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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네크로맨서-42화 (42/186)

제42화

던전의 끝자락을 향해 걷던 카단은 잠시 잭 카터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좀비 던전 말씀입니까? 거긴 왜 가십니까?

-볼 일이 있어서요.

-아무리 네크로맨서라지만 그 끔찍하고 냄새나는 곳에 무슨 볼일이…. 얻을 게 뭐 있다고? 좀비는 약으로도 못 씁니다.

-네. 그렇죠.

-게다가 좀비들은 네크로맨시 재료로도 못 쓴다고 알고 있는데요?

-볼 일이 있다니까요? 그나저나 좀비 던전과 관련된 자료가 있을까요?

샬로트의 저택으로 가기 전, 잭 카터와 식사를 끝내고 좀비 던전에 관한 정보를 얻었었다.

만약을 위해서라도 정보를 얻고 가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음. 언데드 던전은 보통 두 종류입니다. 언데드를 보관하기 위해 만든 네크로맨서의 창고.

인위적으로 던전을 만들어 언데드를 육성하는 네크로맨서가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기에 놀라진 않았다.

-그리고 리치 등 최상위 언데드가 보스로 존재하는 리치 던전.

당장 카단의 실력으로 리치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했으나 카단이 가는 곳은 중급 던전.

게다가 좀비밖에 없는 던전이니 리치 던전일 확률은 희박했다.

-둘 모두 아니라면요?

-그렇다면 아마도 던전 어딘가에 마석이 박혀 있을 겁니다.

-마석이라면 마족들의 힘이 담긴 돌 말씀입니까?

-네. 마석에서 흘러나온 불길한 마력으로 인해 언데드 몬스터가 나타난다고 알려졌습니다.

카단은 짧은 회상을 끝내며 주변을 더 둘러봤다.

당연하게도 리치로 보이는 보스 몬스터는 보이지 않았다.

‘보스 몬스터가 없으니, 둘 중 하나라는 건데.’

이곳은 중급 던전이니 당연히 리치 따위의 보스 몬스터는 존재할 리 없었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

언데드의 창고이거나 어딘가에 마석이 박혀 있거나.

이미 해골 병사와 플래시 골렘이 주변에 있던 좀비들을 모두 처리한 상태였다.

썩은 냄새만 진동할 뿐, 카단을 향해 공격해오는 몬스터는 이제 하나도 남지 않은 상황.

덕분에 카단은 텅 빈 좀비 던전을 여유롭게 거닐 수 있었다.

‘네크로맨서의 창고였다면 특정한 표식을 남겼을 텐데, 그것도 없어’

여유롭게 던전 안을 거닐던 카단의 걸음은 던전의 끝에 있는 커다란 벽 앞에서 멈춰졌다.

“여기 있었구나.”

그리고 그가 바라보는 곳에는 벽에 검붉은색의 수정 비슷한 것이 박혀 있었다.

‘마석은 마족의 심장이라고 했지?’

책에서만 봤지, 실제로 마석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확실히 불길한 마력이 계속 흘러나오네.’

마족은 생명이 다하면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마족의 시체가 있던 자리에는 가끔 보석처럼 생긴 돌이 남겨진다고 한다.

인간들은 마족이 남긴 검붉은색의 돌을 마석이라 불렀다.

‘과거에는 이 마석도 무기에 넣어 쓰거나 지니고 다니기도 했다던데.’

마석을 지니고 있거나 무기로 만들어 쓸 때 상상 이상의 강한 힘을 얻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 힘은 거저주는 것이 아니었다.

마석이 인간에게 힘을 주는 대가로 인간의 기력을 흡수하고, 인간이 기력을 다해 죽을 때쯤 마족은 인간의 몸을 빼앗았다.

그것이 가디언들의 전설을 만들어냈던 2차 전쟁의 시초.

이후 왕국에서 마석 사용을 금지하며 마석을 발견하는 즉시 부숴야 한다는 법까지 만들었다.

‘왕국 곳곳에 흩어졌던 마석을 모두 왕국에서 회수해갔다고 하던데….’

어쩌면 그 당시 회수한 마석으로 인하여 왕국의 배후에 마족이 설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그렇다면 좋지 않은 상황인데….’

카단의 예상이 사실이라면 마족으로부터 왕국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가디언들은 마족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만약 아버지를 죽이라고 지시한 게 마족이라면 왜?’

