하면 그만이니까 상관없어.’
카단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좀비들 너머로 보이는 던전 깊은 곳을 바라봤다.
‘여기서 확인해봐야 할 건 따로 있다. 뭐, 그게 있다면 다행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