샬로트 잉그마르를 죽게 만든 자가 왕이 아닌 마족이라면 복수의 대상은 명확해진다.

그렇다고 가디언들과 적대해야 한다는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었지만.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겠어.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야 할 이유가 분명 있을 거다.’

카단은 이를 악물며 불길한 기운을 풍기는 마석을 바라봤다.

스릉.

이내 생각을 정리한 카단은 뼈로 만든 단검을 뽑아 있는 힘껏 마석을 향해 휘둘렀다.

카아앙!

생각보다 마석은 쉽게 잘렸다.

스르륵-

두 동강 난 마석은 곧바로 가루가 되어 사라졌고, 주위를 감싸던 불길한 기운도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카단은 마석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곳엔 익숙한 구체 하나가 떠 있었다. 불길한 마력을 지닌 검붉은색 구체.

‘이렇게도 영혼의 결정을 얻을 수 있는 거였어.’

마석을 마족의 심장이라 부르니, 어쩌면 마석을 깨트렸을 떄 영혼의 결정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들어맞았다.

‘마석 거래는 당연히 불법일 것이고.’

영혼의 결정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던 카단은 잠깐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했다.

‘그런데 잭 카터 씨가 불법 거래도 하시려나? 거래 정보라도 좀 알 수 있다면 좋을 텐데.’

***

“식사 나왔습니다.”

던전에서 빠져나온 카단은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가장 가까운 도시를 찾아갔다.

그가 도시에 들어와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식당.

영혼의 결정을 흡수하며 마나와 체력, 상처들이 회복되었다지만 허기까지는 채워지지 않았다.

꽤 오랜 시간 굶었기에 허기진 상태였고, 휴식을 취하기 전 배부터 채울 생각이었다.

물론, 몸에 가득 밴 썩은 냄새를 빼기 위해 식당과 연결된 여관방에 들러 목욕과 옷을 갈아입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의뢰는 끝났지만, 이왕 멀리까지 나왔으니 던전이나 좀 더 공략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카단은 생각을 끝내며 식탁 위에 놓인 음식을 바라봤다.

‘생각보다 맛있어 보이는데?’

돼지 바비큐와 수프, 샐러드.

먹음직스러운 모습에 카단은 곧바로 포크와 나이프를 들어 고기를 썰기 시작했다.

식사하면서도 그의 머리는 끝없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마석으로 영혼의 결정을 얻을 수 있다면 언데드 몬스터가 나오는 던전들을 찾아다녀 볼 필요가 있겠어.’

언데드 던전에서 마석을 얻는다면 더욱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일반 던전을 돌아다니며 마족의 부하를 찾아다니는 것보다 훨씬 효율이 높다고 할 수 있었다.

‘마석에서 나온 영혼의 결정도 꽤 많은 마력이 담겨 있었다.’

배고픈 시체들의 동굴에서 발견한 영혼의 결정은 곧바로 흡수했다.

‘플래시 골렘에게도 영혼의 결정을 넣을 수는 있다지만, 당장의 효율을 위해서라면 내가 흡수하는 게 맞아.’

어차피 아카데미를 다니는 동안 플래시 골렘을 꺼내 사용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기에 카단은 오래 고민하지 않고 본인이 흡수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혹시나 마족의 저주 같은 것에 걸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무런 이상은 없는 것 같고.’

마석을 흡수한 게 아니라 영혼의 결정을 흡수했기에 몸 어디에서도 마족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행히 마족의 저주라던가, 기력을 빼앗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영혼의 결정 몇 개만 더 얻는다면 올해 안으로 5성을 달성할 수도 있겠는데?’

마나 하트에는 순도 높은 마나가 가득했고, 몸 곳곳에 퍼진 마나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질이 좋았다.

이 속도라면 6개월 안에 5성을 달성하는 것도 꿈은 아니었다.

‘우선 이 도시 근처에 있는 던전들을 공략해볼까?’

영웅 아카데미의 생도라는 것을 증명하는 목걸이를 지니고 있었으니, 용병 길드에서 던전 정보를 얻는 것도 가능했다.

딱히 용병패가 없더라도 아카데미 목걸이만 지니고 있다면 중급 이상 던전에 입장하는 것도 문제는 없을 터.

‘흠. 벨리드 교관님이 기다리고 계실 테니, 한두 곳만 더 둘러보고 가야겠다.’

그렇게 결정을 내린 찰나.

철컥.

문이 열리며 식당 안으로 사냥꾼 복장의 남자 둘이 들어왔다.

‘치안이 좋지 않은 도시였나?’

산적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험상궂은 외모.

카단은 혹시나 그들이 행패를 부리진 않을까 싶어, 당장이라도 싸울 수 있도록 마나를 천천히 움직였다.

“이봐, 주인장! 영웅 아카데미에 관한 새로운 소식은 없나?”

“멀리까지 사냥을 다녀와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두 남자는 바 테이블 쪽으로 향하며 들고 있던 무기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영웅 아카데미? 산적이 아니라 사냥꾼들이었나?’

카단은 조금 긴장감이 풀린 듯 피식 웃으며 다시 포크를 들어 식사를 이어가려 했다.

“왜 없겠나? 휴식기를 맞이하는지도 벌써 며칠이나 지났는데.”

식당 주인은 너스레를 떨며 웃었고, 주문부터 하라는 듯 바 테이블을 툭툭 두드렸다.

“난 맥주랑 닭구이로 주시게.”

“나도 맥주랑. 생선구이로 부탁하지.”

주인장은 곧바로 주방장에게 주문이 들어왔다고 소리친 뒤, 다시 바 테이블로 돌아와 맥주 두 잔을 건넸다.

“우선 신입생 1등이 누군지 궁금하지 않나?”

“제일 궁금했던 소식이네.”

“빨리 좀 말해. 답답하니까.”

주인장은 떠보듯 말했고, 두 사냥꾼은 답답하다는 듯 벌컥벌컥 맥주를 들이켰다.

“신입생 1등은 아쉽게도 네크로맨서라고 하네. 이름이 카단이었나?”

주인장의 말이 끝나는 순간.

쾅! 쾅!

두 남자가 바 테이블로 맥주잔을 세게 내려놓으며 불만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뭐, 뭐야?”

“그 빌어먹을 네크로맨서가 또?”

‘또’라는 말에 카단은 갸웃하며 주변을 살폈다. 어쩐지 식당 안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은 듯한 기분이었다.

‘뭐야? 다들 표정들이 왜 저래?’

즐겁게 식사를 이어갔던 사람들도 모두 살벌한 표정으로 주인장의 이어질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망할 네크로맨서 놈이 또 블랑쉬 님을 이겨 먹었어?”

“블랑쉬 님에게 첫 패배를 안겨준 것도 그 네크로맨서라고 하지 않았나?”

갑자기 왜 여기서 블랑쉬의 이름이 나오는 걸까? 카단은 애써 당황함을 감추며 식사를 이어갔다.

“감히 블랑쉬 님에게 패배를 안겨준 것도 모자라 1등 자리를 빼앗아?”

“블랑쉬 님이 언제 1등 자리를 놓친 적이 있었어? 당연히 영웅 아카데미에서 1등 하실 줄 알았는데!”

식당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했고, 주인장 역시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내 식당에 오기만 해봐라. 주문도 받지 않고 내쫓아 버려야지!”

카단은 괜히 체할 것 같은 느낌에 옆에 있던 물잔을 붙잡았다.

“설마 그 네크로맨서가 미치지 않고서야 더글라스 가문이 다스리는 이 도시까지 오겠어?”

“영웅이 될 뛰어난 재능을 지닌 사람이니 응원해줘야 하는데, 도무지 응원해 줄 수 없어!”

“가엾은 블랑쉬 님. 얼마나 슬퍼하셨을까?”

“원통하다!”

식당 안에 있던 사람들이 원통함을 외치며 술을 마셨고.

딸꾹.

물을 마시려던 카단은 저도 모르게 딸꾹질을 해버렸다.

하필 고요한 타이밍에 큰 소리로 딸꾹질을 하는 바람에 식당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카단에게 쏠려버렸다.

“비, 빌어먹을 네크로맨서.”

분위기상 이렇게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다행히 카단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은 다시 원통하다 외치며 술을 들이켰다.

카단은 재빨리 물을 들이켜며 생각했다.

‘빌어먹을. 여기가 더글라스 가문의 영토였다니. 아니, 그래도 여기 분위기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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